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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무한계약-139화 (139/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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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화 새로운 신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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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율은 황설영이 반가운지 부엌에서 고개를 쑥 빼더니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녀의 활기찬 환영을 받으면서도 황설영은 얼떨떨한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그녀가 내뱉은 말은 저절로 떨려왔다.

“어, 어째서 당신이 여기에 있습니까?”

원래라면 혼자 초대받아서 단둘이 있을 거로 생각했다. 그런데 이한율이 여기에, 그것도 아침 일찍 온 자신보다 먼저 와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있을 거라고 생각도 못 했지만 나보다 더 일찍 오다니!

지금 황설영의 속내는 딱 그러했다.

“아. 한율이도 제가 초대했어요.”

“하, 한율이?!”

둘이 이름까지 그렇게 편하게 부르는 사이였어?!

황설영이 크게 반응하자 현찬은 당황했고 이 상황을 대충 깨달은 이한율은 악동처럼 웃었다.

그녀는 현찬에게 다가가 어깨동무를 걸었다.

“그러엄~ 물론이지. 우리 둘이 엄청 친한 사이거든.”

“뭐야? 왜 그래?”

“……!”

황설영은 아주 충격을 받았다는 반응이었다. 세상이 멸망한다면 사람들이 보통 저런 표정을 짓지 않을까 할 정도로 말이다. 장난친 이한율도 ‘내가 좀 심했나?’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현찬은 한숨을 내쉬며 자신의 어깨에 올려진 이한율의 팔을 조심스럽게 내렸다.

“장난은 그만해. 황설영 씨. 한율이랑 제가 서로 말을 놓은 것은 동갑이라서 그런 거예요. 이 전에도 몇 번 만난 적도 있고요. 딱히 사귀거나 하는 사이는 아니에요.”

“그렇게 딱 잘라서 말하면 나도 좀 상처받거든? 아무튼, 설영 언니. 장난쳐서 미안해요. 언니 반응이 너무 귀여워서 저도 모르게 그만.”

“…….”

잠시 가출했던 황설영의 정신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녀는 비틀거리는 발걸음으로 부엌의 식탁 앞에 앉았다. 그런 황설영의 앞에 에크티가 준비한 요리들을 놓았다. 갈비찜, 오이소박이, 갈치조림, 부추전, 된장찌개 등 다양한 반찬들이 식탁을 가득 채웠다.

“와! 대단하다! 이걸 혼자서 다 했어?”

“에크티는 유능한 가정부니까.”

현찬의 칭찬에도 에크티는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은 채 그저 허리를 꼿꼿이 펴고 서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어딘가 프로페셔널하게 느끼겠지만 현찬은 미묘하게 에크티가 들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헤파이스토스가 심혈을 기울여서 만든 그녀는 주인의 명령에 충성하는 인형이지만, 그렇다고 감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황금인형 시리즈의 모든 인형은 거의 이상적인 인간에 가까워서 감정 또한 느낀다.

다만 그것을 잘 드러내지 않을 뿐.

“일단 식사부터 하죠.”

그렇게 3명의 식사가 끝나고 난 뒤, 현찬은 거실에 모여서 본론을 꺼냈다.

“제가 여기에 두 분을 부른 이유는 다름 아니라 제 여동생 때문이에요.”

“여동생? 여동생이 있었어?”

“그러고 보니 들은 적이 있습니다. 가족 중에 여동생이 있다고. 그런데 그 여동생분이 무슨 일이 있습니까?”

둘의 질문에 현찬은 솔직하게 털어놓을까 말까 고민을 하다가 답을 내렸다.

애초에 동생인 현지에게 어제 이야기는 전부 다 끝낸 상태였다. 그녀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전부 물어봤고 확인도 끝난 참이다.

“제 여동생이 최근에 각성했습니다.”

“아 그랬구나. 뭐, 최근에 각성하는 사람들이 워낙 많으니 그럴 수도 있지. 나도 부모님이 최근에 각성하셔서 좀 놀란 참이거든.”

“반응을 보시니 각성을 해도 그냥 한 건 아닌 것 같습니다. 혹시 해당 영령이 누구인지 확인을 해 보셨습니까?”

현찬은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요즈음 각성한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영령과 계약을 맺었는지다.

현찬은 말을 꺼내면서도 과연 이것이 옳은가, 이래도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밖에 없는 여동생이다. 그녀가 이 거친 세상에서 싸우는 것을 원치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 싸우는 건 괜찮지만 자신의 가족은 안된다는 지나친 이기심이었지만 현찬은 그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이기적이어도 좋다. 그래도 가족만은 평화롭게 지냈으면 하는 것이 그의 바람이었다.

하지만 현지는 현찬에게 말했다. 상관없다고. 오히려 자기도 나서서 이 세상을 바꾸고 싶다고.

