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7
137화 새로운 세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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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급 영령과 계약 맺은 것은 현찬의 여동생뿐만이 아니었다. 이미 세계 곳곳에서는 사람들이 아직 확인하지 못한 각성자들이 자신의 영령과 계약을 맺기 시작했고 그 영령 중에서는 아주 극소수지만 신들이 섞여 있었다.
인도의 한 빈민촌.
그곳에서 힘들게 생활하는 빈민 중 하나인 아흐메드 알리 샤는 하루하루 돈을 벌며 가족들을 부양하는 건실한 청년이었다.
그가 각성한 것은 매우 최근 일이었고 그는 오히려 강해진 힘 덕분에 일하는 데 더 도움이 된다고 생각할 정도로 순박했다.
‘가족을 위해서라도 장남인 내가 열심히 해야 해.’
그는 7남매의 장자였고 아버지는 몸이 편찮으신 상태다. 어머니가 어떻게든 허드렛일로 돈을 버시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했다. 그런 순간에 장남인 그가 먼저 각성했으니 어찌 보면 참 다행인 일이었다.
잘만 하면 몬스터를 쓰러뜨리고 마석으로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몬스터와 싸우는 일은 매우 어렵고 목숨의 위험이 뒤따른다. 어머니에게 걱정을 끼치기 싫어서 샤는 일단 몸 쓰는 일만 하기로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에게 신의 목소리가 내려왔다.
“다, 당신은 대체 누구입니까?”
[아이야. 나의 백성아. 할아버지의 백성아. 나는 너희들의 신 <가루다>라고 한다.]
<가루다>
인도의 신이자 팔부신중(八部神衆)의 한 자리를 차지하는 신조(神鳥).
황금빛의 거대한 새이자 혈통을 따지면 창조신 브라흐마의 손자이기도 했다.
그렇게 가난하게 지내는 한 청년에게 신의 축복이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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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어린 소년 ‘진 차이’는 헌터를 동경하는 소년이었다.
그가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헌터는 바로 미국의 영웅인 알렉세이 윌터였고 진 차이 또한 그를 동경하여 헌터가 꿈꿨다.
자기도 다른 사람들을 돕는 영웅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선천적으로 체구가 작고 몸이 왜소한 그는 꿈을 이룰 수 없었다. 평소에 친구들에게 무시마저 받으며 소심하게 지내는 그였지만 언제나 마음속에는 뜨거운 열정을 품고 있었다.
나도 각성해서 헌터가 되고 싶다.
나도 훌륭한 영웅이 되고 싶다.
그런 그의 의지를 들었는지 진 차이는 각성자가 되었다.
그것도 일반 영령의 계약자가 아닌, 신급 영령의 계약자로서 말이다.
[만나서 반갑구나. 나는 나타(哪吒)라고 한다.]
나타!
그가 누구인가.
천계의 신 중에서도 전투력이 손에 꼽을 정도로 강하다고 알려진 신이었다.
그 서유기의 <손오공>과 싸워서 치열한 접전을 벌인 인물이기도 했다. 무려 6개나 되는 신물을 다루는 그는 손오공의 가장 강하다고 알려진 <삼두육비>와 수십 합을 비등하게 겨루었을 정도로 강했고 심지어 그런 손오공을 차후에 돕기도 할 정도로 성격이 호탕했다.
어떻게 보면 중국의 신화에서 사람들에게 큰 관심을 받는 가장 유명한 신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
[그 원숭이 녀석이 내려왔다는 하계가 바로 여기인가. 참으로 그리운 곳이구나.]
“저, 정말로 아저씨가 나타에요?”
[그렇다. 계약자여.]
나타가 긍정하자 진 차이는 온몸을 바르르 떨었다. 헌터가 되고 싶었던 진 차이는 왜소한 체구 때문에 운동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책을 읽고 공부를 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는 많은 신화를 섭렵했다. 당연히 중국 신화는 이미 눈을 감고도 줄줄 읊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렇기에 진 차이는 <나타>가 얼마나 대단한 신인지 잘 알고 있었다.
솔직히 진 차이는 왕급 영령만 나와 줘도 정말로 감사하다고 절할 정도로 절박했다. 하지만 영웅급도 아니고 무려 신급 영령이 등장했다. 심지어 중국 신 중에서도 인지도가 낮은 신이 아닌 무려 그 나타다.
진 차이는 지금 자신이 기절하지 않고 정신을 유지하는 것만 해도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저, 정말 저 같은 거로 괜찮아요?”
[왜 그렇게 생각하지?]
“왜, 왜냐하면 저는 덩치도 작고 몸도 말랐고 겁쟁이에다가 소심하기까지 한걸요.”
