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4
164화 바쁜 일상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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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쿠르드족과 동맹은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헤르메스가 지닌 계약의 힘인지 아니면 원래 라쿠르드족이 이쪽 세계와의 왕래를 원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한바탕 싸움을 벌인 리쿠르드족은 지구인에게 자신들의 패배를 인정했다. 그들은 강한 자들을 숭배한다. 지구인들은 그들의 시선에서 보면 충분히 강한 자들이었다.
<세계연합>은 처음으로 본격적인 동맹을 맺은 기념으로 해당 사실을 전 세계에 공표했다. 당연히 사람들은 놀랐고 모든 국가의 뉴스에서는 이 동맹에 관한 이야기로 시끄럽게 떠들었다.
포털 사이트는 여전히 이 사실과 관련된 뉴스들로 도배되었으며 사람들의 관심도 다른 차원의 인류에게 집중되었다.
- 저 사람들과 동맹 맺어도 되는 걸까?
- 애초에 사람이 아니지 않음? 다른 차원 존재라면서.
- 얼굴 보면 우리랑 별 차이도 없던데. 솔직히 그냥 다른 인종이라고 해도 충분할 정도임. 이런 부분에서 종족 차별 해야겠냐 ㅋㅋㅋㅋ
- ㅋㅋㅋㅋ 인종차별을 넘어서 종족 차별 오져 버렸죠?
- 유 퍼킹 레이시스트!
- 다시는 지구를 넘보지 마라. 지구 뽕 차오른다.
처음에 다른 차원과 동맹을 맺는다고 했을 때 사람들이 보인 반응은 호기심 반, 불안감 반이었다. 다른 차원 사람들은 어떻게 생겼는지, 그들은 누구인지에 관한 궁금증은 있었지만, 그들을 완전히 신뢰할 수 없다는 게 그들의 논조였다.
그러나 평화협정과 동맹을 체결하는 장면이 TV를 통해 생중계되었을 때 그 반응은 매우 달라졌다. 리쿠르드족 족장 아렌디르가 지구 의복을 차려입고 모습을 드러내자 사람들은 모두 눈을 크게 떴다.
다른 종족이라고 했지만, 막상 인간과 별 차이 나지 않은 외모였다. 오히려 인간이 지니지 못한 정도의 아름다움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아렌디르 말고도 그녀의 뒤에 서 있는 다른 부족원들 또한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다.
리쿠르드족은 전체적으로 미남 미녀가 많았다. 남자들은 키가 훤칠하고 잘생겼으며 여성들도 아름다웠다. 당연히 사람들은 그들에게 푹 빠졌다. 이에 더해 ‘최초의 동맹 종족’이라는 타이틀이 호감을 불러일으켰다.
- 리쿠르드족과 결혼 가능? 엄청 예쁜데.
- 리쿠르드족은 우리랑 다르게 여러 문화가 발달을 안 했다면서? 이거, 잘만 하면 현대 문물로 꼬실 수 있는 거 아닌가?
- 아아. 이것은 휴대폰이라는 것이다. 원거리 통화를 하게 해주지.
- 주의. 이렇게 생겼다면 시도하지 마시오.
리쿠르드족과의 동맹은 세계에 큰 파장을 몰고 왔다. ‘다른 차원 존재들은 모두 적’이라고 생각했던 인류의 좁은 생각이 넓어지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모두가 적은 아니었다. 서로 대화를 통해 인류와 함께 나아갈 수 있는 종족도 있었다.
이것은 언제 어디서 적들의 습격을 받을지 모르는 인류에게 있어서 희망의 밧줄이었다.
- 듣기로는 이 모든 동맹을 강현찬 헌터가 주도했다고 하는데. ㄹㅇ임?
- 아는 지인에게서 들었는데, 그거 진짜라고 함.
- 와! 강현찬! 와! 대한민국!
- 세계가 하나로 통합되어도, 국뽕은 여전합니다.
