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2
132화 악마 침공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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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떨렸다. 땅도 흔들렸다. 세계가 진동했고 울부짖었다. 사람들은 세상의 종말이 왔다고 떠들었다. 도로를 달리던 자동차는 모두 멈췄고 건물 안쪽에 있던 사람들은 밖으로 나와 상황을 살폈다. 경찰들이 나서서 혼란을 잠재우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저, 저거 뭐야?!”
군중 속 누군가가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사람들의 시선이 그의 손가락 끝을 스쳐 지나가며 하늘로 향했다. 그들이 눈에 담은 하늘이 변하고 있었다.
푸른 하늘은 순식간에 검게 물들었다. 그것은 일부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었다. 모든 하늘에서 이러한 현상이 일어났다. 물에 잉크가 번지는 것처럼 검은색은 푸른 하늘을 좀먹으며 세력을 넓혔다.
사람들은 세상의 종말을 본 것처럼 두려워했다. 이런 일이 언젠가는 일어날 거라고 막연히 예상했지만 생각했던 것과 실제로 마주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었다.
그러나 검은색이 지나가고 남은 것은 막막한 어둠이 아니었다.
그곳에서는 화려한 우주의 모습이 펼쳐져 있었다.
곳곳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푸른 하늘보다도 더 아름다운 다양한 색의 별빛이 만연했고 사람들은 그 아름다움에 마음을 빼앗겼다. 하늘을 가득 메운 별빛과 우주를 가로지르는 은하수, 찬란한 빛을 내뿜는 은하들. 그 모든 것이 망원경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선명하게 보였다.
그리고 그중에서 점점 더 거대해지는 몇몇 은하가 눈에 띄었다. 다양한 모양의 은하 중 몇 개가 지구를 향해 접근 중이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그렇게 느꼈다. 저것이 지금 지구를 향해 다가온다고.
“으아아아아!”
“모두 피해!”
“여러분! 진정하세요!”
경찰에 이어 헌터들도 사람들을 진정시키려 나섰다. 그러나 점점 거대해지며 언제 충돌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일반인들이 이성을 유지할 리 없었다.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고 곳곳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지구 전체가 크게 진동했다. 몇 명은 균형을 잡지 못해 바닥에 넘어졌다. 하늘도 떨렸고 숲도 떨렸다. 숲의 짐승들도 세상의 종말을 느낀 건지 소란스럽게 뛰어다녔다. 새들이 하늘을 날아올랐다.
하지만 그런 소란은 짧았다. 일정 거리 이상을 다가온 은하들이 그대로 멈췄기 때문이다. 웅성거림이 잦아지고 사람들은 다시 조용해졌다. 그들은 이 이후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두려워하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 순간 은하의 곳곳에서 새하얀 빛의 기둥이 뿜어져 나왔다. 그것은 유영하다 검은 우주를 가로지르며 지구를 향해 떨어져 내렸다. 콰아아! 빛의 기둥은 대기권을 뚫고 지구의 지면과 이어졌다. 그것은 떨어지면서 큰 소음을 만들었고 주변에 세찬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움직임을 멈추었던 은하들이 다시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구와 이어진 빛의 기둥을 동아줄처럼 삼으며 느리게 접근 중이다.
그런 일들이 세계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다.
마지막 <대통합>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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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맙소사. 설마 <대통합>을 일으켰단 말이야?!”
알렉세이는 람브로눅스의 간부들을 때려눕히던 와중 혀를 찼다. 치열하게 싸우던 다른 헌터들도 세계가 떠나가라 울리자 싸움을 멈추고 긴장했다. 그것은 적들도 마찬가지였다. 치열한 전쟁터가 되었던 1차 게이트는 순식간에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놈들도 당황한 거 같은데? 친구.]
“저쪽도 마찬가지로 지금 상황을 예상하지 못했다는 거겠지.”
어차피 쓰고 버릴 말들에게 이 모든 상황을 다 알려줄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일루베 아르카>의 수장은 이계의 존재라고 들었다. 지구의 인간들은 그 성향을 막론하고 수장에게 있어서 중요한 패가 아니라는 소리이리라.
“자기들이 지금 이용당하고 있는 것도 모른 채 마지막 희망을 붙들고 싸우다니. 불쌍한 녀석들이야.”
[하지만 저들이 진실을 안다고 해서 우리와 대적하지 않는 건 아니지.]
“맞아. 그게 어떻게 되었든 저 녀석들은 지금까지 사람을 죽이고 그것에 죄책감을 지니지 않은 범죄자들이니까. 동정을 품을지언정 자비를 베풀 생각은 없어.”
오히려 진심을 다해 싸울 생각이었다.
“저쪽이 자신들의 희망을 위해 싸운다면, 우리 또한 우리들의 희망을 위해 싸우지.”
[문제는 지금 우리가 그토록 미루기 위해서 애를 썼던 <대통합>이 일어나고 있다는 거잖아.]