‘오빠. 나는 오빠가 걱정하는 것처럼 약하지 않아. 그리고 남들이 다 싸울 때 혼자서 뒤에 숨고 싶지도 않고.’

현찬과 비슷하게 정의감이 남다른 여동생은 예전부터 그랬다. 어딘가 철이 없는 것 같으면서도 불의를 참지 못하는 의협심이 있었다. 현찬도 그걸 알기에 별다른 설득의 말을 꺼내지 못했다.

[나도 이제 성인이고 무언가 한다는 걸 선택하는 것도 순전히 내 의지로 하는 거야. 그러니까 나는 아르테미스와 계약할 거야.]

그것이 그녀의 의지라면, 현찬은 존중해줄 것이다.

그리고 전격적으로 그녀를 지원해 줄 것이다.

“제 여동생은 신급 영령과 계약을 맺었습니다.”

“신급 영령?!”

“그, 그게 정말입니까?!”

현찬이 꺼낸 폭탄 발언에 이한율과 황설영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다 이내 자신들이 너무 흥분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조심히 자리에 다시 앉았다. 흥분됐던 분위기가 가라앉자 현찬이 입을 열었다.

“제 여동생이 계약을 맺은 영령은 사냥과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입니다.”

“……와.”

“…….”

둘의 반응은 조금 전보다 어딘가 미적지근했다. 하지만 이한율과 황설영은 속으로는 세상이 떠나가라 놀라고 있었다. 너무 놀란 나머지 감정을 밖으로 표출하지 못한 것이다.

그야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냥 신도 아니고 올림포스의 12신 중 하나인 <아르테미스>이기 때문이다.

“……그거 집안 내력이야? 그리스 신화 신들에게 선택받는 거?”

이한율은 너무 어이가 없어서 그렇게 물었다. 현찬은 어깨를 으쓱였다.

“집안 내력은 모르겠는데. 부모님은 그러지 않으셨으니까. 오히려 내 동생에 대한 것은 집안 내력보다는 오히려 내 영향이 더 클 거로 생각해. 평소에 신의 기운에 자주 노출되다 보니 거기에 인연이 가장 깊은 영령으로서 아르테미스가 선택된 것일 테니까.”

“확실히,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 사기잖아.”

“아무리 강현찬 헌터님의 영향이 있다고 하더라도 신급 영령과 쉽게 계약할 수 있을 리가 없습니다. 필시 여동생분도 꽤 재능이 출중하셨고 그것에 합당한 자격을 지니고 계셨던 거겠죠.”

황설영의 말은 옳았다. 단순히 현찬의 영향만이라고 치부하기엔 현지가 지닌 가능성도 지나치게 높았다.

“아무튼. 내가 이렇게 이야기를 꺼내는 건 내 동생이 영령의 힘을 잘 다룰 수 있도록 도움을 바라기 때문이야. 내가 동생을 돌봐주기엔 너무 바쁘고 그렇다고 일반 각성자들이 다니는 기본 훈련소를 보내자니 재능 낭비니까.”

그러니 현찬이 선택한 것은 일종의 개인 과외였다.

“내가 한율이 너와 설영 씨를 부른 것도 이 때문이야. 내가 아는 여성 헌터들 중에서 경험이 많고 누군가를 가르치기에 가장 뛰어난 사람이 둘이라서 그래.”

“으음. 나도 자신이 없는데. 혹시 우리 언니 쪽 사람 불러도 될까? 우리 클랜장님 말이야.”

“아. 그때 뵀던 분?”

“응. 나도 언니한테 가르침 많이 받았거든. 내가 추천해줬고 현찬이 네 여동생인 데다가 신급 영령의 계약자라면 언니도 알아서 해 줄 거야.”

“한국 5대 클랜 클랜장이라면 바쁘지 않을까?”

“바쁘기는 무슨. 우리 클랜의 자유를 중시하자는 모토를 주장하는 사람답게 가장 여유가 많아. 뭐, 최근에는 지루한 일들이 늘어났다고 불평을 하는데 네 여동생을 소개해주면 좋다고 달려들걸?”

“그렇다면 부탁할게. 설영 씨는 어떤가요?”

“네. 저도 괜찮습니다.”

황설영도 나름 바쁘지만, 최근에는 뛰어난 인재들이 협회에 많이 들어왔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일 처리에 여유가 많이 생긴 참이었다. 그녀의 의지만 있다면 현지를 가르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강현찬 헌터님의 가족분에게 잘 보일 수 있으니까.’

그런 아주 귀여운 흑심을 가지고 있었기에 승낙한 것이다.

현찬은 혹시나 거절할 줄 알았는데 승낙해줘서 고맙다고 말하며 웃었다.

“그런데 현찬이 너는 바쁜 일이 있다는데 그게 뭐야?”

“응. 이제 해외 곳곳을 돌아다녀야 해서 말이야.”

“해외? 해외는 왜?”

