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무한계약-145화 (145/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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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화 아포피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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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국 헬기가 하늘을 가로질렀다. 헬기가 향하는 곳은 조금 전까지 세상이 무너질 정도로 울리던 사막이었다. 싸움이 끝났는지 더는 굉음이 울리지 않았다. 그러나 이 기회를 놓칠 방송국이 아니었다.

‘이건 특종이야! 반드시 잡아야 해!’

‘이미 싸움은 끝났지만, 그 뒤에 있는 거라도 먼저 보도하면 대박이다!’

한국이나 이집트나 기자들이 특종에 목이 마른 것은 언제나 매한가지였다. 헬기 여러 대가 하늘을 가로지르며 도시를 건너 현찬이 아포피스와 싸우던 사막에 도달했다. 기자들은 헬기의 바람을 맞으며 사막을 주시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어지간한 일이 일어나도 티 나지 않을 사막 일부가 그야말로 폐허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로 뒤바뀌어 있었다. 일단 싸움이 일어난 장소에 모래가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거라고는 가문 논밭처럼 쩍쩍 갈라진 대지뿐이었다.

“여, 여러분. 보이십니까? 조금 전까지 싸움이 일어났던 흔적입니다. 사막 일부가 마치 지우기라도 한 듯이 사라졌습니다.”

모래는 거대한 틈새로 모두 흘러내렸는지 보이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 사방을 뒤덮었던 어둠도 사라졌고 세상이 떠나가라 울리던 충격도 자취를 감춘 뒤였다. 그야말로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요? 도심에 스핑크스 몬스터가 나타난 것도 그렇지만 먼 사막에서부터 몰려오던 거대한 어둠은 대체 무엇이었을까요? <대통합>이후로 세계는 계속 변한다고는 하지만 이것이 과연 그 대통합 때문에 벌어진 일일까요?”

기자의 외침을 뒤로하며 카메라가 싸움의 흔적을 화면에 담았다.

싸움터를 중심으로 약 반경 10km 이내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그 너머의 대지도 여파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성하다고 할 수 없었다.

현찬과 아포피스의 싸움은 천재지변을 방불케 했다. 그 결과만 놓고 봐도 재앙이라고 불리기 충분했다. 그러나 그 누구도 현찬이 나서서 아포피스를 쓰러뜨렸는지 알지 못했다. 애초에 아포피스라는 거대한 괴물이 등장했는지도 몰랐다.

사람들은 그저 두려움에 떨며 도망갔을 뿐이다. 그들이 본 것이라고는 아포피스가 다가오면서 뿌린 시꺼먼 어둠이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은 것은 엄청난 진동과 괴물의 외침이었다.

모든 시민은 세상의 종말이 왔다며 도망치기 바빴다.

싸움이 끝나고 남겨진 흔적만으로는 아무것도 파악할 수 없었다.

그저 인간의 인지를 넘어선 엄청난 존재들이 서로 붙었다는 것. 그들이 알 수 있는 것은 딱 그것뿐이었다.

[대단하구나.]

아누비스는 현찬이 만들어낸 결과물을 보며 나지막이 감탄했다. 리네넷 또한 아누비스의 보호 아래에서 그 풍경을 바라보았다. 사방에서 방송국 헬기들이 날아다니고 있었지만, 아누비스가 조종하는 모래에 의해서 보호받는 리네넷은 카메라에 잡히지 않았다.

“이게 정말 강현찬 헌터님이 한 일이야?”

리네넷은 세상의 때가 타지 않은 순수한 소녀다. 하지만 그녀도 나름 오래된 브라운관 TV를 통해서 바깥의 상황을 알 수 있었다. 특히나 TV에서 주로 방송해주는 프로그램 중에서는 헌터들이 몬스터와 싸우는 것도 있었다.

그녀도 헌터들의 사냥 장면을 많이 보았다. 자신과 상관없는 세계의 일이라고 생각하며 꽤 흥미롭게 봤던 기억이 있었다. 거기서 나오는 헌터들도 인간을 초월한 존재였기에 몬스터와 잘 싸웠다.

하지만 그들이 만들어낸 결과물은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아무리 그녀가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서 상식이 부족하다고 하더라도 기본적인 상식은 있었다.

개인이 몬스터와 싸우면서 이만한 여파를 만들어낼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렇다는 것은 그만큼 현찬이 말도 안 되는 존재라는 것을 증명했다.

“아. 여기 계셨네요.”

“꺅!”

갑자기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리네넷이 자리에서 펄쩍 뛰며 귀여운 비명을 내뱉었다. 고개를 돌리니 그곳에는 현찬이 처음 만났을 때와 같이 깔끔한 복장을 유지한 채 서 있었다. 마치 조금 전의 그 재해에 가까운 싸움은 자신과 전혀 연관이 없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어, 언제 오셨어요?”

“조금 전에요. 그보다 도시에 없어서 깜짝 놀랐어요. 혹시 다치시거나 하지는 않으셨죠?”

