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6
166화 염탐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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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찬은 신력을 몸에 두르며 만반의 준비를 끝냈다. 이 정도라면 아마 충분할 것이다. 혹시 몰라서 헤르메스에게 동의하냐는 의미로 시선을 보냈다. 헤르메스는 그 시선을 본 후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라면 걸리지는 않겠네. 어차피 그쪽도 작정하고 우리를 집중적으로 살피는 건 아니니까, 몰래 갈 수 있어.]
“그렇다면 다행이네.”
헤르메스의 확답에 마음이 놓였다. 현찬은 <영웅의 근원>으로 향했다. 지금쯤이면 커다란 체육관에서 각자 훈련을 받고 있을 것이다. 현찬은 몰래 찾아가서 그들이 얼마나 성장했는지 확인할 생각이었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어지간한 일에 관해서는 <칠성신>과 계약을 맺은 한성주가 알아냈다. <칠성신>의 권능은 별자리를 통해 미래에 발생할 일마저도 대략 점칠 수 있었다.
현찬의 등장은 차기 오버랭크 생도들에게 있어 꽤 큰 이벤트다. 준비 없이 가면 반드시 들통나고 만다.
[그런데 왜 안 걸리려고 하는 거야? 그냥 가도 상관없지 않아?]
“그냥 찾아가면 그쪽에서 긴장하잖아. 뭐, 반가워하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내가 가서 부담스러워 할 수도 있어.”
현찬은 스스로 위상이 얼마나 높은지 자각하고 있었다.
대한민국 최고의 헌터.
군대로 치면 현찬의 계급은 저 하늘의 별자리와 같다.
현찬이 헌터 관련 직종 현장에 뜨는 순간 그곳은 그야말로 비상사태가 된다.
자그마한 부대에 포스타가 방문하는 격!
그쪽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어떤 기분일지 현찬도 모르는 바가 아니다.
현찬도 군대에서 그런 일을 겪은 적이 있었다. 난데없이 사령관님이 오신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얼마나 놀랐는지. 심지어 그 소식이 일주일 전부터 들렸다. 현찬은 그 소식을 들은 순간부터 일주일 동안 온갖 장소를 청소하며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해야 했다.
‘그걸 생각하면 나도 함부로 움직일 수는 없겠지.’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으로서 자연스레 갖춰야 할 배려였다. 무엇보다 현찬은 보여주기식 훈련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들이 평소에 어떻게 훈련에 임하는지에 관한 기본적인 자세를 보고 싶었다.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않고 현찬은 몰래 <영웅의 근원>으로 향했다.
일부러 사람들이 외부에 많이 다니지 않는 퇴근 전 시간대를 골랐다. 길을 지나다니는 사람들도 적었고 현찬을 알아보는 사람들은 더 적었다.
현찬은 <인식 장애> 능력까지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현찬을 알아본 사람들도 ‘에이 설마’ 하고 넘어가게 되었다. 현찬은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영웅의 근원>에 도달했다.
10m가 넘는 높이의 거대한 벽이 현찬의 앞을 막았다.
거대한 문 앞에는 고랭크 헌터들이 경비를 서고 있었다.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세계연합>에서도 중요한 시설이기 때문에 최고의 능력을 지닌 요원들을 배치해 놓았다.
정문만이 아니라 문 안쪽에서도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여러 헌터들이 상시 대기 중이다.
“정지. 여기는 허가받은 사람을 제외하고는 들어올 수 없습니다.”
여기서부터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됐다. 현찬은 <인식 장애>를 해제했다.
현찬을 가로막던 덩치 큰 헌터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가, 강현찬 헌터님?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 들어가도 되죠?”
“자,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안쪽에 연락을 취하도록…….”
수화기를 들려는 남자의 손은 현찬에게 잡혀 꼼짝도 못 하게 되었다.
“아뇨. 필요 없습니다. 그냥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조용히 들어가려고요.”
‘무, 무슨 힘이……?!’
남자는 그래도 전사 계열 헌터라서 스스로 지닌 힘에 자신 있었다. 그러나 현찬에게 손을 잡히는 순간 남자는 깨달았다. 이건 절대로 못 이긴다고.
‘무엇보다…… 조금 전까지 먼 거리에 있었던 것 같은데 어느 틈에 코앞까지 접근한 거지?’
그리고 그 기척조차 느끼지 못했다.
남자는 현찬과 자신이 지닌 능력의 격차가 말도 안 될 정도로 크다는 사실을 느꼈다.
“이런, 본의 아니게 힘을 주고 말았네요. 괜찮으신가요?”
“네? 네, 네. 괜찮습니다. 몸 튼튼한 거 빼면 시체라서. 하하.”
“이름이 뭐죠?”
“넵! 상건우라고 합니다!”
“네. 상건우 헌터님. 제가 들어가도 내부에 연락을 취하지는 말아주세요. 개인적인 부탁인데 들어주실 수 있나요?”
