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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무한계약-152화 (152/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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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화 악신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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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세트와 야마타노오로치, 아수라의 왕은 현찬이 사라진 자그마한 게이트 구멍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현찬이 사라진 곳을 멍하니 바라보는 그들은 신이자 괴물이다. 신화 속에서 악명을 떨쳤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정도로 인지도가 높았다.

그들은 싸우더라도 신 혹은 영웅들과 싸웠다. 승패 결과가 비록 좋지 않았을지라도 그들에게는 나름의 자부심이 있었다. 상대가 누구라고 하더라도 최선을 다해 싸웠다. 또한, 지더라도 그 싸움을 멈추지 않는다.

이번에 현찬과 맞붙게 될 때도 그런 생각을 품었다.

현찬은 지구에 존재하는 인간 중에서 단연코 최고의 힘을 지녔다. 최고이자 최강의 영웅이었다.

둘이나 되는 신과 계약을 맺었고 심지어 계약의 신 헤르메스의 권능을 이용해 다른 신과 단기 계약을 맺을 수도 있었다.

현찬이 제우스의 힘을 다루는 건 이미 신들 사이에서도 유명한 이야기였다.

그런 인재가 자신들의 적이었다. 이쪽이 셋이기는 하지만, 즐거운 싸움이 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현찬이 도망치기 전까지는.

“허?”

“이런! 도망치다니?!”

“적에게 등을 보이다니! 그러고도 영웅이냐!”

악신회 멤버들은 제각기 다른 반응을 보였다. 야마타노오로치는 눈을 살짝 크게 뜨며 어이없다는 듯 짧게 숨을 내뱉었다. 세트는 예상 밖의 행동에 어처구니가 없는지 투덜댔다. 아수라의 왕은 현찬의 비겁한 행동을 보고 매우 분노했다. 누구보다 이번 싸움을 기대했던 그이니만큼 엄청난 배신감을 느꼈다.

“이런 제길! 우리도 쫓으러 가자!”

“세트 님. 하지만 여기서 함부로 저 게이트를 넘어가면 위험합니다. 저쪽은 다른 세계이므로 저희의 힘과 권능이 잘 먹히지 않아요.”

“어차피 <대통합>이 일어나고 세상이 이어진 이상 어느 정도의 힘은 사용할 수 있어. 무엇보다 계속 여기서 기다리기만 하면 계획에 차질이 생긴다. 지금이라도 빠르게 추적해서 잡아야 해.”

“나는 간다. 녀석에게 우리를 농락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할 것이다.”

아수라의 왕이 저렇게 나서자 야마타노오로치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의 등에서 7개의 다양한 인격들이 들어갈지 말지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결국, 들어가기로 했다.

‘좀 위험하기는 할 거 같군요.’

욱신.

야마타노오로치는 목에 느껴지는 기분 나쁜 감촉에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8개의 머리를 가진 뱀이다. 신화 속에서 너무나도 강대한 힘을 보였기 때문에 신조차 함부로 그를 건드리지 못했다.

그가 당했던 건 간계에 빠져 술에 취했기 때문이었다.

그 뼈저린 실패의 느낌을 그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8개의 목이 전부 잘려나가던 기억은 생각조차 하기 싫었지만, 트라우마로 남아 있었다. 야마타노오로치는 그 이후 매우 신중한 성격으로 바뀌었다.

‘저곳은 다른 세계. 우리들의 설화나 신화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곳.’

악신회 멤버인 그들이 비록 진짜 육신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들의 힘의 근간이 되는 곳은 ‘지구 차원’이다. 다른 차원에서도 권능의 힘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하지만 다른 세계에는 또 그 세계만의 법칙이 있는 법이었다.

‘뭐, 저쪽은 무슨 일이 생기기 전에 빠르게 처리하자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요.’

저쪽 세계에도 신은 있을 것이다. 그들이 과연 다른 차원에 존재하는 신들의 출입을 좋게 여길까? 단지 조용히 갔다가 오는 것이라면 모른다. 하지만 현찬을 잡기 위해 넘어가는 거라면 분명 전투가 발생할 것이다. 그렇다면 권능의 발현은 피할 수 없고 당연히 저쪽의 신들도 알아차릴 것이리라.

‘혹여나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일단 도망갈 구멍은 만드는 게 최선이겠네요.’

그것이 세트나 아수라의 왕을 버리는 일이 될지라도 말이다. 어차피 동료애는 없는 사이다. 아마 같은 상황이 된다면 저쪽에서도 그를 가차 없이 버릴 게 뻔했다.

지금은 현찬을 없애는 게 우선이기 때문에 오로치는 못마땅해하면서도 함께 갈 수밖에 없었다.

“간다.”

가장 먼저 아수라가 들어가고 그 뒤를 세트와 오로치가 따랐다.