동맹을 맺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한 현찬의 이름도 빠지지 않고 거론되었다. 리쿠르드족에 관련된 기사들의 댓글에는 항상 현찬을 찬양하는 뉘앙스의 댓글들이 달리고는 했다. 다른 사람들도 현찬이 이룩한 이 결과물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 솔직히 이 정도면 상호 교류할 때 외교관으로 강현찬 헌터 보내야 하는 거 아님?
- 보니까 저쪽도 오히려 강현찬 헌터를 찾는 거 같던데.
- 이건 진짜 빼박 강현찬 헌터 아니면 안 된다.
- 항상 감사하십시오. earth heroes.
사람들은 입을 모아 그렇게 말하거나 인터넷에 글을 올렸다. <세계연합>에 소속한 고위 인사들도 시민들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렇게 다리를 놓아준 것도 강현찬 헌터이고, 그가 한 일을 생각하면 이쪽은 매우 고마워하는 중이다. 그렇다 쳐도 리쿠르드족과 제대로 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현찬의 도움이 필요했다.
결국, 현찬에게까지 연락이 가고 말았다.
부디 리쿠르드족과의 협력적인 교류에 도움을 바란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전하는 <세계연합> 소속 고위 관계자가 거의 애걸하다시피 한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현찬은 이런 귀찮은 일을 자신이 떠맡게 되었다는 사실에 조금은 낙담했다. 처음에는 거절하려고 했다. 이것까지 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솔직히 내가 아니면 좀 오래 걸릴 것 같기는 해.’
현찬은 고민하다가 마음을 고쳐먹었다.
애초에 신목들이 있는 차원에는 리쿠르드족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곳에는 다른 신목을 숭배하는 라쉬칼족도 있었고, 그와 비슷하면서도 조금씩 다른 부족들이 즐비해 있었다. 그들과도 동맹을 맺기 위해서는 헤르메스가 지닌 <계약>의 힘이 필수였다.
인간들에게 호의적인 종족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부족들도 상당히 많은 것이다.
그런 그들과 어떻게든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이쪽에서도 나름의 힘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고, 그들이 두말하지 못하게 꽉 억누를 능력도 있어야 했다.
그럴만한 인물이 지구상에 과연 누가 있을까?
답은 강현찬 한 명뿐이었다.
현찬은 딱히 자랑하는 게 아니라 객관적으로 생각했을 때 자신이 그 일을 맡기에 가장 적합하다는 걸 알았다. 그렇기에 고민 끝에 직접 나서기로 한 것이다. ‘결자해지’라는 말이 있다. 일을 벌였으니, 마지막까지 현찬이 책임져야 했다.
[뭐 어때. 다른 세상 느긋하게 구경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텐데. 게다가 너 없으면 안 된다고 하잖아.]
“그러긴 해. 언제 어디서 다른 녀석들이 나타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시간은 최대한 줄이는 게 나으니까.”
신목의 차원에서 다른 부족과 동맹 맺을 때 현찬이 있고 없고의 차이는 매우 클 것이다. 현찬의 진짜 능력에 관해서 잘 모르는 전문가들조차 현찬이 있으면 계약을 맺을 때 예상한 기간의 10분의 1밖에 안 걸린다고 했을 정도였다.
“이렇게 된 이상, 엄청나게 빨리 해결해주고 와야겠지.”
[그러는 게 좋겠다. 보니까 그 아렌디르라는 애도 네가 오기를 바라는 것 같더라고.]
아렌디르는 얼마 전 현찬과 함께 쇼핑하고 식사한 시간이 마음에 들었는지 지구에 자주 머물렀다. 기회가 된다면 다시 그때처럼 놀러 가자고 현찬에게 졸랐을 정도였다. 물론 서다은은 부르지 말라고 간곡히 부탁하기도 했다. 아무래도 아렌디르는 그녀가 무서운가 보다.
현찬이 나서겠다고 말하자 <세계연합>은 기뻐하며 현찬을 위해 편의를 봐주었다.
