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8
128화 대변혁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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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현찬이 가장 먼저 게이트를 통과해 들어가자 거기에 모여 있던 몇몇 범죄자들이 현찬을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바깥의 보초가 아닌 처음 보는 사람이 들어왔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러나 이내 그들은 현찬이 누구인지 알아보았다. 세계에서 가장 이름을 떨치는 오버랭크 헌터의 얼굴을 모르는 사람은 이 자리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들의 반응은 크게 2개로 갈렸다.
하나는 놀람과 경악의 감정을 비치는 것.
그리고 두 번째는.
“침입자다!”
“죽여!”
상황을 빠르게 파악하고 현찬에게 달려드는 것.
몇 명은 몸이 뒤틀리고 덩치가 커지더니 괴물로 변했고 몇 명은 자신의 무기에 악령의 힘을 깃들여 현찬에게 휘둘렀다.
“본거지는 2차 게이트일 텐데 1차 게이트부터 많이 모여 있네.”
수십 명이 넘는 적들이 동시에 달려들고 있었지만, 현찬의 반응은 태평했다. 원래 예상했던 것보다 1차 게이트에 머무는 적들이 많다는 사실이 조금 예상외였다. 아니, 어떻게 보면 적들이 그만큼 많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촤라락!
적들이 지척까지 접근했을 때 현찬이 움직였다. 검의 형태였던 [테레이오스테(Teleióste)]가 찰흙처럼 형상이 무너지더니 이내 길쭉하게 변하며 한 자루 장창이 되었다. 현찬은 그 창의 손잡이를 쥐고서 몸을 한 바퀴 돌렸다.
몸을 회전하자 창이 주변을 빠르게 훑고 지나갔다.
현찬을 향해 달려들던 적들은 자신이 어떻게 당했는지 파악도 못 한 채 전부 반 토막 나서 바닥에 쓰러졌다. 그들의 시체는 테레이오스테(Teleióste)에 실린 화염의 기운에 불타올랐다.
현찬이 창을 회전하자 쥐불놀이처럼 불꽃이 궤적을 그렸다. 현찬은 창을 어깨에 올려놓으며 덤비는 걸 망설이는 적들에게 도발했다.
“왜. 이대로 가만히 있을 거야?”
현찬의 도발에 저들은 입술을 깨물었다. 상대는 그 오버랭크 헌터다. 이쪽이 아무리 강하다 하더라도 오버랭크 헌터라면 애초에 격이 다른 존재가 아닌가.
무려 ‘신의 계약자’다.
날고 기어도 그들은 현찬의 발끝에도 닿지 못한다.
“비켜라. 내가 나서지.”
“하여튼, 겁만 많아서는.”
그 순간 인파를 헤치고서 두 명의 남녀가 나섰다.
한 명은 덩치가 큰 거한이었고 나머지 한 명은 녹색 머리카락을 허리까지 기른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현찬은 그 둘의 기세를 느끼며 잠시 눈썹을 꿈틀거렸다. 분명히 처음 보는 둘이지만 어딘가 낯익은 느낌이 들었다.
“너희는 또 뭐야?”
“굳이 죽을 상대에게 자신의 정체를 밝힐 바보가 있을까요?”
“네놈에게서 증오스러운 신의 향기가 난다.”
아무래도 대답해 줄 생각이 없는 듯싶었다. 현찬이 자세 잡자 둘도 싸울 태세를 취했다. 다른 범죄자들이 나서지 않는 걸 보면 나름대로 실력 있는 놈들임은 틀림없었다.
덩치가 큰 남자가 이를 드러냈다.
“증오스러운 헤르메스. 원수를 여기서 갚을 수 있겠구나.”
“뭐?”
현찬이 의아해하는 순간 남자의 덩치가 커졌다. 원래부터 컸지만, 그의 몸이 점점 불어나더니 체고가 5m에 도달했다. 당연히 근육도 그만큼 불어났으며 무엇보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바로 남자의 온몸에 자라난 100개의 눈이었다.
“저건…….”
현찬도 그제야 상대가 어떤 녀석과 계약을 맺었는지 눈치챘다.