파트너인 <글루스카베>의 안타까운 푸념에도 알렉세이는 피식 웃었다.
“아니, 괜찮아.”
애초에 그는 이 모든 상황조차 상정했다.
“전부 우리 예상 내니까.”
중요한 건, 2차 게이트 내부에 있는 현찬이 멀쩡한지였다. 쉽게 당할 정도로 약하지 않지만, 오히려 어지간한 적들도 다 때려 부술 정도로 강한 현찬이지만 상대는 다른 세계에서 온 자다.
만에 하나라도 현찬이 불리해지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으니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것을 대비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선택이었다.
그 순간이었다.
1차 게이트 끝부분이 쩌적 하고 갈라지더니, 거대한 균열을 이루며 갈라졌다. 그 틈새에서는 소름 돋는 붉은 기운이 피 웅덩이처럼 펼쳐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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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찬이 붙잡은 가짜 에르카닐은 새 가면의 등장과 함께 온몸이 미라처럼 말라붙으며 그대로 죽어버렸다. 어스름달은 우왓?! 하고 놀라며 황급히 현찬의 몸에 달라붙었고 에크티도 눈을 살짝 뜨더니 황금의 가루로 사라지며 현찬의 무기로 돌아갔다.
현찬은 발끝으로 이미 죽어버린 가짜 수장을 툭툭 건드리더니 흔들리는 세계를 바라보았다.
“놀랐어. 설마 네가 진짜 에르카닐일 줄이야. 범상치 않은 녀석이라는 건 알았지만 이건 정말 예상 밖인걸.”
“그런 것 치고는 별로 많이 놀란 것 같지는 않군.”
“아니. 정말로 놀랐어. 영광으로 알아도 좋아.”
현찬은 싸움의 영향 탓에 뻐근해진 몸을 풀었다. 뚜득! 뚝! 현찬이 목을 젓고 어깨를 돌릴 때마다 그런 소리가 났다.
“그렇다 쳐도, 자신을 믿고 따르던 사도들을 전부 다 제물로 삼아서 다른 차원과의 <문>을 강제로 열 줄은 몰랐어.”
“호오. 설마 이 방법마저 다 꿰뚫어 본 건가?”
현찬의 추측은 정답이었다. 에르카닐은 사도들을 전부 제물로 삼아서 다른 차원과 강제로 <문>을 열었다. 그것은 일전에 철 가면을 통해 <심연>과 연결한 것과 같은 원리였다. 동시에 열린 여러 개의 <문>은 결국에 세계에 영향을 주어 <대통합>을 앞당기고 말았다.
설마 지금까지 일구어낸 모든 것들을 다 버려가면서까지 이런 짓을 벌일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조직의 수장이 아닌, 가짜 수장을 세뇌해 세우고서 그 휘하의 부하로서 들키지 않게 행동한 것도 대단했다.
현찬은 에르카닐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거의 20년 동안 공들여서 쌓은 탑을 녀석은 자신의 손으로 무너뜨린 것이다.
“그렇다 해도, 이제 뭘 어쩌려고 내 앞에 나타났지? 나한테 두들겨 맞고 싶어서 그런 건가?”
“너무 폭력적이군. 내가 믿는 구석이 없이 이러게 나선 줄 아나?”
새 가면, 아니 에르카닐은 그렇게 말하며 무언가의 조각으로 추정되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건 여기 2차 게이트의 핵이다. 이제 곧 이 게이트는 붕괴하겠지.”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2차 게이트가 거대한 폭탄이라도 맞은 것처럼 크게 흔들렸다. 거대한 충격이 휩쓸고 지나가며 2차 게이트는 끝부분부터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그 속도는 순식간에 빨라져 이 게이트의 붕괴를 불러올 것이다.
“…….”
무언가 말할 시간이 없었다. 현찬은 에르카닐을 향해 검을 휘둘렀지만, 가짜 에르카닐의 시체에 있던 은빛의 갑옷이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날아와 현찬의 검을 막아냈다. 현찬은 눈살을 찌푸렸다. 저 갑옷을 뚫고 에르카닐에게 피해 주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대체 목적이 뭐냐?”
“멸망해버린 우리 세계의 부흥. 지구는 그것을 위한 영양분이 될 것이다.”
“네 뒤에는 누가 있지?”
“…….”
에르카닐은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이미 그가 충분히 누군가의 지원을 받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다른 세계의, 그것도 꽤 많은 차원을 정복해온 녀석들이 분명했다.
“이번에는 보내주겠지만, 다음에는 그럴 기회가 없을 거야.”
에르카닐은 자신의 모든 것을 버려가며 현찬을 겨우 속였고, 세계의 흐름을 뒤틀었다. 그게 가능했던 것은 그가 20년 동안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서 자신만의 조직을 만들어 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 에르카닐은 아무것도 없었다. 무언가 있다면 아마 그를 지원해준 다른 차원의 존재들일 것이다. 그들이 도와준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오히려 도와주면 현찬으로서는 더 편했다.
