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0
160화 바다의 지배자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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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세이돈>.
영어로는 ‘넵튠’이라 부르는 이 신은 바다의 지배자이자, 신들의 왕 제우스의 동생이다.
제우스와 함께 크로노스의 배 속에서 자란 그는 크로노스를 몰아낸 이후에 하늘과 땅, 바다 중에서 바다를 선택하여 지배하게 된다.
바다의 신이라고는 하지만, 그는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물을 관장한다.
거대한 강, 저수지 심지어 자그마한 연못조차 포세이돈의 영역에서 벗어날 수 없다.
대부분의 올림포스 신들이 서로 비슷한 수준의 힘을 지녔지만, 포세이돈은 그중에서도 매우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그 예로 유명한 일화로는 트로이 전쟁이 있다.
헤라와 아테나가 트로이 전쟁에서 지나치게 인간들의 싸움에 간섭하자 제우스가 경고했는데 이때 헤라와 아테나는 제우스의 경고에 바로 꼬리를 내리고 올림포스로 귀환했다.
하지만 유일하게 제우스에게 성을 낸 자가 있었다. 그가 바로 포세이돈이다.
포세이돈은 제우스에게 ‘너와 나는 형제인데 네가 뭔데 상전 행세를 하느냐?’라며 제우스에게 으름장을 놓았다.
심지어 태양의 힘을 사용하는 상당한 힘을 지닌 아폴론조차도 포세이돈이 지닌 힘에는 비할 바가 아니었을 정도다.
고대 그리스인이 바다에 보인 공포감을 생각하면 포세이돈이 지닌 신으로서의 위상은 절대로 낮지 않았다.
신들의 왕이라 불리는 제우스조차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포세이돈은 사실상 올림포스 서열 2위라고 할 수 있었다.
[아아. 이곳은 먼 동양의 바다인가.]
그리고 그런 포세이돈이 지금 현찬의 부름에 응하여 하계로 내려왔다.
[이 또한 아름다운 세계로군. 그런데 내 영역에 기분 나쁜 녀석들이 꽤 많구나.]
포세이돈은 바다의 화신인 듯 푸른 수염과 푸른 장발을 지니고 있었다. 다부진 그의 몸은 잘 잡힌 근육으로 가득했고 오른손에는 제우스의 번개, 아스트라페와 맞먹는다는 [트라이던트]가 쥐어져 있었다.
[삼촌?! 삼촌이 왜 여기에 있어?!]
[포, 포세이돈?!]
헤르메스와 아테나의 반응은 격렬했다. 헤르메스는 설마 현찬이 포세이돈을 부를 줄 몰랐다는 반응이었고 아테나는 헤르메스와는 조금 다른 성향의 놀람이었다.
[음? 아테나. 지상에서 좋은 남자 하나 잡았다고 하더니, 이 계약자가 바로 그인가?]
[시끄럽습니다, 포세이돈! 그보다 당신이 왜 계약자의 부름에 응하는 겁니까!]
[에잉. 삼촌에게 버릇없는 건 여전하구먼. 최근 세계끼리 이어져서 호기심 삼아 내려와 봤다. 안 그래도 제우스가 하계에 내려갔다 왔다고 자랑해서 나도 벼르던 참이었거든.]
[이익! 계약자여! 우리들의 힘만으로 부족한 것인가! 대체 왜 저 남자를 부른 것이냐!]
아테나는 포세이돈과 다투었다. 헤르메스와 다투던 때와는 다르게 정말로 싫다는 반응이었다. 현찬도 신화를 많이 봐서 알고 있다. 포세이돈과 아테나의 경쟁, 반목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유명하다.
그래도 아테네를 차지한 아테나가 조금 더 여유로울 줄 알았는데 오히려 아테나가 포세이돈을 더 싫어 할 줄이야.
