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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무한계약-140화 (140/265)

# 140

140화 새로운 신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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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네넷은 주변을 신기하다는 듯 쳐다보았다. 카이로의 거대한 도심 속 그곳에 자리 잡은 화려한 카페는 리네넷에게는 매우 놀라웠다. 멀리서만 보아왔던 도시의 풍경을 이렇게나 가까이서 보는 것도 정말 오랜만이었다.

하물며 고급스러운 건물 내부에 들어온 것은 처음이기까지 했다.

아직은 10대 소녀인 리네넷의 입장에서 신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곳은 처음인가요?”

맞은편의 테이블에 앉은 현찬이 물었다. 리네넷은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지금까지 살면서 이런 장소에 온 건 처음이거든요.”

“그거 놀랍네요.”

현찬은 자신의 앞에 놓인 시원한 커피 한잔을 한 모금 마셨다.

“리네넷 씨가 계약을 맺은 영령의 힘을 생각한다면 이 나라에서 원하는 권력을 휘두를 수 있었을 텐데요.”

<아누비스(Anubis)>

자칼의 머리에 사람의 몸을 지닌 이집트의 신 중 하나.

저승에서 죽은 자들을 심판하고 그들의 영혼의 선악을 따지는 사신이다.

가지고 있는 권능 자체가 전투계열 신에 비하면 그 힘이 부족한 부분이 없지는 않지만, 신으로서 그의 격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인지도만을 따진다면 상위급 신임은 틀림없었다.

이만한 신과 계약을 맺었음에도 빈민가에서 그저 하루하루 평화롭게 지내는 레네넷이 오히려 신기할 정도였다.

이 정도라면 마음만 먹어도 S랭크 헌터는 쉽게 될 수 있을 테니까.

리네넷은 오히려 어색하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헤헤. 권력이라뇨. 저에게 그런 건 무리예요. 무엇보다 저희 같은 빈민들에게는 각성자라고 해서 영령을 확인하거나 자격증을 쉽게 쥐여주지 않거든요.”

“당신만 한 인재를 이렇게 낭비하다니 인프라가 참 나쁜 나라네요.”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한국의 경우가 각성자들에게 지나치게 좋은 나라지 다른 나라까지 한국과 같다고 생각할 수 없었으니까.

특히나 이집트처럼 가난한 사람들이 많은 곳은 각성자를 위한 복지가 안 돼 있고 이보다 더 심한 나라도 있었다. 당장에 대부분 아프리카대륙의 나라는 아직도 주요 각성자들이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펼치지 못하는 판국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것도 끝입니다. 세상은 바뀌었죠. 언제 어디서 다른 세계가 저희 지구를 침공할지 모릅니다. 그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세계연합>은 리네넷 씨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

리네넷은 말없이 유리컵에 꽂힌 빨대를 휘젓기만 했다.

“리네넷 씨?”

“아, 네. 듣고 있어요.”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그녀는 고개를 퍼뜩 들어 현찬과 눈을 마주쳤다. 그러나 바로 뭐가 부끄러운지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했다. 현찬은 그제야 그녀의 모습을 제대로 살필 수 있었다.

햇볕에 그을린 건강해 보이는 구릿빛 피부와 허리까지 내려오는 매끄러운 검은 머리카락. 마치 밤하늘을 그대로 담고 있는 것 같은 맑은 눈동자는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쉬이 짐작할 수 있게 해주었다.

듣기로는 17살 정도라고 했는데 거기에 걸맞지 않은 성숙한 외모에 아이의 순수함마저 겸비하고 있었다. 이런 리네넷의 매력 덕분에 아직 빈민가에 살면서도 모두와 사이좋게 평화롭게 지냈던 것이겠지.

“갑자기 이런 제안을 하는 게 당혹스럽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저희에게도 나름의 입장이 있죠. 리네넷 씨 같은 사람들의 도움이 절실합니다. 우리들의 세계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부디 함께하실 수 있을까요?”

“저는…… 제가 잘 싸울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지금까지 한 번도 제대로 싸운 적이 없어서.”

“지금 바로 싸우지 않으셔도 됩니다. 리네넷 씨에게 준비할 시간은 충분히 있으니까요.”

“…….”

그녀는 침묵했다. 현찬은 그녀를 보채지 않았다. 말하지 않더라도 지금 리네넷의 심정은 매우 복잡할 것이다. 지금까지 신의 계약자라는 타이틀을 갖추지도 않은 채 남들 몰래 숨기며 지내왔다.

