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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무한계약-148화 (148/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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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화 완벽한 대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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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의 깊은 산골짜기에 기둥이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그 주변에는 장갑차와 간이기지가 즐비했고 숲은 마치 낮인 것처럼 밝았다. 그곳에서 헌터들은 적들과 대치했다.

어둠 속에 스며든 적들의 움직임은 매우 기민했다. 놈들은 자신의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신기한 광경이었다. 주변에 밝은 라이트를 잔뜩 켜고 적들의 모습을 비추려 했지만, 놈들은 어둠과 한 몸이라도 된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모두 조심해라! 놈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방어대형 유지해! 여기서 함부로 움직이면 오히려 당한다!”

경험이 뛰어난 베테랑 헌터들은 적들의 특성이 암살자 형태에 특화했음을 깨달았다.

무슨 원리인지는 모르겠지만 녀석들은 어둠 속에 스며들어 모습을 숨기는데 매우 최적화한 녀석들이었다.

조금이라도 방심하는 순간 놈들은 숨겨놓은 송곳니를 드러내 목덜미를 물어뜯으리라.

“라이트 더 강하게 켜! 마법 쓸 수 있는 사람들은 주변에 불 지피고!”

“어차피 이쪽이 방어진만 펼치면 막을 수 있다! 모두 침착하게 대처해!”

헌터들은 당황하지 않았다. 베테랑들의 지시에 모두가 힘을 합쳐서 방어에 힘썼다. 그들은 멍청하지 않았다. 아직 정보조차 확인되지 않은 적들에게 섣불리 전면전을 걸지 않았다. 방어에 힘쓰며 놈들의 약점을 파악하고 그것이 확인되는 순간 반격을 가할 생각이었다.

스스스스.

적들도 그것을 눈치챘는지 함부로 다가오지 않았다.

놈들은 나무 그림자에 숨어서 이쪽에 빈틈이 생기는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적들도 알았다.

지금 인간들이 펼친 방어선을 함부로 뚫고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놈들은 어떻게 알았는지 높이만 5m가 넘는 거대한 콘크리트 장벽을 설치했고 심지어 그 주변에 각종 바리케이트를 쌓았다. 그것을 넘는 것도 힘들어 보이는데 심지어 인간 수도 만만치 않았다.

이것을 전부 뚫고 들어가려고 한다면 막대한 피해를 감수해야 했다.

이기기 위해서 쳐들어왔는데 시작부터 손해 볼 생각은 없었다. 지금도 계속해서 동료들이 넘어오고 있으니 조금만 시간을 끌어서 동료가 충분히 모인다면 그때 싸워도 괜찮았다.

그렇게 두 진영은 서로 견제를 유지하며 시간을 끌고 있었다.

“저쪽도 상당히 신중하네요.”

높은 곳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현찬은 귀찮게 됐다며 혀를 찼다.

녀석들의 의도는 제대로 읽혔다. 분명히 자신들의 특성과 밤 시간대를 이용해 기습할 생각이었으리라. 이쪽에서 제대로 방비하지 않았다면, 병력을 끌어모은 놈들은 가까운 도시로 들이닥쳐 무자비하게 사람들을 죽였을 것이다.

어떻게 막아낸 것은 다행이었지만 녀석들은 당황하지 않고 차분하게 대치 상황을 유지했다.

저쪽도 이쪽 정보가 없듯이 이쪽 또한 정보가 없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리라.

옆에서 함께 상황을 지켜보던 현장 지휘관이 침음성을 흘렸다.

“크흠. 상당히 이질적인 능력을 지닌 녀석들입니다. 강렬한 빛을 비추어도 흐릿한 형상만 보일 뿐, 본래 모습이 무엇인지 확인할 수가 없습니다.”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혹시 무슨 방도가 있으신 겁니까?”

“네. 그러니 다른 헌터들에게는 아직 제 명령이 떨어지기 전까지 나서지 말라고 전해주세요. 시간이 조금 걸릴 테니까요.”

“네! 알겠습니다!”

지휘관이 물러나고 현찬은 눈에 마력을 집중하여 <헤르메스의 눈>을 발동했다. 지나치게 강화된 헤르메스의 눈은 현찬이 원치 않은 정보까지 순식간에 읽어냈다. 현찬은 그것을 세밀하게 조정하여 원하는 정보만 읽어냈다.

[라쿠르드 족]

특징 : 어둠 동화, 기습, 암살.

다른 사람들의 눈에 흐릿한 어둠의 형상으로만 보이던 녀석들의 정체가 현찬의 눈에는 훤히 보였다. 놈들은 사람과 비슷하게 생겼다. 다만 일반 사람보다 키가 훨씬 더 크고 호리호리하게 생겼다는 부분이 차이였다. 게다가 귀는 길고 뾰족했으며 전체적으로 까무잡잡한 피부를 지니고 있었다. 성별이 구분되어 있었고 전체적으로 빠르게 움직이기 위해 활동하기 간편한 복장이 주를 이루었다.

