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무한계약-133화 (133/265)

# 133

133화 악마 침공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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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천마 백강오>

무림 세계에서 그 누구도 범접하지 못한 절대고수다.

혼자서 세상을 떠돌았던 그는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자는 상대가 누구라도 전부 쓰러뜨렸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이름은 강호를 흔들었다.

백강오의 이름이 높아질수록 그에게 나타나는 적들 또한 강해졌다.

하지만 백강오는 언제나 승리했다.

무림맹의 명성이 높은 고수들도 그의 검 앞에 무릎 꿇었다.

사악한 천마신교의 마인들도 그에게 패배했다.

그의 명성을 듣고 대련을 원하던 고수들도 전부 졌다.

그렇게 어느 정도의 세월이 다시 흘렀고.

강호에는 백강오의 상대가 더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무림 최강의 존재가 되었다. 그의 앞길을 가로막는 자를 더는 찾을 수 없었다.

사람들은 그의 파괴적인 행보와 강력한 힘을 보고 경외심을 담아 이렇게 불렀다.

<파천마(破天魔)>

비록 그는 오랜 싸움에 지치고 약해져 천흉(天凶)이라는 이름 아래 현찬의 손에 최후를 맞이했다. 그러나 그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이미 지닌 격이 영웅의 그것을 한참 넘어선 백강오는 자연스럽게 지구에서 최후를 맞이하며 지구의 영령이 되었다.

그리고 지구의 영령이 된 백강오는 당연하게도 현찬과 계약을 맺을 수 있었다.

[나에게 이런 기회가 주어지다니 감회가 매우 새롭군.]

백강오는 자신의 세계를 파괴한 악마들을 증오했다. 그렇기에 그는 현찬에게 제안했다. 악마와 싸우게 해준다면 자신이 가진 모든 힘을 전부 다 주겠다고. 현찬은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도움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 증오스러운 악마 녀석들을 쓸어버릴 수만 있다면야, 나는 언제든 계약자 그대와 함께할 것이다.]

“이거 참 든든하네요.”

한때 한 세계의 최강자라 불리던 남자의 말이다. 그의 소싯적 지녔던 명성과 힘을 생각하면 절대로 허언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의 말대로.

악마들은 모두 최후를 맞이할 것이다.

“모두 물러나세요. 저 녀석들은 제가 처리합니다.”

“하, 하지만…….”

“어차피 게이트의 핵을 파괴하고 게이트가 붕괴할 때까지 시간만 벌면 됩니다. 그 정도면 충분히 가능해요.”

다른 헌터들이 현찬을 말리려고 했지만, 그들을 제지한 것은 알렉세이였다.

“됐어. 본인이 저렇게 말하면 괜찮다는 거야. 여기서 뭘 하려고 하면 그건 우리 오지랖이 넓은 거다. 핵을 파괴할 몇 명 빼고 모두 물러나.”

알렉세이마저 그렇게 나서며 말하니 다른 헌터들은 더 따지고 들지 못했다. 그들도 깨달았다. 자신들이 걱정하는 상대가 누구인지.

지구에서 가장 강하다는 4명의 헌터 중 한 명을 걱정하다니 쥐가 고양이를 위하는 것과 뭐가 다르단 말인가.

게다가 알렉세이마저도 저렇게 당당하게 말하는 것을 보아 분명히 믿는 구석이 있을 것이다. 다른 헌터들은 모두 알겠다며 1차 게이트의 입구를 통해 바깥으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고착화한 상대 악마 진형에서 웅성거리는 소음이 퍼졌다.

“인간 놈들! 감히 우리 앞에서 도망치려는 것이냐!”

“네놈들이 두고 갈 것은 목숨과 피뿐이다!”

“어딜 감히 함부로 등을 보이나!”

성질 급한 몇몇 악마들이 전선을 이탈하여 이쪽을 향해 달려들었다. 기다란 뿔이 2개나 자라난 녀석들은 상당히 강해 보였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서걱!

현찬이 휘두른 검에 의해 달려들던 악마들은 순식간에 몸이 반 토막 나서 바닥에 피를 흩뿌렸다. 단 한 번의 칼질에 무려 10여 명의 악마가 죽었다. 뒤에서 기회를 엿보던 다른 악마들은 숨을 삼켰다.

악마들은 직감했다. 조금 전 방출했던 기세와 마찬가지로 현찬이 보여준 단 한 번의 공격이 지닌 힘이 얼마나 강한지를. 현찬은 고작 뿔 2개짜리 악마로서는 도저히 대적할 수 없는 상대였다.

그 틈을 알렉세이와 다른 헌터들은 놓치지 않았다. 알렉세이와 몇몇 특무 헌터들은 자리를 벗어나 게이트의 핵을 파괴하기 위해 떠났다. 그들마저 완전히 물러나자 현찬은 그제야 방해꾼이 사라진 것을 인지하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혹여나 놈들이 달려들어서 자기도 모르게 힘 조절이 되지 않을까 걱정했다. 현재 <백강오>와 계약을 맺은 상태라면 조금만 힘 조절이 삐끗할 경우 주변 일대를 그야말로 폐허로 만들어 버릴지도 몰랐다.

