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0
130화 대변혁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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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 가면의 기세에 힘입은 다른 사도들도 각자의 능력을 발동했다.
해골 가면이 손을 휘젓자 조금 전에 죽었던 여우 가면과 피에로 가면의 시체가 벌떡 일어나더니 현찬에게 달려들었다. 그뿐 아니라 땅을 뚫고 해골들이 튀어나오며 주변을 가득 채웠다.
베네치아 가면이 품 안에서 독특한 무기를 꺼내 현찬을 향해 쏘았다. 그녀의 능력은 바로 뛰어난 물건을 발명하는 것. 그녀의 손에 일반 총기가 쥐어지면 그것은 순식간에 다른 무언가로 둔갑한다.
페르소나 가면은 강한 정신 파장을 뿌리며 현찬을 교란하려 들었다. 녀석은 반야 가면 다음으로 정신계열에 특화해 있으며 전투력은 반야 가면보다 더 높았다. 상대방의 심리를 예측하고 일방적으로 수 싸움에서 우세를 점하고는 했다.
일선에 나선 건 용 가면이었다.
나머지 셋의 사도들은 후방에서 용 가면을 지원하며 현찬을 향해 엄호사격을 날리는 역할이었다.
게다가 해골 가면이 일으킨 나머지 사도 둘의 시체 또한 생전의 힘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었다.
무려 6명의 사도의 합공!
그들은 자신 있었다. 실제로 이 정도의 힘이라면 오버랭크 헌터조차 쓰러뜨릴 수 있었다. 현찬이 적당한 영령 하나와 계약을 맺고 싸웠다면 분명히 졌을 것이다. 다른 오버랭크 헌터라도 마땅한 방도가 없었으리라.
적당한 영령 ‘하나’와 계약을 맺었다면 말이다.
현찬은 지금 신과 계약을 맺은 상태보다 더욱 막대한 힘을 느꼈다.
고양된 기분은 마치 인간을 초월하여 더욱 격이 높은 존재가 된 것 같은 착각을 주었다. 주변의 모든 것들이 시선 아래로 내려갔다. 영혼이 육체의 굴레에서 벗어나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갈 것만 같았다.
현찬은 사도들을 바라보지 않았다. 그들은 안중에도 없었다. 오히려 더욱 멀고 더 거대한 무언가를 주시했다. 저것은 인간의 눈으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영령들의 세계. 모든 신화와 설화, 역사의 존재들이 머무는 낙원이었다.
시선을 내려 다시 2차 게이트 내부를 훑었다. 이곳은 넓었다. 풀이 잔뜩 자라난 평야는 끝을 모르는 것 같았고 그 끝에는 거대한 성이 있었다. 지구의 미학과 상당히 다른 성이었다. 성은 거대했다. 멀리 있음에도 크다는 것을 확연히 알 수 있었다.
아마 저곳에 사도들이 말하는 ‘그분’이 무언가 흉계를 꾸미고 있을 것이다.
현찬은 애써 끓어오르는 흥분을 억누르며 이성을 되찾았다. 지금 중요한 것은 녀석을 쓰러뜨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현찬은 충분히 가능할 거로 생각했다.
지금이라면 누구와 싸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현찬이 다시 사도들에게 눈길을 던졌다. 사도들은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르며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단 한 명을 두려워하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사도들은 오히려 격하게 반응했다.
“네놈의 움직임을 봉인해 주마!”
해골 가면의 외침과 함께 목이 잘려나간 여우 가면의 몸이 움직였다. 여우 가면은 온갖 주술과 도술에 통달했기 때문에 엄청난 마력의 실이 현찬의 몸을 옭아맸고 중력이 강해지며 현찬의 몸을 짓눌렀다.
페르소나 가면의 정신공격이 현찬의 머리를 강하게 뒤흔들었고 용 가면이 내뿜는 마력의 압박감이 주변 공간 자체를 강하게 찍어 내렸다. 하지만 현찬은 산책이라도 나온 것처럼 표정이 매우 평온했다.
“흡!”
현찬이 몸에 힘을 주는 것만으로도 속박의 주술과 각종 도술이 파훼 됐다. 현찬이 발에 기를 담아서 한걸음 내딛자 거대한 충격파가 터져나가며 주변 일대를 뒤덮던 모든 기술을 박살 내버렸다. 사도들은 강력한 충격파에 뒤로 밀려났고 오직 용 가면만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
“피차 서로를 죽이기 위해서 싸워야 하니 뜸 들이지 않고 바로 가도록 하지.”
“좋을 대로.”
둘의 대화가 끝난 직후 현찬과 용 가면이 충돌했다. 용 가면이 내지른 주먹과 현찬이 내지른 주먹이 서로 부딪쳤고 거대한 파쇄음을 만들었다. 둘이 딛고 서 있는 지면이 그 힘을 견디지 못하고 쩌적 갈라졌다.
