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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무한계약-149화 (149/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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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화 완벽한 대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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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런 말도 안 되는……!”

리쿠르드족 족장 아렌디르는 눈을 부릅뜨며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외쳤다. 아무것도 아닌 인간들이라고 생각했는데 자신들이 생각하지도 못한 병기를 꺼내서 상대할 줄이야.

‘이 세계에 과학이라는 게 있다고 들었지만, 우리에게는 무용지물일 텐데.’

그렇다면 답은 하나다. 저쪽의 과학이 자신들의 예상을 뛰어넘는 속도로 발전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그쪽에서 건네받은 정보의 의미가 없어져!’

그러는 와중에도 헌터들은 리쿠르드족을 향해 마석을 이용한 총을 계속 쏘았다. 허점을 찌른 공격이었는지 리쿠르드족 몇 명이 총에 맞고 나가떨어졌다. 리쿠르드족은 강인한 신체를 지녔기 때문에 이런 공격을 맞고 쉽게 죽지는 않았지만,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기절하고 말았다.

기절한 자들은 어둠의 힘을 사용하지 못해 자신의 본래 모습을 비추었다. 리쿠르드족에 있어 적들에게 자신들의 본체를 보이는 걸 수치로 여겼지만, 그 어떤 전사들도 기절한 동족을 비웃지 못했다.

“모두 함부로 달려들지 마! 저 공격은 직선으로 뻗어져 나온다! 제대로 집중하면 피할 수 있어!”

한 전사의 외침에 다른 리쿠르드족들은 헌터들에게 함부로 접근하지 않았다. 마석을 이용한 총격은 강하고 빨랐다. 하지만 약점이 있었다. 결국에는 그 무기를 인간이 사용한다는 점이었다.

눈치 빠른 몇 명은 상대방의 시선과 동작만 보고 어디로 공격이 들어오는지 파악했다. 그들은 민첩하게 움직이며 총격을 피하며 조금씩 거리를 좁혔다.

하지만 쏟아지는 공격은 너무 많았다. 원래 침공 계획과는 너무 다른 양상이 전개되고 말았다. 빠르게 접근해서 난전을 유도하려는 작전은 실패했다. 남은 방법은 최대한 안전하게 적의 근처까지 접근해서 근접전으로 붙는 것뿐이다.

자신들이 손쉽게 이길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들이닥친 현실은 예상과 상당히 동떨어져 있었다. 아렌디르는 이를 악물었다. 그녀 주위로 막강한 어둠이 몰아쳤다.

‘이렇게 된 이상, 저쪽의 머리를 친다.’

인간 쪽이 대비를 확실히 한 만큼 이 싸움은 인간이 승기를 잡고 있었다. 리쿠르드족도 나름대로 비기는 숨기고 있었지만, 여기서 그것을 사용할 거라고는 예상하지는 못했다. 그 비기를 사용하는 것부터 자존심을 크게 깎아 먹는 짓이니까.

‘하지만 사용하지 않을 수 없어. 저쪽의 머리를 친다고 해서 적들이 전의를 잃을 리도 없을 테고.’

용기백배 상태인 헌터들은 리쿠르드족을 상대로 두려움을 품지 않았다.

리쿠르드족은 어둠에 스며들어 적들에게 정신적인 압박감과 공포를 준다. 그건 상대방의 컨디션을 저하하고 본래의 실력을 완전히 내지 못하게 만든다. 그것만으로도 그들은 싸움할 때 유리했다.

그러나 아테나의 가호를 받은 헌터들은 여태까지 만났던 적들과는 달랐다.

“모두 <암흑의 길>을 사용해라! 내가 허락한다!”

리쿠르드족에게 허락된 비기 <암흑의 길>

그것은 어려운 적수를 만나지 않은 이상 절대로 사용을 금한 그들의 능력이었다.

아렌디르의 외침에 부족의 전사들은 이견을 달지 않았다. 그들은 결연한 눈동자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각자 품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그들은 동그랗고 검은 돌을 손에 쥐었다. 리쿠르드족은 손에 힘을 줘 검은 돌을 부쉈다. 검은 돌은 단단해 보이는 외견과 다르게 가볍게 바스러졌다. 그리고 그것은 가루가 되어 리쿠르드족의 몸에 스며들었다.

리쿠르드족 눈동자의 흰자위가 검게 물들었다. 헌터들도 녀석들의 기세가 사뭇 심상치 않게 변한 걸 눈치챘다.

“조심해라! 녀석들이 뭔가 했다!”

“윽! 이 녀석들 갑자기 빨라졌어!”

움직이는 속도만 빨라진 것이 아니다. 근력도 늘어났고 반사 신경도 조금 전보다 훨씬 더 빨라졌다.

무엇보다 리쿠르드족의 가장 큰 변화는 바로 이거였다.

“이, 이 녀석들! 벽을 통과해!”

