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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무한계약-175화 (175/265)

# 175

175화 드래곤의 둥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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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를 입은 그란로기아가 둥지로 들어섰다는 소식은 다른 드래곤들에게 빠르게 퍼져나갔다. 드래곤들은 직접 만나 대화하지 않더라도 마법을 이용하여 멀리 떨어진 대상과 소통할 수 있었다. 그 소식을 들은 다른 드래곤들은 이에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그란로기아가 돌아왔다고  그것도 혼자서 ”

“다른 동족들은 모두 죽었단 말인가 ”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

대부분의 드래곤은 어떻게 일이 이렇게까지 커졌는가에 관해 궁금했다. 그리고 그것이 온건파 드래곤들이 인간과 손잡은 것 때문이라는 것에 분노했다.

“감히! 지금까지 동족이라고 봐줬거늘! 정녕 끝을 봐야 한단 말인가!”

“인간과 손을 잡다니! 드래곤의 수치다! 위대한 존재의 자존심마저 버리다니!”

아직 정확한 정황은 알 수 없었지만, 대부분의 드래곤은 전체적인 상황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짐작했다. 그들은 그란로기아와 만나서 직접 그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지만, 그란로기아는 이미 로드의 레어로 향한 뒤였다.

“끄응. 로드의 레어는 동족이라 할지라도 허락받은 자만이 들어갈 수 있는 곳.”

“아무리 궁금하다 하더라도 함부로 들어갈 수는 없겠지. 밖에서 기다려야만 하는가.”

강제로 들어갈 수도 있겠지만 실상은 달랐다.

로드의 레어는 역대 로드들이 최선을 다해서 만든 온갖 방어 마법과 힘이 담겨 있었다. 그 힘은 같은 드래곤에게도 영향을 줄 정도였다.

어지간한 드래곤들은 레어에 설치된 방어 마법을 건드리지도 못했다.

무엇보다 함부로 들어가려고 했다가는 드래곤 중에서 가장 강하다는 당대의 로드와 적대하게 된다. 동족이긴 하지만 로드는 그중에서도 격이 다른 존재다. 다른 드래곤들도 그 앞에서는 몸을 사렸다.

“여기가 로드의 레어인가.”

드래곤의 거대한 몸보다도 몇 배나 거대한 문이 앞을 떡하니 막고 있었다. 마력으로 문에 새겨진 글자는 딱 봐도 이 문이 범상치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렇게나 철저하게 보안된 장소인 것을 보면 드래곤 로드가 기거하는 레어가 확실했다. 아주 약하게 사용하고 있는 <헤르메스의 눈>을 통해서도 확인했다.

현찬은 고민했다. 여기서 문을 부수고 쳐들어가야 하는가, 아니면 문이 열릴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가.

막상 문이 열릴 때까지 기다리자니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일을 빠르게 마무리 지어야 하는 현찬으로서는 별로 반갑지 않은 일이었다.

‘역시 이대로 부수고 들어가야…….’

현찬이 그런 마음을 먹었을 때였다.

문 안쪽에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들어 오거라.”

그저 한마디. 딱 한마디를 했을 뿐인데도 드래곤으로 변한 현찬의 비늘이 짜르르 울렸다. 그 생소한 감각에 현찬이 눈살을 찌푸렸다.

단순히 목소리의 울림 하나만으로 드래곤의 강력한 육체에 영향을 주어 떨리게 했다. 그렇다는 건 로드가 지닌 힘은 드래곤들 중에서도 단연 최고라는 소리였다.

쿠구구궁!

로드의 말과 동시에 거대한 문이 좌우로 쩍 갈라지며 열렸다. 문이 열리면서 레어 전체가 잘게 진동했다. 열리고 보이는 풍경은 거대한 공동이었다. 현찬은 천천히 공동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공동의 중심에 서자 문이 쿵 소리를 내며 닫혔다. 거대한 산의 안쪽에 있는 공동이지만, 천장 중앙에 뚫린 빛이 들어와 현찬의 몸을 비춰주었다. 길이만 수 킬로미터가 넘는 공동의 중심에서 현찬은 드래곤의 기척을 읽어냈다.

‘이 공동 안에 있는 용들의 수는 총 일곱.’

풍기는 기운들만 봐도 전부 고룡급 드래곤들이었다. 그들은 공동의 바깥쪽, 빛이 잘 닿지 않는 곳에서 포진한 채 현찬을 보고 있었다. 전부 비늘의 색깔이 달랐다.

적색, 청색, 흑색, 녹색, 백색, 황색.

그리고.

여러 가지 색깔이 동시에 혼합된 색깔까지.

‘뭐지  분명히 저 녀석이 로드가 분명해. 하지만 듣기로는 로드는 골드 드래곤이라고 했었는데 ’

실제로 본 로드의 비늘 색깔은 여러 가지 색이 한데 뒤섞인 색깔이었다. 무지개처럼 찬란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어딘가 그것과 매우 흡사했다.

비늘의 색깔이 찬란한 무지갯빛인 용은 아직 용신 밖에 없다고 들었다.

