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4
144화 아포피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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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워어어어!
아포피스가 괴성을 내지를 때마다 주변의 모래가 들썩였고 지천이 흔들렸다. 그리고 너무나도 거대한 덩치는 단순히 소리를 내지르는 것만으로도 세상에 영향을 주었다. 이것은 현찬도 지금까지 느껴본 적이 없을 정도로 강력한 힘이었다.
‘지닌 힘만 따져도 어지간한 난제 이상이로군.’
덩치와 맷집, 힘도 그렇지만 저 권능은 또 어떻단 말인가? 아포피스가 사방으로 흩뿌리는 어둠은 녀석의 악의(惡意)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사막에서 힘들게 자라난 식물은 어둠에 닿자마자 순식간에 말라 비틀어졌다. 그러다 이내 가루처럼 흩어졌다. 사막을 거닐던 자그마한 도마뱀도 어둠에 닿자마자 순식간에 근육과 살이 부패해 사라져 뼈만 남겼다. 그 뼈도 오래 가지 못해 가루가 되었다.
저것은 단순한 어둠이 아닌 아포피스가 지닌 일종의 저주이자 권능이었다.
어지간한 생명체는 닿는 순간 생기를 빨려 죽음에 이른다. 과연 사자들을 집어삼켜 뱃속에 가두는 파괴의 뱀다웠다.
그 어둠 속에서 현찬은 찬란한 황금빛을 내뿜으며 아포피스에게 공격을 퍼부었다.
여의는 휘둘러질 때마다 커지고 작아지기를 반복했다. 아포피스의 몸통에 거대한 여의금고봉이 꽂히면 아포피스가 몸을 뒤틀며 괴로워했다. 아무리 녀석의 덩치가 크다고 하더라도, 여의봉 또한 신기라고 할 수 있는 것이었다. 당연히 아포피스에게도 충분히 타격을 주었다.
[그렇다 해도 너무 안 쓰러지는걸?]
“일단 덩치에 걸맞게 맷집이 너무 좋아.”
솔직히 일방적인 공격을 가하는 건 이쪽이었지만 점점 지쳐가는 것도 이쪽이었다. 아포피스는 덩치도 너무 큰 데다가 맷집도 상상을 초월해서 거대화한 여의봉의 ‘봉찜질’로도 치명타를 가할 수 없었다.
오히려 맞으면 맞을수록, 고통스러워하면 고통스러워할수록 아포피스는 더욱 강렬한 분노를 토해냈다.
“원전에 불사에 가까운 능력을 지녔다고 하더니 그 말이 사실이었나 보네.”
아포피스는 불사에 가까운 괴물이었다. 그렇기에 태양신 라가 거대한 함선을 타고 녀석을 공격해도 죽지 않았다. 심지어 다른 신들과 합공을 해서 아포피스를 도망치게 했지 죽이지 못했다.
아무리 본신이 아니라 하더라도 그 힘과 권능의 일부를 지니고 있다면 당연히 불사의 권능도 일부 지녔을 터. 어지간한 공격으로는 제대로 된 타격조차 줄 수 없을 것이다. 그나마 여의봉이니 녀석에게 고통을 안겨 주는 것이다.
쿠와아아아!
아포피스는 현찬을 노려보았다. 녀석의 뱀 눈은 현찬을 향한 살의를 그대로 품고 있었다.
황금빛으로 타오르는 현찬의 모습은 아포피스의 심기를 충분히 건드렸다.
저 황금빛.
자신에게 고통을 주는 저 작은 존재.
그것은 아포피스에게 떠올리기 싫은 기억을 상기시키게 만들었다.
<태양신 라>
지닌 이성이라고는 짐승의 그것만도 못한 아포피스가 가장 증오하는 존재. 그리고 아포피스의 최대 천적이기도 한 존재였다. 아직도 그 과거를 잊을 수 없었다. 자신의 몸을 향해 쏟아져 내리는 햇빛을. 비늘을 녹이고 피부를 태우던 녀석의 일격을.
라도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지금의 현찬처럼.
“이놈. 조금 전보다 더 화가 났는데. 왜 이래?”
[흠. 글쎄. 아무래도 좋지 않은 기억을 건드린 것 같은데.]
현찬은 황급히 근두운을 이용해 자리에서 벗어났다. 조금 전까지 현찬이 머물던 허공에 아포피스의 거대한 아가리가 들이닥쳤다. 저것에 물리는 순간, 아니 물리기 이전에 입안에 들어가는 순간 현찬은 벗어나지 못하고 뱃속에서 소화될 것이다.
쿠르르릉!
아포피스의 몸이 움직이자 다시 지진이 일어났다. 지평선 너머로부터 거대한 모래바람을 일으키며 무언가가 빠르게 다가왔다. 현찬이 눈을 부릅떴다. 그것은 대기를 가르고 현찬을 향해 채찍처럼 휘둘러졌다.
