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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무한계약-138화 (138/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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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화 새로운 신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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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공간. 사람들이 오지 않고 빛조차 스며들지 못하는 곳에서 한 남성이 몸을 웅크려 방구석에 쭈그려 앉아 있었다. 그는 뭐가 그렇게 괴로운지 몸을 수차례 떨었다. 악문 그의 이빨 틈새로 억누르는 신음이 새어 나왔다.

남자는 끅끅거리면서도 자신의 추태를 보이지 않기 위해서 고통을 참았다. 그것은 바로 방 안에 있는 다른 존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아! 그 역시 나를 보았어!]

어둠 속에서도 확연히 보일 정도로 아름다운 외모. 남자라면 누구라도 첫눈에 매혹당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미의 극치인 여성이 그곳에 있었다.

남자가 고통을 참고 있는 것도, 이 괴로움의 끝을 기다리고 인내하는 것도 순전히 눈앞의 여성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검은 머리카락을 길게 기르고 녹색 드레스를 입은 <로키>는 기뻐하고 있었다.

현찬이 그녀를 본 것처럼 그녀 또한 현찬을 보았다.

정확히 현찬이 그녀를 발견한 것도 그녀가 자신을 보아달라고 기운을 내비쳤기 때문이다.

당연하게도 현찬은 로키의 존재를 알아차릴 수밖에 없었고 로키는 현찬이 자신을 알아봐 준 것에 너무나도 큰 기쁨을 느꼈다. 그녀는 참을 수 없는 환희의 감정이 차오른 상태로 자신의 양어깨를 쓰다듬었다.

그녀가 하계에서 어느 정도 권능을 사용하기 위해 적당히 선택한 각성자는 안중에도 없었다.

로키가 진정으로 바라는 인간은 오직 현찬 하나뿐이었다. 이 각성자를 선택한 것은 그저 재능이 뛰어나고 어느 정도 잠재력이 있어서일 뿐 그 이상의 뜻은 없었다.

그러나 남자에게는 달랐다.

여신이 자신을 선택해 주었다. 남자는 그것만으로도 너무나 고마웠다.

특히나 이미 <로키>를 보자마자 한눈에 반해버린 남자로서는 더더욱.

‘안 돼. 견뎌라. 여신님 앞에서 꼴불견이 되고 싶은 거냐.’

남자 주현창은 자신의 두 주먹을 으스러지라 쥐었다. 손톱이 손바닥에 파고들어 피가 뚝뚝 떨어졌지만, 그는 견뎌냈다.

‘아아. 여신님. 아름다운 나의 여신님.’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무료했던 차에 자신에게 내려온 지고의 여신 <로키>

그녀를 만나는 순간 주현창은 이 지루했던 세상이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그에게 있어서 첫사랑이자 세상의 모든 것을 맞바꾸어도 충당할 수 없는 삶 그 자체였다.

그런 여신이 자신을 계약자로서 선택해 준 것만으로도 그는 아주 고마웠다. 비록 그에게 여신님이 어떠한 관심도 가지지 않고 다른 곳에 시선을 두고 있었지만, 그 모습조차도 너무 아름다워서 그는 푹 빠져버리고 말았다.

“여신님. 충분히 즐기셨습니까?”

고통을 참고 물어보는 주현창을 향해 날아오는 것은 싸늘한 시선이었다. 현창은 자기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그것은 두려워서 나오는 반응이 아니었다. 아름다운 여신의 시선이 자신에게 와 닿는다는 생각 때문에 일어나는 쾌락의 반응이었다.

[닥쳐. 누가 내게 함부로 말을 걸라고 했지?]

“죄, 죄송합니다.”

[네놈은 그저 내 권능을 발휘할 마력의 수단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네놈의 주제를 제대로 자각하고 있어라.]

“물론입니다.”

주현창은 고개를 푹 숙였다. 어느덧 로키가 자기 몸에서 빼내 사용한 마력은 다시 원래대로 되돌아왔다. 그는 그것에 안도감을 느꼈고 로키는 그런 현창을 보며 들으라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현찬만 한 인물은 없는 건가.]

솔직한 심정으로 로키는 현찬과 계약 맺고 싶었다. 헤르메스의 힘이 있다면 현찬은 로키와도 충분히 계약을 맺을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것은 그녀의 바람이지만, 아직 해야 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바로 주현창이었다. 애초에 그를 선택한 것도 그나마 각성자들 중에서 잠재력이 뛰어났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원해서 선택한 것도 아니었고 상성이 맞는 것도 아니었다.

마력을 사용하고 권능을 다루는 것만으로도 본인이 고통을 호소할 정도다. 물론 애초에 신급 영령과 계약을 맺자마자 그 힘을 바로 다룬다는 것 자체가 대부분 사람에게는 불가능 한 일이었지만, 로키는 그것을 신경 쓰지 않았다.

현찬이었다면 아무렇지 않게 그녀의 권능을 발휘했을 거니까.