“네, 네. 괜찮아요. 위험한 상황에서는 아누가 다 도와줬거든요.”

리네넷은 해맑게 웃었다. 그녀의 등 뒤로 폐허와 같은 광경이 펼쳐져 있는데도 그녀의 미소는 어울리지 않게 화려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 순수함이 가득 담긴 웃음에 현찬은 어째서 아누비스나 되는 신이 그녀를 위해서 저렇게 행동하는지 그 마음을 잠시나마 알 수 있었다.

“그보다 괴물은 어떻게 된 건가요?”

“아. 그건 제가 잘 처리했습니다. 워낙 질긴 녀석이라서 좀 드잡이질을 했지만 큰 문제 없이 쫓아낼 수 있었어요.”

[큰 문제가 없다니. 저만한 광경을 만들어 놓고 그런 말이 나온단 말인가.]

아누비스의 목소리에는 어이없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 정도로 처리했으면 제대로 한 게 맞죠. 원래 더 큰 피해가 일어날 것을 여기서 그쳤잖아요?”

현찬이 아니었다면 사상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을지도 모른다. 아포피스는 오버랭크 헌터를 제외하면 누구도 막지 못할 재앙이었다. 만약에 이 자리에 현찬이 없었다면 아포피스는 자신의 사명을 다할 때까지 파괴를 일삼았으리라.

물론 시간만 끈다면 아포피스는 알아서 자멸했을 것이다. 그러나 녀석이 자신의 힘을 견디지 못해 죽어 나가는 동안에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고 얼마나 큰 물적 피해를 낳을지는 상상조차 할 수 없으리라.

아누비스도 그 사실을 알기 때문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해도 대단하구나. 아무리 본신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절대악 아포피스를 쓰러뜨리다니. 아무리 그것이 지닌 힘이 일부라고 하더라도 인간이 감히 상대할 수 있는 것이 아닐 텐데.]

“저 혼자만의 힘으로 이긴 게 아닙니다.”

현찬은 언제나 혼자서 싸우지 않는다. 그에게는 함께 싸워주는 영령이 있어서 그 누구와 싸우더라도 두렵지 않았다.

그 자신감의 근간은 결국 함께 하는 영령들을 향한 믿음과 신뢰였다. 아누비스는 현찬의 맑은 눈동자를 들여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구나. 그대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필시 이쪽은 큰 피해를 보았을 테니까. 씻을 수 없는 빚을 지었어.]

“빚이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어차피 앞으로 함께 지낼 동료니까요.”

[……그래. 리네넷을 잘 부탁한다. 아직 세상에 대해서 잘 모르는 아이니.]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누비스는 믿겠다고 재차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내 여전히 걱정되는 마음만큼은 어떻게 할 수 없는지 현찬에게 조용히 다가가 귓가에 속삭였다.

[리네넷은 상당히 입맛이 까다롭다. 아무거나 잘 먹을 거 같으면서도 단 것에는 사족을 못 쓰니까 혹시나 말을 듣지 않는다면 사탕 같은 거로 협상을 시도하는 걸 추천한다. 그렇다고 너무 많이 먹이면 이가 썩으니까 적당히 하고 자기 전에 양치질은 꼭 시키도록. 잠은 반드시 10시 이전에 자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한창 성장기의 아이에게 영향을 줄 수 있으니까. 특히 평소에 껴안고 자는 인형이 있는데 그게 없으면 자칫 울 수 있으니 주의를…….]

“아누! 내가 아직도 애야?!”

귓속말한다고 했지만 리네넷에게 전부 들렸다. 리네넷이 폭발하고 아누비스는 그런 리네넷을 진정시키느라 두 손을 흔들며 필사적으로 변명을 시작했다. 현찬은 그 광경을 보며 피식 웃었다.

“음?”

그러다 현찬은 다른 방향으로 시선을 던졌다.

[무슨 일이야?]

“중국 쪽으로 보냈던 분신에 무슨 일이 생겼어.”

잠시 시간이 지나자 중국으로 보냈던 분신이 완전히 사라져 현찬에게 되돌아왔다. 현찬은 분신을 통해 알아낸 정보를 확인하더니 이내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이거 참.”

분신이 보내준 마지막 기억 속에서 얼굴을 딱딱하게 굳힌 채 손오공을 노려보는 <나타>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였다.

&

[이 멍청한 원숭이 같으니라고! 오랜만에 보면서 한다는 짓이 감히 나를 속여 먹이려고 들어?!]

나타는 현찬의 분신을 없애고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계속 씩씩거렸다. 진 차이는 당혹스러워하며 나타를 진정시키려고 애썼다.

“그, 그래도 일부러 그렇게 나쁜 마음은 먹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아니. 너는 모른다. 녀석이 얼마나 장난기가 가득한지. 심지어 천계에서도 이상한 친구들을 사귀어서 어찌나 온갖 장난을 저질렀는지, 겪어보지 못하면 이런 말도 안 나올 거다.]