그 질문에 현찬은 별거 아니라는 듯이 웃으며 대답했다.

“다른 신들과 계약 맺은 각성자들을 스카우트하러.”

그리고 첫 번째 목표는 거리상 가장 먼 이집트였다.

&

[와. 이건 좀 놀라운데?]

순식간에 펼쳐진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의 풍경에 헤르메스는 나지막이 감탄했다. 저 멀리 보이는 능선에 펼쳐진 끝없는 사막과 그 위를 걸어 다니는 낙타들. 그리고 새하얀 옷들을 뒤집어쓰고 시장을 돌아다니는 사람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도시를 가로지르는 거대한 나일강과 그 주위에 우뚝 솟아있는 마천루들이었다.

[마냥 사막만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거늘 이렇게 발전한 도시였구나.]

“아무렴. 세계 사람들이 돌아다닐 수 있도록 워프 게이트를 만들 정도니까.”

현찬이 한국에서 이집트로 바로 넘어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워프 게이트’ 덕분이었다.

대통합이 일어나고 세계가 변하면서 새롭게 나타난 물건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워프 게이트였다.

마석의 에너지를 이용해서 사람들을 공간을 뛰어넘게 해서 다른 장소로 이동시키는 이 기술은 과학과 도술을 사용하는 헌터들의 능력이 결합한 산물이었다. 물론 이제 최근에 가동했고 한 번에 이동할 수 있는 사람들의 숫자는 매우 적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더 많은 사람이 이 워프 게이트를 이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현찬의 경우에는 세계에 몇 없는 오버랭크 헌터이기 때문에 워프 게이트를 이용하는데 돈을 낼 필요도 없고 전부 프리패스였다.

[영령의 능력에 몬스터의 마석, 거기에 과학까지 접목하다니. 인간들의 발명이라는 것은 신인 나조차도 정말 감탄하게 만드는구나.]

[인간이 이런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거겠지.]

“자. 이제 이집트에 왔으니 슬슬 스카우트를 본격적으로 시작해 볼까?”

현찬은 자신을 환영해주는 이집트 정부의 사람들을 보며 씨익 웃었다.

&

리네넷은 카이로 외곽의 빈민촌에 사는 소녀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을 여의고 혼자서 살아온 그녀는 주변 빈민가 이웃들의 걱정과 다르게 매우 밝고 명쾌한 소녀였다.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그녀는 이런 가난한 지역에서 살면서 위험한 적도 더러 있었지만, 그녀는 지금까지 큰 탈 없이 지낼 수 있었다.

그것은 순전히 예전부터 그녀를 지켜와 준 그녀의 수호천사 덕분이었다.

[리네넷. 그렇게 뛰다가 넘어지면 다친다. 그리고 뛰더라도 바닥은 제대로 살피고 뛰어라.]

“아이참. 아누는 잔소리가 심하다니까. 내가 알아서 할 수 있어!”

[아무리 각성자의 신체가 뛰어나다 하더라도 넘어질 때 고통이 없는 건 아니다.]

“알았어. 조심할게.”

[너는 도대체가, 숙녀로서 조신하지 못하다는 건 그렇지만 최소한 덜렁대지 않는 것이…….]

“아아아! 안 들린다. 안 들려! 아누의 잔소리는 안 들린다.”

리네넷은 자신의 허리까지 오는 웨이브 있는 흑발을 흔들며 그렇게 말했다. 주변의 빈민가 이웃들은 리리넷의 그런 행동을 보고 ‘또 저런다.’는 반응이었다. 다만 그것이 부정적인 것은 아니고 오히려 흐뭇하게 바라보는 쪽에 가까웠다.

[음?]

“응? 아누. 왜 그래?”

[아무래도 손님이 찾아온 것 같다. 리네넷.]

“손님?”

손님이라는 말에 리네넷의 눈동자가 밝게 빛났다.

“손님이 나를 찾아왔어? 누굴까? 누가 나를 찾아왔지?”

[이 기운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타국에서 온 것 같구나.]

“헤에. 다른 나라? 궁금하다. 다른 나라 사람들은 어떤지.”

리네넷.

이집트 신 중 하나인 <아누비스>의 계약자.

이번 <대통합>에 의해서 계약을 맺은 것이 아닌, 이미 10년 전부터 계약을 맺고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고 지낸 소녀.

현찬이 가장 먼저 영입하려는 대상이 바로 그녀였다.

리네넷이 과연 누가 자신을 찾아올까 기대하는 도중에 그녀의 앞에 깔끔한 정장을 차려입은 남성이 나타났다. 이 뜨거운 열사의 기후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지 남자는 땀 하나 흘리지 않고 있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리네넷 씨 맞죠?”

그는 유창한 아랍어로 말했다.

“대한민국의 오버랭크 헌터 강현찬이라고 합니다. 혹시 어디 조용한 곳에 가서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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