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8
158화 움칼라족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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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칼라 족은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유사 인류라고 부르기도 뭣한 종족이었다.
놈들은 환경에 빠르게 적응하고 진화한다. 보기 좋아 보이는 외형은 진화 수준에 있어서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움칼라족은 점점 진화하며 강해졌다. 그 진화에는 끝이 없었고 그 사실은 다른 차원의 존재들에게 위협적으로 다가왔다.
이대로 놔두면 위험하다. 저렇게 멈추지 않고 진화했다가는 이쪽이 손 쓸 기회도 얻지 못한 채 놈들에게 먹힐 것이다.
그렇게 서로 반목하던 다른 차원들의 인류들은 모두 손을 잡고 움칼라족들에게 집중적인 공격을 퍼부었다.
그 치열한 싸움의 끝에 결국 승리한 것은 연합 차원 쪽이었다.
물론 그들 또한 피해를 무시할 수 없었다. 너무나도 치열했던 싸움은 그 누구도 제외할 것 없이 큰 상처를 남겼으니까.
싸움이 끝났다고 생각하는 순간 연합은 와해했다. 조금 전까지 함께 싸우던 다른 차원의 동료는, 바로 적으로 변모했다. 그들은 다시 무기를 쥐고 피가 난무하는 전투를 치렀다.
서로의 이권에 눈이 먼 그 추잡스러운 싸움의 틈새에서 살아남은 움칼라족은 다른 차원으로 피신했다.
언젠가 다시 돌아올 기회를 위해서.
아주 예전, 지구를 제외한 다른 차원들의 <대통합> 시절에 있었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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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찬이 게이트가 벌어진 장소로 도착했을 때 주변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니, 보이는 건 있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이곳에 있었다는 흔적이었다.
‘이미 늦었나?’
주변을 살폈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현찬이 게이트를 통해 지구로 넘어옴과 동시에 녀석들은 자신의 모습을 숨긴 것이다.
그것이 이성적인 판단에서 비롯된 건지 아니면 그저 본능적인 움직임에서 나온 건지는 모른다.
중요한 것은 이대로 녀석들을 놓쳤다가는 돌이킬 수 없게 변한다는 것이었다.
“크게 무리하고 싶지 않았지만, 상황이 이렇게 됐다면 어쩔 수 없지.”
현찬은 눈을 감으며 마력을 운용했다. 신체 내부에서 맴도는 마력은 현찬의 두 눈으로 몰려들었다. 현찬은 <헤르메스의 눈>을 최대 출력으로 발동했다.
“큭!”
눈을 뜨자마자 밀려오는 정보의 홍수에 머리 안쪽이 울렸다. 마치 가느다란 바늘로 뇌를 안쪽부터 쿡쿡 찌르는 기분이었다. 현찬은 그 고통을 견디며 최대한 자신이 찾는 정보들 위주로 습득했다.
‘제길. 역시 넘어왔군.’
움칼라족은 게이트를 넘어왔다. 하지만 숫자는 많지 않았다. 3마리. 단 3마리만 차원을 넘어서 지구로 왔다. 그러나 녀석들은 등장과 동시에 모습을 숨겼다.
‘모습을 숨겼다는 건, 지금은 아직 지구에 관한 정보가 별로 없으니까 몸을 사린다는 뜻이겠지.’
만약 이 지구가 자신들에게 매우 적합한 환경이며 이곳에서 거주하는 인간들이 자신드롭다 약하다는 것이 파악된다면? 움칼라족이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할 것이다.
<헤르메스의 눈> 능력을 한계에 가깝게 발동시키자 이전에 보지 못한 정보들이 더 보였다.
‘다른 차원의 존재들이 힘을 합쳐서 몰아낼 정도로 강했었다니. 이만한 잠재력을 지닌 녀석들이 지구에 숨어있기만 해도 답이 없잖아.’
리쿠르드족 때와는 달랐다. 이번엔 숫자가 단 3마리뿐이지만, 그 이상 가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현찬은 눈을 부릅뜨고 주변을 노려보았다. 그러자 게이트를 중심으로 3개의 선이 나타났다.
세 마리 움칼라족 녀석들이 어디로 향했는지 알려주는 표식이었다. 현찬은 빠르게 녀석들이 어디로 향했는지 정보를 읽으며 무전기로 뒤따라오는 헌터들에게 연락을 취했다.
“들리십니까? 이쪽은 강현찬 헌터입니다.”
“넵! 들립니다!”
