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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무한계약-159화 (159/265)

# 159

159화 바다의 지배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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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남은 움칼라는 땅속을 마치 제집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처음에는 조금 빠른 수준의 속도였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속도에 박차가 가해지고 있었다. 지금은 터널을 가로지르는 지하철과 유사한 속도였다.

‘덩치도 점점 커지고 있어.’

지렁이처럼 땅속에서 흙을 먹으면서 녀석은 점점 덩치를 불려가고 있었다. 그것도 모자라서 흙 사이에 있는 다른 벌레나 생명체들을 잡아먹었는지, 계속해서 점차 다른 모습으로 진화했다.

‘어떡하지? 여기서 녀석에게 공격을 퍼부을까?’

하늘을 날아다니는 녀석까지는 어떻게든 상대하겠지만, 저렇게 작정하고 땅속에 숨은 녀석을 상대할 방법은 마땅치 않았다.

현찬은 <헤르메스의 눈>을 계속 발동하면서 마지막 남은 움칼라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했다.

때마침 무전기에서 지상의 움칼라를 처리했다는 보고가 날아왔다.

“강현찬 헌터 님. 이쪽의 한 마리는 처리했습니다.”

“피해자는요?”

“애석하게도, 13명의 헌터들이 죽었습니다. 부상자만 합친다면 그보다 더 많습니다.”

그나마 치료사들이 있으니 부상자들이 사망하는 사태까진 흘러가지 않을 것이다.

무전기로 들은 결과물을 통해 움칼라가 왜 위험한지 다시 깨닫게 되었다. 헌터들도 최대한 조심하며 싸웠을 것이다. 아무리 상대가 하나더라도 그만큼 위험하다고 현찬이 누누이 말했으니까.

전투도 주변을 포위하여 도망치지 못하게 한 후에 집중적인 공격을 퍼부은 형태였음을 알 수 있었다. 섣불리 접근하지 않았고 멀리서 거리를 유지한 채 싸웠음에도 그만한 피해가 생긴 것이다.

싸움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대략 알 것 같았다.

녀석이 지닌 ‘진화’하는 힘은 기본적인 상식 수준을 뛰어넘는 것이다.

포위하여 섬멸 공격을 가해도 그 이상의 진화라는 힘 때문에 피해자가 속출 한 것이리라.

“강현찬 헌터 님은 지금 어디입니까?”

“저는 지금 마지막 남은 녀석을 쫓는 중입니다.”

“네?! 그, 그렇지만 위험하지 않습니까?”

“괜찮습니다. 이미 다른 한 마리는 제거했거든요. 이제 남은 녀석은 저거 하나뿐입니다만…… 지금으로서 쉽게 접근할 수는 없겠네요.”

움칼라가 속도를 올리자 현찬도 똑같이 속도를 올렸다. 하늘을 날던 녀석과 비교하면 스피드는 확실히 떨어져서 다행이었다. 그러지 않았다면 현찬은 손 쓸 틈도 없이 녀석을 놓쳤을 것이다.

“혹시 모르니 GPS는 계속 켜놓겠습니다. 현장이 다 정리된다면 지원을 보내주세요. 혹시 모르니까요.”“네! 알겠습니다!”

현찬은 무전을 끄고 이제 버스보다 크기가 더 커진 움칼라를 보며 조금 고민했다.

‘그냥 여기서 전력을 다해서 공격 한번 해 봐?’

현찬인 그런 생각을 품는 순간 움칼라의 움직임이 미묘하게 변했다. 조금 전부터 계속 <헤르메스의 눈>을 발동하고 있는 현찬은 그것을 눈치챘다. 현찬은 창으로 변한 테레이오스테에 준 힘을 다시 뺏었다.

이것 때문에 현찬이 조금 전부터 녀석을 공격할지 망설인 것이었다.

‘직감이 지나치게 뛰어나.’

새로 변해서 도망간 녀석도 그랬지만, 움칼라족은 직감이 매우 뛰어났다. 지금까지 다른 차원 존재의 눈을 피해서 계속 숨어 지내던 영향 때문이었을까? 누군가가 적의를 품고서 공격하려고 한다면 녀석들은 기막히게 잘 알아차렸다.

‘내 존재는 인지하지 못했으면서 자기가 위험에 처하는 건 본능적으로 알아낸다 이건가.’

현찬이 공격을 망설인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녀석은 자신의 위기에 반응하여 움직인다. 혹여나 현찬의 공격이 제대로 먹히지 않는다면 녀석은 본능적으로 현찬이 따라올 수 없는 지하 깊은 곳으로 숨을 것이다.

현찬으로서는 녀석을 따라잡을 수 없었다. 혹시나 실수로 기회를 놓치는 순간 다음에 언제 기회가 돌아올지 모를 일이다.

지금도 실시간으로 진화하는 녀석인데 만약에 작정하고 남들의 눈을 피해서 숨었다가 그 누구도 감당하지 못할 괴물이 돼서 돌아온다면?

