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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무한계약-127화 (127/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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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화 변화의 끝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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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놈들 움직임을 전부 파악했습니다. 예상했던 목표 포인트로 람브로눅스와 데스페라도의 잔당들이 모두 모이고 있습니다.”

“악마와 계약을 맺은 1급 특수범죄자들도 몇몇 보입니다. 게다가 신화 속 괴물과 계약을 맺은 람브로눅스의 간부들도 얼굴을 비쳤습니다.”

“숫자도 상당하지만, 무엇보다 녀석들의 실력도 만만치 않습니다. A랭크 헌터에 맞먹는 범죄자만 벌써 세 자릿수가 넘어가고 있습니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보고에 상황통제실은 더욱 바빠졌다. 그래도 적들이 애초 계획했던 대로 움직여주는 것은 고마웠다.

그렇다고 마냥 긴장 풀고 편하게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놈들도 이쪽이 들이닥칠 거라는 걸 본능적으로 직감하기라도 했는지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전례 없던 악인들의 모임이다. 나라마다 나름대로 인지도 있거나 악명을 날린 범죄자들이 전부 모였다고 봐도 무방했다.

“장난이 아니군.”

POH클랜의 간부이자 1세대 헌터 강덕수는 건틀릿 낀 손으로 거칠게 자란 턱수염을 쓰다듬었다. 범죄자 중에서 얼굴이 확인된 명단만 훑어보는데도 범상치 않은 놈들이 수두룩했다. 한때 한국에서 악명을 날리던 놈들도 더러 있었다.

“이런 놈들과 전면전을 해야 한다는 거지?”

그 또한 이번 싸움에 나섰다. 그뿐만이 아니다. 1세대 헌터들 중에서 아직도 현장에서 두 발로 뛰는 헌터들은 거의 다 나왔을 것이다.

대부분이 과거의 악연을 이 자리에서 끝내기 위해서였다.

“너무 걱정하지 마. 이쪽도 전례가 없는 병력이 모였으니까.”

“최무진…….”

성(聖)계열 능력을 사용하는 영령들이 가장 많은 클랜 ‘세인트 가디언’

강덕수와 오랫동안 알고 지내온 1세대 헌터 중 이제 몇 남지 않은 동료인 그 또한 와있었다.

“너도 왔구나.”

“내가 이 자리에서 빠질 수가 없지 않겠나.”

“그야 그렇겠지. 이 지긋지긋한 악연을 끊어야 하니까.”

“잘 알고 있네.”

1세대 헌터인 그들은 오랫동안 현장을 뛰어왔다. 최근에는 인재발굴에 열 올리고 그들을 교육, 육성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어서 활동이 뜸했지만, 종종 던전에 가서 사냥하고는 했다. 늙었지만 현역이었으니까.

오랫동안 헌터로 생활한 그들은 좋은 관계를 맺은 사람도 많았지만, 당연하게도 악연인 인물들도 있었다. 특히나 1세대 각성자, 그중에서 특히 범죄자들이 바로 그러했다.

악인이 힘을 가지게 되면 사회에 혼란을 초래한다. 특히나 20년 전 있었던 <대통합> 초기에는 사회가 혼란스러웠고 범죄가 가장 들끓었던 시절이었다.

“이 빌어먹을 놈을 20년이 지난 오늘에서야 잡을 수 있겠어.”

“그래. 정말로 길었지.”

20년 전 모든 세계가 다 혼란스러울 때 악명을 떨친 범죄자들이 있었다. 지금은 헌터 강국이 되어 세계에 이름을 널리 떨치는 한국도 마찬가지였다. 선한 영령과 계약을 맺은 각성자들이 있는 만큼 그만큼 악의 길로 빠진 자들도 많던 시절이었다.

강덕수가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는 남자 또한 그중 한 명이었다.

1급 특수범죄자 ‘나진철’

사이코패스 살인마이자 한국 신화 <두억시니>와 계약을 맺은 각성자이기도 했다.

두억시니의 기원은 조선 후기에 임방이 편찬한 천예록에 수록된 야담에 실려 있는데 여기서 두억시니는 사람들의 머리를 으깨고 죽이는 그야말로 악귀와 같은 존재로 묘사한다. 두억시니는 도깨비와 비슷하면서도 성향이 다르고 악한 성향이 강한 요괴였다.

녀석과 계약을 맺은 나진철은 그 전승을 따르기라도 하듯이 선량한 시민들의 머리를 으깨서 죽였다. 녀석에게 죽은 사람 수만 100명이 넘었고 그런 녀석을 잡겠다고 나선 헌터들도 머리가 터져 죽었다.

그 피해자 중 한 명이 바로 한때 강덕수와 최무진의 친한 후배 헌터 중 하나였다. 복수심에 휩싸인 둘은 녀석을 잡기 위해 나섰지만 나진철은 큰 피해를 보고 목숨을 부지한 채 도망치고 말았다.