준비는 그야말로 번갯불에 콩 구워 먹는 속도로 끝났다. 현찬이 나선다고 하는 순간 혹시 모를 동맹 거절 상황을 대비하기 위한 계획들은 모두 폐기됐다.
일 처리 속도가 그야말로 일사천리가 따로 없었다. 순식간에 원정단 리스트가 작성되었고 날짜까지 정해졌다. 현찬이 온다고 하니 리쿠르드족 족장인 아렌디르도 격하게 환영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속보! 강현찬 헌터, 타차원으로 떠나는 선봉에 서다!]
그 소식에 사람들의 관심이 다시 쏠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여전히 리쿠르드족을 향한 관심사는 뜨거운 감자 같았는데 게다가 현찬까지 끼어들었다. 활활 타오르는 불에 기름을 부어주는 격이었다.
[여러분 보십시오. 다른 차원과 평화를 협정하러 가는 첫 원정대가 드디어 떠납니다! 이는 인류 역사상 기념비적인 일이며…….]
현찬이 사람들의 환호를 받으며 게이트를 넘어가는 상황이 생방송으로 중계되었다. 게이트가 있는 곳은 강원도의 외진 산골짜기였는데 어디서 몰려왔는지 엄청난 인파가 그곳에 모여서 현찬의 이름을 연호했다.
시민들의 응원을 받으며 게이트를 건너간 현찬은 쓴웃음을 지었다.
“사람들이 참 많이들 모였네.”
[앞으로 저기에 새로운 도시가 세워질 계획인 거 같던데. 저기 땅값 무척 오르는 거 아니야? 사둬야 할 거 같은데.]
“사실 이미 사뒀어.”
[킥킥킥. 오, 내 계약자나 할 법한 행동.]
“그 말투는 또 어디서 배운 거냐.”
[인터넷의 힘을 무시하지 말라고.]
게이트를 완전히 넘어서자 게이트를 넘어오기 전 강원도 산속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이번으로 2번째 방문이었지만, 그때는 밤에 왔고 이번에는 해가 중천에 뜬 낮에 왔다. 낮에 본 세계의 풍경은 밤에 봤을 때와는 또 달랐다.
지구에서는 볼 수 없는 다양한 식물들이 숲을 이루었고 산지가 많은 한반도와 다르게 이쪽은 지형이 전체적으로 평평했다. 다만 산맥에 버금가는 거대한 나무 여러 그루가 보였다. 저 나무들은 각자 신격이 깃든 이 세계의 신들이었다.
“우리의 세계에 온 걸 환영한다! 오늘은 우리 부족에서 회포를 풀 생각이다만, 어떤가?”
“어떻고 자시고, 딱히 상관은 없어.”
“좋다! 그러면 가자!”
아렌디르는 들뜬 마음으로 현찬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뒤에서 현찬을 따라온 수행원들이 둘의 관계를 의심하며 수군거렸지만, 현찬은 무시했다.
그리고 그날 리쿠르드족이 머무는 커다란 마을에서 성대한 축제가 열렸다.
축제가 워낙 크게 열리다 보니, 리쿠르드족과 나름 친분이 깊은 다른 부족들의 주요 인물들 또한 리쿠르드족 마을에 방문했다. 그들은 현찬과 만나 이야기를 나눴고 현찬은 최대한 말로 그들을 구워삶았다.
물론 말로만 구워삶은 것은 아니었다. 현찬은 자신의 힘을 그들에게 적당히 보여줌으로써 전사로서의 인정까지 받아냈다.
“푸하하! 요즘 보기 드문 매우 위대한 전사로군! 게다가 딱 보니 엄청 젊어 보이는데, 재능이 뛰어난 거 같아!”
그렇게 말하는 남성은 그란카.
신목 <그란베르>를 섬기는 그란베르족 족장이자 신급 영령 계약자였다. 그는 40대 중반 호쾌한 중년 남성이었는데 리쿠르드족과 다르게 그들의 피부는 연한 녹색을 띠고 있었다.