“넘어온 녀석들의 숫자는 총 셋입니다. 하지만 적다고 방심하지 마세요. 하나하나의 강함은 엄청난 녀석들이니까요. 그 셋 중 하나가 그쪽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마주칠 텐데 마주치면 전력을 다해서 제거하세요.”
“가, 강현찬 헌터님은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저는 남은 두 마리를 제거하러 갑니다.”
현찬은 무전기를 끄며 고개를 위로 들어 올렸다. 우거진 나무 틈새로 보이는 푸른 하늘 위를 살구색의 무언가가 빠르게 가로지르며 지나쳤다.
녀석이다.
현찬은 [탈라리아]를 신고 발걸음을 박차 하늘로 날아올랐다.
빠른 속도로 날아가는 현찬은 도망치는 움칼라족 한 마리를 뒤쫓았다. 현찬의 움직임은 워낙 빨라서 순식간에 거리가 좁혀졌다.
키이이잇!
[으앗. 저건 대체 무슨 생명체야?]
도망치던 녀석은 뒤를 돌아보더니 현찬을 향해 괴성을 내뱉었다. 헤르메스는 그런 녀석의 얼굴을 보며 기겁했다. 녀석의 생김새는 날개가 달린 살덩어리 같았다. 활짝 핀 두 날개는 뼈대밖에 없었고, 거기에 달린 얇은 피막만이 전부였다.
얼굴로 추정되는 부분은 입을 제외하고 눈도 코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 녀석의 입가에 피와 새의 깃털이 묻어 있었다. 녀석은 새를 잡아먹고, 바로 그 새와 유사하게 변모한 것이었다.
‘저 정도라면 아직 괜찮아.’
이번에 넘어온 3마리는 오래전 싸움 이후로 겨우 생존한 마지막 녀석들이었다. 그 누구도 살지 않은 환경에서 오랫동안 동면하던 놈들은 이번 <대통합>이 벌어지면서 잠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기회를 보다 지구로 넘어온 것이다.
동면 상태에 들었던 녀석들은 어떻게 보면 유아기라고 할 수 있었다. 제대로 된 진화조차 마치지 못한 채, 에너지를 적게 소비하여 생존하기 위해 생명 활동을 하지 않고 잠만 잤으니까.
그러나 녀석들이 눈을 뜨는 순간 상황은 달라진다. 녀석들은 벌써 진화를 시작했다. 저 모습으로 추측하건대 아마 이곳에 처음 넘어왔을 때는 밀가루 반죽 같은 외형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단 몇 분 사이에 새의 모습으로 변했다.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진화 속도였다.
키에에에엑!
녀석은 현찬이 강하다는 걸 인지했을까? 현찬이 점차 거리를 좁히며 접근하자 괴성을 내뱉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우드득!
하늘을 비행하던 녀석의 몸통을 뚫고 새로운 날개가 한 쌍 더 돋아났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기존의 날개의 크기가 1.5배 가까이 커졌다. 살덩어리 같던 몸통은 가늘어져 대기의 저항을 최소한으로 받는 유선형이 되었고, 입은 앞으로 튀어나오며 뾰족한 부리로 변했다.
“미친.”
그 광경을 보며 현찬은 자기도 모르게 이런 말을 내뱉고 말았다.
헤르메스와 아테나도 그 상식을 초월하는 모습에 깜짝 놀랐다. 신화 속에 존재하는 괴물 중에서도 저런 능력을 보이는 녀석은 없었다.
[저것들 다 못 잡으면 큰일 나겠는데?]
[순식간에 진화하는 능력이라니. 만약 저런 녀석이 남들 몰래 1년간 진화한다면 그 누가 죽일 수 있을까?]
두 신이 그런 말을 하는 도중에 현찬을 피해 도망치던 움칼라는 날갯짓에 박차를 가했다. 나는 도중에 진화를 끝마친 녀석의 나는 속도는 조금 전과 비할 바가 아니었다. 좁혔던 거리는 다시 벌려졌다.
현찬도 최대한 속도를 올렸지만, 실시간으로 계속 빨라지는 녀석과 거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계속 늘어날 뿐이었다.
[현찬아! 이러다 놓치겠어!]
“나도 알아!”
하지만 녀석을 따라잡을 방도가 없었다. 대체 어떻게 되먹은 생명체가 순식간에 전투기와 맞먹는 속도로 진화를 한단 말인가. [탈라리아]의 비행 속도도 만만치 않았지만, 녀석은 더했다.
현찬은 결국 [테레이오스테]를 창 형태로 바꾸었다.