“그, 그런가요.”

진 차이는 그렇게 말했지만, 그는 나타와 손오공의 관계에 관해서 나름 빠삭하게 알았다. 영령들에 대해서 열심히 공부한 그는 특히나 중국 영령들에 대해서는 지금 당장이라도 역사를 줄줄 읊을 수 있을 정도였다.

다만 그것을 직접 지적하지 않는 것은 진 차이의 소심한 성격의 탓도 있지만, 저렇게 불평을 토해내는 타나가 손오공을 진심으로 싫어하는 기색은 비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마 겉으로는 저렇게 투덜거려도 속으로는 손오공을 친구처럼 여길 것이다.

그들이 비록 과거에 싸웠다고 하지만 그 이후로 함께 손을 잡고 적과 싸운 동료였으니까.

[계약자여. 움직이자.]

“네, 네? 어디로요?”

[어디기는 어디겠나. 당연히 강현찬이라는 인물이 우리를 부르는 곳으로 가야지.]

나타의 말에 진 차이는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비록 분신이라고는 하지만 갑자기 현찬이 자신의 앞에 나타났을 때 얼마나 놀랐던가. 세계에서 단 4명밖에 없는 오버랭크 헌터 중 하나이자 헤르메스의 계약자인 현찬이다. 진 차이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헌터가 알렉세이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헌터들을 싫어하는 것도 아니었다.

나타 때문에 분신이 사라져서 조금 아쉬운 마음이 없지 않아 있었는데 다시 그를 만나러 갈 생각을 하니 너무 기뻤다.

무엇보다 그가 자신에게 건넨 제안은 진 차이의 기분이 하늘을 뚫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당신은 신의 계약자입니다. 다른 신의 계약자들과 함께 세계를 구해보지 않겠습니까?’

그가 꿈에만 그리던 일이 드디어 현실로 다가왔다.

진 차이는 이번만큼은 망설이지 않기로 다짐했다. 이 기회를 놓치면 그는 평생을 후회하며 살 것이 분명했다. 나약한 자신에게 질려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이걸로 족했다.

이젠 아니다.

‘가자. 한국으로.’

그러기 전에 일단 부모님과 이야기를 나눠야 했다.

&

“여러분. 잘 오셨습니다.”

현찬은 자신의 앞에 일렬로 서 있는 사람들을 보며 부드럽게 웃어주었다. 그 온화한 분위기 덕분인지 잔뜩 긴장한 사람들은 어느 정도 긴장감을 풀 수 있었다.

<나타>의 계약자 진 차이.

<가루다>의 계약자 아흐메드 알리 샤.

<다케미카즈치>의 계약자 엔도 미즈호.

<아누비스>의 계약자 리네넷.

<아르테미스>의 계약자 강현지.

전부 다 현찬과 안면 있는 사람들이었다.

“여러분들은 총 6명이 함께 팀을 맺어서 훈련을 받게 될 겁니다. 그렇다고 너무 두려워하지 마시길. 훈련은 기존의 헌터들과 다르게 받게 될 테니까요. 아무렴 신급 영령의 계약자들이라면 거기에 걸맞은 다른 방식의 트레이닝이 필요한 법이죠.”

그들이 지낼 곳은 어떻게 보면 당연히 한국이었다. 현찬이 중심이 돼서 이 사람들을 이끌었으니 머무는 장소도 한국이 된 것이다. 그리고 한국은 세계에서 헌터에 관한 인프라가 손에 꼽을 정도로 좋은 국가이기도 했다. 다른 나라에서도 딱히 불만을 가질 수도 없었다.

그때 엔도 미즈호가 손을 번쩍 들었다.

“네. 미즈호 씨. 질문 있으면 하세요.”

“넵! 조금 전 강현찬 헌터님은 저희가 6명이라고 했슴다.”

“……했슴다?”

옆에서 현찬의 여동생 현지가 미즈호의 말투에 미묘한 시선을 던졌지만, 엔도 미즈호는 그것을 신경 쓰지 않고 질문을 이었다.

“저희는 지금 다섯 명인데 나머지 한 명은 어디에 있는 검까?”

“아. 그걸 말하는 것을 깜빡했네요. 때마침 저기 오고 있군요.”

멀리서부터 한 사람이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자그마한 체구에 앞머리도 길게 길러서 눈을 가린 소녀였다. 그녀는 뭐가 그렇게 시종일관 불안한지 몸을 잔뜩 움츠린 채 느릿느릿한 발걸음으로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저 사람이 여러분과 함께할 마지막 멤버입니다.”

그녀의 이름은 한성주.

그녀 또한 신급 영령의 계약자이지만 다른 영령들과는 조금 다른 면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그녀의 뒤에 모습을 드러내는 7개의 실루엣 때문이었다.

방안에 틀어박힌 히키코모리 소녀 한성주.

그녀는 한국 신화의 <칠성신>과 계약 맺은 각성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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