그렇게 녀석을 놓치나 싶었는데 설마 여기에 있을 줄이야.

인생이란 앞날을 모르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지금만큼은 그 사실이 너무나도 반가웠다.

“어디 가서 객사라도 하지 않을까, 마음 졸이고 있었는데 잘 살아 있었어.”

강덕수가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다. 얼굴은 웃고 있지만, 그의 눈동자에는 수십 년간 쌓이고 농축된 분노가 마그마처럼 끓어오르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녀석을 찢어 죽이고 싶어서 안달이 난 그의 태도에 최무진은 진정하라며 어깨를 두드렸다.

“너무 흥분했어. 잠시 화를 식혀.”

“너는 화나지도 않아?”

“나도 화나. 그러나 지금은 진정하라는 거야. 녀석을 만나고 나서 행동해도 늦지 않으니까.”

부드럽게 말하는 최무진 또한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강덕수는 칫 하고 혀를 찼다.

“아무튼, 이거 참 이런 상황을 만들어준 강현찬 헌터에게 고마워해야겠네.”

“그러게. 평생 원수를 이렇게 만날 수 있게라도 해줬으니 이 은혜를 어찌 갚을꼬.”

“그건 차차 해나가면 되겠지.”

그보다, 하고 강덕수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디를 봐도 헌터들이 가득했다. 헌터들은 모두 자신의 무기와 방어구를 점검하며 전투 준비를 하는 중이다. 강덕수는 그들의 얼굴이 전부 낯익었다. 그렇다는 건 여기 모인 사람들이 다 한 가닥 하는 실력자들이라는 소리였다.

얼굴조차 모르는 초짜는, 그의 기억에 없으니까.

“하나같이 범상치 않은 놈들만 모았어.”

특히나 2세대 헌터로 불리는 사람들이 가장 많았다. 한국뿐만이 아니었다. 현찬이 담당하는 작전지역의 헌터들은 일본과 동남아 쪽 사람들도 많이 모여 있었다. 한국에서도 나름 이름이 몇 번 들리거나 뉴스에서 본 적 있는 헌터들이 섞여 있었다.

“2세대 헌터들이야 말로 범죄자들을 가장 증오하는 녀석들일 테니까.”

최무진의 말에 강덕수도 알고 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1세대 헌터가 가장 먼저 각성을 한 헌터들이라면, 2세대 헌터들은 그 이후에 각성한 자들이다. 다시 말하자면 각성하기 전 혼란의 시기를 보냈고 그렇기에 누구보다도 약자의 괴로움을 아는 자들이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범죄자들을 증오하고 싫어하는 자들이기도 했다.

“아마 이 자리에 나온 대부분의 2세대 녀석들은…… 복수심에 온 거겠지.”

강덕수는 씁쓸함에 머리를 거칠게 긁적였다. 저들이 저렇게 된 건 순전히 1세대인 자신들이 범죄자들을 제대로 막아내지 못했던 탓이다.

물론 그들은 최선을 다했다. 밀려오는 몬스터들을 막고 범죄자들과 하루가 멀다고 싸웠다. 그러나 수가 너무 부족했고 그들에게도 한계가 있었다.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약자들은 괴로움에 눈물 흘렸고 그 모습을 보며 무력감을 곱씹었다.

“하지만 이제 아니야.”

“그래. 그런 끔찍한 일은 한 번이면 족해. 그러니 우리가 온 거지. 그리고…… 저 녀석들도.”

최무진의 시선 끝에는 화랑클랜장 최덕현과 그 휘하 부하들이 보였다.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헌터들이 다 모였다. 서로 섞여 있진 않았지만, 일본 헌터들 또한 몰려 있었다.

“저 녀석은 일본의 그 유명한 <무사시>잖아? 저자도 왔나? 십미천호와의 싸움에서 무척 크게 다쳤다고 들었는데.”

“우리 클랜 다은이가 치료해줬다.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강현찬 헌터에게 은혜를 갚고 싶다면서 클랜의 만류를 뿌리치고 자원했다고 하더라고.”

“허. 제법인걸.”

일본은 <십미천호>와의 싸움으로 너무나 큰 피해를 보고 말았다. 특히나 각 국가의 강함의 척도가 되던 S랭크 헌터들의 죽음은 뼈아픈 상처였다. 그것을 제외하고도 한국에 커다란 빚을 지고 민심이 돌아서는 등 많은 변화가 생기기도 했다.

그래서 일본은 이번 싸움에 많은 병력을 보내지 않았다. 특히나 고랭크 헌터들의 움직임을 극히 제한하며 몸을 사리려고 했다. 그런 상황에서 저 <무사시>의 계약자가 이 자리에 와있다는 것은 제법 놀라운 일이었다.

“중국의 그 삼 형제까지 왔다며?”