“…….”

주현창은 아무런 반응도 내비치지 않았다. 그저 여신님의 뜻대로 따르겠다는 의지만을 보일 뿐. 로키는 그런 주현창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제깟 것이 무슨 짓을 저지를지 상관없다는 태도였다.

‘강현찬.’

주현창은 소리 나지 않게 이를 악물었다.

자기 인생의 전부인 여신님의 관심을 받는 대한민국 최강의 헌터. 아니, 어쩌면 세계에서도 가장 강할지도 모르는 남자.

그가 증오스럽다.

그만 없었다면 여신님의 관심은 모두 이쪽이 독차지할 수 있었는데.

그가 있어서 모든 것이 다 꼬였다. 그것이 너무 싫었고 그래서 현찬이 미웠다.

‘반드시, 죽이고 말겠다.’

그 미미하게 새어 나오는 살기를 여신 <로키>가 모를 리가 없었다.

그녀는 주현창이 보지 못하는 각도에서 입꼬리를 올려 미소 지었다.

‘예상대로네.’

그녀는 자신의 계약자인 주현창이 현찬에게 무슨 감정을 품는지 전부 알고 있었다. 알고 있음에도 그녀는 말리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그에게 이런 감정을 느끼도록 유도한 것이 바로 그녀였다.

‘그에게는 시련이 필요해. 비록 이것이 그의 발목조차 제대로 잡을 수 있을지 모를 미천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없는 것보다는 나아.’

영웅은 시련을 겪을수록 강해진다. 그것이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영웅이나 되는 존재는 마치 운명이 그것을 허락하기라도 하듯 더욱 정진하게 된다. 어떻게 보면 영웅들만이 지닌 특성일 수도 있었다.

‘기다리세요. 나의 영웅. 나의 사랑.’

로키는 문득 과거를 떠올렸다. 너무나도 눈부시고 멋졌던 한 영웅을. 그에게 시선을 빼앗겼던 자신을. 그리고 그를 빼앗기고 말았던 자신을.

그 모든 것에 분노하여 세상을 향해 증오심을 품은 자신을.

그러나 그것도 이제 끝이다.

잃어버린 줄 알았던 물건을 되찾은 것이 이러할까. 자신의 손을 떠났다고 생각했지만 그랬던 것이 오랜 세월이 지나서야 다시 돌아올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다시는 놓지 않으리라.

&

“끄응. 귀찮네. 하필이면 로키까지 나타날 줄이야.”

가족이 머무는 집을 나서서 자신의 거처로 돌아온 현찬은 소파에 털썩 누우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옆에서 이미 상황을 아는 헤르메스와 그에게서 전해 들은 아테나 또한 여간 골치 아픈 일이 아니라며 머리를 흔들었다.

헤르메스와 아테나 또한 실체를 가지고서 넓은 소파에 자리를 차지했다.

“녀석의 위치는 확인했나?”

아테나의 질문에 대답한 것은 헤르메스였다.

“아니.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정확한 위치는 몰라. 녀석은 교활하게도 현찬의 신경만 건드렸지 자신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누구와 계약을 맺었는지 노출하지 않았어.”

“역시나 교활한 녀석다운 태도로군. 그렇다는 건 언제 어디서 녀석의 계약자가 나타나더라도 우리로서는 알아차릴 수 없다는 건가.”

“다른 영령이라면 알아차리겠지만, 로키라면 내 권능으로도 무리야. 녀석이 작정하고 숨기고 속이려고 한다면 이쪽에서는 의심할 수 있지만, 확신할 수는 없지.”

그것은 로키가 헤르메스와 같은 분야의 신이기에 가능했다. 아니, 어떻게 보면 누군가를 속이고 기만하는 쪽으로는 신 중에서도 로키를 뛰어넘는 신이 없었다. 그나마 거기에 비빌 수 있는 게 바로 헤르메스와 손오공일 뿐이다.

“쯧. 천계에서 그렇게 서로 활개 치고 다니면서 동료에 대해서 그렇게나 모르느냐?”

“미미르의 샘에서 지식을 얻은 <오딘> 할아버지조차 로키의 기만을 제대로 눈치채지 못했어. 나라고 별수가 있을 거 같아?”

“자, 자. 남매 싸움은 그만하고. 어차피 여기서 이야기를 해 봤자 답은 나오지 않아. 지금은 다른 걸 신경 써야지.”

괜한 곳에 마음을 두게 되면 그마저도 해야 할 일조차 손이 가지 않는다. 차라리 로키에 관한 것은 일단은 싹 잊고 지금 당장 할 일에 집중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할 일은 많아. 대부분의 귀찮은 일들은 <세계연합>과 알렉세이 씨가 해 주지만, 나라고 마냥 가만히 놀고만 있을 수는 없어.”

오히려 현찬만이 가능한 일들이 몇 개 있었다.

<헤르메스의 눈>을 통해서 세계 곳곳을 둘러본 것도 그 일의 하나였다.

