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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무한계약-172화 (172/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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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화 용 사냥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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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에노스아이레스가 세 마리 드래곤에 의해 공격받은 소식은 전 세계로 일파만파 퍼져나갔다. 전 세계의 국민 대부분이 상황에 관심을 가졌다. 모두 스마트폰이나 TV를 통해 현장 상황을 가슴 졸이며 지켜보았다.

하나의 도시가 통째로 사라진 모습과 뿌연 매연 속에서 간혹 보이는 용들의 거대한 그림자는 사람들의 공포심을 자극했다.

괴물이 그 도시를 전부 파괴하면 어디로 갈까? 우리가 있는 곳으로 오는 게 아닐까? 저 괴물들의 종족이 지구로 더 많이 넘어오지 않을까? 빨리 어디론가 도망치는 게 좋지 않을까?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미래에 벌어질 상황에 관한 불안함과 두려움이 가득했다.

모두가 그런 생각을 품던 순간 하늘에서 새하얀 빛줄기가 내렸다. 그것은 순식간에 매연을 걷어내고 그 안쪽의 풍경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주었다.

사람들이 본 것은 바닥에 엎어진 녹색 괴물이었다.

몸 곳곳에 난 상처와 거기에서 흘러나오는 녹색 독기는 치명상을 입었다는 사실을 대신 말해주고 있었다. 그것은 본인이 쏘려는 브레스의 역류로 인한 결과였지만, 사람들은 그 사실에 관해서는 신경 쓰지 않았다.

사람들이 본 건 카메라가 잡은 아주 자그마한 인영이었다.

하늘을 가득 채우는 붉은 용, 그 아래에 천천히 내려오는 빛에 휘감긴 단 한 사람.

“이럴 수가.”

“저 사람 알아. 강현찬 헌터야. 너무 멀어서 잘 안 보이지만, 확실히 알 수 있어.”

두려움에 떨었던 사람들의 마음속에 용기가 새싹을 틔웠다. 전부 죽을지도 모른다는 막막함 속에서 한 줄기 빛이 내려왔다. 모두가 홀린 듯이 현찬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현찬의 등 뒤로 새하얀 십자가가 나타나고 백색 날개가 활짝 펼쳐졌다.

“아아. 천사다. 천사야.”

“우리를 구원할, 신의 사자야.”

“아니. 그야말로 신이다.”

어떤 사람들은 기쁨에 겨워 눈물을 흘리기도 했고, 어떤 사람들은 현찬의 이름을 연호했다.

영웅의 근원에서 한창 훈련하던 생도들 또한 홀로그램 영상을 통해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현장 상황을 보고 있었다.

“세상에. 저거 정말 우리 오빠 맞아?”

현지는 자신의 오빠인 현찬이 보여주는 무위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평소에도 오빠가 대단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막상 현찬이 직접 싸우는 모습을 그것도 제대로 된 힘을 발휘하는 모습을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현찬은 압도적이었다.

자신보다 수백 배는 거대한 용을 매치고 두들겨 팼다. 드래곤이 뿜는 브레스를 반으로 가르고 막아냈다. 빛이 번쩍거릴 때마다 현찬의 모습이 사라졌다 나타났다를 반복했고 그 움직임을 시선으로 쫓을 수가 없었다.

“대단하다.”

“역시…… 전 세계에서 가장 강한 헌터.”

다른 생도들도 화면에 혼이라도 빨려 들어간 것처럼 넋을 잃었다. 그것은 생도들과 계약을 맺은 신급 영령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대단해. 단 한 명의 인간이 영웅급 그 이상인 준신급 영령들과 다중으로 계약을 맺다니.]

[인간으로서 수용할 수 있는 범위를 아득히 넘어섰군. 아니, 저걸 인간이라고 부를 수는 있는 건가?]

[이미 한 번 보았던 능력이지만, 이번에는 새로운 놀라움을 선사하는구나.]

[저게 그 원숭이 녀석과 계약을 맺었다는 인간의 힘……?]

신들도 흥미진진하게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현찬이 드래곤들을 쓰러뜨렸을 때는 전투를 숭상하는 군신 <타케미카즈치>와 <나타>가 자기도 모르게 기쁨의 환호성을 내지르기도 했다.

“와……. 너희 오빠 정말로 대단하다, 현지야.”

오직 한성주만이 뭔가 맥이 빠지는 반응을 보이며 기뻐하고 있었다. 다소 약한 반응이었다. 다른 생도들은 현찬의 압도적 무위에 감탄했지만, 한성주로서는 그저 ‘강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녀의 관심사는 오직 그녀가 좋아하는 사람밖에 없었다.

“그러게. 정말로 강하네. 도저히 따라갈 수 없을 만큼.”

현지는 자신의 오빠가 얼마나 험한 싸움을 겪어왔는지 오늘 깨달았다. 지금까지는 알고만 있었지 직접 두 눈으로 본 적이 없었다.

현지 또한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참상에 경악했고 분노마저 일었다.

그러는 한편 두려움도 가졌다.

‘내가 저길 간다면……. 가서 죽으면 어떡하지? 저 괴물들을 상대로 내가 싸울 수나 있을까?’