이 세계에 존재하는 부족 중에서도 그란베르족은 순위를 다툴 정도로 강함을 자랑했다. 특히나 <그란베르>와 직접 계약을 맺은 그란카가 지닌 힘은 당연히 이 세계에서도 최상급이었다.
그런 그가 현찬을 인정했다. 다른 이들이 불만을 토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현찬이라고 했지? 뭐, 확실히 강해. 정말로 강해. 그런데 다른 녀석들은 어떻게 설득할 거지? 나야 뭐, 내 입으로 말하기 뭣하지만, 성격이 좀 좋으니까 그렇지 약간 성격이 개판인 녀석들이 더러 있거든?”
대부분 신목을 섬기지만, 이 세계에도 악신이 존재한다.
그 예시의 대표가 바로 <라쉬칼>이었다.
“듣기로는 라쉬칼족은 최근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녀석들과 싸워서 엄청나게 큰 손해를 입었다고 하더라고. 녀석들은 자존심이 강해서 그 사실을 필사적으로 숨기고 있지만, 다들 알고 있지.”
그란카는 맥주를 마시며 기분 좋다는 듯 감탄사를 토했다.
“이 맥주라는 술은 정말로 맛있군! 이거 가는 길에 싸가도 되나?”
“얼마든지요.”
“그래. 어디까지 이야기했더라. 아. 그래. 솔직히 <라쉬칼>은 괜찮다고 봐. 다만 문제가 있다면 나머지 둘이겠지. <데우로파>와 <베라글드> 쪽이야.”
<데우로파>와 <베라글드>.
이쪽도 <라쉬칼>과 같이 악신들이고 이 세계에서 평이 매우 안 좋은 부족들이다.
이성 없이 오직 피가 튀기는 투쟁만을 원하는 이들은 당연히 다른 부족들도 기피하는 대상이기도 했다.
“그 종족 중에는 당연히 각자 신과 계약을 맺은 녀석들이 더러 있지. 엄청나게 강하다고! 나도 솔직히 그쪽 족장들이랑 싸우기 싫을 정도야.”
전투를 즐기는 호쾌한 그란카가 저렇게 말할 정도라면 상대방도 어지간히 뒤틀린 성향을 지닌 녀석들임이 틀림없었다.
“정 불안하면, 내가 도와줄 수 있는데 말이야. 대신, 우리 딸내미와 만나줄 수 있나?”
“어딜 멋대로 현찬에게 접근하는 것이냐!”
“시끄럽다 애송아. 족장이라는 녀석이 아직 자신의 신과 계약도 못 맺은 주제에 왜 이렇게 시끄러워?”
“시끄러운 건 당신이다! 나, 나는 아직 젊다! 당연히 조만간 우리 신목 님과 계약을 맺을 것이다!”
“아무튼, 어떤가? 내 제안 받아들이겠나?”
현찬은 괜찮다며 손을 저었다.
“마음은 고맙지만, 도움은 사절하죠. 원래 이런 건 본인의 힘으로 해야 하는지라.”
“호오. 자신이 있다는 말투로군? 솔직히, 용기라기보다는 만용 같아 보이지만.”
“만용인지 아닌지, 한번 확인해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겠죠.”
현찬의 입가에는 자신만만한 미소가 맺혀있었다. 손가락을 3개 펼치며 그란카에게 내보였다.
“3일. 전부 3일 안에 끝내겠습니다.”
“푸하하하! 이거 재미있군! 말이라도 그렇게 하니 유쾌하구먼!”
“아뇨. 말이 아닙니다. 정말로 그렇게 만들 거라서요.”
그란카의 입장에서는 현찬의 말은 그저 허세 부리는 것처럼 들렸다.
그러나 그의 생각이 바뀌는 데는 정말로 3일밖에 걸리지 않았다.
3일 후.
현찬은 <데우로파>와 <베라글드> 부족을 이틀 만에 격파하고 나머지 부족들과 동맹 맺는데, 딱 3일을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