“가까지 접근해서 못 죽인다면 원거리로 공격하면 되지!”
움칼라족도 그런 현찬의 움직임을 눈치챘는지 직선 비행에서 곡선 비행으로 바꾸었다. 똑똑한 녀석이었다. 이번 공격만 피한다면 현찬이 자신을 잡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았으니까.
현찬은 창을 쥐고 차분하게 숨을 골랐다. 창대를 쥔 손에 힘을 주고 있는 힘껏 던졌다. 파앙! 검은 창은 공기를 가르며 일직선으로 쭈욱 나아갔다. 푸른 하늘에 검은 선이 그어졌다. 움칼라는 위기를 직감하고 바로 몸을 수직으로 꺾었다.
녀석은 자신이 공격을 피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현찬의 공격 타이밍에 맞춰서 그가 전혀 예상할 수 없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현찬이 미래를 예측하지 않는 이상, 맞출 수 없다고 보았다.
하지만.
퍼억!
몸통을 꿰뚫는 충격에 움칼라는 아무런 소리도 내뱉지 못했다. 그저 꺼져가는 시야 속에서 검은 창을 회수하는 현찬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지켜보았다. 현찬은 지상으로 추락하는 녀석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내 운을 무시하지 마.”
<감은장아기>의 축복.
행운의 여신인 그녀의 축복을 받은 현찬은 중요한 순간에 막대한 행운을 받는다.
창을 뒤로 던지지 않는 이상 눈을 감고 대충 방향만 맞춰서 던져도 거의 무조건 맞출 수 있다.
이것이 신이 내려준 축복의 힘이었다.
“하나는 제거했고, 다른 하나는…….”
콰과광!
멀리서 들려오는 폭음과 사람들의 고함, 괴물의 외침. 다른 한 녀석은 이미 헌터들과 마주쳐서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격투의 소리는 컸지만, 인간의 비명은 들려오지 않는 걸 보아 헌터들이 몰아붙이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저쪽은 잘 싸우고 있는 것 같네.”
그렇다면 남은 건 하나였다.
현찬은 다시 눈에 마력을 집중해서 <헤르메스의 눈>을 최대한으로 발동시켰다.
지금 지상에서 싸우고 있는 헌터들은 전선을 잘 유지한 채 움칼라족 녀석을 밀어붙이고 있었다. 현찬은 그 녀석이 아닌 다른 녀석을 찾고 있었다.
‘저기 있다.’
마지막 남은 녀석은 이곳에서 상당히 떨어진 곳에 있었다. 그것도 매우 빠른 속도로 땅속에서 움직였다. 지렁이라도 잡아먹었는지 녀석의 몸통은 새의 형태를 지닌 녀석보다 길었다.
그야말로 터널을 통과하는 지하철처럼 녀석은 빠른 속도로 지하를 가로질렀다. 녀석은 실시간으로 진화하고 있는지 몸이 더 길어지고 움직이는 속도가 빨라졌다. 현찬은 즉시 [탈라리아]를 신고서 녀석을 쫓았다.
[땅속에 있는 녀석은 어떻게 하려고? 자칫 잘못 공격했다가 녀석이 더 깊은 곳으로 숨기라도 했다가는, 감당하기 힘들어질 거야.]
“나도 알아.”
땅속에 숨어있는 녀석을 잡으려면, 녀석이 지상으로 나왔을 때가 기회다. 움칼라족이 아무리 기괴한 종족이라고 하더라도 생명체라면 숨을 쉬어야 한다. 현찬은 그 순간을 노릴 생각이었다.
‘그렇다 해도 녀석은 어디를 향하는 거지?’
마지막 움칼라족 녀석은 계속 남쪽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저 움직임에 딱히 무언가 목표를 가지고 움직인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러나 현찬은 방심하지 않았다. 녀석들은 생긴 것과는 다르게, 어딘가 매우 교활한 놈들이었다.
지구로 넘어오자마자 서로 뿔뿔이 흩어진 것만 봐도 답이 나왔다.
‘이대로 계속 아래로 내려가면 땅이 끝날 텐데?’
여기서 더 아래로 내려가면 남해안이다.
현찬은 그 순간 뇌리를 강하게 스치는 불안감을 느꼈다.
처음부터 녀석의 목표는, 바다로 향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바다는 모든 생명의 보고니까.
무언가를 잡아먹고, 실시간으로 진화하는 녀석의 특성대로라면.
바다는 그야말로 최고의 보물창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