상건우는 머리를 굴리며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저울질했다. 그러다가 이내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무 연락도 취하지 않겠습니다. 약속합니다.”
“좋아요. 감사합니다.”
“아, 아뇨. 별말씀을. 어이! 뭣들 해! 어서 문 열어드려!”
상건우의 외침에 멀리서 상황을 지켜보던 동료들이 황급히 움직였다. 현찬은 힘내라는 인사를 남기며 <영웅의 근원>으로 들어갔다. 길을 찾는 건 쉬웠다. 이미 몇 번 와본 적 있고 다른 계약자들이 어디에 있는지 실시간으로 파악됐으니까.
[저쪽에서 힘의 파장이 느껴진다.]
전쟁의 여신 아테나는 감이 좋다. 그녀의 말만 따라서 움직이다 보니 커다란 체육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어지간한 커다란 축구장보다 훨씬 넓은 필드 안쪽에서 6명의 사람이 저마다 지닌 권능을 사용하고 있었다.
“킁킁아! 가!”
달과 사냥의 여신 <아르테미스>의 계약자 강현지.
그녀가 명령 내리자 자그마한 멧돼지가 표적을 향해 맹렬하게 돌진했다. 덩치는 소형 개만 했지만, 그 속도는 마치 총알이 날아가는 것 같았다. 쏜살같이 달려나간 멧돼지는 표적을 들이받아 산산조각 내버렸다.
“와. 위력이 엄청난데?”
저 표적도 특별 제작한 것이라서 어지간한 공격에는 꿈쩍하지 않는 물건이다. 그런데 저렇게 스티로폼 부서지듯 부서졌다는 건 멧돼지가 그만큼 강한 힘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킁킁이? 이름도 붙였어?’
현지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커다란 암사슴을 소환했다. 달빛으로 형상을 이룬 반투명한 사슴이었다. 현지는 그 위에 올라탄 채 움직이는 표적을 향해 활을 쏘았다. 눈어림으로 잡아도 300m는 떨어져 있는 표적 중앙에 화살이 빨려들어 가듯 꽂혔다.
[호오. 과연 계약자의 동생이라 그런가. 재능이 남다르구나.]
[괜히 아르테미스가 선택한 사람이 아니라는 거겠지.]
아테나와 헤르메스의 말대로 현지의 재능 또한 매우 비범했다. 각성한 지 그렇게 오래되지도 않았는데 그녀가 보이는 능력은 이미 어지간한 헌터들 수준을 넘어섰다. 그리고 그건 다른 생도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아압!”
아흐메드 알리 샤.
인도의 신조 <가루다>와 계약 맺은 청년.
그의 등 뒤로 찬란한 황금빛 날개가 펼쳐졌다. 아흐메드는 그 날개를 이용해 하늘로 날아오르며 주변으로 깃털을 마구 쏘아냈다. 대충 쏘는 것처럼 보였지만, 깃털은 정확하게 표적을 노리고 있었다.
신화 속에서 가루다는 인드라에 버금가는 힘을 지니고 있다. 인도 신화 <마하바라타>에서는 인드라가 쏘아낸 번개를 받아 냈을 정도다. 그것을 고려하면 샤는 앞으로도 더욱 강해질 여지가 충분했다.
훈련받는 생도 중에서 리네넷도 눈에 띄었다.
그녀의 손짓에 따라 필드 바닥에 깔린 모래들이 저절로 움직였다. 그것은 순식간에 여러 형태로 변하고 무너지고를 반복했다. 동물 모습에서 성 형상으로, 성 형상에서 사람 모습으로, 사람 모습에서 풍경의 형태로.
열심히 땀을 흘리며 노력하는 그녀의 모습은 현찬이 기대하던 바로 그 모습이었다.
그녀에게 지지 않겠다는 듯 옆에서 엔도 미즈호 또한 자신의 권능을 뿜어내며 열심히 능력을 갈고닦고 있었다.
군신 <타케미카즈치>는 번개를 다룬다. 그가 휘두르는 검은 하늘의 기운을 담고 있어서 수많은 적이 그 검의 아래에 쓰러졌었다. 미즈호가 휘두르는 검에도 그 기운이 담겨 있었다.
“하압!”
그녀는 검만 휘두르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등 뒤에는 기다란 창이 매달려 있었다. 미즈호는 순식간에 검을 회수하고 빠르게 창으로 갈아치웠다. 그녀의 창이 순식간에 허공을 몇 번이나 찔렀다.
[호오. 저것은?]
그 광경을 지켜보던 아테나가 눈에 이채를 띠었다.
미즈호는 지금 현찬이 사용하던 기술을 따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기술의 원본은 당연하게도 아테나의 것이었다.
