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6
146화 차기 오버랭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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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안녕하세요오~”
한성주는 기어가는 목소리로 작게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가 너무 작은 나머지 마치 모기 날갯짓 소리와 착각할 정도였다.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이 모두가 다 인간을 초월한 각성자이기에 그 소리를 들었지 아마 일반인은 그녀가 말을 꺼냈는지도 몰랐을 것이다.
“어. 사부. 정말로 저 여자가 저희랑 같이 지낼 동문이 맞슴까?”
“사부요?”
“저희를 이렇게 모아서 가르치면 사부 아님까?”
“미즈호 씨가 그렇게 부르고 싶다면 그렇게 불러도 상관은 없습니다. 그리고 조금 전의 질문에 대답하자면 맞다고 말해주고 싶네요.”
“그렇슴까.”
미즈호는 말없이 한성주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모이자 히익! 소리를 내며 몸을 더욱 움츠렸다.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겁 많은 새끼 사슴 같았다. 다리까지 잘게 떠는 걸 보면 정말 갓 태어난 사슴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다.
“……저 사람이 정말로 신급 영령 계약자가 맞슴까?”
“…….”
미즈호가 못 미더워하는 것도 이해됐다. 왜냐하면, 현찬 또한 한성주의 모습을 보면 정말로 그녀가 신급 영령의 계약자이자, 인간을 초월한 각성자가 맞는지 의문이 들었으니까.
하지만 그럴 때마다 그녀의 등 뒤에 아른거리는 7명의 영체를 보면 그런 생각은 씻은 듯이 사라지고 만다.
[대단하네. 하나이자 일곱이고, 일곱이자 하나인 신들과 계약을 맺다니.]
헤르메스도 이런 경우는 처음 봤다면서 흥미 어린 시선으로 칠성신을 바라보았다.
<칠성신(七星神)>
정확히는 칠원성군(七元星君)이라 불리는 이들은 북두칠성을 신격으로 가진 한국의 토속 신이다. 각각 천추, 천성, 천기, 천권, 오형, 개양, 요광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들은 모두가 비슷하게 생긴 자매들이었다.
“원래 다 남자인 줄 알았는데.”
칠성신들에 대한 묘사는 각기 다르다. 현대에 와서는 전원 똑같이 생긴 7형제가 대부분이었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남녀가 3대4라는 경우도 있다. 더 파고들면 조선시대 소격서 기록에는 전원 머리를 푼 여자라고 했는데 저 모습을 보면 아마 그쪽이 가장 원류에 가까운 듯싶었다.
관복과 관모를 쓴 일곱의 여성은 자신의 계약자인 한성주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기존의 시선에 7개가 더 추가되자 발작하듯이 몸을 떨며 고개를 크게 웅크렸다. 이젠 자리에 쭈그려 앉기까지 했다. 그 모습이 마치 겁에 질려 몸을 둘둘 마는 공 벌레 같았다.
‘이거 참 곤란하네.’
설마 저렇게까지 소심한 성격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히키코모리라고 보고는 들었지만, 시선에 반응할 정도라면 너무 심각한 수준이 아닌가.
애초에 한성주를 영입한 것은 현찬이 아니었다.
나머지 다섯 명은 현찬이 영입했지만, 한성주만큼은 유일하게 다른 한 사람이 찾아내서 불러냈다.
“어? 다 모였네요? 약속 시각보다 더 일찍 왔는데.”
한성주를 직접 데려온 장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갑작스러운 남자의 등장에 다른 예비 오버랭크 헌터들은 잔뜩 긴장했다. 신과 계약을 맺으면서 극도로 발달한 그들의 기감으로도 남자의 등장을 채 알아차리지 못했으니까.
“김은혁 씨. 오랜만이에요.”
“네. 오랜만이네요.”
한국의 S랭크 헌터 김은혁. 영령 <봉이 김선달>의 계약자이자 협회에 유일하게 소속된 S랭크 헌터이기도 했다. 최근 완전하게 벌어진 <대통합> 이후로 그 또한 한차례 성장했는지 예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보내주신 보고서는 잘 봤습니다. 그런데, 한성주라는 소녀가 너무 생각 이상으로 상태가 안 좋아 보이는 거 같은데요.”
“하하. 저도 그거 때문에 좀 곤란하기는 하네요.”
김은혁이 멋쩍게 웃으면서 머리를 긁적였다. 때마침 고개를 푹 숙인 채 몸을 웅크렸던 한성주가 김은혁을 발견했다. 그녀는 마치 세계의 구원자라도 만난 듯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김은혁에게 달려들었다.
“은혁 오빠!”
그렇게 외치더니 김은혁의 품 안에 안기는 것이 아닌가?
“오빠?”
