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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무한계약-142화 (142/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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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화 준동하는 적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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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이 비명을 내지르며 도로 위를 뛰어다녔다. 자동차가 멈추고 사람들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모습은 놀란 개미 떼가 움직이는 것 같았다. 현찬을 따라 밖으로 나온 리네넷은 그 광경에 말을 잊었다.

리네넷도 안다. 세상에는 몬스터가 있고 게이트에서 쏟아져 나오는 그 괴물들에 의해서 사람들이 다치거나 목숨을 잃는다는 것을.

그러나 그녀는 직접 몬스터를 마주한 적이 없었다. 몬스터를 본 적이 없으니 당연히 몬스터에게 죽은 사람들도 본 적이 없었다.

빈민가에서 살아왔지만, 그녀는 놀라울 정도로 평화롭게 지내왔다.

그런 리네넷에게 지금 펼쳐진 광경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충격적이었다.

몬스터의 등장에 놀라서 도망치고 인파에 파묻혀 서로 부딪치고 밀치는 인간의 모습이.

그녀가 지금까지 알고 지내왔던 것과 너무나도 달랐다.

“리네넷 씨. 진정하세요.”

세상의 모든 것이 정지하고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듯하던 리네넷에게 현찬의 목소리만큼은 확실하게 들렸다. 현찬의 부드러운 음색은 마법처럼 그녀의 몸에 스며들었고 리네넷은 멈췄던 숨을 몰아쉬었다.

“하아. 하아. 이, 이건…….”

“몬스터입니다. 사람들이 혼란스러워서 도망치는 것도 당연하죠.”

대체 어쩌다가 이런 대도시 도심에서 몬스터가 나타난 건지는 모르겠지만, 여기에 무언가 인위적인 요소가 들어갔다는 것은 확신할 수 있었다. 이것은 지금까지 다양한 전장을 넘어오며 생긴 직감이었다.

“리네넷 씨는 뒤로 물러나 계세요. 여기는 제가 정리할 테니까요.”

“위, 위험해요!”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 입으로 말하기는 조금 그렇지만 저 강하거든요.”

현찬은 그렇게 말하며 여의봉을 쥐지 않은 다른 손에 카두케오스 지팡이를 꺼내 쥐었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지팡이를 허공에 가볍게 휘젓자 혼란스럽게 엉킨 사람들 움직임이 멈추었다.

그들은 마치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한 듯이 줄 서서 빠른 속도로 자리에서 벗어났다.

그 기괴할 정도로 질서정연한 모습에 상황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던 리네넷도 놀라서 입을 헤 벌렸다.

“이,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헤르메스의 능력이다. 녀석이 가지고 있는 두 마리 뱀의 지팡이는 상대방을 현혹하고 최면을 걸 수 있지. 그렇다 쳐도 이렇게나 자연스럽고 광범위하게 최면을 걸다니. 이쯤 되면 저것을 다루는 저 청년의 능력이 대단하게 느껴지는구나.]

“그, 그렇게 대단한 거야?”

[대단하고말고. 애초에 힘을 억누르고 숨어 지내던 우리를 찾아낸 남자다. 무려 둘이나 되는 신과 계약 맺었고 거기에 더해서 그 화과산 원숭이까지 있으니 어찌 대단하지 않을 수 있겠어.]

아누비스의 시선은 현찬의 등 뒤에 뚜렷하게 고정되어있었다.

[그러니 보아라.]

사람들이 전부 인적을 감추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제 현찬에게 걸림돌이 되는 것은 없었다.

[네가 앞으로 함께 할 동료의 강함을.]

몬스터가 등장했다.

커다란 날개를 펼치고 하늘을 날아다니던 녀석들은 지상으로 내려와 현찬을 포위했다.

기괴한 인간의 얼굴에 사자의 몸통, 새의 날개를 가진 생명체.

<스핑크스>

수수께끼를 던져 그것을 맞히지 못하는 사람을 잡아먹는 신화 속 괴물. 한 마리가 아닌 무려 십여 마리나 등장해 현찬을 노려보고 있었다. 하나하나가 4등급 몬스터에 필적하는 녀석들은 A랭크 헌터들도 쉽게 사냥하지 못하는 놈들이었다.

하지만 현찬은 달랐다.

“스핑크스라니. 누가 나를 노리고 이런 녀석들을 보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지금보다 훨씬 약했던 시절에도 영웅급 영령의 힘을 빌려서 스핑크스에 필적하는 몬스터들을 쓰러뜨렸었다. 그때보다 훨씬 더 강해진 상태고 지금은 무려 <제천대성>의 힘을 빌렸다.

녀석들이 아무리 날고 기어도 현찬의 손바닥 안이라는 소리였다.

“뭐해? 덤벼. 나 보러 온 거 아니었어?”

크아아!

스핑크스들이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괴성을 토해냈다. 인간의 얼굴을 지녔지만, 녀석들의 입은 뱀의 그것처럼 쭈욱 찢어지듯 벌어졌다. 그 징그러운 모습은 상대의 전의를 상실하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어우, 징그러워.”