[쯧. 애교가 없어졌어. 아주 옛날에는 삼촌이랑 결혼할 거야~ 라고 말하던 녀석이, 어쩌다 아직도 사춘기가 안 끝나서는.]
[꺄아아악! 그런 옛날이야기를 대체 왜 여기서 꺼내는 겁니까!]
[저거 봐. 예전에는 내가 바다의 궁전에서 올림포스 가기만 하면 날 찾아와서는 달라붙었으면서, 세월 참 야속하구나.]
“아하하.”
현찬은 식은땀을 흘리며 어색하게 웃었다. 아테네는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상태에서 현찬을 찌릿 노려보았다. 대체 왜 하필 이 남자를 불렀냐는 반응이었다. 싸움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면 무조건 잔소리 확정이었다.
‘둘이 사이가 안 좋은 것에 이런 이유가 있었다니.’
아테나와 포세이돈이 왜 사이가 나빠졌냐에 관해서는 두고두고 이야기가 많았다. 아테나가 먼저 포세이돈에게 고백했지만, 포세이돈이 그 고백을 찼다는 것. 메두사와 대놓고 아테나의 궁전에서 놀아난 것도 그 때문이라는 설이 있었다.
어떤 학자는 포세이돈이 아테나에게 고백했지만 아테나가 거절했다는 가설을 세우기도 했다. 어느 쪽이 맞는지 신화에서 제대로 설명해준 적은 없었다. 사람들은 그저 둘이 사이가 안 좋구나 하고 넘겼다.
‘이런 진실이 숨어있었을 줄이야.’
설마 한창 치기 어린 시절의 아테나가 포세이돈에게 고백해서 차일 줄 누가 알았겠는가. 현찬은 조금 당혹스러우면서도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했다. 뭐, 신이라고 하더라도 그리스 신화의 신들은 인간의 성정과 흡사하기 때문에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을 때가 있는 법이었다.
[…… 뭐냐. 계약자여 왜 나를 그렇게 따뜻한 시선으로 보는 것이냐.]
“흠흠. 뭐, 포세이돈 님. 부디 저 끔찍한 괴물을 없앨 힘을 빌려주시겠습니까?”
아테나가 죽일 듯 노려보자 현찬은 시선을 황급히 피하며 말을 돌렸다. 옆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헤르메스는 참을 수 없이 즐겁다는 듯 배를 잡고 낄낄대며 웃었다. 아테나가 그런 헤르메스의 머리를 강하게 주먹으로 때렸다.
두 남매의 다툼을 뒤로하고 포세이돈은 자신의 푸른 수염을 쓰다듬었다. 손끝의 움직임을 따라 수염은 파도처럼 출렁였다.
[계약자여. 내가 무엇을 위해 하계에 내려왔다고 생각하는가?]
포세이돈은 씨익 웃으며 [트라이던트]를 들어 움칼라를 향해 겨누었다. 움칼라는 조금 전 자신의 공격이 먹히지 않은 현찬을 경계하고 있었다. 여러 번의 진화를 거쳐 충분히 강해졌다고 생각했는데, 현찬이 그에 맞서 알 수 없는 힘을 사용했으니 그럴 법도 했다.
꾸득! 꾸드득!
움칼라는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서 지금도 조금씩이지만 진화를 거듭하고 있었다. 몸에 난 껍질이 더욱 단단하게 변했고 비늘 형태로 무언가 돋아나기 시작했다. 덩치도 점점 불어났다.
[뭐, 조카들이 나름 잘 지내고 있는 걸 확인한 것만 해도 나쁘지는 않구나. 좋다. 계약자여. 어디 내 힘을 마음껏 사용해 보거라.]
“감사합니다.”
콰아아아아!
신력이 현찬의 주변으로 형상을 갖추며 뿜어져 나왔다. 그것은 미세하지만 푸른빛을 띠고 있었다. 현찬의 주위로 뿜어져 나간 마력은 마치 파도가 넘실대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현찬은 그 바다의 중심에 우뚝 선, 바다의 신이었다.