100개의 눈을 지녔다고 알려진 거인 <아르고스>
헤라의 명령을 받고서 요정 <이오>를 감시하다가 헤르메스에게 죽고 만 비운의 거인.
“저도 잊으면 슬프죠. 아테나의 계약자.”
“……그것도 알아?”
“다른 사람들은 느끼지 못하겠지만 저는 느껴요. 그 증오스러운 기운을 모를 리가 없죠.”
여인 또한 <아르고스>의 계약자처럼 변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하반신이 뱀이 되고 그녀의 녹색 머리카락은 살아 움직이는 뱀으로 변했다. 얼굴이 표독해지고 윗입술을 비집고 두 개의 날카로운 독니가 튀어나왔다.
“이번엔 <메두사>냐.”
고르곤 자매 중 막내이자 눈을 마주치기만 해도 상대를 석상으로 만들어버리는 괴물.
그녀의 전승을 생각하면 <아테나>에게 증오심을 불태울 만도 했다. 저 끔찍한 외형은 아테나의 저주를 받은 결과물이었으니까.
현찬이 자신의 양어깨에 둥둥 떠 있는 두 신을 곁눈질하자 둘 다 현찬의 시선을 피했다.
[으흠. 뭐, 난 아빠가 시켜서 한 일이었어.]
[나, 나도 딱히 잘못한 건 없다. 애초에 포세이돈과 내 신전에서 알콩달콩 나뒹굴던 녀석에게 내가 왜 자비를 베풀어야 하지?]
두 신의 변명을 듣자니 골치가 아파졌다. 설마 계약을 맺은 신의 업보를 자신이 이어받게 될 줄이야. 하지만 언젠가는 겪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서 큰 문제는 없었다.
애초에 여기서 마주친 순간 적이 누구라도 봐줄 생각은 없었으니까.
“죽어라! 증오스러운 신의 계약자여!”
“오늘 네놈의 피로 우리의 원한을 씻으리라!”
<아르고스>가 거대한 손을 뻗으며 현찬을 움켜쥐려 했고 <메두사> 머리에 있는 모든 뱀이 이를 드러내며 현찬에게 달려들었다. 둘의 움직임은 매우 신속했다. 어지간한 헌터들은 제대로 된 저항조차 힘들 정도로.
“어?”
그러나 현찬에게는 아니었다.
현찬의 모습이 갑자기 바닥에 푹 꺼지기라도 한 것처럼 사라졌다. <메두사>와 <아르고스>는 놓친 적을 찾기 위해 눈을 굴렸다.
“뒤다.”
눈이 100개나 되는 <아르고스>답게 현찬이 어느덧 자신들을 지나쳤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러나 그들이 몸을 돌렸을 때 둘의 목은 잘려나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뒤늦게 현찬을 따라 들어온 헌터 부대는 눈 앞에 펼쳐진 상황을 보며 입을 쩍 벌렸다.
“미친. 들어온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오버랭크 헌터가 강하다고는 하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이야.”
“자, 잠깐만. 저거 바닥에 뒹구는 저거 설마 <메두사> 게르티나 아니야?”
“저기 100개의 눈을 가진 <아르고스> 데릭도 있어!”
하지만 놀람의 시간을 짧았고 이성을 되찾는 시간은 더욱 짧았다.
전쟁은 이미 시작했다.
“전부 쓸어버려!”
“오늘이 마지막 싸움이다!”
현찬의 등장에 어안이 벙벙한데 거기에 더해서 수많은 헌터가 밀려오니 전직 데스페라도와 람브로눅스 조직원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누군가 당황하며 소리질렀다.
“마, 막아!”
하지만 어떻게?
일단 말은 그렇게 했지만, 누구도 딱히 방도가 없었다.
그 이유는 사방에서 몰아치는 헌터들 중에서도 눈에 띄는 오버랭크 헌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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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하! 이게 전부냐!”
미국의 오버랭크 헌터 알렉세이 윌터.
그가 주먹을 내지르고 발차기할 때마다 주변의 공간이 폭발했다. 단순히 내지르는 주먹에 나름대로 실력 있는 범죄자들이 쓸려나갔다.
“…….”
중국의 오버랭크 헌터 양 리화.
그녀 또한 묵묵히, 그러나 착실히 적들을 처리해나가고 있었다.