그녀가 그런 나약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현찬은 직접 현장으로 나가서 괴물들을 쓰러뜨렸다.

현지가 현찬을 향해 지닌 감정은 가족으로서 해준 것이 없는 미안함, 그리고 뛰어난 오빠를 향한 동경심이었다. 그 감정을 기반으로 그녀는 오늘 이 자리에서 확고한 결심을 다잡을 수 있었다.

‘나도 반드시, 오빠처럼 강해질 거야.’

그러는 순간 화면 속의 현찬이 날개를 활짝 펼치더니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 속도가 너무 빨라서 현찬이 있던 자리에는 그저 빛의 흔적만이 가루 입자처럼 남아서 허공에 서서히 녹아내리고 있었다.

“그런데 어디 가는 거야?”

현찬이 드래곤들이 사는 본거지에 간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그녀를 포함한 다른 생도들 또한 경악했을 것이다.

&

<엘 드라코>.

드래곤들의 세계이자 오직 드래곤 밖에 살지 않는 신비로운 세상이다.

오랫동안 살아온 드래곤들이 지식을 쌓고 조화를 추구하며 살아가는 이 세계는 어떻게 보면 지구의 경쟁적인 삶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매우 평화로운 공간이었다.

땅속 깊은 곳까지 뿌리를 둔 나무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고 험한 숲과 바윗길은 그 어떠한 인간의 손때가 타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것이었다. 그곳에서 다양한 동물과 식물들이 살아가고 있으며, 자연의 풍경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그 누구의 개입도 없이 순수하게 자라난 원시의 숲.

<엘 드라코>의 대부분이 이런 원시 숲이 차지하고 있었다.

그 밖에도 마그마가 들끓는 화염 지대,

일 년 내내 눈보라가 몰아치는 빙하 지대,

지독한 독기와 늪으로 가득한 늪 지대,

식물도 동물도 살지 않는 험준한 바위 지대,

수심이 지구의 기본적인 몇 배는 되는 거대한 바다까지.

<엘 드라코>는 온갖 다양한 환경을 간직한 행성이었다.

그곳의 중심에서 현찬이 모습을 드러냈다.

“여기가…….”

“네 맞습니다. 여기가 바로 엘 드라코입니다. 저희의 세계이자, 드래곤의 세상이죠.”

황급히 현찬의 뒤를 쫓아 온 겔라드리온이 자신이 사는 세계를 소개해주었다. 장소는 나무가 빽빽이 자라난 거대 원시 숲이었다. 겔라드리온은 현찬에게 자신이 직접 길을 안내하겠다고 했지만, 현찬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이미 늦은 것 같은데요.”

“네?”

대체 무슨 의미로 한 말일까.

겔라드리온이 그 말의 진의를 깨닫게 되는 데 얼마 걸리지 않았다.

“무슨……!”

멀리서부터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 다수의 기척. 그것은 당연하게도 드래곤들의 기척이었지만, 문제는 바로 그 기세의 흉흉함에 있었다. 겔라드리온의 예상이 맞는다면 지금 접근하는 녀석들은 어둠에 물든 파괴의 드래곤들이다.

“이곳은 온건파가 거주하는 영역일 텐데, 대체 어디서 저렇게 많은 과격파가 넘어온 거지?”

그런 겔라드리온의 머릿속을 스치는 불길한 생각이 있었다.

설마, 이곳을 지켜야 하는 자신의 동료들이 모두 당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

그것의 진위 여부는 확인할 수 없었지만, 일단 적들이 오는 것은 확실했다.

“강현찬 님! 잠시 자리를 피해야 합니다! 지금 다가오는 녀석들의 수가 너무 많아요!”

이쪽을 향해 날아오는 존재는 무려 10마리나 되는 드래곤이었다. 수도 수지만, 각 개체마다 상당히 오래 산 녀석들만 있어서 현찬이 죽인 그란로기아급 녀석들이 기본이었고, 그 이상으로 강한 놈도 있었다.

‘아무리 현찬 님이 강하다 하더라도 고룡급이 셋이나 있으면 진다!’

겔라드리온은 어떻게든 마력을 쥐어 짜내서 이 자리에서 후퇴하려고 마음먹었다. 현찬은 고개를 저었다. 그 발악은 이미 늦은 것이었다.

“애석하게도, 이미 늦은 것 같네요.”

“그런…….”

현찬의 말대로, 아무리 마력을 운용해서 텔레포트를 사용하려고 해도 주변 마나가 얼어붙기라도 한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그것이 상대방의 농간이라는 것을 모르는 자는 이 자리에 없었다.

“그리고, 어차피 도망칠 생각도 없었어요.”

“설마 싸우시겠다는 겁니까?”

“당연하죠.”

“무모한 짓입니다. 현찬님이 아무리 강하다 하더라도, 저쪽은 무려 고룡급만 셋입니다. 나머지 일곱은 조금 전 싸웠던 그란로기아와 동급이기도 합니다. 저 또한 승부를 장담할 수 없는데 어찌 현찬 님이…….”