‘그렇다는 건 설마 지금의 로드가 거의 용신의 격에 근접했다는 건가 ’

원래부터 강하게 태어난 드래곤들은 영령이 된다면 그 격을 인간과 비교할 수 없다. 최초이자 유일하게 영령이 된 <용신 그랑데우스>가 신급 영령에 준하니, 그 직전 단계인 현재의 로드라면 신으로 승격하는 것을 눈앞에 뒀다는 소리였다.

“그란로기아. 이야기는 들었다. 온건파 녀석들이 인간과 손을 잡고 우리를 습격했다고 ”

“예. 그렇습니다.”

로드는 자연스레 현찬을 내려다보는 자세가 되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로드의 덩치는 그란로기아로 변한 현찬보다 2배 이상은 더 컸다.

‘말도 안 되는 덩치네.’

이렇게 큰 녀석은 안드레이가 사냥한 ‘난제’ 중 하나인 <울트락투스>뿐이었다. 그보다 덩치는 조금 더 작겠지만, 지닌 힘은 당연히 그 이상이었다.

현찬은 침을 꿀꺽 삼켰다.

긴장되어서라기보다는 오히려 기대감이 앞선 탓이었다.

다른 드래곤들은 용살자 현찬에게 승부조차 되지 못했다. 그러나 눈앞의 로드는 달랐다. 현찬은 저 로드야말로 그나마 자신의 상대가 될 호적수라는 것을 직감했다.

어차피 다 죽일 거지만, 적어도 저런 녀석과 한 번 정도는 싸워야 하지 않겠는가.

“자세한 설명을 원한다.”

로드의 목소리가 공동 전체를 울렸다.

황색 골드 드래곤 ‘루브나브로’.

현찬은 고개를 푹 숙이며 예의를 표했다.

“온건파가 인간이 존재하는 세계와 손을 잡았습니다. 지구라고 불리는 차원입니다.”

“거기는 정확히 어떤 곳이지 ”

“인간들이 살아가는 곳입니다. 인구가 무려 수십억이며 그중에는 저희 종족의 성체와 힘이 맞먹는 강자들이 몇 있었습니다.”

“인간들은 영령이라는 존재의 힘을 빌린다고 하던데.”

“예. 맞습니다. 그들은 영령 혹은 신, 괴물과 계약을 맺어 그들의 힘을 사용합니다. 개중에는 신과 계약을 맺어 엄청나게 강한 힘을 발휘하는 인간들도 있습니다. 그의 힘은 고룡급 용보다 더 강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래서. 그 인간이 지금 온건파와 함께 있다는 건가 ”

“아뇨.”

현찬은 고개를 들어 눈앞의 용을 쳐다보았다. 그 건방진 행동에 루브나브로의 눈매가 날카롭게 좁혀졌다. 현찬은 그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당당하게 보란 듯이 도전적인 시선을 보냈다.

주위의 고룡급 드래곤들이 용서하지 않겠다는 듯한 기운을 일으켰다. 그란로기아로 변한 현찬의 행동을 좌시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현찬은 그런 그들을 코웃음 쳤다. 로드는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는지 이빨을 드러냈다.

“네놈. 그란로기아가 아니구나!”

“그걸 이제 알았어 ”

그란로기아의 형태를 띤 몸이 풍선처럼 부풀더니 그대로 ‘펑’ 하고 터졌다. 그리고 주변은 순식간에 검은 연막으로 가득 찼다.

“어리석은!”

습격을 대비하던 다른 드래곤들이 바람을 일으키며 연막을 걷어냈다. 이런 잔재주 자체가 건방지다는 듯 드래곤들은 분노를 터뜨렸다. 현찬도 고작 이런 눈속임으로 그들을 현혹할 거라고 바라지도 않았다.

현찬이 원한 것은 아주 찰나의 틈.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흩어져가는 연막 속에서 새하얀 빛 줄기가 사방으로 뻗어져 나왔다. 대부분 고룡급 드래곤들은 방어 마법을 펼쳤지만, 그것은 돌이킬 수 없는 큰 실책이었다.

현찬이 사용하는 창은 <게오르기우스>가 사용하는 용을 죽이는 창이었다.

신의 힘을 직접 받아 용을 상대로 절대적인 상성을 자랑하는 이 공격은 아무리 고룡급 드래곤이라 할지라도 막아낼 수 없는 것이었다.

“커헉!”

“크아아악!”

고룡급 드래곤들 대다수가 그래도 죽지는 않았다. 그들도 나름 자신의 일족을 대표하는 자들이었기에 목숨은 붙어 있었다. 그러나 이미 치명상을 입어서 더 싸움에 끼어들 여유는 없으리라.

무엇보다 현찬이 그들을 그대로 놔둘 생각이 없었다.

상처 입고 빈틈을 보이는 그 순간이야말로 가장 적을 노리기 적합한 순간이었다.

현찬의 의지를 따라서 빛의 창들이 공동의 천장으로 모여들었다. 수백 자루가 넘는 빛의 창은 바다를 헤엄치는 물고기 떼처럼 공동 천장을 빠르게 돌아다니더니 이내 한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그것은 그대로 바닥에 쓰러진 드래곤들을 향했다.