“어디 그 셋 뿐일까. 위, 촉, 오 군주들과 계약 맺은 헌터들도 거의 다 모였어.”

“오호대장군도?”

“<악비>의 계약자까지 모였으니 말 다 했지.”

“정말 역사상 전례가 없는 연합군이군.”

둘의 대화는 그걸로 끝이었다. 분위기가 어수선해지는 것을 보아 곧 격전을 시작할 걸 눈치챘다. 둘은 각자 이끌고 온 클랜 동료들을 데리고서 싸울 준비를 마쳤다. 그중에서는 당연히 <삼손>의 계약자인 강윤과 <잔 다르크>의 계약자인 서다은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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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이다.”

현찬은 탈라리아를 신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작전은 간단하다. 놈들이 전부 모였으니 게이트를 기습하여 친다. 물론 바깥을 지키는 놈들이 있겠지만 그런 녀석들은 먼저 나선 추적조가 조용히 그리고 은밀하게 제거했을 것이다.

“그쪽도 움직이고 있나요?”

“물론이지. 작전대로…… 라고 해도 그냥 시원하게 싸우는 거지만 제대로 가고 있다.”

“여기…… 도요.”

무전을 통해 알렉세이와 양 리화의 대답이 돌아왔다. 둘이 이끄는 부대와 현찬이 이끄는 부대는 서로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놈들의 본거지가 있는 게이트는 마치 문어발처럼 하나의 게이트가 세계 곳곳과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어쩐지, 놈들이 어떻게 어디든 막 나타나는가 했더니 게이트가 저렇게 연결되어 있었을 줄이야.’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게이트는 절대로 출입구가 여러 개일리 없었다. 아마 놈들 수장인 에르카넬 그라델이라는 자가 어떤 방법을 사용해 그렇게 만든 것이 틀림없었다. 사도들의 몸에 걸려있는 금제만 봐도 그럴 가능성은 농후했다.

‘하지만 역으로 그것이 독이 되었지.’

놈들의 본거지가 연결된 게이트의 위치는 전부 파악한 상태였다. 총 5개나 되는 게이트 입구로 대규모의 군대가 동시에 들이닥칠 것이다. 그중 3개의 입구에서는 각자 오버랭크 헌터들이 선봉에 선다.

전투에 참여한 S랭크 헌터만 10명이 넘어가고 A랭크 헌터는 그보다 훨씬 더 많았다. 거기에 더해서 어디 가서도 실력이 꿀린다는 소리 듣지 않는 B~B+랭크 헌터들도 있으니 <세계연합>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병력이었다.

그리고 이들의 창과 칼끝이 향하는 곳은 바로 세상을 좀먹는 암세포들.

놈들은 지금까지 저질러 온 모든 악행의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그것도 몇 배나 더 많이.

“움직입니다.”

현찬이 탈라리아를 신고서 날아가자 그 뒤를 다른 헌터들이 따랐다. 전사계열은 강인한 체력을 바탕으로 빠르게 달렸고 주술사나 마법사 계열은 각자 마법을 사용하여 뒤를 쫓았다.

목표는 숲의 깊은 곳, 골짜기 중간 바위 안쪽에 숨겨진 1번 게이트.

현찬이 이끄는 부대가 그곳에 도착했을 때 먼저 도착한 추적조가 반겨주었다. 그들은 맡은 바 임무를 충실히 해냈다. 그것도 아주 성공적으로.

“놈들의 보초는 전부 다 제거했습니다.”

“들키지 않았나요?”

“일부러 들키지 않는 이상 그럴 일은 없습니다.”

“믿음직스럽네요.”

과연 쓰러진 보초병들을 보니 자신들이 대체 언제 당했는지도 모른 채 죽어있었다. 괜히 A랭크 헌터 수준으로 추적조를 꾸린 게 아니었다.

현찬이 도착한 이후로 다른 게이트에도 부대가 속속히 도착했다는 전보가 들려왔다.

현찬은 뒤를 돌아보았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긴장감이 역력해 보였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목숨이 오가는 싸움이 시작된다. 당연히 긴장될 수밖에.

그러니 저들에게는 용기가 필요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현찬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모두에게 들릴 정도로 공간을 울렸다.

“저희는 승리할 겁니다.”

단순한 말이었지만, 전쟁과 지혜의 여신인 <아테나>의 가호가 서린 목소리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아군의 사기를 충족시키고 용기를 북돋우며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앞두고 신체 능력을 올려주는 사기적인 스킬.

상당한 마력을 잡아먹지만, 현찬은 개의치 않고 썼다.

그 덕분인지 사람들 표정에서 긴장이 사라지고 어딘가 깊은 열망이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모두가 몸이 근질거려서 참을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갑시다.”

현찬은 게이트를 향해 걸어가며 말했다.

“변화의 끝을 맞이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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