“오빠라고?”
“포옹까지?”
김은혁에게 여동생은 없다. 애초에 둘은 성씨부터 다르다. 그런데 한성주는 김은혁의 품 안에 안겼다. 마치 애인처럼.
김은혁의 나이가 몇 살이더라. 떠오르는 기억을 조합해보면 26살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반면 한성주는 몇 살이지? 이제 막 중학교를 졸업한 그녀의 나이는 17살이었다. 둘의 나이 차이는 9살. 심지어 한성주는 미성년자다.
“…….”
“아니요. 저기요. 강현찬 헌터님? 저를 그런 시선으로 보지 말아주실래요? 저희 그런 사이 아니거든요?”
“품 안에 안은 소녀부터 떼어내고 그런 말을 해야 설득력이 있지 않을까요?”
“아니! 잠깐만요! 진짜 그런 거 아니에요! 거기! 핸드폰 치워요! 경찰에 전화하지 마!”
김은혁의 지적에 현지가 머쓱하게 웃으며 스마트폰을 다시 집어넣었다. 아마 정말로 경찰서에 신고하려고 했던 것 같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헤르메스가 한마디 거들었다.
[에이. 고작 9살 차이 가지고 뭘 그래. 별거 아니구만.]
“…….”
방탕하기로는 지구상 모든 신화를 통틀어 최고봉을 찍는 그리스 신의 말이다. 현찬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김은혁은 가까스로 한성주를 떼어냈지만, 그녀는 뭐가 그렇게 불안한지 김은혁의 등 뒤에 숨어서 그에게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김은혁은 아무 사이도 아니라고 했지만, 그녀의 반응을 보면 아마 저쪽은 마음이 있는 것 같았다.
“어찌 됐든 자기소개를 먼저 하죠. 안녕하세요. 여러분.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는 협회 소속의 S랭크 헌터이자 앞으로 여러분들의 교육을 맡게 될 김은혁이라고 합니다. 계약한 영령은 특성상 비밀이니 양해해주시길.”
그렇게 나머지 5명의 자기소개가 끝나고 김은혁은 그들을 이끌어 커다란 연구소 같은 곳으로 안내했다.
“여기가 앞으로 여러분들이 지내실 곳입니다.”
“되게 넓네요. 6명의 사람을 가르치기에 지나친 게 아닐까 싶은데.”
현지는 저 큰 건물이 부담스럽다는 듯 중얼거렸다. 마치 거대한 엑스포를 연상케 하는 건물을 보면 천 명이 넘는 사람이 산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6명이 어떤 6명이냐에 따라서 다르죠. 이는 <세계연합>에서 전폭적인 지원을 통해 설립된 건물입니다. 당연히 모든 시설은 최신식으로 갖춰져 있으며 여러분들의 편안한 생활을 위해서 많은 것들이 있죠. 그냥 없는 것은 거의 없다고 봐도 좋아요.”
통칭 <영웅의 근원>
신급 영령의 계약자들만을 위한 교육원이라고 보면 되었다.
고작 6명을 가르치는데 너무 큰 게 아니냐고 하겠지만 그들은 아직 자신들이 계약을 맺은 존재가 누구인지 제대로 자각하지 못해서 그런 말을 한 것이다. 실제로 신급 영령의 계약자라면, 자신의 힘을 제대로 발휘하는 순간 보통 건물은 견뎌내지도 못한다.
“그러니 다시 한번 환영합니다. 세계를 지킬 주역의 일원이 된 것을.”
바깥의 모습을 보았으니 이제 안쪽을 둘러볼 차례였다. 김은혁은 이미 내부 구조를 다 알았기 때문에 현찬을 포함하여 나머지 6명을 이끄는데 망설임이 없었다.
김은혁이 가장 앞에 나서고 그의 등 뒤로 한성주가 매미처럼 찰싹 달라붙었다. 그리고 현찬과 나머지 다섯 명의 차기 오버랭크 헌터들이 뒤를 따랐다.
“오빠. 오빠는 바쁜 거 아니었어?”
넓고 긴 복도를 걸으며 여동생 현지가 물었다. 현찬은 어깨를 으쓱였다.
“그렇긴 한데 그래도 내가 직접 모은 사람들이 다니는 곳이니까 나도 한 번 정도는 견학해 둬야지. 무엇보다 우리를 후원하는 <세계연합>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로 높은 주가를 자랑하는 분들과 만남도 여기서 하기로 되어 있거든.”
“그런 자리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싫기는 하지. 귀찮고. 그럴 바에 차라리 몬스터들과 싸우는 게 훨씬 나아. 그런데 꼭 필요로 한 과정이라면 기분 내킬 때 몇 번 정도는 해 줄 수 있어. 후원자들이랑 만나서 대화 몇 마디 나누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고.”