헌터들이 리쿠르드족을 막을 수 있던 건 미리 설치해둔 바리케이드와 5m가 넘는 거대한 장벽 덕분이었다. 하지만 녀석들이 <암흑의 길>을 사용하자 그런 벽이나 바리케이드를 마치 유령처럼 통과했다.

이것이 그들이 지닌 비기 <암흑의 길>

신체 능력을 증폭하는 동시에 무기질로 이루어진 사물들을 통과하는 능력을 지니게 된다.

물론 이 능력을 사용하면 다음번에 <암흑의 길>을 발동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후유증도 만만치 않다. 그 정도로 리쿠르드족은 인간들을 주적으로 인식한 것이다.

“으아악!”

“버텨! 우리의 공격은 무효화하지 못한다!”

“죽어라!”

두 진영이 서로 부딪치며 엉키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보며 현찬은 자신이 직접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순간 자신의 오른쪽 관자놀이에 싸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현찬은 보지도 않고 오른손만 움직여 테레이오스테로 공격을 방어했다. ‘채앵!’ 현찬 주위로 주황색 불똥이 튀었다. 현찬은 눈동자만 오른쪽으로 돌렸다. 허공에 붕 떠서 자신을 향해 날카로운 단검을 휘두른 아렌디르가 다음 공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내가 나서지 못하게 방해라도 하겠다는 건가 아니면 혼자서 나를 쓰러뜨려 아군의 사기를 북돋겠다는 건가.’

어느 쪽이라고 하더라도 죽기 살기로 덤벼드는 상대를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렌디르는 쌍검을 사용했다. 검이라고 하기엔 너무 짧고 단검이라기에는 조금 길었다. 그리고 독특한 형태로 휘어진 무기였다.

아렌디르는 두 손을 빠르게 놀려 현찬을 향해 공격을 가했다. 신기하게도 그녀의 검에는 리쿠르드족 특수 능력인 ‘어둠’이 서려 있었다. 허공에 검은 선들이 그물처럼 촘촘하게 그어졌다. 그리고 그것이 현찬의 몸을 뒤덮었다.

“안 먹혀.”

<차용>[아이기스]

아렌디르의 공격은 아이기스에 흠집조차 내지 못했다. 현찬이 아이기스에 마력을 집중하자 방패 중앙에 있는 메두사가 눈을 떴다. ‘캬아악!’ 메두사가 괴성을 내지르자 <석화의 마안>이 발동되었다.

“크읏?!”

아렌디르는 신음을 흘리더니 허물어지듯 사라졌다. 정확히는 물질 통과 능력을 사용하여 바로 장벽 내부로 스며든 것이다. 현찬이 방패를 내리는 순간 바닥에서 검이 불쑥 튀어나왔다.

현찬은 가벼운 백스텝으로 공격을 회피했다. 아렌디르는 바닷속 상어처럼 장벽 내부를 유영하며 현찬의 발목을 집요하게 노렸다. 현찬은 계속 피하다가 이내 바닥에 착지하면서 발을 크게 굴렀다.

쿠우웅!

장벽이 크게 진동했다. 그 충격은 장벽 내부에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장벽의 바깥으로 아렌디르의 몸이 튕겨 나갔다. 그녀는 빠르게 낙법을 취하며 자세를 잡았다. 고개를 든 그녀가 본 건 자신을 향해 창을 내지르는 현찬의 모습이었다.

“크읏?!”

가까스로 고개를 옆으로 틀어 현찬의 창을 피해냈다. 그녀의 왼쪽 볼에 생채기가 생겼지만, 그녀는 그걸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그 이유는 바로 현찬의 창이 만들어낸 위력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콰아아아아!

현찬이 내지른 찌르기는 그대로 아렌디르 뒤에 있는 숲을 일직선으로 꿰뚫었다. 창의 사정거리가 짧아도 상관없었다. 그 찌르기에 실린 힘은 고스란히 공기를 타고 불도저처럼 나아갔으니까.

어둠 속에 숨어있던 다른 리쿠르드족들이 그 공격에 휩쓸렸다.

동족의 죽음에 아렌디르가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현찬을 상대로 한눈판 행동은 돌이킬 수 없는 실수였다.

“어딜 봐? 집중해.”

바로 코앞에서 들려오는 현찬의 목소리에 아렌디르는 몸을 틀며 발차기를 날렸다. 현찬은 창대를 들어 그녀의 공격을 막았다. 팽이처럼 회전하는 그녀는 창대에 발을 걸어 그것을 축으로 회전했다. 그 회전력을 고스란히 실어서 두 자루의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그녀가 예상한 것 이상으로 시야가 빠르게 회전했고 직후에 등 뒤에서 강렬한 충격이 느껴졌다.

콰아앙!

현찬의 매치기가 너무 강력해서 아렌디르가 처박힌 지면이 수면에 파문이 퍼지듯 부서졌다. 아렌디르는 숨을 내뱉으면서 현찬에게 검을 휘둘렀다. 현찬은 그 공격을 고개를 뒤로 살짝 빼며 피해냈다.