주범까지 전부 한꺼번에 싹 쓸어버릴 수 있었으니까.
현찬의 그런 섬뜩한 기세를 느꼈는지 에르카닐은 자기도 모르게 뒤로 살짝 물러났다.
“과연 다음에 우리가 만날 기회가 있을까?”
“뭐?”
현찬이 묻기도 전에 에르카닐은 그 말만 남기고 사라졌다. 현찬은 혀를 차며 1차 게이트로 넘어갔다. 그리고 현찬은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왜 에르카닐이 그런 말을 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1차 게이트에서는 아직 살아있는 헌터들이 악마의 군단과 싸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1차 게이트 어딘가에 열린 거대한 균열을 통해서 악마 군단이 튀어나와 헌터들과 싸움을 벌였다. 람브로눅스와 데스페라도 녀석들은 이미 전부 당한 것 같았다. 남은 헌터들은 최선을 다해 녀석들과 맞서는 중이었다.
“이런 의미였군.”
악마들의 세계는 누구보다 빠르게 <대통합>에 반응했다. 펜타 이블 중에서 어느 쪽 마왕의 휘하 군대인지 모르겠지만 이미 충분한 준비를 한 녀석들은 1차 게이트를 통해 균열을 만들고 그곳에서 쏟아져 나왔다.
선두에서 알렉세이와 양 리화가 열심히 싸우고 있었지만 다른 헌터들은 악마들에게 밀리고 있었다. 대부분의 악마들은 2개의 긴 뿔이 있었고 뿔 3개짜리도 적지 않게 있었다. 무엇보다 이 상황을 주도하는 지도자 격 악마 하나는 무려 뿔이 4개나 되었다.
“응? 넌 뭐냐?”
“됐다. 죽어라.”
악마 중 몇 명이 현찬을 발견하고는 바로 달려들었지만, 현찬은 녀석들을 손쉽게 베어냈다. 그러자 주변의 다른 악마들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현찬을 노려보았다. 갑자기 2차 게이트에서 넘어와 당황했는데 범상치 않은 인물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이놈부터 죽여!”
“한꺼번에 친다!”
그러나 놈들 몇이 달려든다고 하더라도 현찬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현찬은 악마군단의 측면에서 뛰어들어 녀석들을 베어내며 헌터들이 있는 쪽으로 합류했다.
“왔군! 어떻게 됐지?”
“사도들은 전부 처리했어요. 다만, 놈들의 진짜 수장은 도망쳤죠. 보아하니 좀 큰 뒷배가 있었던 것 같아요.”
“그 부분은 나중에 따로 이야기하고 지금 중요한 건 저 녀석들을 막아야 하는 거겠지.”
지금도 균열에서는 악마들이 계속 흘러나왔다. 이대로 계속 싸우기엔 이미 한 차례 큰 전투를 겪은 헌터들이 견디지 못한다. 그들은 이미 충분히 지치고 피로한 상태였다. 게다가 지금 게이트 바깥에서는 <대통합> 때문에 세계가 변화하는 중이기도 했다.
여기서 시간을 빼앗길 수는 없었다.
“일단 시간을 벌기 위해서는 1차 게이트를 파괴하는게 최선일 것 같아.”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알렉세이의 의견에 현찬도 동조했다. 양 리화는 잠자코 이야기를 듣기만 했다.
1차 게이트를 파괴하기 위해서는 그 핵을 없애야만 했다. 그러나 핵을 파괴해도 게이트가 바로 사라지는 것도 아니어서 어느 정도 버티는 건 필수였다.
“시간은 제가 끌도록 하죠.”
“괜찮겠나?”
“오히려 더 쌩쌩해요.”
걱정하는 알렉세이를 향해 현찬은 괜찮다며 웃어 보였다.
오히려 지금 한 영령이 현찬에게 제발 싸워달라고 애원했다.
현찬은 그 바람을 들어줄 생각이었다.
<계약>
현찬은 계약스킬을 통해서 해당 영령과 계약을 맺었다.
<무극검신>의 상태와 비교하면 확실히 부족한 힘이었지만, 그 셋 중 한 명과 비교하면 지금 계약을 맺은 영령은 그보다 훨씬 더 강했다.
그야 그럴 수밖에.
그는 그가 나고 지내온 세계에서 범접할 수 없는 최강이었으니까.
[내가 상대해주마.]
현찬이 발을 구르자 거대한 기의 폭풍이 파동처럼 퍼져나가며 악마 군단을 뒤로 밀어냈다. 뿔이 4개 달린 악마는 그것을 느끼며 눈을 빛냈다. 그는 입을 열어 감탄사를 내뱉었다. 설마 이 지구에 저렇게 강한 인간이 있을 줄 몰랐다는 반응이었다.
<파천마 백강오>
멸망해버린 무림 세계의 최강자가 지구의 영령이 되어 현찬에게 힘을 빌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