무려 옛날에 다른 차원끼리 벌어진 <대통합> 시절, 다른 차원 모두가 힘을 합쳐서 겨우 몰아낸 종족이었다. 그 시절 그 차원의 인류에게도 계약을 맺은 영령이 있었을 것이다. 그 중에선 신급 영령도 있었겠지.

그런데도 처참한 결과가 나왔다.

단 한 마리라고 하더라도 움칼라가 지닌 잠재력을 생각하면 이 자리에서 반드시 죽여야만 했다.

‘결국, 녀석이 바다로 가는 걸 지켜봐야만 하는 건가.’

사실 땅속에 숨은 것보다는 바다에서 녀석이 움직이도록 놔두는 게 더 나았다. 지하 깊숙하게 파고드는 것보다 바다에서 녀석을 쫓는 것이 더 편할 테니까.

산과 들을 넘어가며 계속 날다 보니 어느덧 멀리서부터 푸른 지평선이 보이기 시작했다.

움칼라도 바다의 존재를 눈치챘는지 움직임에 박차를 가했다. 지하 깊은 곳에서 움직이던 녀석이 점차 지상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현찬은 지금이 기회인가 살폈지만, 움칼라도 바보는 아닌지 일정 이상으로 올라오지 않았다.

“주인님. 어쩌려고 그러세요?”

현찬의 갑옷 안쪽에 현찬의 몸을 보호해주는 으스름달이 그렇게 물었다. 평소라면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을 녀석이 먼저 궁금한 기색을 내비치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왜? 저 녀석이 신경 쓰여?”

“네. 왠지 모르겠지만, 저 녀석에게 정말 위험한 냄새가 나요”

그리고 위험한 녀석일수록 먹을 때 더 좋다는 뜻이었다.

현찬은 슬슬 으스름달도 성장시켜야 할 때가 됐다는 생각이 미쳤다. 최근에는 몬스터를 잘 상대하지 않다 보니 마석을 먹이는 일도 뜸해졌다. 이 녀석이 강해져야 방어력이 올라가니 현찬의 처지에서 딱히 나쁠 건 없었다.

“그거야 저 녀석을 잡을 경우에 말이지.”

콰드드득!

바닷가에 가까워지자 지면은 거친 바위로 변모했다. 하지만 움칼라는 그런 단단한 지면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파헤치고 비집으며 움직였다. 그렇다 해도 움직이는 속도가 줄어든 건 어쩔 수 없었다.

“지금이 기회다.”

녀석이 바위 절벽을 뚫고 바다로 뛰어내리기 직전 그 타이밍에 맞춰서 창을 던질 생각이었다. 녀석의 덩치는 새 형태의 움칼라보다 더 크고, 이미 더한 진화를 마쳐서 바로 죽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

‘그래도 큰 상처를 입힌다면 쉽게 도망치지 못하겠지.’

그런 현찬의 적의를 읽어낸 것일까.

땅속에서 움직이던 움칼라가 갑자기 지면을 타고 커다란 진동을 뿜어냈다. 그것은 인간의 귀로는 들을 수 없는 매우 높은 주파수의 파장이었다. 현찬도 피부의 떨림으로만 아주 살짝 느꼈을 뿐이었다.

“뭐지?”

녀석이 무슨 일을 저질렀다는 것만 느끼는 그 순간이었다.

멀리서부터 바다에 검은 그림자들이 먹물처럼 번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거친 파도와 물살을 가르며 이쪽을 향해 몰려오고 있었다.

[현찬아! 저건…….]

“몬스터들?”

촤아악! 거대한 물기둥이 치솟아 오르며 바다에서 서식하는 몬스터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거대한 몸집에 먹잇감을 한입에 잡아먹는 씨 서펜트, 단단한 등껍질로 몸을 보호하며 적을 공격하는 자이언트 터틀, 집단으로 몰려다니며 거대한 사냥감도 물어뜯는 바이트 피라냐 등등.

바다에 존재하는 온갖 몬스터들이 해수면을 뚫고 난동을 피웠다.

<대통합>이 벌어지고 나서 바다는 인류가 함부로 다가갈 수 없는 미개척지가 되었다. 바닷속에서 싸울 수 있는 헌터들의 숫자가 적은 것도 물론이거니와 바닷속에 숨어있는 몬스터들을 잡을 방도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몬스터들도 워낙 강하고 큰 녀석들이 많다 보니 어지간한 크기의 배로는 바다에 나갈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그렇게 바다에는 다양한 몬스터들이 서식하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마지막 남은 움칼라가 그런 몬스터들을 부른 것이다.

이미 해안절벽 아래에는 몬스터들이 미어터지려고 하고 있었다. 그것만으로 부족한지 멀리서부터 계속 몬스터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좁은 공간에 몬스터들이 서로 엉키고 부딪치다 보니 자연스럽게 녀석들은 서로를 적으로 인식하고 싸우기 시작했다.

서로를 이빨로 물어뜯고 꼬리로 치고. 그야말로 아비규환의 싸움장이 되었다. 몇몇 거대한 몬스터들은 해안절벽에 몸을 부딪치며 절벽의 귀퉁이를 깎아내고 있었다.