“이런!”
현찬은 미리 녀석의 공격을 읽어내고 황급히 피했지만, 그 뒤를 이은 후폭풍은 막아낼 수 없었다. 흔들리는 몸을 가까스로 부여잡으며 현찬은 근두운을 타고 빠르게 자리에서 벗어났다.
방금 공격이 대체 뭔가 했더니 아포피스의 거대한 꼬리였다. 엄청나게 멀리 있던 녀석의 꼬리가 순식간에 이쪽으로 다가와 그대로 현찬을 노린 것이었다.
캬아아악!
아포피스가 입을 벌리자 거기에서 강렬한 어둠이 토해졌다. 말이 어둠이지 진흙처럼 끈적거리는 그것은 그야말로 농도 짙은 독에 가까웠다. 닿기만 해도 모래나 바위마저 녹여버리는 극독을 보며 현찬은 여의봉을 정면에 내밀며 그것을 풍차처럼 회전시켰다.
콰가가가각!
여의봉의 방어를 뚫지 못한 거대한 독무는 현찬을 중심으로 좌우로 쩍 갈라졌다. 아포피스는 그 틈을 타서 현찬을 향해 입을 쩍 벌리며 달려들었다. 반응이 채 늦은 현찬의 위로 검은 그림자가 드리우고 그대로 아포피스의 독니가 현찬의 몸을 꿰뚫었다.
손오공의 단단한 육신도, 그 위에 걸치고 있는 황금쇄자갑도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뱀의 독니는 그 이상으로 강력했으니까.
하지만 아포피스는 무언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작은 존재라 하더라도 물었다면 응당 그 느낌이 있어야 하는데 별다른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순간 아포피스의 머리를 무언가 강타했고 아포피스의 대가리가 지면에 처박혔다. 울리는 머리를 흔들며 아포피스가 눈동자를 굴렸을 때 녀석이 발견한 것은, 수백 명으로 늘어난 현찬의 모습이었다.
하나가 아닌 수백 명의 현찬. 게다가 전부 다 근두운을 타고서 거대해진 여의봉을 들고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아포피스가 놀라서 눈을 부릅뜬 순간 수백 개의 여의봉이 동시에 아포피스의 전신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쿠구구구궁!
하나하나가 거의 고층빌딩에 맞먹는 여의봉이 동시에 수백 개가 휘둘러지는 것은 장관이었다. 충격을 이기지 못해 지면이 붕괴했고 모래 먼지가 수백 미터까지 치솟아 올랐다. 멀리서 본다면 그야말로 거대한 분수처럼 느껴질 것이다.
아포피스는 두들겨 맞는 와중에도 꼬리를 휘두르며 거칠게 발악했다. 몸길이만 수 킬로미터나 되는 거대한 뱀의 꼬리는 그 존재 자체만으로 무시무시한 흉기였다. 현찬의 일부 분신은 그 꼬리에 휘말려 다시 머리털로 되돌아갔다.
그러나 아직 남은 분신은 아포피스를 향해 가하는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아무리 튼튼한 아포피스라도 수백 명의 분신이 동시에 가하는 공격을 견뎌낼 수 없었다. 검은 비늘이 산산이 조각나서 부서지고, 피부가 찢어지고 검은 피가 터져 나왔다.
크와아아아!
아무리 아포피스라 할지라도 이 상황에서 위기감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주변으로 흩뿌린 어둠은 모든 생명체에게 영향을 주었지만, 현찬 정도 강자에게는 의미가 없었다. 아포피스는 결국 자신이 흩뿌린 모든 어둠을 회수하기에 이르렀다.
이 어둠 자체가 아포피스의 권능이자 힘이다. 이것을 회수했다는 것은, 지금 지닌 자신의 모든 힘을 다해서 현찬과 싸우겠다는 소리였다.
어둠은 스멀스멀 움직이며 아포피스의 몸으로 돌아왔다. 그것은 이내 아포피스의 다친 상처로 몰리더니 새로운 비늘로 바뀌었다. 이 전 현찬이 상처를 입혔을 때보다도 더 강하고 더 튼튼한 비늘로.
쿠워어어어어!
아포피스가 고함을 내질렀다. 검은 파형이 사방으로 몰아치며 퍼져나갔고 그것은 현찬의 분신들을 일거에 제거했다. 본체인 현찬은 뒤로 살짝 물러나며 아포피스를 바라보았다. 녀석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이거 참. 아무래도 전력을 다할 생각이 만반인 거 같은데?]
“그렇게 보여?”
[응? 다른 게 있어?]