그녀의 몸 주위를 맴도는 분홍빛 천은 그 길이가 자유자재로 늘어나며 적들을 후려치고 공격을 막고 베어냈다. 그야말로 거대한 손 여러 개가 그녀의 몸 주위를 맴돌며 지켜주는 것 같았다.
그리고 가장 큰 활약을 선보이는 게 바로 강현찬이였다.
현찬의 움직임은 매우 소소했다. 그러나 그만큼 효율적이었다. 창을 한번 내지를 때마다 하나의 목숨이 사라진다. 그것이 1초에 여러 번 날아가니 엄청난 결과를 만들어냈다.
화염을 휘감는 창을 휘두르는 현찬은 그야말로 공포 그 자체였다.
몇몇은 공포심 때문에 자리에 주저앉아 전의를 상실했다. 그런 녀석들은 다른 헌터들의 먹잇감이 되어 순식간에 싸늘한 시체로 변했다.
“비켜라! 이 답답한 놈들!”
일방적인 싸움이 계속되나 싶었지만, 적들 사이에서도 제대로 된 녀석들이 나서기 시작했다.
“<추악공(醜惡公) 보티스>다!”
레메게톤의 72악마 중 한 명인 보티스.
녀석과 계약을 맺은 데스페라도의 전 간부 카르미네 펠리스.
심지어 그 혼자만 나타난 것이 아니었다.
“<괴완공(怪腕公) 살레오스>도 있어!”
“피해라! <약탈후(掠奪候) 샥스>야!”
레메게톤의 72악마인 <살레오스>와 <샥스>.
그들 외에도 72악마와 계약을 맺은 자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등장과 동시에 연합의 헌터들을 검은 마력으로 휩쓸어버렸다. 불의의 일격이기도 했지만, 그들은 강했다. 순식간에 몇 명의 헌터들이 스러져갔다.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역사 속, 신화 속, 설화 속에서 인지도 높은 괴물과 계약을 맺은 람브로눅스의 간부들도 나타났다.
각자 힘을 지닌 거대한 괴물로 변한 그들은 순식간에 연합 헌터들의 공격을 막아내며 반격을 가했다.
연합에서도 이명을 지닌 자들이 나서기 시작했다. 특히나 마땅한 상대가 없었던 S랭크 헌터들은 드디어 제대로 된 상대가 나타나자 두 팔 거들고 전면에 나섰다.
“악마는 제가 맡겠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눈부신 활약을 펼치는 사람이 바로 <잔 다르크>의 계약자 서다은이었다.
신의 축복을 받은 오를레앙의 성녀 <잔 다르크>답게 그녀가 가지고 있는 힘은 72악마들에게 매우 상극의 것이었다. 그녀가 손을 휘젓자 눈 부신 빛이 파도를 치며 악마의 계약자들에게 휘몰아쳤다.
“건방진 계집년이!”
“네년에게서 역겨운 냄새가 진동하는구나!”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되었다. 사방에서 폭발이 일어나고 피와 비명이 난무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세계연합>이 거의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그림이었다. 특히나 오버랭크 헌터들의 활약이 가장 눈부셨다.
“오늘 오버랭크 헌터들이 전부 죽는 날…… 커헉!”
레메게톤 72악마 <오리아스>의 계약자는 현찬에게 달려듦과 동시에 목에 구멍이 뚫려서 죽었다. 그가 두르고 있는 악마의 불도, 검은 마력도 현찬의 창을 막아낼 수 없었다.
‘중요한 건 저런 녀석들이 아니야. 2차 게이트에 머무는 놈들이지.’
현찬은 계획대로 움직였다. 2차 게이트를 통해서 적들이 몰려나오고 있었고 현찬은 그곳을 목표로 내달렸다. 현찬이 탈라리아를 신고 허공을 박차자 현찬의 몸이 앞으로 쭈욱 나아갔다.
“보내줄 것 같으냐!”
온몸이 돌로 뒤덮인 피부를 지닌 자가 현찬의 앞을 가로막았다. 현찬은 혀를 차며 돌아가려고 하는 순간 어디선가 나타난 황설영이 도깨비방망이를 휘두르며 돌로 된 거인의 관자놀이를 후려쳤다.
