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무한계약-147화 (147/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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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화 차기 오버랭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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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현창.

대한민국의 기업 중 거의 최고라고 불리는 대천기업 장남이다. 이번 차기 오버랭크 헌터들을 키우고 성장시키는 프로젝트에 막대한 거금을 투자한 대주주 중 하나이기도 했다. 아직 경험이 부족해서 총 책임자의 자리에 앉지는 못했지만, 그가 가진 영향력이란 무시할 수 없었다.

“TV에서만 보던 인물을 실제로 보니 되게 신기하네요. 팬입니다.”

주현창은 현찬에게 호의를 품고 있었다. 그렇다 해도 설마 재벌가 첫째가 현찬에게 팬이라고 하니 어딘가 감회가 새로웠다. 누가 나서서 이런 말을 해도 별로 큰 영향을 받지 않을 거로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아닌 듯싶었다.

“네. 저도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벌써 수완이 매우 뛰어나서 차기 대천그룹 지도자가 되실 거라고 다들 입을 모아서 말하던데요.”

“하하. 너무 과분한 말이에요.”

주현창은 겸손하게 손을 흔들며 현찬의 말을 부정했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그가 지금 행하는 프로젝트만 봐도 그의 능력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특히나 젊은 나이인데도 대천그룹에서 상당히 많은 분야를 총괄하는 일까지 맡고 있다.

어떻게 보면 현찬과 비슷하지만 다른 방향으로 능력 있는 사람이었다.

“그보다 저를 만나 뵙고자 하셨는데 어쩐 이유로 찾으셨나요?”

“딱히 큰 이유는 없습니다. 제가 이곳에 막대한 투자를 한 만큼 애착이 깊거든요. 새롭게 성장할 차기 오버랭크 헌터들에게도 관심이 많고 무엇보다 그들을 이 자리에 모은 것이 강현찬 헌터님이라고 들었습니다.”

“네. 그렇죠.”

“그러니 한 번 정도는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어서 부른 겁니다. 사실 본심을 말하자면 팬으로서 선망하는 대상과 1대1로 합법적인 자리에서 만나려고 한 거지만요.”

“하하하.”

주현창의 어딘가 끈적한 시선에 현찬은 어색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밑도 끝도 없는 호의를 그것도 동성에게 받는 것은 처음 겪는 일이라서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곤란했다.

물론 티를 내지는 않았다. 이런 부분에서는 이미 내공이 빵빵한 현찬이었다. 타인에게 자신의 감정은 제대로 비추지 않고 숨기는 건 매우 쉬운 일이었다.

무엇보다.

‘뭔가 이상하단 말이지.’

어딘지 모를 기시감.

가슴 한쪽에서 계속 쿡쿡 찔러오는 이 미묘한 감각에 현찬은 눈을 가늘게 떴다.

이성적으로 판단했을 때 이상한 부분은 없었다. 현찬은 이미 주현창에 관해서 파악해 놓은 상태였다. 특히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는 앞으로도 만나게 될지 모르는 사람에게는 <헤르메스의 눈>을 통해 기본적인 정보를 얻어내기도 했다.

현찬이 확인했을 때 주현창에게 딱히 걸리는 요소는 없었다.

대기업 회장의 아들들과 다르게 그는 매우 깔끔한 사람이었다. 문제 되는 일도 없었고 오히려 선행을 많이 베풀었다.

둘은 인사한 이후 대화를 나누었다. 주제는 딱히 별거 없었다. 그저 세상이 돌아가는 흐름, 요즘 국가의 정세, 늘어나는 헌터들에 관한 이야기뿐이었다. 가끔 개인사에 관한 이야기도 더러 나왔고 대화는 늘어지는 일 없이 척척 진행되었다.

“하하. 각성자들이 늘어나는 것은 오히려 좋은 일이죠. 몬스터들에게 무력하게 당하는 사람들의 수가 줄어든다는 의미니까요.”

“그래도 싸우지 못한 사람들이 갑자기 각성자가 되었다고 해서 싸울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그렇죠. 하지만 싸우지 않는다면 전부 잃을 뿐이에요. 그것을 자각만 해줘도 충분하죠. 무엇보다 각성자들은 각성하게 되면서 본능적으로 전투능력이 급증한다고 들었어요. 21세기에서 평화로운 한때를 보내던 사람들이 헌터가 되자마자 몬스터들과 싸운 것도 그러한 알 수 없는 원리 때문이라고들 하죠. 마냥 큰 문제는 없다고 생각해요.”

“주현창 씨도 각성자가 된다면 몬스터와 싸우실 생각인가요?”

“저는 그럴 겁니다. 애석하게도 아직 각성하지 못했지만요. 언젠가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겠지만, 저는 된다면 싸울 겁니다. 일단 각성자가 아닌 지금은 다른 방향에서 그들을 도와야죠.”

