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1
141화 준동하는 적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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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저, 정말인가요? 제가 그만한 가치가 있어요?”
아흐메드 알리 샤.
최근에 각성을 끝마치고 인도 신화의 <가루다>와 계약을 맺은 청년.
그는 순박한 눈초리로 자신 앞에 있는 남자를 보며 물었다. 남자는 그의 질문에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샤 씨의 가치는 본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뛰어납니다. 그것은 돈으로 감히 환산할 수 없죠.”
“하, 하지만 위험하지 않을까요.”
“위험하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죠. 하지만 샤 씨. 세상은 변해가고 가만히 있으면 저희는 적들의 발아래에 무참히 짓밟히고 말 것입니다. 샤 씨는 가족을 지키고 싶죠? 그렇다면 힘을 기르셔야 합니다.”
“정말로 가능할까요?”
“샤 씨 혼자라면 힘들겠죠. 하지만, 샤 씨 말고도 세상에는 다른 신들의 계약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과 함께 싸운다면 충분히 가능할 겁니다. 무엇보다 샤 씨는 돈을 많이 벌어서 가족들을 잘 부양할 수 있게 되겠죠.”
샤는 그 말에 자신의 미래를 떠올렸다. 사람들의 입에 자신의 이름이 오르내리며 모두가 손을 흔들며 환영한다. 자신은 엄청나게 많은 돈을 벌어서 이런 좁은 집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 산다는 넓은 집에서 지내고 자가용도 구매해서 타고 다닌다.
가족들이 지내기에 좁지 않은 집에서 서로 웃으면서 보내는 행복한 나날. 그것을 떠올렸을 뿐인데도 어딘가 지금까지 했던 고생이 끝나가는 것 같아서 코끝이 시큰했다.
“돈을 많이 벌 수 있겠죠?”
“물론이죠.”
“저희 이 마을의 사람들 전부가 행복해질 정도로 벌 수 있나요?”
“……이런 상황에서 마을 사람들까지 신경 쓰시다니. 샤 씨도 마음이 참 고우시네요. 네, 맞습니다. <세계연합>에 들어오시기만 한다면 그 이상의 돈도 벌 수 있을 겁니다. 제가 보증하죠.”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들어갈게요.”
“탁월한 선택이십니다.”
샤와 대화를 나누는 남자, 현찬은 씨익 웃으며 그와 악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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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아아! 마, 만나서 반갑슴다! 현찬 님 팬입니다!”
“네. 만나서 반갑네요. 이름이 뭐라고 하셨죠?”
“엔도 미즈호임다! 편하게 미즈호라고 불러주시면 됩니다!”
현찬은 허리를 90도로 숙이다 못해 큰절하려는 여성, 엔도 미즈호를 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일본 관동지방 북부의 이바라키현, 최근 그곳에서 각성을 끝마친 여성, 엔도 미즈호 또한 신급 영령의 계약자다.
그녀와 계약을 맺은 영령은 바로 일본의 군신 <다케미카즈치>
불의 신 <카구츠치>의 피에서 태어난 8명의 신 중 하나이자, 궁술과 도검과 번개를 관장하는 일본 신이다.
아직 젊은 여성인 엔도 미즈호가 계약을 맺었다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격이 높은 존재가 바로 그였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현찬은 그 <다케미카즈치>가 정말로 카리스마 넘치는 군신인지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바로 눈 앞에 펼쳐진 광경 때문이었다.
[미즈호! 어찌 나의 계약자가 그렇게 타인에게 함부로 고개를 숙이는가! 나 다케미카즈치의 계약자라면 조금 더 당당해져라! 너는 누군가에게 고개를 숙일 재목이 아니다!]
“시끄럽슴다! 애초에 제가 원해서 당신이랑 계약을 맺은 줄 알았슴까?”
놀랍게도 엔도 미즈호는 자신이 각성자가 되었고 심지어 신과 계약을 맺었음에도 별로 기뻐하는 기색이 없었다. 그것은 그녀가 가지고 있는 일종의 로망 때문이었다.
엔도 미즈호는 사무라이를 동경했다. 사무라이뿐만이 아니라 검을 사용하는 기사도 좋아했다. 그녀는 위대한 무인을 좋아했다. 인간으로 태어나 자신의 노력으로 엄청난 힘을 얻고 그러면서도 뛰어난 마음가짐을 가진 사람이 되기를 바랐다.
엔도 미즈호는 처음 자신이 각성했을 때 엄청난 기대감을 품었다.
나는 어떤 영령과 계약을 맺을까? 그래도 일본인이니 역사 속 사무라이와 맺어지겠지? 누가 좋을까? 무사시는 이미 있지만 사사키 코지로는 아직 없으니 그쪽일까?