&

현찬이 게이트를 넘어 다른 차원의 세상으로 왔을 때 처음에는 다른 차원이 아닌 줄 알았다. 주변이 온통 시꺼먼 어둠으로 뒤덮인 숲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눈에 힘을 주고 숲의 나무가 지구의 그것과는 상당히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곳이 이계라는 걸 알아챘다.

“이계는 처음이네.”

[지금 한가하게 다른 세상의 풍경을 감상할 때인가!]

아테나의 호통에 현찬은 고개를 저으며 탈라리아를 신었다. 현찬의 몸이 하늘 높이 떠올랐다. 현찬의 눈동자에 주변 풍경이 더 많이 담겼다. 지구와 다르게 큰 나무들이 가득하다고 생각했는데 높은 곳에서 본 광경은 더욱 새로웠다.

[이렇게나 큰 나무들이 가득하다니. 저런 걸 세계수라고 부르던가?]

높이만 무려 800m가 넘는 나무들이 일정한 간격들을 두고 늘어서 있었다. 조금 전 현찬이 머물던 숲은 아주 작은 숲에 불과했다. 지평선 너머 밤하늘의 별이 비춰주는 풍경은 나무들로 이루어진 거대한 세계였다.

현찬은 <헤르메스의 눈>을 발동해 나무들을 가볍게 훑어보았다. 거대한 나무들로부터 정보를 읽어낸 현찬은 눈을 크게 떴다.

“저 나무들 하나같이 신격이 깃들어 있어.”

[그게 정말이냐?]

[맞아. 나도 확인했어. 저 거대한 나무들 자체가 이 세계의 신격들이야.]

다만 신격을 품었다고 해서 저 나무 자체가 신의 권능을 마음대로 휘두르는 것은 아니었다. 저 신격은 거대한 나무가 숭배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품게 된 신격이었다.

“일단 가까운 곳으로 가자.”

현찬은 밤하늘을 가로지르며 가까운 세계수로 다가갔다. 멀리서 봐도 거대해 보이던 나무는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 크기가 실감 났다. 그리고 나무에서 풍기는 풍만한 생명력과 함께 깃들어 있는 독특한 신의 기운 또한 더 여실히 느껴졌다.

현찬은 나무에서 뻗어져 나온 가지 하나에 앉았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손으로 나무 표면을 쓰다듬었다. 현찬의 몸에 깃든 신력이 나무의 신력과 서로 부딪치더니 이내 자연스럽게 섞였다.

“신기하네.”

반발하지 않는 기운에 현찬은 작게 감탄했다. 그만큼 나무가 품고 있는 기운은 그의 기운과 조화로웠다. 그런데 나무의 기운에는 리쿠르드족이 사용하던 어둠의 기운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그들이 숭배한 게 바로 이 신격이 깃든 나무일까?’

현찬이 그런 추측을 하는 와중에 멀리서부터 익숙한 힘의 파장이 느껴졌다. 조금 전 현찬이 넘어왔던 게이트를 통해 악신회 세 신이 이쪽 세계로 넘어온 것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기운을 숨길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화가 단단히 난 것 같은데.”

[…… 당연하겠지. 영웅이라는 자가 어찌 적을 대면하고서는 허점을 찔러 도망갈 줄 알았겠느냐. 저들로서 화날 법도 하다.]

[무엇보다 본인들은 다 잡은 고기를 놓친 것에 가까우니까. 당연히 머리끝까지 열이 올랐을걸?]

세트와 아수라는 자신의 힘을 전혀 감추지 않았다. 유일하게 오로치만 얌전히 있었다. 현찬은 신들의 힘을 느끼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대로 싸우기에는 승산에 있어서 조금 불안한 부분이 없지 않아 있었다.

‘어디 뭔가 이용할 거리가…….’

현찬은 그러다 한쪽에 시선을 고정했다. 씨익, 현찬의 입가에 참을 수 없는 미소가 걸렸다.

‘있구나.’

현찬의 시선 끝에는 다른 거목들과 다르게 매우 흉흉한 기세를 뿜어내는 거목이 하나 있었다.

[와우. 무슨 나무가 저렇게 흉측한 기운을 내뿜는담?]

[게다가 자세히 살펴보니 저 나무 주위엔 생명체들이 살지 않는구나.]

다른 거목들은 오히려 생명력을 내뿜으며 주변의 숲을 풍족하게 만드는 반면, 저 거목 주위에는 어떠한 생명체도 살지 않았다. 황량하고 거대한 공터의 중심에 자라난 거대한 나무의 모습은 이 세계에서도 어딘가 이질감이 느껴지는 광경이었다.

“이쪽 세계 사람들에게는 조금 미안하지만.”

현찬은 허공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이쪽에서 깽판 좀 쳐야겠어.”