현찬은 아포피스의 모습을 유심히 살폈다. 녀석은 지금까지 보인 적 없는 엄청난 힘을 몸에 담으며 현찬을 죽이려고 하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위험한 순간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현찬은 다르게 느꼈다.
“글쎄. 내가 보기에는 지금 녀석은 오히려 한계에 봉착한 거 같거든.”
[뭐? 그게 정말이야?]
“녀석은 여기에 나타난 것만으로도 실시간으로 계속 세계의 영향을 받고 있어. 단순히 거기에 그치지 않고 권능을 사용하고 몸을 움직이는 것 하나하나가 아포피스에게 큰 손해지.”
심지어 그 상태에서 현찬에게 무자비하게 공격당하기까지 했다.
저것은 아포피스의 본신이 아니다. 아포피스가 지닌 힘 일부를 완전히 가져온 분신체이기 때문에 세계의 영향을 받을수록 더욱 약해지는 것이었다.
“아마 녀석은 이 이상으로 힘을 다루고 육체를 유지하는 데 한계가 찾아왔을 거야. 원래부터 큰 손해를 부담하고 내려왔는데 거기서 더 큰 손해를 얻게 됐으니 당연히 머물 수 있는 시간도 더 짧아졌겠지.”
지금 보이는 아포피스의 행동은 최후의 발악이다.
자신이 지금 가지고 있는 모든 힘을 쏟아부어서라도 현찬을 죽이려는 것이다.
“처음부터 목적은 나였던 것 같고…… 아무튼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귀찮게 됐어.”
여기서 뒤로 물러나 시간을 끈다면 아포피스는 당장에라도 도시로 들이닥쳐 사람들을 죽일 것이다. 그렇다면 현찬은 아포피스의 힘이 다할 때까지 녀석과 싸워야 한다는 소리였다.
“씁. 그나마 녀석이 본신이 아니라서 다행이네. 심지어 분신이라고 하더라도 엄청나게 너프한 버전이라서 이렇게 싸울 수 있었던 거겠지.”
[헹! 녀석의 본신이 왔어도 내가 본신이었다면 이야기는 달랐을걸!]
“알아. 하지만 아직 나는 미숙해서 신급 본신을 불러낼 정도는 못 돼.”
물론 지구상에서 현찬보다 더 영령의 힘을 잘 끌어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만 아무리 현찬이 강하다 하더라도 주신급 신의 힘을 완전히 사용하는 것은 태생적으로 무리가 있었다.
“뭐, 결국에는 서로 양보하고 양보해서 제자리 싸움이라는 소리지.”
그리고 저쪽에서 지닌 모든 것을 쏟아부어서 현찬을 죽이려고 한다.
그렇다면 이쪽 또한 그에 같은 선상에서 응해줘야 하지 않겠는가.
‘내가 어느 정도까지 성장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으니까.’
아포피스는 그런 면에서 현찬에게 매우 좋은 상대였다. 어디까지 성장했는지, 얼마나 강해졌는지 확인하는데 최적화한 괴물이니까.
“간다.”
현찬의 몸이 황금빛 불로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순식간에 현찬의 몸을 집어삼키더니 그 크기를 키워나갔다. 불덩어리는 커지고 커지더니 이내 높이만 500m에 도달할 정도가 되었다. 그리고 그 불꽃이 천천히 사그라졌을 때 그 안쪽에 거대한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크르르르!
3개의 머리. 6개의 팔. 그리고 손마다 쥔 6개의 거대한 황금빛 봉. 온몸에 자라난 황금빛 털과 그 위를 덮은 거대한 갑옷.
손오공이 선보일 수 있는 최강의 변신술 <삼두육비>
전신 <나타>와 과거 <우마왕>을 상대할 때 보였던 손오공이 가진 최강의 절기였다.
현찬은 그 상태로 변신해서 아포피스와 눈을 마주쳤다.
“덤벼”
[덤벼.]
현찬과 손오공의 목소리가 겹쳤다.
그리고 아포피스와 현찬은 서로 누구 할 것 없이 동시에 달려들었다. 현찬은 고개를 숙여 아포피스의 입을 피한 후에 6개의 여의봉을 동시에 휘둘러 녀석의 턱을 올려 쳤다.
콰아아아앙!
거대한 굉음이 울려 퍼지며 아포피스의 거대한 몸이 옆으로 튕겨 나갔다. 현찬은 녀석의 뒤를 쫓았다. 현찬이 발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땅이 크게 울렸다. 그 상태로 현찬은 높게 점프해서 아포피스의 목 위로 올라타 녀석의 머리를 무차별로 가격했다.
땅이 흔들리고 하늘이 울렸다. 두 거대 괴수의 싸움은 주변 일대를 순식간에 폐허로 만들었다.
멀리서 그 광경을 권능을 통해 지켜보던 아누비스는 영체인데도 식은땀이 흐른다는 착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