“고룡급이고 뭐고…….”

현찬은 약간 짜증을 담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의 제 앞에서, 그 어떠한 용도 저를 이길 수 없습니다. 이것 하나만큼은 알아두시길.”

겔라드리온의 걱정은 타당했다. 현찬은 온건파를 도와줄 엄청난 전력이다. 거의 비밀 병기라고 해도 좋았다. 그 귀중한 패를 이런 자리에서 허무하게 소모할 수는 없었다.

그들의 종족을 살리고 다른 세계와 화합을 위해서라도 현찬이 죽는 것은 막아야만 했다.

설사 그 대가로 자신이 대신 죽는다 하더라도!

하지만 겔라드리온이 미처 완벽하게 파악하지 못한 것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지금 현찬이 지닌 힘이었다.

신화 속 모든 용살자의 영령과 계약을 맺었다. 거기에 신의 힘까지 곁들였다.

지금 현찬이 용족을 상대로 가지는 위력은, 겔라드리온의 예측과 상상을 아득히 뛰어넘는 것이었다.

“잘 보세요. 제가 얼마나 강한지. 그리고 제대로 깨달으세요. 당신의 걱정이, 얼마나 의미가 없는 것이었는지.”

현찬은 날개를 활짝 펼치며 빛을 뿜어냈다. 상대방에게 보란 듯이 자신은 여기에 있으니 찾아오라는 호기로운 행동이었다. 저쪽에서도 현찬의 도발을 읽었는지 더욱 날아오는 속도에 박차를 가했다.

멀리 보이던 자그마한 점은, 순식간에 커졌다.

현찬의 앞으로 날개를 펄럭이는 드래곤들이 10마리나 나타났다. 하나하나의 덩치가 그란로기아와 동급인 녀석들이었다. 개중 세 마리는 다른 드래곤보다 덩치가 1.5배는 더 컸다.

저들이 겔라드리온이 주의하라고 말했던 고룡급 드래곤이다.

“누군가 넘어왔기에 무슨 일인가 싶어서 왔는데, 어째서 인간이 여기에 있는 거지?”

리더 격으로 보이는 드래곤이 이빨을 드러내며 그렇게 말했다. 그 또한 검은 비늘을 지녔으며 머리에 왕관과도 같은 뿔이 자란 흑룡 일족이었다. 그란로기아보다 덩치가 더 크고, 비늘도 날카롭고 단단해 보였으며 무엇보다 머리에 난 뿔의 개수가 8개나 되었다.

“겔라드리온. 네놈이구나. 그란로기아를 방해한 것이.”

“베텔기아. 경계를 지키는 내 동료들은 어쨌지?”

“큭큭. 뻔한 걸 묻는구나. 우리가 여기로 넘어왔다면 놈들은 어떻게 됐을 거로 생각하지?”

블랙 드래곤 베텔기아의 말에 겔라드리온이 분노를 터뜨렸다.

“네놈! 설마 지금 동족을 죽였다고 말하는 거냐! 대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드래곤으로서 마지막 자존심마저 버린 것이냐!”

“흥! 나약한 녀석들과 손을 잡자고 하는 것이 같은 동족인가? 자존심? 그건 내가 할 말이다! 우리 발밑에 깔려서 울부짖어야 하는 하찮은 놈들에게 맞춰주려고 하다니. 그쪽이야말로 자존심이 없는 게 아닌가!”

베텔기아의 비늘 위로 검은 불길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점점 크기를 키우며 베텔기아의 몸 전체를 뒤덮었다.

“나는 절대 용납하지 못한다! 그런 나약한 놈들은 우리 위대한 드래곤족이라 칭할 자격조차 없느니라!”

베텔기아의 덩치는 순식간에 2배 이상 부풀었다. 온몸이 검은 불로 뒤덮이고 두 눈에는 가로로 가늘게 찢어진 붉은 눈동자가 띄워졌다. 그 위압적인 모습에 다른 동료 드래곤들이 뒤로 조금씩 물러났다.

베텔기아의 분노는 그대로 재앙이 되었다. 주변의 숲이 열기를 이기지 못하고 순식간에 새까맣게 타서 잿더미만 휘날렸다. 순식간에 반경 수 킬로미터 내의 숲이 그대로 황무지로 변하고 말았다.

“인간은! 오늘 모두…… 그 씨앗조차 남기지 못하리라!”

베텔기아가 두 손을 활짝 펼치며 현찬을 향해 달려들었고.

새하얀 빛줄기가 그대로 베텔기아의 드래곤 하트를 꿰뚫었다.

“커헉!”

아무리 드래곤이 강한 종족이라고 하지만, 심장이 파괴되고 살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들 또한 같은 생명체였기 때문이었다.

베텔기아가 절명했다. 그 거대한 덩치는 그대로 힘을 잃고 지면으로 쓰러졌다. 검은 불길이 확 치솟아 오르다가 이내 꺼지고 말았다. 그런 베텔기아의 심장을 일격에 파쇄한 현찬은 별거 아니라는 듯 중얼거렸다.

“씨앗조차 남기지 못하는 건 우리가 아니라 너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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