푸른 바다는 순식간에 몬스터들의 피로 붉게 물들었다. 거세게 부는 바람과 크게 치는 파도가 핏물과 섞이며 붉은 거품을 잔뜩 만들었다.

몇몇 몬스터는 현찬의 존재를 인식했는지 멀리서부터 물대포를 쏘며 현찬을 공격했다. 현찬은 혀를 차며 공격을 모두 피했다.

마치 지옥도의 한 장면과 같은 광경 속에서 기회를 보던 움칼라가 그 사이로 떨어져 내렸다.

“이런!”

현찬은 몬스터들 때문에 움칼라를 공격할 기회를 놓쳤다. 이제는 지렁이의 모습에 겉에 껍질이 붙어서 지네처럼 보이는 움칼라는 몬스터들이 뒤엉킨 붉은 바다에 빠졌다.

“저 자식. 대체 무슨 꿍꿍이지?”

움칼라의 크기도 매우 거대했지만, 바다에서 서로 잡아먹는 몬스터들 중에 녀석보다 더 거대한 놈들이 많았다. 아무리 움칼라라고 하지만, 자칫 잘못 했다가는 저 몬스터들의 싸움에 휩싸여서 죽고 말 것이다.

현찬은 <헤르메스의 눈>에 마력을 집어넣으며 더욱 집중했다. 수많은 정보창이 떠올랐지만 거기서 움칼라의 것만 딱 짚어서 찾아낼 수가 없었다. 지나치게 많은 몬스터들이 한곳에 모여 있다 보니 정보 폭주가 일어난 것이었다.

그 순간이었다.

우워어어어어어!

바닷속에서부터 퍼져 나오는 거대한 울음소리에 미친 듯이 치고받던 몬스터들도 갑자기 멈췄다. 피 튀기는 혈전 때문에 시끄러웠던 해안가는 파도 소리를 제외하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그 순간 몬스터들 중 일부가 바다에 빨려 들어가듯이 사라졌다. 그리고 녀석들이 사라진 자리에는 검붉은 피가 더욱 진하게 바다를 물들이고 있었다.

[바닷속에…… 무언가 있어.]

촤아악!

헤르메스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바다에서 거대한 물기둥이 치솟아 올랐다. 두께만 30m가 넘고 높이는 무려 200m나 되는 거대한 물기둥. 마치 바닷속에서 핵이라도 터뜨린 것처럼 거대한 폭발에, 몬스터들이 휩쓸리며 무수한 시체를 사방으로 흩뿌렸다.

피가 섞인 바닷물이 중력을 따라 피처럼 쏟아졌다. 현찬은 아이기스의 방패를 꺼내 들어 그런 핏물을 막아냈다. 방패를 들면서도 현찬의 시선은 물기둥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물기둥 속에서 거대한 무언가의 실루엣이 언뜻 보였다.

“허 이거 참.”

물기둥이 사라지고 모습을 드러낸 건 조금 전까지 현찬의 추적을 받던 마지막 움칼라였다.

“몬스터들의 틈새에서 그새 진화를 끝냈어?”

움칼라는 몬스터들을 한 곳에 불러냈고 그 틈에서 죽고 죽이는 살육을 반복하며 짧은 시간 내에 폭발적인 진화를 끝마쳤다. 스스로 목숨을 건 도박을 녀석은 성공해낸 것이다.

크르르르.

추정되는 몸길이만 약 1km에 머리의 크기는 어지간한 집채보다 훨씬 더 컸다. 온몸이 단단한 푸른 껍질로 뒤덮였고 날카로운 이빨은 겹겹이 나 있었다. 녀석의 머리 위로 날카로운 뿔이 자라났고 팔다리가 바다 근처의 바위를 붙잡았다.

그것은 마치 동양의 신화 속에 나오던 거대한 용의 모습과 같았다.

움칼라는 자신을 죽이려던 현찬을 노려보았다.

녀석은 이제 도망치지 않았다. 이미 엄청난 진화를 끝마쳐서 충분한 자신감을 지닌 것이다.

움칼라의 두 눈동자에서 살기가 흘러나왔다. 현찬은 그 모습을 보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네놈에게 어느 정도 이성이 있다는 걸 알아. 제법 귀찮게 해 줬어.”

크르륵. 킥! 킥!

움칼라는 거대한 입을 비틀며 웃었다. 용의 형상을 한 괴물이 입꼬리를 올리며 비웃다니. 그 행동을 보며 현찬은 더욱 싸늘해진 시선으로 녀석을 노려보았다.

“원래라면 적당히 하려고 했는데.”

움칼라가 입을 쩍 벌리며 현찬을 물어뜯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 순간 현찬에게서 뿜어져 나온 거대한 마력의 폭풍우에 머리가 뒤로 튕기며 젖혀졌다. 움칼라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현찬을 바라보았다.

“덕분에 제대로 싸울 수밖에 없잖아.”

<계약>

무시무시한 신력이 현찬의 몸을 타고 흘렀다.

[어? 이 기운은?]

헤르메스는 익숙한 그 느낌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삼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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