현찬의 광팬인 그녀는 현찬이 전투한 영상을 항상 챙겨보았다. 그녀도 현찬처럼 강해지고 싶어 했기 때문에 현찬의 전투 동작을 많이 따라 했다. 그녀의 천부적인 재능과 노력이 합쳐지자 타인의 능력을 따라 하는 것임에도 엉성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과연. 괜히 군신이 눈독을 들인 계약자가 아니구나.]
[정작 본인은 자기 신보다 사무라이를 더 좋아하는 것 같지만.]
헤르메스는 참 재미있는 조합이라며 피식 웃었다.
자그마한 소년 진 차이 또한 필드의 다른 구역에서 열심히 몸을 놀리고 있었다. 그는 커다란 불로 된 수레바퀴를 타고 공중에 떠 있었다. 균형 잡는 연습을 하는 중이다.
나타가 사용하는 7개의 보패 중 하나인 <풍화륜>이었다.
그 상태에서 진 차이는 다른 보패까지 꺼내 정신을 집중하며 그것을 유지하고 있었다.
[나타의 보패를 동시에 2개나 사용하다니. 조만간 3개까지 사용할 수 있겠는걸?]
나타가 지닌 7개의 보패는 그야말로 하나하나 강력한 무기이다. 신급 영령이 사용하는 물건이니 약할 리가 없었다. 그게 무려 7개나 된다. 아직 진 차이의 능력이 미숙하여 한 번에 사용할 수 있는 보패는 2개가 최대인 것 같았지만, 성장 속도를 생각하면 나쁘지 않은 상황이었다.
마지막 사람은 <칠성신>의 계약자인 한성주였다.
눈을 감고 집중하는 그녀는 다른 생도들과 행동 양상이 달랐다. 다들 자신의 능력이나 권능, 보패를 사용하는 반면 그녀는 홀로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을 뿐이니까.
그렇다고 그녀가 놀고 있다는 건 아니었다. 한성주도 자기 나름대로 훈련하는 중이다.
[저건…… 눈을 감고 신력을 사용하는 걸 보아하니 별을 통해서 무언가 하는 거 같은데? 멀리 떨어진 무언가를 본다거나 아니면 미래를 점치거나. 그런 거 같아.]
“음. 뭘 하길래 저렇게 집중하지?”
그 순간 한성주의 입꼬리가 올라가며 헤벌쭉 웃는 게 아닌가. 두 볼에는 홍조가 생기며 어딘가 몽롱한 표정이었다. 한성주의 입을 비집고 참을 수 없는 미소가 흘러나왔다.
“헤헤.”
한성주의 뒤에 있는 일곱 신은 못 말리겠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서 그중 몇몇 신은 한성주가 보는 것을 똑같이 보는지 얼굴을 살짝 붉히고 있었다.
“…….”
[…….]
[…… 흠흠.]
현찬은 이따가 김은혁 헌터에게 전화해서 조금 전에 뭐 하고 있었는지 물어볼 생각이었다. 지금 그는 아마도 욕실에서 씻는 중일 것이다. 그럴 확률이 매우 높았다.
‘뭐, 보니까 다들 열심히 연습하고 있네.’
현찬은 괜히 자기가 뿌듯해지는 기분이었다. 저 성장세를 보면 여기서 더 연습하라고 보채도 악효과만 나올 것이다. 지금 생도들은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었다. 충분히 노력하는 저들에게 다른 누군가의 도움은 필요 없었다.
‘다행이야.’
현찬은 다른 사람들에게 걸리지 않게 체육관을 빠져 나왔다. 그렇게 복도를 걷다가 현찬은 자리에 멈춰섰다.
“언제까지 계속 따라오실 건가요? 주현창 씨?”
현찬의 말에 복도의 모퉁이에서 그림자 하나가 튀어나왔다.
“하하. 이거, 역시 오버랭크 헌터 강현찬 헌터님의 눈은 못 속이겠네요.”
주현창은 웃으며 뒤통수를 긁적였다. 현찬도 미소로 응답했다.
“네. 무슨 일이시죠?”
“그건 제가 묻고 싶은 말이에요. 강현찬 헌터님. 아무런 연락도 없이 오시다니, 오시기 전에 말씀 주셨다면 제가 먼저 기다리고 있었을 텐데 말이죠.”
“제 후배들이 얼마나 잘하고 있는지 감찰하고자 온 거라서요. 미리 언질을 드리지 않은 부분에 관해서는 사과드리겠습니다.”
둘의 대화는 다소 평범하고 평화로웠다.
그러나 그 말들에 숨겨진 칼날의 그림자는 상대방의 목을 노리고 있었다.
‘지금도 <인식 장애>를 펼치고 있는데, 나를 알아보다니. 이 사람은 역시…… 무언가 있구나.’
현찬은 주현창이 무언가 숨기고 있다는 사실을 확신했다.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알게 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으리라는 사실만큼은 확신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