평생에 싸움이라는 것을 제대로 한 적도 없다. 평화를 사랑하고 이웃들과 친하게 지내는 것이 삶의 낙이었다.

아직 감수성이 풍부한 17살 소녀에게 세계의 운명을 운운하며 함께 해달라고 하는 것부터 문제가 있었다. 그러나 그녀를 속이면서까지 <세계연합>에 들일 생각은 없었다.

상대는 <아누비스>의 계약자다. 그녀의 기분이 상해서 마찰이라도 빚었다가는 이쪽의 입장에서는 엄청난 손해였다.

[여기서부터는 리네넷의 보호자인 내가 나서도록 하지.]

리네넷의 등 뒤로 영체 상태의 아누비스가 나타났다. 마치 모래가 살아서 움직이는 것처럼 한곳에 모이더니 사람의 몸에 검은 자칼의 머리를 한 신이 나타났다. 그의 등장에 모습을 숨기고 있던 헤르메스와 아테나 또한 나타났다.

[헤르메스. 누구인가 했더니 너였구나. 너는 예전에도 내게 짓궂은 장난을 치고는 했지.]

[동종업계 신끼리 너무 까칠하게 말하지 말라고. 이번만큼은 장난 때문에 찾아온 게 아니니까.]

[안다. 고결한 전쟁의 여신까지 있으니 믿을 수밖에 없겠지.]

그러나, 하고 아누비스가 말을 이었다.

[리네넷은 나의 계약자. 이 세계를 위해서라고 해도 이 어린아이를 이용하려고 든다면, 그때는 나 저승의 신 아누비스와 대적해야 함을 잊지 말지어다.]

[…….]

눈을 부릅뜨며 말하는 아누비스의 기세에 헤르메스조차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평소에 얌전한 녀석이지만 화가 나면 정말로 무서운 신이 바로 아누비스다. 아누비스가 가진 권능도 권능이지만 녀석이 부리는 <암무트>는 정말로 끔찍한 괴물이었다. 그런 녀석과 싸우고 싶지 않았다.

[너무 그렇게 여기지 말아라. 우리는 순전히 좋은 의도로 다가온 것이니.]

[이야기를 들어보고 정하겠다. 그보다, 우리를 어떻게 찾아낸 거지?]

“최근에 찾았습니다. 이번에 본격적으로 <대통합>이 벌어지면서, 권능이 한층 더 발달했거든요.”

현찬은 그렇게 말하며 <헤르메스의 눈>을 발동했다.

아누비스는 그것을 알아차리며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세계의 경계를 넘어서며 정보를 읽어내는 헤르메스의 권능, 저것이라면 숨어서 지내는 자신을 찾는 것도 충분히 가능했으리라.

[그래서, 이쪽에 접근한 목적은 그 <세계연합>에 들어오라는 이유 하나냐?]

“아시다시피 세계는 지금 불안정합니다. 예정된 <대통합>이 일어났다고 해도 지구의 모든 나라가 그것을 대비한 것은 아니죠. 아직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구제하는 인재는 언제나 부족하죠.”

[그것이 평생 싸움이라고는 하나도 모르는 백지 같은 아이에게 부탁할 이유가 된다고 생각하는가?]

“어려운 부탁이라는 건 저희도 잘 압니다. 그러나 저희에게도 저희 나름의 입장이 있죠. 그것을 위해서라도 서로 도울 수 있는 일을 찾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너희들의 속내를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다가오는 점은 좋다. 그러나 여전히 나는 걱정이다. 앞으로 있을 거대한 운명에 이 아이가 과연 견뎌낼 수 있을지.]

“저는 선택지를 제시할 뿐입니다. 그것을 선택하는 것은 리네넷 씨겠죠.”

현찬은 리네넷에게 시선을 던졌다. 그녀는 헤 하며 현찬과 아누비스의 대화를 듣고 있다가 갑자기 시선이 몰리자 몹시 당황한 눈치였다.

[이 아이가 싫다면?]

“싫다면 어쩔 수 없죠. 강제할 생각은 없습니다. 괜히 척을 지는 일은 사양하고 싶으니까요.”

현찬은 커피가 담긴 유리잔에 시선을 던졌다. 실내는 시원했지만, 얼음은 이미 반쯤 녹아서 그 크기가 줄어든 상태였다. 잠시 숨을 고르며 커피를 다시 한 모금 들이킨 현찬은 테이블에 유리잔을 소리 나게 놓았다.