그런 상황이 오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이 너무나도 만족스러웠다.

이제 마음 놓고 활개 칠 수 있으니까.

현찬은 아직 움직이는 걸 망설이는 악마들을 향해 도발의 의도가 가득한 미소를 지었다.

“언제까지 계속 그렇게 멀뚱히 구경만 할 거야? 명색이 악마라는 녀석들이 겁이라도 집어먹었나?”

“뭐?! 이 건방진 놈이!”

“하등한 인간 주제에 어딜 감히!”

현찬의 도발에 자존심이 강한 악마들이 발끈하며 반응했다. 특히나 뿔이 3개 달린 녀석들의 반응이 격했다. 이각 악마들은 현찬의 강함을 깨달아서 가만히 있었지만, 그들도 인간에게 모욕당했다는 사실을 견디기 힘든 듯했다.

그 순간 뒤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4개의 뿔을 지닌 악마가 나섰다. 다른 악마들보다 훨씬 더 거대한 덩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몸이 호리호리했다. 날씬한 몸인데 키가 4m에 달하니 어딘가 더 기괴하게 느껴지는 악마였다.

녀석은 자신의 긴 장발을 뒤로 넘기며 경멸 어린 시선으로 부하들을 노려보았다.

“멍청한 녀석들. 모두 뒤로 물러나라.”

“마, 말레두스 님! 하지만 저 건방진 인간이……!”

그에게 무언가를 말하려던 3개의 뿔을 가진 악마의 머리가 날아갔다. 악마들은 붉은 피부로도 확연히 보일 정도로 안색이 창백해졌다. 악마들은 황급히 말레두스의 말대로 뒤로 물러났다.

녀석은 긴 다리로 성큼성큼 걸어오며 선두에 섰다.

“제법이구나 인간. 하지만, 그런 도발은 먹히지 않는다. 우리는 자랑스러운 염옥마왕(炎獄魔王) 파르고잔 님의 군단. 아무리 너희 인간들이 발버둥 친다고 하더라도 우리에게 대항할 수단 따위는 없다. 그러니 포기하도록 해라. 내가 자비를 베풀 때 받거라.”

현찬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 대신 오히려 재밌다는 듯 웃었다.

저 녀석은 마치 자신이 싸우면 이길 거라는 양 떠들며 심지어 거만하기까지 했다.

현찬이 좋아하는 일 중 하나가 저런 녀석의 콧대를 완벽히 뭉개주는 것이었다.

[뭐? 도발이 안 먹혀? 현찬아 한마디 해 줘야겠다.]

‘그러게 말이야.’

녀석은 몰랐지만, 현찬은 이미 심마왕(深魔王) 겔루키스의 군단을 상대한 적 있었다. 녀석들과 싸우면서 현찬은 악마들의 습성에 대해서 알아낸 것이 몇 가지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녀석들은 자신이 모시는 왕을 끔찍이 아낀다는 것이었다.

“너희 겁쟁이 같은 녀석들을 보니 네놈들의 군단을 이끄는 파르고잔이라는 녀석도 알만 하구나. 분명히 약해 빠진 겁쟁이겠지?”

“뭐?”

말레두스의 표정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악마들에게 있어 왕을 모독하는 것은 금기 중의 금기였다. 그렇기에 말레두스는 현찬이 펜타이블 중 한 명이자 오각왕인 파르고잔을 욕했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 사실을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고 그것은 고스란히 분노의 양분이 되었다.

말레두스의 머리 위로 그가 화났다는 것을 확연히 할 수 있는 분노의 표식이 새겨졌다.

악마들은, 특히 말레두스처럼 귀족급 악마에게 왕을 욕하는 것은 그야말로 최강의 모욕이었다.

[이것이 바로 악마 한정 패드립이다! 이것들아!]

헤르메스는 현찬의 말이 통쾌한지 실컷 날뛰었다. 아테나가 그런 헤르메스를 못난 듯이 바라보았고 백강오 또한 신의 추태에 약간은 당황한 듯했다. 하지만 헤르메스는 그런 걸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이, 이이이이놈이! 봐주려고 했거늘 안 되겠구나! 모두 쳐라! 사정 봐주지 말고 전부 죽여라!”

말레두스의 명령에 뒤에서 잔뜩 벼르던 악마의 군세가 현찬을 향해 달려들었다. 얼핏 보이는 수만 해도 무려 500을 넘어갔고 경계를 통해서 계속 넘어오는 녀석들까지 포함하면 수를 세는 것은 무의미했다.

“건방진 인간 놈!”

“곱게 죽이지 않겠다!”

원래부터 현찬의 태도에 불만이 많았던 악마들은 조금 전 현찬이 그들의 지도자인 파르고잔을 모욕한 탓에 잔뜩 성이 난 상태였다.

악마들은 강하다. 그들은 선천적으로 강함을 타고난 종족이기 때문에 모든 면에서 인간들보다 월등했다.