“이얼~ 완전히 연예인 그 이상 다 됐는데?”
“큭큭. 연예인들도 이제 나한테는 안 되거든? 나중에 사인 필요하면 말해. 그렇다고 팔지 말고.”
“뭐래. 싸인 그런 거 팔아서 얻을 돈보다 나중에 내가 벌 돈이 더 많거든? 게다가 나도 이제 신의 계약자니까 남들에게 사인해 줄 입장이라고.”
“그래. 잘났다.”
“그럼. 누구 동생인데.”
현찬은 현지의 머리를 거칠게 헤집었다. 뒤에서 리네넷이 그 광경을 부럽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아누비스는 어딘가 불편한지 헛기침했다. 진 차이와 샤는 이런 거대한 건축물을 내부에서 보는 것이 신기한지 여기저기를 둘러보고 있었고 미즈호는 의외로 묵묵히 앞만 보고 걸었다.
“아. 여러분. 앞으로 여러분들을 가르칠 교관님들입니다.”
때마침 맞은편 복도에서 걸어오던 이한율과 황설영과 마주쳤다. 그녀들도 이쪽을 발견하고 똑바로 하고서 다가왔다. 의외였던 것은 이 둘과 함께 있는 다른 한 사람의 존재였다.
“김은주 씨?”
“어머. 강현찬 헌터님. 오랜만이에요. 그때 전투 이후로 처음이죠? 너무 반갑다~”
“아, 네.”
황룡 클랜의 마스터이자 대한민국에 몇 없다는 S랭크 헌터 김은주.
현찬은 그녀의 등장에 아주 약간이지만 놀랐다. 이한율이 자기 클랜장을 교관으로 한번 모시겠다고 했지만, 의례 그냥 하는 말인 줄 알았다. 정말로 자신의 클랜장을 그것도 5대 클랜의 클랜장을 데려올 줄이야.
“여기에 오신 이유는 혹시 교관 일을 맡으시려는 건가요?”
“맞아요~. 최근 할 일이 너무 없다 보니 이렇게 우리 귀여운 아가들 키우는 일이라도 해야죠.”
“에이. 언니. 할 일이 없기는 무슨. 할 일이 너무 많아서 오히려 이쪽이 재밌어 보인다고 도망치는 거잖아. 부클랜장 오빠가 눈이 뒤집혀서 뒷덜미를 잡던데.”
“어머~ 얘도 참. 남들이 오해하겠다. 얘.”
“끄아아아아아! 아파! 아파요! 언니! 잘못했어요!”
김은주는 그렇게 말하면서 이한율의 머리를 손바닥을 펼쳐서 꽉 쥐었는데 이한율은 아프다고 비명을 질렀다.
현찬은 참 재미있는 클랜이라며 어색하게 웃었다.
“아무튼, 저 뒤에 있는 아가들이 신의 계약자들이죠?”
“네. 맞습니다. 각자 어디 가서도 꿀리지 않는 신들과 계약을 맺었죠.”
“저도 보고서는 읽어 봤어요. 개인 프로필에 계약한 신에 관해서도 아주 잘 적혀있으니까요. 그렇다 해도 설마 이만한 신들이 있을 줄은 몰랐죠.”
<나타>, <가루다>, <아누비스>, <다케미카즈치>, <칠성신>, <아르테미스>
서로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각 신화에서 막대한 존재감을 내뿜는 자들이다.
이쯤 되면 이들을 가르치는 교관을 맡으려는 사람들조차 부담스러워서 거절하는 판국이다.
“아무튼, 잘 부탁드립니다.”
“어머. 어디 가시게요?”
“이쪽 책임자와 따로 만날 약속이 있어서요.”
“그렇다면 제가 괜히 붙들고 있었네요. 다음에 봐요~.”
“네. 전 이만 약속 때문에 가보겠습니다. 다음에 봐요.”
현찬은 모두와 인사를 나누며 떠났다. 이곳의 책임자와 만나기로 한 약속의 시간이 다가온 탓이었다.
“여긴가.”
긴 복도를 걷고 몇 개나 되는 문들을 지나쳐 현찬이 도착한 곳은 손님들을 접대할 때 쓰는 방이었다. 말이 방이지 어지간한 교실에 걸맞을 정도로 넓은 크기를 자랑했다. 현찬은 문을 두드린 후에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그곳에서 한 남자가 의자를 회전하며 현찬을 맞이해 주었다. 현찬과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청년이었다. 의자에 앉아 있었지만 키도 크다는 것을 확연히 알 수 있었고 얼굴도 연예인처럼 잘생겼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현찬과 악수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남자는 웃으며 말했다.
“주현창이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