물론 미안한 마음이 드는 건 아주 짧은 시간뿐이었다. 어차피 이쪽 세계에 사는 자들은 지구를 침공한 침략자들이다. 이들에게 굳이 좋은 생각을 품을 수가 없었다. 현찬은 불길한 거목을 향해 날아가면서 자신의 기운을 의도적으로 흩뿌렸다.

“음. 저쪽도 눈치챘네.”

멀리서부터 악신회의 신들이 현찬의 기척을 알아차리고 이쪽을 향해 빠르게 접근했다. 어두운 밤에서도 세트가 부리는 모래폭풍이 확연히 보일 정도로 압도적인 위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이놈! 반드시 잡아서 사지를 찢어주마!’

세트는 현찬에게 공포감을 심으려고 일부러 자신의 힘을 폭발시켰다. 폭 1km에 높이가 50m가 넘는 거대한 모래의 해일이 그들을 태우고 숲을 가로질렀다. 모래폭풍이 스쳐 지나갈 때마다 그 안쪽에 있는 생명체들은 순식간에 말라비틀어져 세트가 지닌 힘의 양분이 되었다.

힘을 소모한 만큼 조금이라도 보충하겠다는 의도였다. 특히 이 세계는 지구와 다르게 생명력이 워낙 풍부해서 숲 일부만 휩쓸고 지나가도 그에게 상당한 힘이 돌아왔다.

“너무 힘을 막 쓰시는 건 아닌지요? 이렇게 난동을 피웠다가 이쪽 세계의 신들과 충돌이 일어날지도 모릅니다.”

“응? 그게 무슨 상관이야. 어차피 저 빌어먹을 인간 하나 빠르게 해결하고 빠져나가면 되잖아. 게다가 녀석들이 오면 뭐 어쩌게? 어차피 이쪽의 신이라고 해도 하찮은 종족을 대리자로 삼아서 싸우는 것들이야. 우리가 질 거 같아?”

오로치는 세트의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세트의 말은 어딘가 옳은 것 같았지만, 오로치는 조금 전부터 계속 목이 욱신거렸기 때문이었다.

“도착했다.”

현찬은 불길한 기운을 내뿜은 거목 위에 서 있었다. 그는 자신의 존재를 숨길 생각이 없는지 창 대신 카두세우스 지팡이를 쥐고서 은은한 황금빛을 사방으로 뿌리고 있었다. 어두운 밤에 저런 빛은 너무나도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길 잃은 목동들에게 지표가 되는 빛인가. 그걸로 우리를 부르다니. 정말이지 거만하기 짝이 없는 인간이야.”

“아. 왔어?”

현찬은 친한 친구를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처럼 반갑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세트와 오로치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아수라의 왕만이 더욱 살기를 불태울 뿐이었다.

“여기서 더 도망쳐도 모자랄 판에 우리를 부르고 기다리기까지 하다니. 무슨 꿍꿍이냐?”

“딱히 여기서 계획한 꿍꿍이는 없어.”

현찬의 말은 더 듣기도 싫다는 듯 아수라가 앞으로 나섰다. 그는 자신의 힘을 개방했다. 그러자 조금 뒤틀린 인간의 모습을 하던 아수라의 덩치가 더 커졌다. 피부는 붉게 물들고 팔 2개가 더 튀어나왔다.

3개의 얼굴과 팔 6개. 각 팔마다 검이 쥐어져 있었다. 이가 나가고 날이 톱날처럼 우둘투둘한 검이었지만, 섬뜩한 기운이 보랏빛으로 풍겨 나오고 있었다.

오랜 투쟁 동안 수많은 적을 베었던 그의 무기, 자색육도(紫色六刀).

아수라의 왕은 전력을 다해 현찬을 죽일 생각이었다.

“워워. 무섭게 왜 그래? 나랑 싸우려고?”

“조금 전처럼 도망치게 두지 않는다.”

“아니. 이번엔 도망치지 않아. 하지만 싸우지도 않지.”

현찬은 장난스럽게 웃었다. 그런 현찬의 등 뒤로 헤르메스 또한 함께 웃고 있었다.

“내가 아니라 다른 자들이 싸울 뿐이야.”

“뭐?”

그 순간 사방에서 악신회를 향해 화살이 날아왔다. 검은 화살은 어둠에 섞여서 모습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무엇보다 화살의 끝 즉 활촉이 날카로운 금속이 아닌 이빨이 달린 무언가로 이루어져 있었다.

“감히!”

세트가 손을 휘젓자 모래폭풍이 몰아치며 화살들을 모조리 쳐냈다. 그 화살들은 자아를 가진 생명체처럼 날아왔던 장소로 되돌아갔다. 모래폭풍에 부딪혀 부러진 화살만 바닥을 뒹굴었다.

세트가 안력을 개방하자 어둠 속에 숨어있는 이계의 존재들이 보였다.

리쿠르드족들과 비슷하면서도 어딘가 다른 자들이었다.

“날 죽이려면, 걔들을 뚫고 와야 할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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