무엇보다 그는 각성자가 아니었다. 계약한 영령도 없는 일반인이었다.

그것을 생각하면 확실히 이상한 부분은 없다.

하지만 이상하게 불안한 느낌이 가시질 않았다.

<헤르메스의 눈>으로 몇 번을 확인한 결과인데도 특히나 그랬다.

‘내가 과연 착각하는 걸까?’

현찬은 자신의 감정을 완벽하게 신뢰하지 않았다. 지금 느끼는 이 불안함도 너무나도 완벽한 사람을 보면서 자기도 모르게 드는 일반적인 의심이라고 생각했다.

정말로 주현창은 아무런 문제가 없는 선한 사람이라면? 자신이 괜히 지레짐작하는 걸 수도 있지 않은가.

현찬은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사람의 감정이라는 게 쉽게 속일 수 있는 거라고 하지만, 현찬은 조금 전부터 느껴지는 이 불안함이 절대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것은 현찬이 지금까지 많은 몬스터들과 싸우고 전장을 겪어오면서 얻게 된 직감이었다.

현찬은 지금까지 자신의 직감이 틀린 적이 없다는 걸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이런 느낌이 들 때마다, 언제나 사건은 벌어졌다. 그것이 지금 바로가 아니라 하더라도 가까운 시일 내에 일어나는 것은 기정사실이었다.

‘이 사람은 무언가를 숨기고 있어.’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모른다. 한 번 의심이 생기니 주현창에 대한 모든 것이 의심이 갔다. 그렇다고 여기서 그를 다그쳐서 무언가를 얻어낼 수 있는 것도 없었다.

‘애초에 물증도 명분도 없어. 여기서 내가 행동으로 나선다면 오히려 주변에 더 나쁜 분위기를 풍기게 되겠지.’

그렇다는 건 지금 당장에 딱히 무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마냥 무시할 생각은 없었다. 현찬은 오히려 오늘 주현창을 만난 걸 정말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을 테니까.

이렇게 만나고 그를 알게 됐으니 지금부터 그가 어떻게 움직일지 주시만 하면 될 것이다.

언젠가 일어날 미래를 위해서라도 현찬은 지금은 일단 넘어가기로 했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네. 만나 뵙게 되어서 영광이었습니다.”

“저야말로.”

둘은 마지막으로 인사를 나누며 헤어졌다. 주현창은 현찬이 문을 열고, 나가는 뒷모습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현찬도 그런 주현창의 시선을 느끼면서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은 채 방을 나섰다.

‘과연. 보통이 아니야.’

현찬의 모습이 사라지고 그의 기척이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을 때도 주현창은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는 푹신한 소파에 앉아 조금 전에 보았던 현찬의 모습을 곱씹었다.

주현창도 알았다. 현찬이 자신의 이질적인 부분을 눈치챘다는 것을.

‘감이 보통이 아니야. 다른 S랭크 헌터들은 인지조차 하지 못한 것을 만나서 대화 몇 마디 나누는 것만으로 눈치챘어.’

[후후후. 저 아이가 얼마나 특별한지 너도 어느 정도는 눈치챈 것 같구나.]

“…….”

주현창은 로키의 말에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여전히 자신보다 저 남자를 바라봐주는 여신님에 대한 애석함도 있었지만, 그는 지금 감정을 불태우는 것보다 이성적으로 상황을 파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신님과 계약 맺은 나의 기만을 확신하지는 못했지만 대충 눈치챈 것만 해도 대단하다. 이건 인정할 수밖에 없어.’

<로키>는 사기와 기만의 신이다.

그 능력은 설사 같은 신이라고 하더라도 쉬이 속일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현찬은 그것을 아주 일부나마 꿰뚫어 본 것이다. 계약을 맺은 신이 로키와 동등한 위치에 있는 헤르메스인 것도 있었지만 현찬의 날카로운 감이 가장 영향이 컸을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내가 각성자라거나 계약 맺은 사실은 모른다.’

이쪽도 완전히 모든 것을 들킨 상태는 아니었다. 다만 현찬이 이쪽을 의심하기 때문에 앞으로 얼마 동안은 조심해서 움직일 필요가 있었다.

‘쉽지 않은 대결이 되겠어.’

&

[현찬아. 저대로 놔둬도 돼?]

[맞다. 아무리 봐도 불안해 보이지 않느냐.]

충분히 거리를 두자 헤르메스와 아테나가 물었다. 현찬은 어깨를 으쓱였다.

“그렇다고 내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없어. 일단 상대방이 어딘가 이상하다는 심증만 있지 제대로 된 물증도 없고 드러나지 않은 부분이 너무 많아.”