왼손에 쥔 [아이기스]가 사라지고 오른손에 쥔 [테레이오스테]가 [트라이던트] 형상으로 변했다. 현찬의 머리카락 색깔도 미미하게 푸른빛을 띠었으며 눈동자 또한 대양처럼 파랗게 변했다.
크에에엑!
정확히는 알 수 없었지만, 현찬이 달라진 것은 확실했다. 움칼라는 입을 쩍 벌리며 현찬을 위협했다. 겹겹이 자라난 이빨이 햇빛을 받으며 흉흉하게 빛났다. 현찬은 무심한 시선으로 녀석을 직시했다.
자신을 깔보는 그 눈빛에 움칼라가 반응했다. 녀석은 입을 쩌억 벌리더니 그대로 입에서 막대한 양의 해수를 토해냈다. 무시무시한 속도로 쏘아지는 해수 대포는 현찬을 집어삼키려다가 이내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막혀 사방으로 흩어졌다.
쿠구궁!
해수를 쏘아낸 힘이 얼마나 강했는지 수십 갈래로 갈라진 물대포가 현찬의 뒤에 있는 숲에 적중하며 나무들이 잘려나갔다. 쓰러진 나무들이 뿌연 먼지구름을 내뿜었다.
움칼라는 입에 다시 해수를 머금었다. 이번에는 더 강하게 그리고 많이 쏘아낼 생각이었다. 현찬은 말 없이 창을 쥐지 않은 왼손을 들었다.
활짝 편 손바닥이 움칼라를 향했다. 현찬은 그대로 주먹을 꽉 쥐었다. 파아앗! 움칼라가 입안에 머금고 있던 해수가 놈의 통제를 벗어나 멋대로 움직였다. 놈이 잔뜩 머금고 있던 해수는 날카로운 송곳처럼 움칼라의 입안을 미친 듯이 헤집었다.
크워어어어어!
움칼라가 입을 쩍 벌리며 비명을 질렀다. 녀석의 입은 피투성이가 되었다. 입안의 물을 거칠게 뱉어낸 움칼라는 오른손을 들어올렸다. 꾸드득! 짧았던 오른팔이 길게 자라나며 늘어났다. 날카로운 발톱과 단단한 비늘로 뒤덮인 일격이 현찬을 향해 쏘아졌다.
촤아악!
바닷물이 치솟아 오르더니 커다란 방패로 변해 현찬의 몸을 보호했다. 무려 10장이나 되는 방패였다. 움칼라의 후려치기는 그대로 물 방패를 6장이나 찢어버렸지만 그게 전부였다.
포세이돈이 감탄했다.
[호오. 육탄전으로 방패를 6장이나 찢는 녀석이라니. 우리 시대에서도 볼 수 없었던 괴물이로구나. 무엇보다…….]
움칼라가 괴성을 내지르며 팔을 다시 휘둘렀다. 현찬은 재차 10장의 방패를 만들어냈다. 콰지직! 움칼라의 손이 방패와 충돌하며 이번에는 방패가 8장이나 찢겨나갔다.
[싸우는 도중에도 계속 강해지는 녀석이라니. 시간을 넉넉하게 두고 싸우기엔 조금 많이 위험한 녀석이로군.]
움칼라는 조금만 더 공격하면 현찬에게 공격이 먹힐 거로 생각했는지 다시 입가를 비틀며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을 보며 현찬은 더 봐주면서 싸울 생각은 완전히 버렸다.
찢어진 방패는 허공에 물방울이 되어 흩어졌다. 물방울들은 현찬의 의지를 따라 한곳으로 뭉치더니 거대한 물 검으로 변했다.
움칼라의 눈동자에 당혹감이 들었다. 현찬은 그대로 거대한 물 검을 쏘아냈다. 움칼라가 몸을 뒤틀자 물의 검은 그대로 녀석의 목 부분을 스치듯 지나갔다.