“내 앞에서 감히 동족을 노리는 것이냐!”

유일하게 죽지 않은 로드가 분노를 터뜨리며 마법을 발동했다. 그 무지막지한 마력의 파동에 현찬이 만들어놓은 빛의 창들이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로드가 분노의 의지를 담은 일갈은 이 정도의 위력이었다. 지금의 로드는 거의 신의 영역에 도달해 있었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그러나 현찬에게는 그와 함께하는 신이 둘이나 되고 용살자는 무려 넷이나 된다.

그리고 그 모든 힘을 전부 다룰 수 있는 인간이 하나.

승부의 우위는 엄연히 이쪽이 가지고 있었다.

촤악!

현찬의 창이 공간을 갈랐다. 루브나브로는 순간 세상이 반으로 갈라지는 듯한 착각을 느꼈다. 자신의 미간을 중심으로 좌우로 말이다.

이성보다 본능이 먼저 마력을 일으켰다. 칙칙하지만 그래도 무지갯빛을 띤 마력이 일어나 현찬의 창을 막아냈다. 백 겹이 넘는 방어벽이 순식간에 펼쳐지며 가까스로 투창을 막아냈다.

백 겹의 방어벽 중에서 무려 82개나 뚫렸다. 단 한 번의 공격에, 이제껏 절반 이상 뚫린 적 없는 그만의 최강 방어벽이 여기까지 밀린 것이다. 그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루브나브로의 눈동자에 분노가 타올랐다.

“감히!”

현찬은 루브나브로에게 틈을 주지 않기 위해서 원거리에서 손가락을 움직여 창을 조종했다. 창은 루브나브로의 몸 곳곳을 노렸지만 그럴 때마다 무지막지한 방어 마법들이 공격을 막아냈다.

“쯧. 아무래도 무기를 바꿔야겠네.”

창은 순식간에 현찬의 손으로 돌아왔다. 현찬은 창대를 잡아채며 그것을 허공에 몇 번 털듯이 흔들었다. 그러자 창은 순식간에 검의 형태로 바뀌었다. 은은한 푸른빛이 흐르는 새하얀 검을 본 루브나브로는 위기감을 느꼈다.

<차용> [발뭉(Balmung)]

용살자 <지크프리트>가 사용했던 보검이자, 악룡 파프니르를 죽인 검.

거기에 휘감긴 용살(龍殺)의 기운에 루브나브로는 등골이 싸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위기감을 느끼지 못했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생명의 위기를 느꼈다.

[발뭉]의 끝이 루브나브로를 가리켰다. 검이 현찬의 움직임에 따라 궤적을 그리며 움직였고 루브나브로는 근거리 텔레포트를 이용해 그 자리에서 벗어났다. 이유는 몰랐다. 그저 본능이 그렇게 시켰다.

루브나브로는 조금 전까지 자신이 있던 장소에 푸른 검기 수십 개가 짐승의 이빨처럼 공간을 물어뜯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위기를 느낀 루브나브로는 몸 안의 마력을 전부 한곳에 모았다. 그리고 그것을 압축시키다가 한계치에 도달했을 때 커다랗게 폭발했다.

무지갯빛 마력이 지닌 힘이 드래곤 로드의 레어 전체에 퍼져나갔다.

현찬도 그에 질세라 푸른 검기를 일으키며 맞받아쳤다. 두 공격이 서로 충돌하며 강렬한 공진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것은 드래곤 레어를 붕괴했다.

&

콰아앙!

하늘 높이 치솟아 오른 거대한 용 둥지의 꼭대기가 분화구처럼 폭발했다. 그 뿌연 먼지를 뚫고 현찬은 백색 날개를 펄럭였다.

“대단하네. 설마 그 공격을 견뎌낼 줄이야.”

현찬 앞에는 몸 곳곳에 상처를 입은 드래곤 로드 루브나브로가 있었다. 그는 현찬을 노려보고 있었지만, 현찬에게 두려움을 주지 못했다. 이후로도 계속 이어진 둘의 싸움에서 일방적으로 공격을 맞은 건 루브나브로 뿐이었다.

“그리고 왜 그렇게 네가 강한지 알 것 같네.”

현찬의 눈은 루브나브로가 아닌 그의 등 뒤의 무언가를 보고 있었다.

“너. 용신과 계약 맺었구나 ”

“……!”

현찬의 말에 루브나브로이 두 눈을 부릅떴다.

설마 자신이 지닌 강력한 힘의 근원을 꿰뚫어 볼 거라는 걸 전혀 예상치 못했다는 반응이었다.

“어쩐지 다른 드래곤과 이질적으로 강하더니…… 설마 계약자였을 줄이야.”

영령이 존재하지 않는 드래곤 세계.

그들 자체만으로 힘이 강력하여 영령이 필요 없으며, 계약조차 필요 없는 드래곤의 세계.

그 세계에서 드래곤 로드 루브나브로는 최초로 각성한 드래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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