현찬은 겁먹지 않고 가장 먼저 달려드는 스핑크스를 향해 여의봉을 휘둘렀다. 쿵! 스핑크스의 머리가 터져나가며 몸이 콘크리트 바닥에 처박혔다. 스핑크스의 사체를 중심으로 운석이라도 떨어진 것처럼 크레이터가 생겨났다.

주위가 일순 진동했다. 자동차도 가로등도 건물 유리창도 전부 진동했다.

가볍게 봉을 휘둘렀을 뿐인데, 그 위력에 다른 스핑크스들이 당황했다. 몬스터라고 해도 공포라는 감정은 있다. 그래서 이렇게 압도적인 상대에게 전의를 불태우며 이성을 잃고 달려들지는 않았다.

키이이이!

스핑크스들은 현찬을 향해 이를 드러내며 위협을 가했지만, 처음 등장과는 다르게 어딘가 패기가 없었다. 현찬은 이미 전의를 상실한 몬스터를 상대로 시간을 많이 투자하고 싶지 않았다. 그의 오른손이 잔상을 남기며 사라지는가 싶더니, 주위에 있던 스핑크스들 머리가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게 먹히기라도 한 것처럼 사라졌다.

“와아아아아!”

“대단해! 저 괴물들을 순식간에 쓰러뜨렸어!”

고층 건물에서 그 상황을 내려다보던 사람들은 모두 환호했다. 그러나 정작 사람들의 칭송을 받는 현찬은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스핑크스들은 전부 사라졌지만, 그의 기감을 쿡쿡 찌르는 이 기분 나쁜 감각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오오오오오오!!

그 순간 천지가 뒤흔들리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 충격이 어찌나 큰지 주변 건물의 유리들이 깨지면서 바닥에 비처럼 쏟아졌다. 리네넷이 비명을 지르며 고개를 숙였지만, 유리 조각은 리네넷 주변에 닿기도 전에 모래로 변해서 그녀에게 닿지 않고 다른 곳으로 날아갔다.

‘유리를 모래로 바꾸다니. 아누비스의 권능 중 하나인가? 아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조금 전 그 소리는…… 어떤 괴물인 거야.’

게다가 아누비스의 반응을 보아하니 저쪽은 무언가 아는 눈치였다.

“아누비스 님. 이 상황을 보니까 저 괴물에 관해서 아는 것 같은데, 방금 그 소리는 대체 누구 것이죠?”

[나도 확신하지는 못하지만, 아마 우리 신화의 녀석으로 추정된다.]

“이집트 신화에 이만한 괴물이 있을 리가…….”

현찬이 느낀 녀석의 힘의 크기만 하더라도 만만치 않았다. 게다가 소리의 근원지는 카이로에서 수십 킬로미터나 떨어진 장소다. 거기서 외친 소리가 공기를 타고 도시의 유리를 깬 것이다.

[아니. 단 하나, 존재한다.]

아누비스의 시선을 향한 곳을 따라 현찬의 눈동자 또한 그곳을 좇았다. 저 멀리, 도시 바깥의 사막 너머에서 푸른 하늘이 검게 물들고 있었다.

<대통합>이 이루어지는 며칠이 지나고서 지구는 완전히 예전의 푸른 하늘을 되찾았다. 그러나 지금 보이는 저 하늘은, <대통합> 때와 비슷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그것과는 본질이 달랐다.

<대통합>의 하늘은 푸른 하늘이 사라지고 우주의 다양한 천체의 모습을 비춰줬더라면 지금 저 하늘은 어떠한 별도 보이지 않는 순수한 칠흑 그 자체였다.

우주 너머 그 어떠한 별빛조차 보이지 않는 마치 끝이 없는 심연을 그대로 가져다 옮겨놓은 것 같은 검은 하늘. 보기만 해도 빨려들 것 같은 불안감을 조성하는 하늘은 그 세력을 넓히고 있었다.

정확히는, 저 하늘을 검게 물들이는 존재가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지닌 권능을 사용한 것도 아니다. 그저 존재 자체가 하늘에 영향을 줄 정도로 강한 것이다. 그런 녀석이 지금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환호하던 시민들도 사색이 되어 입을 다물었다. 저 멀리서부터 다가오는 검은 하늘 아래는 그야말로 순수한 어둠만이 가득했다.

현찬도 그제야 상대가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아, 설마.”

[그 설마가 맞을 거다. 녀석은 우리 신화 속에서 유일하게 존재하는 절대 악이니까.]

“저 괴물이 왜 하필 하계에…….”

그렇게 말한 현찬은 자신의 말이 얼마나 의미가 없는 것인지 깨달았다.

신화 속 괴물에게 이성적인 생각을 바라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행동이었다. 녀석들은 그저 파괴와 살육을 좋아할 뿐이다. 절대 악이란 애초에 그런 존재였다. 그들에게 행동의 동기를 바라는 것이야말로 가장 멍청한 짓이었다.