[내 눈을 통해서도 다 드러나지 않았다는 거야?]

“그건 내가 확신할 수 없지.”

하지만 정말로 그것이 사실이라면.

저쪽은 헤르메스와 비등한 영령과 계약을 맺었을지도 모른다.

‘뭐, 그건 차차 시간이 흐르면서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겠지.’

결국, 모든 것은 가설에 지나지 않는다. 상대방이 각성자라는 것은 결국 최악을 가정한 것. 실제로 어떻게 흘러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운명의 여신과 시간의 신을 제외하면 말이다.

“그보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이제 곧 다른 차원의 존재들이 넘어올 테니까.”

현찬은 넓은 유리창 너머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대통합> 이후로 하늘은 다시 원래의 푸른빛을 되찾았지만, 다른 차원과 이어진 새하얀 빛의 기둥은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세계 곳곳에 자리 잡은 빛의 기둥은 다른 차원과 이어진 일종의 연결점이었다.

언제 저것을 통해서 적들이 넘어올지 몰랐기 때문에 <세계연합>은 기둥 주변에 막대한 병력을 배치해 놓은 상태였다.

<세계연합>은 놈들이 언제 기습적으로 나타난다 하더라도 순식간에 대처가 가능하도록 주변의 방어 레벨을 엄청나게 올렸다. 거기에 더해서 가까운 근방에 고랭크 헌터들을 대기시켜 싸움이 벌어져도 5분 이내에 합류할 수 있게 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막상 싸움이 벌어진다면 이쪽에 피해가 없을 수는 없겠지.’

24시간 내내 적들이 언제 올지 몰라 노심초사한 상태로 경계할 수는 없다. 결국에 집중의 한계가 찾아올 것이고 그 틈을 찔린다면 큰 손실이 생길 것이다.

무엇보다 녀석들이 반드시 저 빛의 기둥을 통해서 온다는 보장도 없었다. 저것은 <대통합>이 이루어질 때 차원과 차원을 연결해주는 닻 역할이 메인이다. 통로도 겸하지만, 놈들이 다른 <게이트>를 만들어 넘어올지 미지수였다.

‘그렇게 두지 않아.’

현찬은 <헤르메스의 눈>을 발동해서 새하얀 빛의 기둥을 읽었다.

아무리 발달한 권능이라 할지라도 읽을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지닌 정보의 일부뿐이었지만, 완전히 모르는 것과 비교하면 조금이라도 알 수 있는 건 천지 차이였다.

특히나 적들이 언제 들이닥칠 수 있는지 안다면 더더욱.

‘남은 기간은 앞으로 3일.’

가장 가까운 침공일이 3일 후였다.

악마와는 다른 녀석들이 올 것이다. 한밤중에 나타나는 걸 생각하면 분명히 놈들에게 썩 좋은 의도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철저하게 준비해서 싸우는 것뿐.

“네. 접니다.”

현찬은 최근 더 높은 자리까지 올라간 정기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3일 후. 강원도에 있는 빛 기둥 근처에서 한밤중에 놈들이 들이닥칠 겁니다. 아무래도 확실하게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네요.”

“그게 정말이라면 해당 기지에도 연락하도록 하겠습니다. 좋은 정보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기원은 현찬의 말에 ‘어째서’라는 의문을 갖지 않았다. 지금까지 현찬이 틀린 말을 하지 않았고 그가 알지 못하는 어떠한 수단이 있을 거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전화를 끝내고 현찬은 잠시 자신이 모은 사람들이 머무는 <영웅의 근원>을 바라보았다. 언젠가 저들도 싸우게 될 것이다. 그것을 위해서 현찬이 모은 사람들이었으니까.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싸우는 것은 현찬이 될 것이다.

&

“정말로 이 늦은 밤중에 적들이 나타난다고?”

어두운 밤에서도 눈부시게 빛나는 기둥을 보며 누군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잔뜩 긴장한 채 각자의 무기를 쥐고 있었다. 그들 중에서 헌터들도 있었고 군복을 차려입은 군인들도 있었다.

오늘 적들이 들이닥친다는 말을 들은 것이 조금 전이다. 그것이 모두가 어떻게 알았냐며 의아해하면서도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하기 위해서 무기를 쥐고 대기 중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우려했던 일이 일어나지 않아서 조금씩이지만 불평이 터져 나오려는 순간이었다.

“어, 어어? 저거 뭐야?”

누군가의 외침에 모두의 시선이 빛의 기둥 근처 어둠을 향했다.

그곳에서 공간이 비틀리며 문 하나가 생성되고 있었다.

“모, 모두 전투준비!”

게이트가 열리며 어둠 속에 스며든 정체불명의 무리가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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