가장 독특한 것은 녀석들의 회색빛 머리카락이었다. 어떻게 보면 눈에 띄는 색상이었지만 오히려 저 머리카락이 품은 기묘한 마력이 주변 사람들의 인식을 저해하는 효과를 지니고 있었다.

‘꽤 신기한 녀석들이네.’

한밤중에 먹잇감을 노리는 재규어 같은 놈들이었다. 하나같이 타고난 사냥꾼 같은 녀석들이라 그런지 그림자에 몸을 숨기면서 이쪽이 언제 빈틈을 드러내려 하는지 간을 보고 있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어둠 너머에서 리쿠르드족 수는 계속 늘어나 처음에 100명이었던 녀석들은 어느덧 500을 넘어갔다. 현찬은 눈에 힘을 주어 리쿠르드족의 대장을 찾았다.

‘찾았다.’

대장으로 보이는 녀석은 가장 선두에 서서 이쪽을 염탐하고 있었다. 신기한 것은 녀석이 여성이라는 점이었다. 다른 리쿠르드족보다 키가 더 작아서 사람과 별 차이가 없었는데 지닌 힘은 다른 녀석들 이상이었다.

[쟤인가 보네.]

[흠. 뛰어난 여전사의 기운이 느껴지는군. 저 대장은 지금까지 수많은 난관을 헤쳐 온 녀석이 분명하다. 그저 힘만 많은 게 아니야.]

‘리쿠르드족 족장. 이름은 아렌디르. 나이나 뭐 그런 건 둘째 치고서라도 저 녀석 또한 이계 영령의 힘을 빌리고 있구나.’

때마침 아렌디르가 현찬과 눈이 마주쳤다. 아렌디르는 현찬이 자신을 뚫어져라 바라보자 잠시 눈을 크게 떴다. 어둠에 숨어있는 자신을 현찬이 아무렇지 않게 보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놀랍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녀석은 시선을 피하지 않고 오히려 당당하게 현찬을 노려보았다. 아렌디르도 이 자리에서 현찬이 가장 강하고 모든 이들의 대장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었다. 전장에서의 상황 파악도 상당히 빨랐다.

아름다운 외모에 강한 힘을 지니고 있으며 심지어 눈치도 빠르고 상황을 잘 파악한다. 솔직히 말해서 정말로 탐나는 인재였다.

‘그렇다 해도 봐줄 생각은 없지만.’

놈들은 이계의 침략자다. 이쪽을 공격하려고 든 이상 확실하게 싸울 생각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혼자 나서서 전부 다 휩쓸어버리고 싶었지만 참기로 했다. 오버랭크 헌터 혼자서 모든 것을 다 하면 다른 사람들이 활약할 기회가 줄어든다.

‘내가 다 한다면 오히려 사람들은 지나치게 오버랭크 헌터들에게만 의존하게 될 거야.’

무엇을 위한 훈련이었고 무엇을 위한 작전이었는가. 오버랭크 헌터 없이도 그들 힘으로 해나가기 위한 노력이 아니었던가.

현찬은 다른 헌터들에게 기회를 주기로 했다.

‘정 위험하면 그때 내가 나서면 돼.’

이쪽도 나름대로 준비를 철저하게 했기 때문에 피해를 보지는 않을 것이다.

“여러분.”

현찬이 입을 열자 모두의 시선이 현찬을 향했다. 그들의 각 지휘관이 고함치며 적을 보라고 해서 다시 시선을 리쿠르드족을 향했지만, 현찬이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한 듯 모두가 귀를 열고 집중했다.

“적들은 이계에서 온 존재들입니다. 저들의 모습은 제대로 보이지 않지만 제가 확인해 본 결과 사람과 비슷하게 생겼습니다. 다른 세계의 아인종이라고 보면 좋겠네요. 그들은 회색의 긴 머리카락을 지니고 있는데 거기에서 독특한 마력의 파장을 뿜어내 사람들의 인식을 저해시키고 눈을 현혹합니다.”

리쿠르드족은 현찬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몰랐다. 하지만 무언가 일어나고 있음을 눈치챘는지 조금씩 동요가 일어났다.

현찬이 말을 계속하면 계속할수록 장벽에서 방어에 몰두하는 사람들의 긴장이 점차 풀리고 있었다.

“적들은 매우 빠르고 날렵한 자들입니다. 괜히 빈틈을 보였다가는 화살이나 단검이 날아오겠죠. 저들 또한 각자 세계의 영령들과 계약을 맺었기 때문에 우습게 볼 전력도 아닙니다. 하지만 전부 다 암살자나 레인저로 이루어져 있어서 광범위한 원거리 공격에 매우 취약합니다.”