“할 일이 많겠네. 세계여행 다녀야 한다는 거잖아. 아무리 내 탈라리아가 빠르다고 해도 지구 반대편까지 왔다 갔다 하려면 너무 멀지 않아?”

“그건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물론 현찬이 갈 나라들은 상당히 많았다.

일단 대충 점찍은 곳만 해도 일본, 중국, 미국, 인도, 이집트, 북유럽 등이 있었으니까.

현찬은 그곳을 돌아다니며 각자 신급 영령과 계약을 맺었다는 각성자들과 만나서 그들에게 <세계연합>에 들어오게끔 일종의 회유를 할 생각이었다.

“애초에 로키는 대체 무슨 꿍꿍이가 있는지 모르는 이상 무시하는 게 마음 편해.”

이쪽에 마냥 적대적이라고 하기에는 로키가 보여주었던 호감 어린 행동이나 <영웅투쟁>으로 보낸 것이 걸렸다. 그렇다고 로키가 이쪽의 아군이냐고 묻는다면 거기에도 확신하고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 진짜 속내를 알지 못하는 이상 <로키>라는 존재는 찜찜하기 그지없는 것이었다.

“일단 아는 사람들에게 전화부터 해야겠다.”

현찬은 스마트폰을 꺼내서 익숙한 번호를 검색했다.

&

다음날 이른 아침.

황설영은 현찬의 집에 방문했다. 갑자기 그녀에게 전화가 와서 내일 찾아와달라고 부탁받은 것이 바로 전날 밤. 황설영은 어째서 현찬이 자신을 직접 집으로 부르는지 이유는 듣지 못했다.

정확히는, 물어봐야 했는데 너무 들뜬 나머지 바로 ‘알겠습니다!’하고 대답을 한 이후에 전화를 끊어버린 탓이 컸다.

그래도 마냥 나쁜 일은 아닐 거라는 감이 들었고 그녀의 영령인 <두두리>도 지금이야말로 바로 점수를 딸 때라면서 황설영을 보챘기 때문에 그녀는 큰마음을 먹고 바로 찾아온 것이었다.

‘이, 이상하지는 않겠지?’

황설영은 평소에 입지 않던 치마까지 입었다. 평소에 포니테일로 묶고 다니던 머리도 풀었고 하지 않던 화장까지 했다.

이렇게 완전 무장을 했음에도 황설영은 불안했다. 나름 코디한다고 했는데 이게 과연 자신에게 어울리는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두두리>는 정말 예쁘다고 했지만, 계약자이기에 입에 발린 말을 한 거일지도 모르지 않는가.

중요한 건 현찬에게 어떻게 비치냐 하는 것이리라.

그래도 지금 주어진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만약에 이 광경을 다른 사람들이 봤다면 눈을 크게 떴으리라.

설마 그 홍야차(紅夜叉)가 저런 여성스러운 모습을 뽐내다니!

그녀에게 사냥당한 범죄자들이 보았다면 입에 거품을 물었을지도 몰랐다.

덜컹.

문이 열리고 현찬이 직접 나서서 황설영을 맞이해 주었다.

“아. 오셨어요? 되게 빨리 오셨네요.”

“아, 아뇨. 온다면 일찍 오는 것이 훨씬 낫다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그런가요? 혹시 아침은 드셨나요?”

“아직 먹지 않았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일어나서 옷은 무엇을 입을까, 화장은 어떻게 할까 고민을 하다가 시간을 전부 다 잡아먹었다. 아침 식사를 할 시간이 있었을 리가 없다. 황설영이 솔직하게 말하자 현찬은 잘됐다며 웃었다.

“그렇다면 아침 식사하시죠.”

“네, 네?!”

남자의 집에서 단둘이 아침을 먹는단 말인가! 황설영이 너무 놀라고 기쁜 감정을 담아서 그렇게 묻자 현찬은 왜 그러냐는 시선을 던졌다.

“아, 아닙니다. 저, 저도 좋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혹시 불편하지 않을까 걱정했거든요.”

현찬이 집에 들어가려고 하자 황설영은 현찬에게 손을 뻗으려다 손을 내렸다. 혹시나 옷이나 꾸민 것에 대해 칭찬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무참히 배신당하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무언가를 내뱉기도 전에 현찬이 ‘아, 참’이라며 말을 이었다.

“오늘 정말 예쁘시네요.”

“……!”

현찬의 칭찬에 황설영의 표정이 순식간에 밝아졌다. 그야말로 어둠과 빛을 한순간에 오가는 그녀의 태도에서 <두두리>는 아직도 한참 멀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황설영은 기쁜 기분이 되어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그녀는 현찬의 뒤를 따라 집에 들어갔고.

“어서 오십시오.”

“어?! 설영 언니? 안녕!”

그 안에 있던 에크티와 <강감찬>의 계약자 이한율을 보고 들뜬 기분이 다시 나락으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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