하지만 <대통합>을 통해 뒤바뀐 세계는

그런 인간들에게도 반격의 봉화를 올릴 기회를 쥐여주었다.

“와라.”

현찬은 검을 집어넣고 두 팔을 좌우로 쭉 펼쳤다. 자세를 낮게 잡으며 마력을 운용하여 온몸에 순환시켰다.

“내가 너희들에게 두려움을 안겨주마.”

그들이 멸망시킨 세계에 마지막 잔재였던 자의 힘이 이 자리에서 폭발했다.

<굉섬풍(宏閃風)>

현찬의 몸이 바람에 휘감기며 앞으로 뻗어져 나갔다. 현찬의 몸이 그야말로 한 줄기의 섬광이 되었다. 꽈르릉! 번개 치는 소리와 함께 현찬은 이미 악마 군단의 전열을 뚫고 들어갔다. 현찬에게 접근한 악마들은 내공이 담긴 바람에 찢겨나갔다.

“크아악!”

“이, 이게 대체 무슨!”

악마들이 당황했지만, 현찬은 이미 놈들의 중심에 파고든 뒤였다. 현찬이 발을 크게 굴렀다. 내력이 현찬의 발바닥을 통해 지면으로 스며들었다. 그리고 그것은 이내 땅속에서 갈라지고 퍼지며 폭발했다.

<구계진(九界震)>

쿠구구구궁!

지면이 붕괴하고 부서진 대지의 파편이 분수처럼 솟구쳤다. 거기에 휩쓸린 악마들은 제 형상조차 유지하지 못하고 짓이겨졌다. 주변에 피 보라가 휘몰아쳤다. 현찬의 발이 움직였다. 깔끔하게 휘둘러진 돌려차기가 가까이서 운 좋게 살아남은 악마의 머리통을 터뜨려버렸다.

“놈을 죽여라!”

“막아!”

악마들은 동료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녀석들은 태생부터 투쟁하는 놈들이었다. 고작 이런 일로 전의를 상실하지 않았다. 현찬도 악마들의 이런 반응을 반겼다.

“벌써 겁먹으면 재미가 없지!”

현찬이 발을 구르자 거대한 바위가 솟아올랐다. 현찬은 그대로 주먹으로 바위를 부쉈다. 내공이 남긴 바위 파편이 산탄총처럼 악마들에게 흩뿌려졌다. 몇몇 악마들은 자신의 마갑을 불러내 방어했지만, 반응이 느리거나 거리가 가까운 녀석들은 그러지 못하고 온몸에 구멍이 뚫렸다.

일대가 소란이 휩싸였을 때 현찬은 악마들의 틈새에 다시 한번 파고들었다.

“흑마충천공.”

“어, 어어?”

악마들이 당황하는 사이 현찬이 내기를 폭발시켰다.

<구룡담천(九龍啖天)>

콰아아아아!

지면을 타고 거대한 용 9마리가 솟구쳐 올랐다. 그것은 순식간에 주변의 악마들을 집어삼키고 물어뜯으며 휩쓸고 지나갔다. 9마리 용은 현찬의 주변을 소용돌이처럼 돌더니 이내 서로 꼬이고 꼬여 나선의 형태로 솟아올랐다.

9마리의 용은 하나로 합쳐져 방향을 바꾸어 악마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고 공격에 직격당한 악마들은 마갑을 입고 있더라도 조각조차 남기지 못하고 소멸해 버렸다.

“뭐냐.”

이 상황을 지켜보던 말레두스는 믿기지 않는지 눈을 부릅떴다. 그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이게 대체 뭐냔 말이냐.”

4개의 뿔을 타고난 존재로서 두려움이라는 것을 모르고 지내왔다. 그보다 강한 악마는 그들의 세계에서도 몇 없었고 그는 5각왕을 제외하면 자신이 두려워할 존재들은 이 세상에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고작 인간 따위에게 두려움을 느낀다고?”

말레두스는 그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 순간이었다. 말레두스는 현찬과 눈이 마주쳤다.

“헉?!”

말레두스는 그 순간 거대한 무언가가 자신을 굽어보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의 다리가 덜덜 떨렸고 몸에 힘이 쭉 빠졌다. 낯설지 않은 이 느낌은 분명히 멀지 않은 과거에 겪은 적이 있었다.

말레두스는 빠르게 정신 차렸다. 자신이 본 것이 그저 환각이었을 뿐이었지만 너무나도 생생해서 말레두스는 자신의 목이 붙어있는지 손으로 만졌다.

‘마, 마왕님과 똑같아!’

말레두스는 경악했다. 현찬이 뿜어낸 기세는 그가 느꼈던 마왕의 기세와 매우 흡사했다. 성질이 아닌, 힘의 총량이 마왕과 비슷한 것이었다.

악마 군단을 때려눕히던 현찬은 손에 쥔 악마의 머리를 악력으로 부수며 말레두스를 바라보았다.

그의 등 뒤로는 분노한 파천마의 영령이 노기가 가득한 얼굴로 말레두스를 노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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