그렇게 말하면서 진 차이는 고개는 점점 숙이며 시선을 바닥으로 향했다. 늠름하고 화려한 나타의 모습이 도저히 자신과 어울리지 않았다. 그를 보면 자신이 너무나도 초라해져서 혹시 나타가 계약자를 잘못 찾아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나타의 당당한 말에 진 차이가 고개를 들어 나타와 눈을 마주쳤다. 그 맑고 올곧은 눈빛에 진 차이는 자기도 모르게 그 눈빛에 빠져들고 말았다. 평소에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때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그에게 있어서 새로운 경험이었다.
[내가 왜 너와 계약을 맺으러 내려온 줄 아느냐?]
“아, 아뇨. 저는 잘 모르겠어요.”
[그것은 네 마음속에 있는 누구보다도 정의로운 열망 때문이다.]
아무리 재능이 넘치고 강하다 하더라도 나타와 계약 맺을 자격은 그것만으로 부족했다.
재능보다는 열정.
힘보다는 마음.
능력보다는 정의.
후자를 중시하는 나타에게 있어서 이 작은 소년이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계약자였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라. 자신감을 가져라. 너는 누구보다도, 나와 계약 맺기에 합당한 ‘영웅’이니까.]
그 말에 진 차이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소년은 소매로 눈물을 닦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소년은, 자신이 그토록 바라던 ‘꿈’을 향해 발을 내디뎠다.
&
“아, 이거 장난 아닌데.”
[그러게 말이야.]
현찬은 감았던 눈을 떴다. 장소는 현찬의 집이었고 부모님은 아직 오시지 않았다. 현찬은 거실의 소파에서 몸을 일으키려다 약간의 빈혈기를 느껴서 다시 소파에 주저앉았다. 옆에서 그것을 지켜보던 여동생이 물었다.
“오빠. 괜찮아?”
“어. 그냥 너무 갑자기 강화된 힘이 따라가지 못했을 뿐이야.”
현찬은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정신을 다잡았다. 조금 전까지 현찬은 <헤르메스의 눈>을 통해서 세상 곳곳을 빠르게 훑어보았다.
<대통합>이 벌어지고 나서 당연하게도 현찬의 능력이 더욱 강화되었다.
정확히는 현찬의 능력 말고 헤르메스와 아테나의 능력이 늘어난 것에 가까웠다. 정당한 계약을 통해서 힘을 부린다고 하더라도 신이 하계에서 사용할 수 있는 권능은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이번 <대통합>으로 인해 영령들과의 세계와 하계 간 경계가 더 얇아지고 모호해졌다. 그리고 이것은 이미 신과 계약을 맺은 헌터들에게 있어서 호재로 작용했다.
사용하지 못했던 권능이 깨어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기존의 권능마저 훨씬 더 강화됐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정보를 읽는 <헤르메스의 눈>은 세상의 경계를 뛰어넘어 아주 멀리 떨어진 곳의 정보마저 읽어내는 수준이 되었다.
물론 모든 것을 완벽하게 볼 정도로 전능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현찬이 원하는 장소, 정확한 위치만 파악한다면 그쪽을 짧게나마 지켜보는 것 정도는 가능했다.
그리고 시야를 확대해서 광범위한 장소를 한눈에 볼 수 있었고 거기서 뛰어난 영령들의 기운을 읽어내 정보로 치환하는 것도 가능했다.
그야말로 세계의 경계를 뛰어넘으며 어디든지 다닐 수 있고 그것을 모두 지켜보며 기록하는 헤르메스에게 어울리는 능력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뛰어난 능력이라고 해도 너무 뛰어난 게 문제였다.
이게 처음 사용하는 것도 있었지만 현찬이라는 인간이 사용하기에 아직 이 능력이 주는 부담은 상당했다.
물론 현찬이기에 여기까지 버틴 거지 만약에 다른 사람이 이 능력을 사용했으면 뇌가 과부하 해 모든 뇌세포가 타버렸을지도 모른다.
현찬은 침착하게 심호흡을 하며 자신이 본 사실들을 정리했다.
“이미 세계 곳곳에 다른 신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어.”
헤르메스의 권능을 통해 본 것은 헤르메스도 보았지만, 여동생과 아르테미스, 아테나는 모를 테니 설명해주기로 했다.
“여러 신화의 상위 신들이 내려와 계약자들을 찾았어.”
그중에서 대표적인 신격이 여럿 있었다.