그런 그녀의 기대감은 무참히 부서졌다.
“애초에 신은 필요 없슴다! 저는 무인을 원한단 말임다!”
[미즈호! 이 다케미카즈치의 어디가 불만이란 말이더냐! 이 몸은 하늘의 군신! 그런 무인들과 비교 자체가 불가능한 지고의 존재다!]
“무인이 아니지 않슴까!”
그렇다.
엔도 미즈호는 진심으로 신과 계약을 맺은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신과 인간이 서로 티격태격하는 광경에 현찬은 곤란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다른 장소의 분신들도 독특한 계약자들을 만나고 있지만, 이쪽도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어, 음. 일단 그 미즈호 씨?”
“예! 하명하십쇼!”
“아뇨. 명령은 안 내릴 거예요. 그보다 그, 한국말을 잘하시는 건 아는데 그 말투는 뭔가요?”
놀랍게도 둘은 한국어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현찬이 일본어로 말을 걸었지만, 미즈호가 한국어를 잘한다고 이쪽 말로 하자고 했다. 그래서 알겠다며 승낙을 했는데 이게 웬걸, 그녀의 말투가 어딘가 이상했다.
“예로부터 무인이나 군인은 자신보다 뛰어난 사람에게 깍듯이 예의를 갖춰야 한다고 들었슴다! 그래서 한국의 군인이 나오는 드라마랑 이런 말투를 열심히 배웠슴다!”
“…….”
아무래도 무언가를 향한 잘못된 관심이 그녀를 이렇게 만든 것 같았다.
‘이쪽도 독특하네.’
신급 영령과 계약을 맺었음에도 사무라이나 기사가 아니라고 싫다는 사람은 또 처음이었다. 그런데 가지고 있는 힘을 생각하면 대단한 재목이다. 계약한 영령과의 동조율이 높지 않음에도 이 정도 힘이라면, 재능 자체가 천부적인 걸지도 모른다.
“어. 아무튼, 그 말투는 좀 이상한 거 같은데…….”
“이, 이상함까?”
“……아뇨. 괜찮은 거 같네요. 그냥 그대로 쓰세요.”
눈물을 글썽이며 말하는 그녀에게 모질게 대답하지 못했다.
그야 그럴 것이다. 엔도 미즈호는 강현찬 헌터의 팬이니까. 일본인이 한국 헌터를 좋아하는 일이 드물지는 않지만 그렇게 흔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 일본의 신급 영령의 계약자가 한국의 헌터의 팬이라는 상황은 아무리 봐도 처음이다.
“현찬 님이 십미천호와 싸우는 모습을 보았슴다. 현찬 님은 일본이 도움을 거절했음에도 기분 상해하지 않고 도우러 와줬슴다. 그 모습은 그야말로 훌륭한 무인의 것임다. 존경함다.”
“좋게 봐주셔서 고마워요. 그래서 어떻게 하실 건가요? 저희 <세계연합>에 들어오실 건가요?”
“물론임다!”
[미즈호! 어찌 그렇게 결론을 쉽게 내리는 것이냐! 적어도 나와 상의는 하고 해야지!]
“시끄럽슴다! 제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검다!”
상당히 재미있는 듀오가 합류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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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다른 곳에서 섭외는 전부 끝났습니다. 남은 건 리네넷 씨 뿐이죠.”
아누비스는 긴고아를 보며 한탄의 어조로 말했다.
[대체 언제부터? 아니, 그건 아닌가. 처음부터였군.]
“네 맞습니다.”
[내가 알아차리지 못하다니. 오랜 세월 평화라는 안식에 감각마저 세월의 모래에 휩쓸려 풍화하고 만 것인가.]
아누비스는 현찬이 자신의 바로 앞에서 <손오공>의 권능을 사용하고 있음에도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 어딘가 안타까운 듯했다.
하지만 이건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너무 그렇게 마음 쓰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것은 순전히 손오공의 능력만이 아니라 헤르메스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죠.”
단순히 손오공의 능력만 사용했다면 아누비스도 쉽게 눈치를 챘을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 헤르메스의 능력이 더해진다면 다르다. 둘이나 되는 신의 능력이다. 심지어 헤르메스의 경우에는 이름 높은 트릭스터 중 하나다.
상대가 그야말로 각 신화의 최고위급 주신이 아닌 이상 속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
[전쟁의 여신과 목동의 신, 거기에 더해서 화안금정의 원숭이까지. 이 세계에 더 이상의 순리를 거스를 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말도 안 되는 능력이구나.]
“음? 응? 저기 아누.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야?”