“이것만큼은 알아주시길 바랍니다. 세상은 변했고 오히려 더 위험해졌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거기에 예외는 없습니다. 이웃과 함께 지내는 평화로운 삶? 좋습니다. 아름다운 선택이죠. 하지만 갑자기 적들이 나타나서 당신의 이웃들을 무참히 짓밟고 당신을 조소할 때, 힘이 없는 자들은 어떻게 할 거로 생각합니까?”

“그건…….”

“일어나지 않은 일이라고 넘어갈 수 없습니다. 몬스터들에게 죽은 사람들 갑자기 게이트 사태에 휩쓸린 사람들은 과연 자신이 그렇게 죽을 거라는 걸 알았겠습니까? 하물며 지금은 그때보다 더 심각한 상황입니다. 언제 어디서, 저희가 알고 지내던 사람들이 죽어 나갈지 모르고 심지어 그것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이상할 게 없는 시대가 되었죠.”

“…….”

“우리는 선택해야 합니다.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맞서 싸워야 한다는 걸요.”

소중한 이웃을 지키기 위해서.

현찬은 마지막에 이 한마디를 덧붙이고 입을 다물었다.

이제 남은 것은 리네넷의 선택을 기다려 준다는 뜻이었다.

“저는…….”

리네넷은 한참을 고민한 끝에 입을 열었다. 그녀는 이번만큼은 현찬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쳐다보았다.

“<세계연합>에 들어가겠어요.”

그녀도 안다. 지금 그녀가 하는 짓은 재능 낭비라는 걸. 싸우는 것이 싫은 건 맞다. 누군가 죽는 걸 원하지 않았다. 누가 뭐래도 그녀는 아주 여린 소녀였으니까.

하지만 그녀가 가장 싫은 건 자신이 싸우지 않아서 다른 사람들이 죽는다는 것이었다. 그런 일 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세상 모든 일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면, 그렇다면 그중에서 최선의 길을 걷는 것이야말로 그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리라.

리네넷은 그렇게 생각했다.

부모님을 잃고 아주 어릴 때부터 함께 지내왔던 친절한 이웃들.

자신에게 잘 해주던 아저씨 아주머니들과 또래 친구들.

거의 가족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그들을 위해서라도.

싸울 것이다.

“훌륭한 선택입니다.”

[리네넷…….]

아누비스는 어딘가 착잡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그와 계약 맺은 시점에서 그녀에게는 커다란 숙명이 주어질 거라는 걸 아누비스도 직감했다. 하지만 그러길 원치 않았기에 그녀의 힘을 숨기도록 도와줬다.

아누비스에게 있어서 리네넷은 자신의 딸과 같았으니까.

그녀가 평생 상처라는 걸 모른 채로 순수하게 행복하게 지내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것은 역시나 말도 안 되는 욕심이고 이기심일 뿐이었다.

[네 선택이 그렇다면, 나는 말리지 않으마.]

“미안해. 아누.”

[미안해할 필요 없다. 언젠가 일어날 일이었어.]

아누비스는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돌려 현찬을 바라보았다.

[영웅이여. 네가 그렇게 말했으니 어디 한번 너를 믿으마. 하지만 잊지 말아라. 리네넷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그쪽에 리네넷에게 해코지를 한다면.]

드드드드!

순간 카페 내부가 진동했다. 그것은 카페뿐만이 아니라 주변 건물들도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이 모두 놀라서 당황했고 리네넷조차 당황했다. 그녀도 아누비스가 이렇게 화를 내는 걸 처음 보았다.

[그때는 내 모든 것을 걸고서라도 전부 다 쓸어버리겠다.]

“걱정하지 마시길. 리네넷 씨는 제가 반드시 지킬 테니까요.”

“…….”

둘의 그 광경을 바라보던 리네넷은 어째서인지 현찬의 대사가 마치 공주님을 구하는 왕자님처럼 느껴져서 마음이 설레었다. 그렇다는 건 <아누비스>는 사위에게 딸을 넘겨주는 장인어른의 포지션이 아닌가?

그녀가 그런 혼자만의 세상에 빠져드는 동안에도 아누비스와 현찬의 대화는 계속됐다.

[세상에 숨어서 지내는 사람 혹은 이제 막 각성해서 밝혀지지 않은 자들이 많은 거로 안다. 나 또한 여러 신이 하계에 그 힘을 강림한 것을 느꼈으니까. 그들은 어떻게 찾을 거지?]

“아.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현찬의 머리 위로 황금의 고리가 떠올랐다.

“이미 동시에 만남이 진행되고 있거든요.”

현찬은 머리 위에 긴고아를 쓴 채 씨익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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