현찬이 검을 휘두르려는 순간 새하얀 실타래가 날아와 현찬의 오른손을 묶었다. 여우 가면의 시체가 발동한 주술이었다. 그리고 피에로 가면이 현찬에게 단검을 집어 던졌다. 현찬은 힘으로 주술을 끊어내고 검을 가볍게 휘저었다. 후우웅! 강력한 바람이 몰아쳤고 단검들이 힘을 잃고 바닥에 떨어졌다.
베네치아 가면이 바주카 같은 무기를 들고 현찬을 쏘았지만, 현찬은 그것을 가볍게 반으로 베어냈다. 두 개로 갈라진 공격은 현찬의 좌우로 갈라지며 먼 곳에서 큰 폭발을 일으켰다. 해골 가면이 조종하는 해골 군세가 현찬에게 개미 떼처럼 달려들었지만, 현찬이 한 걸음 더 내딛는 순간 그 힘을 견디지 못하고 바스러졌다.
‘이길 수 없다.’
용 가면은 진즉에 이 싸움의 승패를 짐작하고 있었다. 조금 전에 부딪히면서 확실하게 깨달았다. 현찬은 그보다 강했다. 다른 사도들과 힘을 모아 합공을 해도 지금 현찬에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주먹과 주먹이 충돌했는데 현찬은 멀쩡했고 그는 뒤로 쭈욱 밀려났다. 심지어 내질렀던 주먹이 욱신거렸다. 현찬은 검조차 휘두르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힘을 이용해 주먹을 휘둘렀을 뿐이었다.
이 결과만 놓고 보더라도 이미 현찬과 용 가면 사이에는 거대한 간격이 존재했다. 용 가면은 자신이 무슨 짓을 하더라도 그 간격을 메울 수 없다는 걸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누구에게도 지지 않겠다고 자신이 있었지만, 이번만큼은 예외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만둘 수는 없겠지.’
그는 싸워야 했다. 자신에게 삶을 선사해준 ‘그분’을 위해서라도 싸워야 했다.
팔다리가 날아가도 뼈가 부러져도 상처가 심해 피를 흘려도 이를 악물고 일어서서 투쟁을 멈춰서는 안 됐다.
그것이 용 가면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으니까.
그분에게 보답할 유일한 수단이었으니까.
‘그러니 싸운다.’
부서져도 좋았다. 그러나 화려하게 불태우리라.
타오르는 불꽃처럼.
그의 시야에서 모든 것이 하얗게 점멸했다. 그리고 모든 것이 하얗게 변한 세상에서 용가면과 현찬 둘만 남았다. 용가면은 현찬에게 집중했다.
“으아아아아아!!”
용 가면이 고함을 내지르며 현찬에게 달려들었다. 그 움직임과 속도, 거기에 실린 힘은 그가 정말로 오버랭크 헌터에 근접한 강자임을 확신시켜 주었다. 아니, 지금의 용 가면은 이미 오버랭크 헌터와 같은 힘을 지녔다.
용 가면은 가진 마력을 모두 불태웠다. 그것을 연료로 삼으며 힘을 폭발적으로 증폭, 그 화살의 끝을 현찬에게 돌린다.
현찬의 지척까지 접근한 용 가면은 미칠 듯한 난타를 내질렀다. 주먹과 발이 잔상조차 보이지 않을 속도로 움직이고 거대한 충격이 끝없이 몰아치는 파도처럼 현찬을 휘감았다.
‘더 강하게! 더 빠르게!’
더욱 불태운다.
용 가면의 움직임이 한층 격해졌다. 이제 그의 움직임은 같은 사도들조차 제대로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빨라졌다. 그 광경에 몇몇 사도는 넋을 잃고 용 가면의 치열한 투쟁을 지켜보았다.
용가면은 모든 마력을 쥐어 짜냈고 이제 생명력마저 불태우며 현찬을 몰아치고 있었다.
둘의 신형이 초원의 먼 곳까지 튕겨 나갔다. 둘이 스쳐 지나는 장소들은 전부 지면이 파괴되고 붕괴하며 처참한 광경을 자아냈다. 그 뒤를 쫓는 사도들은 둘의 움직임을 따라잡을 수 없었다.
‘나는 죽어도 좋다!’
하지만 그분은 아니다.
그분은 대업을 이루실 분. 자신의 은인이자 삶의 지표 그 자체. 그분만큼은 반드시 지키는 것이 용 가면의 사명이자 의무였다.
‘그러니 조금이라도 더 버티면……!’
용 가면은 점차 힘이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생명력마저 불태우며 현찬을 몰아쳤지만 그런 도핑조차 한계를 맞이했다. 용 가면은 그제야 주변 상황이 눈에 들어왔고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모든 걸 쏟아부었음에도, 아무런 타격도 주지 못했는가.’