단단한 갑각과 비늘은 아무런 방어막도 되지 못했다. 물의 검은 큰 상처를 남겼고 뿜어져 나온 붉은 피가 바다로 떨어져 내렸다.
크와아악!
움칼라가 꼬리를 휘둘렀지만, 그 꼬리는 재차 방패에 막히고 말았다. 뒤이어 방패 형상이 무너지더니 이내 꼬리를 휘감으며 그대로 빠르게 회전했다. 콰가가각! 마치 톱날처럼 회전하는 물은 움칼라의 꼬리부분을 잘게 갈아버렸다.
현찬은 바쁘게 손을 움직였다. 현찬의 손짓에 따라 바닷물이 움직이며 다양한 무기로 변했다. 무기들은 움칼라의 몸을 사정없이 두들겼다.
포세이돈은 바다의 지배자이다. 그가 다루지 못하는 물은 없었다.
물이 있는 곳에서만큼은, 그는 어떠한 신들에게도 패배하지 않는 절대적인 권력을 쥘 수 있었다.
[물을 없애려면 불이라도 뿜어야 할 것이다.]
물리적인 힘으로는 절대로 물을 없앨 수 없었다. 그 형상을 흩뜨릴 수는 있겠지만 그것은 다시 다른 형태의 무기로 변하며 움칼라를 찢어발긴다. 움칼라는 입을 쩍 벌렸다. 또 해수를 쏘는가 싶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화아아악!
움칼라의 입안에서 뿜어져 나온 강력한 화염이 놈을 향해 날아오던 무기들을 모두 태웠다. 아직 완벽하게 진화하지 않은 건지 입안이 검게 그슬렸지만, 그 상처는 순식간에 재생되었다.
녀석은 물을 더 쓸 수 있으면 써보라는 듯한 눈빛으로 도발했다.
[건방지구나. 불을 좀 다룬다고 기고만장해지기라도 한 것인가? 그렇다면 그 도발에 응해주마.]
움칼라의 머리 위로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고개를 들자 그곳에는 엄청난 양의 해수가 떠올라 있었다. 움칼라의 몸 전체를 덮고도 남을 정도로 거대했다. 약 직경 5km나 되는 거대한 구체. 그것이 움칼라를 향해 떨어져 내렸다.
움칼라는 입에서 불을 뿜으며 저항했지만, 거대한 물 폭탄에 비하면 촛불에 지나지 않았다. 무지막지한 크기의 물덩어리가 움칼라의 몸을 내리찍으며 강하게 짓눌렀다. 쿠구구궁! 해안 절벽의 일부가 완전히 붕괴하며 움칼라의 몸이 바다 아래로 처박혔다. 녀석의 갑주가 으스러지고 근육이 파열되며 피가 뿜어져 나왔다. 하지만 놀랍게도 움칼라는 죽지 않았다. 녀석은 이대로 안 되겠다 싶어서 바다를 헤엄치며 도망치려고 했다.
……!
그러나 녀석의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몸에 힘을 주고 저항해 보아도 바다 전체가 강한 의지를 지닌 듯 몸을 꽉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움칼라의 육체는 그대로 바닷물에 잡힌 채 수면 위로 올랐다.
물로 이루어진 거대한 손의 형상. 그것이 움칼라의 긴 몸을 꽉 쥐고 놓아주지 않았다.
그런 움칼라의 머리 위로 현찬이 나타났다. 황금 갈기를 지닌 백마를 탄 현찬은 [트라이던트]를 움칼라를 향해 겨누었다.
[어딜 도망가려는 것이냐? 바다는 나의 영역이다.]
움칼라의 눈동자가 절망으로 물들었다.
[네놈은 절대로, 내게서 벗어날 수 없다.]
움칼라의 미간을 향해 [트라이던트]가 떨어져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