인도의 <가루다>
중국의 <나타>
일본의 <다케미카즈치>
이집트의 <아누비스>
이들 말고도 다른 신들이 몇 명 더 있었지만 가장 주된 신들은 대부분이 이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누구와 계약을 맺었는지도 현찬은 전부 지켜보았다. 아마 신들 또한 현찬이 헤르메스의 힘을 이용해서 자신들을 본다는 사실도 알고 있으리라.
[으아. 나타라니. 좀 귀찮네.]
헤르메스는 저 신들과 모두 안면이 있다. 그중 나타는 천계에서도 손오공과 함께 장난칠 때마다 나타나서 설교를 퍼붓는, 상대하기 껄끄러운 신이기도 했다. 장난꾸러기 헤르메스에게 올곧고 진지한 나타는 상성부터 맞지 않은 것이다.
[흐음. 하계에 다양한 신들이 내려오기 시작했구나. 이건 좋은 점이라고 봐야겠지.]
[맞아 언니. 게다가 계약자들의 성향도 하나같이 선하고 순수한 쪽에 가까워. 뭐, 다른 신화의 신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사람 보는 눈은 있으니 그렇겠지.]
저들을 잘만 키운다면 향후 <세계연합>을 지탱하는 훌륭한 전력이 될 것이다.
심지어 주된 신들만 저 정도다. 급이 낮지만 그래도 신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신들 또한 더러 있었다. 현찬은 그들까지 대충이지만 확인이 끝난 상태였다.
현찬은 자신이 알아낸 정보를 알렉세이과 <세계연합>에서도 나름의 자리를 차지한 간부격 인물들에게 보냈다. 신급 영령의 계약자들을 찾았으니, 그들을 잘 모시라는 문자였다.
알렉세이라면 아마 자신이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알고 그것을 훌륭히 수행하리라.
“어우, 피곤해.”
대충 해야 할 일을 정리한 현찬은 소파에 드러누웠다. 여동생은 눈을 말똥말똥 뜨고 그런 현찬을 바라보았다. 그 시선을 느낀 현찬이 물었다.
“왜?”
“아니, 오빠 덕분에 내가 아르테미스와 계약을 맺게 된 건 고마운데…….”
“고마운데?”
“나 오빠랑 계약을 맺었다는 헤르메스와 아테나도 보고 싶어. 아르테미스가 그러는데 오빠는 이미 <소환>의 단계까지 갔다면서? 그러면 둘을 현실에 불러낼 수 있는 거 아니야?”
딱히 숨길 일이 아니어서 현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여동생도 신과 계약을 맺었으니 알아야 할 것은 알아야 했기 때문이다.
“보고 싶어!”
헤르메스와 아테나 또한 슬슬 남들 눈치 보지 않고 육체를 가지고 돌아다니고 싶어 하는 기색이었다. 특히나 아테나의 입가에 침이 고인 걸 보아서는 지금 당장 뭐가 먹고 싶은 듯했다.
이제 세상은 변했고 더 숨길 것도 없어서 현찬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동생의 부탁까지 있으니 거절할 수도 없었다.
현찬이 두 신을 <소환>하자 여동생 현지의 눈에서 광채가 뿜어져 나왔다. 신화 속에 존재하는 신의 모습을 직접 보게 되었으니 그녀에게 있어서 얼마나 감회가 새로울지 감조차 오지 않았다.
“치킨 먹자!”
“난 간장이랑 파닭이 좋다.”
“꺄하하하! 오빠! 신들도 치킨 먹어?!”
[으음. 나도 먹고 싶구나.]
집안에 순식간에 시끄러워졌다.
그 모습이 어딘가 매우 즐거워 보여서 현찬의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맺혔다. 하지만 문득 드는 생각 하나에 현찬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말하지 않았지만, 현찬은 다른 신을 하나 더 발견했다.
아니, 발견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 신이 대놓고 현찬에게 자신을 알아봐 달라고 광고를 하고 있었으니까.
‘로키.’
북유럽의 신 <로키>.
<영웅투쟁>이후 아무런 소식도 없이 꼭꼭 숨어버린 그녀는 무슨 용무인지 자신의 계약자 하나를 구해서 하계에 내려온 것이었다. 그리고 심지어 보란 듯이 현찬이 <헤르메스의 눈>을 통해 세계를 둘러볼 때 자신의 존재감을 강하게 어필했다.
‘대체 무슨 꿍꿍이인지는 모르겠지만.’
로키는 현찬에게 무언가의 기대감을 품고 있었다.
그것이 좋은 것인지 혹은 나쁜 것인지는 모른다. 그 교만하고 수상한 신은 자신의 속마음을 남에게 밝히지 않으니까.
‘그렇다 해도 나를 멋대로 이용하려고 든다면, 절대로 그 뜻대로 따르지는 않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