현찬은 매우 평온한 표정이었다. 용 가면이 생명력마저 불태우며 달려든 결과는 현찬에게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했다. 그것이 그를 절망케 했다.
하지만 현찬은 내심 놀란 상태였다. <무극검신>의 상태가 된 현찬은 용 가면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가 실제로 보여준 무위는 그 이상이었다.
모든 것을 걸고 덤벼드는 자의 힘을 새삼스레 깨닫게 되었다.
‘만약 내가 <무극검신>의 상태가 아니었다면, 내가 졌을지도 모르겠어.’
그러나 현찬은 그것을 고려했기에 영웅급 영령 3명과 동시 계약을 맺었다. ‘만약’이라는 상황조차 차단하기 위한 결과가 결국 이것이었고, 현찬은 확실하게 승리를 점할 수 있었다.
현찬은 용 가면을 인정했다. 그는 강했고 훌륭한 무인이었다.
누군가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고 그것을 전부 불태울 사람은 세상에서도 찾기 힘들다.
그는 비록 적이기는 했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현찬은 그에게 자신이 지금 선보일 수 있는 최선의 공격을 펼칠 생각이었다.
‘어차피 이 상태는 나도 오래 유지 못 해.’
현찬이 아무리 강해졌다고는 하지만 영웅 중에서도 최상급을 무려 셋과 동시 계약을 맺었다. 몸에 가해지는 부담은 없었지만, 그 끝없는 마력이 밑 빠진 독처럼 쭉쭉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괜히 여기서 시간을 더 끌었다가는 본 게임에서 제대로 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할 가능성이 농후했다. 그런 일은 피해야 했다.
‘그러니 여기서 끝을 본다.’
현찬은 용 가면과 거리를 벌리며 검을 고쳐 쥐었다. 평소처럼 가볍게 한 손으로 휘두르는 것이 아닌 두 손으로 검을 쥐고서 제대로 된 자세를 취했다.
이번 일격에 모든 것을 보여줄 생각이었다.
‘온다.’
용 가면을 포함한 다른 사도들도 현찬이 진심으로 공격하려고 한다는 걸 깨달았다.
저건 막을 수 없다. 피할 수도 없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저 공격이 자신들 몸에 닿기 전까지 그것을 잊지 않고 지켜보는 것이었다.
“간다.”
<극검(極劍)>
현찬의 검이 울었다. 그리고 세상이 울었다.
검을 휘두른 자세는 보이지 않았다. 휘두르기 전과 휘두른 뒤의 자세만 보였다. 중간 과정이 가위로 싹둑 잘려나간 것처럼 부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그러나 검은 확실히 휘둘러졌고 그 궤적은 고스란히 사도들을 스치듯 지나갔다.
“아, 아아.”
용 가면은 마지막의 마지막에 가면 속에서 눈물 흘리며 감탄했다. 지금 그가 보고 있는 ‘베기’는 그야말로 무의 극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는 자들만이 펼칠 수 있는 신기였다. 그것을 두 눈으로 보는 것조차 영광이었다.
사도들은 모두 바닥에 실 끊어진 인형처럼 풀썩 쓰러졌다. 분명히 엄청난 베기였음에도 그들의 몸에는 아무런 상처도 없었다.
그러나 이 공격은 후폭풍이 매우 강했다.
현찬이 휘두른 검격을 따라 거대한 참격과 충격파가 퍼져나가며 2차 게이트의 드넓은 대지를 가로질렀다. 지면은 붕괴하지 않았다. 그 참격 앞에서 대지는 그저 매끈한 절단면을 드러내며 갈라졌을 뿐이었다.
그리고 참격은 쭈욱 나가더니 거대한 성까지 도달했다.
그 순간 성에서 붉은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 흉흉한 빛은 꿈틀거리며 움직이더니 성 앞에 거대한 방어막을 이루었다. 그리고 현찬의 참격이 방어막과 충돌했다.
세상이 사라질 것만 같은 거대한 섬광이 터졌다. 현찬은 감았던 눈을 떴다.
그곳에는 입구 부분이 무너져 내린 성이 보였다. 하지만 놀랍게도 성은 현찬의 공격을 막아냈다. 물론 이 한번을 끝으로 성이 가지고 있는 자율방어의 기능은 완전히 사라졌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역시 요새는 요새인가.”
상당히 재미있는 성이었다. 저것 또한 이계 기술 중 하나이리라.
현찬은 순식간에 성문의 앞에 당도했다. 그곳에서 다른 녀석들이 현찬을 맞이해 줄 거로 생각했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이곳에는 나 혼자다.]
오히려 상대방이 먼저 도발하듯이 현찬을 불렀다.
현찬은 그 부름을 거절할 생각이 없었다.
“혼자인 걸 후회하게 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