“족장님을 지켜라!”

“저 녀석이 놈들의 대장이다! 죽여!”

리쿠르드족은 아렌디르의 위기를 감지했는지 현찬을 향해 달려들었다. 검은 먹구름이 지면을 가로지르는 것 같았다. 헌터들이 뒤에서 지원사격을 했지만 리쿠르드족은 기괴한 움직임으로 총탄을 피해내며 현찬에게 접근했다.

“안 돼! 접근하지 마라!”

현찬의 위험성을 잘 아는 아렌디르가 그렇게 외쳤지만 이미 늦었다. 현찬은 자신을 향해 몰려오는 리쿠르드족을 향해 창을 세웠다. 팔을 타고 흘러가는 마력이 창에 맺혀 광휘를 내뿜었다.

싸움에서 다수의 적을 상대로도 절대 굴하지 않는 전쟁의 여신 <아테나>.

그녀가 지닌 권능이 현찬을 통해서 현세에 직접 강림했다.

아테나는 올림포스 12신 중 하나이며 직접적인 전투 부분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신이다.

지금은 현찬과 함께 지내고 헤르메스와 투덕거리며 본래 가지고 있는 위엄을 제대로 내비치지 않고 있지만, 그녀가 실제로 지닌 힘과 권능은 제우스의 그것과 맞먹는다.

아테나는 태생부터 아버지인 제우스의 전투력을 위협하는 운명을 타고났다.

게다가 어떤 전장을 나서더라도 승리의 여신 니케와 함께하기 때문에 패배하는 일이 없었다.

지금까지 드러내지만 않았을 뿐, 현찬이 마음만 먹는다면 적들을 쓸어버리는 데 충분했다.

현찬의 머리 위로 부엉이의 눈동자가 떴다. 그것을 마주한 리쿠르드족은 모두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그들의 몸을 숨겨주던 어둠도 모조리 걷혔다.

“물러서라! 강현찬 헌터님이 나섰다!”

“휩쓸리기 싫으면 당장 피해!”

헌터들은 사전에 경고받은 대로 현찬에게서 거리를 벌렸다. 혹시나 싸움이 지지부진하여 현찬이 직접 나선다면 방해되지 않도록 물러나기로 약속한 상태였다.

헌터들이 주변에서 모두 자취를 감춘 순간 현찬은 꾹 눌러왔던 힘을 개방했다.

<승리의 창>

주변에 커다란 빛이 생겨났다.

어두운 밤을 몰아내며 찬란한 광휘가 숲 일대를 밝은 대낮으로 만들었다. 리쿠르드족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이 열리고 있었다.

좌우로 쩍 갈라지며 열린 하늘에서 빛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창이 천천히 지상을 향해 하강하고 있었다. 대기가 떨리고 숲 주변의 새들이 푸드덕 날아올랐다. 새하얀 빛의 창은 마치 태양이라도 되는 것처럼 모든 어둠을 씻어냈다.

“안 돼!”

아렌디르는 자신이 계약을 맺은 영령의 권능을 발동했다. 그녀 주위로 시꺼먼 어둠이 파도처럼 일어났다. 그리고 그것은 순식간에 반경 100m 이내를 집어삼키며 검은 반구를 이루었다.

그런 검은 방패의 위로 순백의 창이 떨어져 내렸다.

충돌음은 없었다.

검은 방패는 창과 부딪치지 않고 가루처럼 흩어져 사라졌다. 아렌디르는 눈을 크게 떴다. 그녀 위로 거대한 창이 천천히 내려왔다. 마치 전 세계가 그녀에게 적의를 품고서 강하게 찍어 누르는 것 같았다.

창은 지면에 아주 살포시 닿았다. 그 직후 창은 수만, 수십만 개의 빛 가루로 흩어지며 주변 일대를 강하게 휩쓸었다. 그것은 여전히 싸울 생각과 적의를 가진 적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무시무시한 빛의 격류였다.

하지만.

[전의를 상실한 채 모든 걸 포기한 적들에게는, 먹히지 않는 권능이지.]

아테나는 상처 없이 멀쩡한 적들을 보며 그렇게 읊조렸다. 아렌디르를 포함한 모든 리쿠르드족은 바닥에 널브러져 기절해 있었다. 초반에 헌터들과 충돌하여 생긴 사상자를 제외하면 현찬에게 죽은 녀석들은 단 하나도 없었다.

[아무래도 나는 아레스 녀석처럼 모질지 못해서 말이다.]

같은 전쟁의 신이라고 하더라도 아레스가 ‘살육’과 ‘광기’에 기반을 둔 권능을 부린다면 <아테나>는 오로지 ‘승리’와 ‘정의’, ‘제압’에 초점을 둔 권능을 다루었다.

아테나는 그런 사실에 관해서 아쉬워하지 않았다.

그녀는 언제나 승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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