정보가 풀리자 사람들의 눈에 용기가 맴돌기 시작했다. 현찬의 목소리에는 자연스럽게 신력이 깃들어 있었다. 전쟁의 여신 아테나의 권능 중 하나였는데 예전에는 의도적으로 사용해야 할 권능이 지금은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군들의 공포를 줄이고 용기를 늘려주며 신체 능력을 미약하게나마 상승시킨다.

이것이 바로 전쟁터를 누비며 수많은 병사가 거론하던 여신 아테나의 힘이었다.

‘위험하다.’

리쿠르드족의 족장인 아렌디르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녀는 타고난 지휘관이자 싸움꾼이었다. 전쟁에서 흐름을 읽는 눈 또한 출중했기 때문에 지금 상황이 매우 불리하게 흘러가고 있는 것도 알아차렸다.

‘적들이 우리들이 쳐들어오는지 알아차린 것도 큰일이지만,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저 남자.’

겉모습을 보면 딱히 특별해 보이는 것이 없는 남자였다. 그녀는 외모를 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저 간단한 복장을 걸친 현찬에게 무언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현찬과 눈이 마주친 것도 순전히 우연이었다. 상대가 자신을 제대로 주시하는 것을 깨닫자 형언할 수 없는 기분을 느꼈다. 지금까지 남들에게 들킨 적 없는 자신의 은신이 파훼 당하고 본인의 본모습까지 드러난 건 처음이었다.

상대방의 능력이 뛰어나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설마 이런 전장에서 분위기를 휘어잡는 능력까지 있을 줄이야.

‘이렇게 되면 시간을 끌수록 불리해지는 것은 우리다.’

그렇다면 저쪽이 채 준비를 갖추기 전에 이쪽에서 먼저 선수를 친다.

양쪽 다 준비가 안 된 것은 매한가지지만, 이쪽은 지금까지 사선을 넘어온 전투의 대가들이 넘친다. 지금까지 평화에 찌들어서 제대로 싸움조차 못 하는 나약한 차원의 인간들 따위가 견뎌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돌격! 놈들을 모두 쓸어버려라!”

족장의 명령에 가만히 기회를 보던 리쿠르드족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른 헌터들의 입장에서 수백이 넘는 리쿠르드족의 돌진은 마치 어둠으로 이루어진 해일이 밀려오는 것 같았다.

“노, 놈들이 옵니다!”

“멍청이들아! 저쪽도 궁지에 몰렸으니까 먼저 움직이는 거다! 이쪽은 그냥 방어에만 집중하면 돼!”

그러나 헌터들의 예상과 달리 리쿠르드족들은 훨씬 더 빨랐다. 어둠에 동화된 녀석들은 빛 앞에서도 그 어둠을 간직한 채 뒤로 검은 꼬리를 길게 남겼다. 그 뒤를 따라오는 동족들은 꼬리를 무는 어둠에 몸을 숨기며 더 빠르게 움직인다.

그것은 마치 허공에 먹물이 가득 휘둘러지는 광경이었다.

집단이면서도 마치 하나의 격류처럼 움직이는 리쿠르드족들의 모습에 헌터들이 기겁했다.

리쿠르드족은 그런 헌터들을 보며 비웃었다.

‘나약한 인간들.’

‘평화에 찌든 네놈들은 우리를 이길 수 없다.’

가장 먼저 접근한 리쿠르드족은 5m가 넘는 콘크리트와 합금의 장벽을 가볍게 뛰어넘었다. 순식간에 장벽의 위에 도달한 리쿠르드족은 방패와 검을 들고 대기하는 헌터를 향해 날카로운 단검을 휘둘렀다.

헌터는 눈을 부릅뜬 채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리쿠르드족의 검은 그림자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타앙!

총성과 함께 리쿠르드족이 뒤로 튕겨 나갔다. 가장 먼저 도달했던 선봉은 돌진했던 속도 그 이상으로 뒤로 튕겨 나가 바닥을 뒹굴었다.

리쿠르드족은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현찬은 자신이 나서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작게 안도하면서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너무 우리를 무시한 것 같은데.”

헌터들의 뒤에는 독특한 총을 지닌 사람들이 늘어서 있었다.

이것은 기존에 실탄을 사용하던 무기들과 본질이 달랐다.

“우리도 너희들에게 맞서기 위해서 제대로 준비했다고.”

하나로 뭉친 인류가 지닌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공간을 뛰어넘는 워프 게이트를 만들기도 했으며 몬스터들을 대비하기 위한 각종 방어 시스템도 그러했다.

특히나 지금 선보이고 있는 마석을 이용해 만든 신형 무기도 그중 하나였다.

실탄이 먹히지 않는 녀석들이지만, 마석을 이용한 공격은 그 특유의 무효화가 먹히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저런 이계의 존재들에게 있어서 가장 최적화한 무기라고 할 수 있었다.

“자. 반격의 시간입니다.”

현찬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헌터들이 기합을 내지르며 리쿠르드족을 향해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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