놈들은 그저 세계를 파괴하는 것을 바랄 뿐이다.

그것이 자신의 몸을 깎아내는 것이라 할지라도.

놈들은 애초에 그런 녀석들이었으니까.

“그렇다 해도 아포피스는 너무하잖아.”

<아포피스(Apophis)>

이집트 신화에 나오는 거대한 괴물.

태양신 ‘라’와 대적하는 유일무이한 악이자, 세상의 빛을 집어삼켜 어둠으로 물들이는 거대한 뱀이다.

존재 자체만으로 주변에 어둠을 몰고 오는 무시무시한 힘은 현찬마저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세상이 바뀌면서 하계에 내려오는 것은 신뿐만이 아니지.]

그리고 영령들 세계에서는 선한 신만 있는 것이 아니다.

역사와 설화, 신화 속에는 신에 필적하는 괴물들도 있었고 기본적인 성향 자체가 악에 치우친 악신들도 있었다.

<대통합>으로 영령 세계 경계가 허물어졌다고 해서 마냥 좋은 일만은 아니라는 소리였다.

<아포피스> 같은 괴물도 마음만 먹으면 하계에 영향을 줄 수 있으니까.

[그렇다 해도 저 먹는 것밖에 모르는 뱀이 내려올 줄은 몰랐어. 계약자도 구하지 않고 분신을 하계에 내려보내려면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할 텐데 말이야.]

그 <감은장아기>도 힘을 담은 분신을 하계로 보내는데 엄청난 출혈을 각오했다. 심지어 다른 신들의 도움까지 있어서 겨우 내려올 수 있었다. 아무리 그때보다 지금이 더 경계가 허술해졌다고 하더라도 <아포피스> 혼자서 하계로 내려올 수는 없는 일이었다.

“어쩌면, 이 일을 주도하는 흑막이 있다는 소리겠죠.”

생각해보면 타이밍이 참 공교롭다.

현찬이 딱 <아누비스>의 계약자인 리네넷과 만나는 이 시간 이 장소를 노리고 등장한 스핑크스들과 하계로 직접 강림한 <아포피스>. 심지어 현찬의 분신이 있는 다른 장소가 아닌, 본체를 제대로 노렸다.

우연이라고 치기에는 너무나도 모든 것들이 딱딱 맞아떨어진다.

[아. 이거 귀찮게 됐는데.]

[우리들의 권능을 더 무리 없이 쓰게 됐다고 해서 마냥 좋아할 일은 아니라는 거로구나.]

“마냥 좋은 일만 있으라는 법은 없겠지.”

현찬은 어쩔 수 없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나의 죽음을 바라는 녀석들이 있는 것도 참 귀찮은 일이야.”

여의봉을 어깨에 걸치며 현찬은 휘파람을 불었다. 그러자 근두운이 현찬의 앞에 나타났다. 현찬은 그 위에 가볍게 올라탔다.

“그런데 어쩌겠어. 이왕 이렇게 된 거 싸워야지.”

아포피스는 이집트 주신인 태양신 <라>조차도 상대하기 껄끄러워하는 괴물이다. 그러나 마냥 불리하다고 할 수 없는 게 지금의 아포피스는 신화 속 아포피스와 상당히 달랐다.

지닌 힘은 어지간한 몬스터들을 발아래로 둘 정도지만, 그렇다 해도 지금의 녀석은 결국 분신에 지나지 않았다.

분신이 지닌 권능은 진짜 힘과 비교하면 일부에 불과했으며 심지어 계약자라는 힘을 대신할 대리자조차 없는 상황에서 권능을 사용할 때는 상당한 불이익을 받게 된다.

어떻게 보면 녀석은 지금 존재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막대한 힘을 소모하는 중인 것이다.

그런 부분까지 고려한다면 마냥 이쪽이 불리한 대결은 아니었다. 저쪽도 상당한 핸디캡을 안고 있었으니까.

“그래. 이왕 싸울 거면 신화 속에 나오는 저런 괴물도 한번 때려잡고 그래야지.”

[하하하! 이집트 신화 속 괴물과는 싸워본 적이 없는데, 어떨지 기대가 되는걸!]

손오공도 끓어오르는 투기를 억누르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괜찮겠나?]

“그렇다고 마냥 물러날 수도 없는 노릇이죠.”

현찬은 주변 건물들을 올려다보았다. 겁에 질린 시민들의 모습을 자신을 향해 마지막 희망의 구원을 원하는 그 애절한 눈빛을…… 무시할 수 없었으니까.

“어차피 다 자신 있으니까 하는 말입니다.”

[……알겠다.]

“그럼, 녀석이 도시에 더 가까이 오기 전에 쓰러뜨리고 오죠.”

현찬은 그렇게 말하며 근두운을 타고 아포피스를 향해 쏜살같이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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