이 자리에 있는 사람(?)중 오직 리네넷만이 지금의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무언가를 배우는 것을 할 기회가 없던 그녀인 만큼 손오공의 존재도 잘 몰랐고 아누비스가 왜 저렇게 반응하는지도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 이 남자는 나의 눈을 속일 정도로 대단한 자라는 소리다.]
“너무 그렇게 미워하지 말아 주세요. 이렇게 보여도 이쪽이 본체니까요.”
“본체라니요? 그게 무슨 소리세요?”
“음. 말해주는 것보다는 직접 보여주는 게 더 편하겠죠.”
현찬은 가볍게 손을 흔들며 주변에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는 결계를 쳤다. 리네넷은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몰랐지만, 현찬이 무언가를 했다는 사실은 느낄 수 있었다.
사람들의 관심이 여기서 완전히 멀어지자 현찬은 자신의 머리카락 하나를 뽑았다. 입으로 머리카락을 가볍게 불자 놀랍게도 머리카락에서 빛이 나더니 또 다른 현찬으로 변신했다.
손오공이 사용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도술 중 하나인 <분신술>. 보통 대중매체를 쉽게 접하는 사람들은 이제는 식상한 능력이지만 리네넷은 달랐다. 세상을 잘 모르는 그녀에게 있어서 분신술이라는 능력은 너무나도 크나큰 충격이었다.
“와! 이거 진짜예요?”
“진짜는 아니고 분신입니다.”
리네넷의 말에 대답한 것은 현찬의 분신이었다.
“본체에 비하면 실질적인 능력은 그보다 더 약하지만, 자아와 이성을 가지고 있죠.”
[그리고 이것이 바로 나의 능력이라 이 말씀!]
현찬의 등 뒤로 손오공의 영체가 불쑥 나타났다.
머리에는 꿩의 깃털, 몸에는 황금 갑옷을 입은 원숭이의 등장에 리네넷의 두 눈동자가 화등잔만 해졌다. 그녀의 놀란 모습이 귀여웠는지 손오공은 킬킬거리며 웃었다.
현찬이 손을 뻗자 분신은 다시 머리카락으로 되돌아갔다. 현찬은 머리카락을 회수하며 눈을 반짝이는 리네넷을 향해 손오공을 소개해 주었다.
“소개하죠. 이쪽은 손오공이라고 합니다. 보시다시피 장난이 좀 심하니까 조심하시길.”
“신기해요! 다른 나라에 가면 조금 더 다양한 사람과 신들을 만날 수 있는 건가요?!”
리네넷은 흥분에 찬 목소리로 물었다. 그녀는 테이블 너머의 현찬을 향해 상반신을 불쑥 내밀었다. 현찬은 순간 눈 둘 곳이 없어서 자기도 모르게 시선을 피했다.
리네넷은 17살이었지만 발육이 남달랐다. 현찬이 봤던 그 누구보다도 가장 우월한 몸매를 자랑했다. 심지어 입고 있는 옷도 활동하기 편한 옷이라 꽤 헐렁했다. 그런 상태에서 몸을 불쑥 내미니 당연히 현찬으로서는 곤란했다.
일부러 유혹을 위해서 다가오는 것이 아닌 저것이 순전히 자각하지 못한 순수함에서 오는 행동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일단 진정해주시고. 방금 질문에 대답하자면 리네넷 씨 말 대로에요. 이 넓은 세상에는 신기한 것이 가득하죠. 그리고 좋은 사람들도 많습니다. 리네넷 씨가 무엇을 바라는지 모르겠지만, 장담하죠. 당신이 상상하는 것 그 이상으로 신기한 일들이 가득할 겁니다.”
“네! 그거면 충분해요!”
“그렇다면 이야기는 끝났군요. 이만 일어나보도록 하겠습니다.”
“어? 벌써 가시는 건가요?”
“네. 아쉽게도.”
현찬은 커다란 유리창 너머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다른 세계에서 손님들이 찾아온 것 같거든요.”
리네넷이 무언가를 묻기도 전에 바깥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현찬아.]
“알아. 아무래도 저쪽 세계도 이쪽을 주시하고 있다는 거겠지.”
그리고 다른 신들의 계약자들이 한곳에 모이는 것을 원치 않은 걸 보아, 좋은 의도로 접근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타이밍이 좋다고 해야 할지 나쁘다고 해야 할지.”
그래도 단 하나기 확실한 게 있었다.
“오랜만에, 제천대성의 그 힘을 다시 선보일 수 있겠지.”
[하하! 그걸 기다리고 있었다고!]
현찬의 몸 위로 황금색 갑옷이 입혀졌다. 한 손에는 여의금고봉을 든 현찬의 머리 위로는 긴고아가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