“크아악!”
“가세요!”
다른 적들이 몰려들었지만, 그 순간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지며 김은혁이 나타났다.
“강현찬 헌터님! 잠시 <허언구현>으로 이름 좀 빌리겠습니다!”
그는 도술로 현찬의 얼굴을 따라 하고 있었다. 현찬이 고개를 끄덕이자 김은혁은 손을 휘저으며 번개를 불러냈다. 아마 현찬이 일전에 보여준 ‘가장 강한 상태’의 모습을 따라 하는 것이리라.
제우스의 힘은 단순히 모방하고 따라 하는 것임에도 매우 강력하기 짝이 없었다.
현찬은 동료의 도움을 받아 2차 게이트로 몸을 날렸다.
게이트를 넘자 현찬을 반겨주는 것은 사방에서 몰아치는 화살의 비였다. 현찬은 즉시 아이기스의 방패를 꺼내 정면에 세웠다. 따다다다당! 무시무시한 화살의 비가 소나기처럼 내리며 방패를 때렸다. 그러나 현찬의 몸에는 어떠한 생채기도 만들지 못했다.
“환영 인사가 너무 격한 거 아닌가?”
현찬은 자신의 앞에 선 적들을 보며 웃었다.
“이 앞은 지나갈 수 없다.”
<일루베 아르카>의 사도 중 하나인 용 가면이 나서며 그렇게 말했다.
그의 좌우로는 아직 남아있는 다른 사도들이 쭉 나열해 있었다.
“거참 너무하네. 한 명한테 이렇게까지 하고.”
“그만큼 우리는 네놈이 강하다는 걸 인정했다.”
용 가면을 제외한 나머지 사도의 숫자는 총 5명이었다.
피에로 가면
여우 가면
해골 가면
베네치아 가면
페르소나 가면
그들은 각기 능력을 발동해서 당장이라도 현찬을 공격할 기세였다.
“예전에 쓰던 그 검붉은 수정구는 안 써?”
“네놈에게 먹히지 않는다는 걸 알았으니 써도 의미가 없지.”
오히려 이 자리에서 사용하면 사도들도 그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으니 상황이 더 불리해질 것이다. 현찬은 조금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
“네놈이 강하다는 건 안다. 하지만, 우리 사도 여럿을 상대로 과연 이길 수 있을까?”
“그러게. 확실히 많네.”
총 6명의 사도. 그중에는 사도 중에서 가장 강하다는 용 가면까지 있다. 다른 사도들도 두려워할 정도의 무력을 지닌 그라면 거의 오버랭크 헌터에 준하는 무력을 지녔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쪽도 수를 좀 늘려야지.”
현찬이 웃으며 그렇게 말하는 순간 거대한 마력이 현찬에서 뿜어져 나왔다.
스킬.
[계약] <서초패왕 항우>
항우의 힘이 현찬의 몸에 깃들자 사도들이 긴장했다. 하지만 두려워하지 않았다. 저 정도 수준의 무력은 이미 이쪽에서 상정한 범위 내였다. 그러나 사도들의 표정은 시간이 흐를수록 가면 안에서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스킬.
[이중 계약] <사자심왕 리처드 1세>
일전에 <안시성> 싸움에서 한번 선보였던 이중 계약이 발동되었다.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더 강해졌기에 발동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오히려 온몸에 힘이 흘러넘쳤다.
하지만.
이번 계약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스킬.
[삼중 계약] <무신 척준경>
콰아아아앙!
현찬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투기가 유형화해 주변을 폭풍처럼 몰아쳤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사도들은 등골이 써늘해졌다. 조금 전까지 느낀 현찬의 기세에 비교해 지금은 아무리 봐도 수십 배 이상은 차이 났으니까.
심지어 계약을 맺은 세 명의 영령은 역사 속에서도 개인 무력으로 상대가 없다고 평가가 자자한 자들이었다.
<영웅(英雄) 삼위일체(三位一體)>
손에 쥔 창이 다시 검의 형상으로 바뀌었다.
현찬은 전신에 가득 차오르는 힘을 느끼며 감았던 눈을 떴다.
<무극검신(武極劍神)>
“덤벼.”
현찬이 손을 까닥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