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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무한계약-124화 (124/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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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화 십미천호(十尾天狐)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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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찬은 쏜살같이 떨어져 내리며 보검을 휘둘렀다. 목표는 <십미천호>의 미간이었다. 검이 지닌 위력, 영령이 지닌 권능, 현찬이 보유한 힘. 이 모든 것이 하나로 뭉쳐진 일격이다. 적중하기만 한다면 치명타일 게 틀림없었다.

보통의 <난제>라면 어지간한 공격은 먹히지 않으니 회피에 열 올리지 않는다. 오히려 몸으로 공격을 받아내고 그 틈에 반격해 상대방을 잡아먹는다.

그러나 <십미천호>는 위기감을 느끼고서 몸을 틀었다.

휘리릭!

<십미천호>의 거대한 몸이 빠르게 회전했다. 새하얀 털이 격류처럼 공간을 가르며 흘렀다. 전력은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힘이 담긴 현찬의 일격은 원래 목표였던 <십미천호>의 미간을 노리지 못했다.

촤아악!

그나마 다행히 <십미천호>의 반응이 약간 늦었다. 현찬의 공격은 미간을 노리지 못했지만, 놈의 왼쪽 얼굴에 기다란 상처를 남겼다. 새하얀 털이 붉은 피로 물들었다. <십미천호>가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질렀다.

녀석의 충혈된 눈동자가 현찬을 노려보았다. 그 끝없는 살기와 증오가 현찬의 몸을 뒤덮었다. 현찬은 살기를 마주하고 있었지만 아무렇지 않다는 듯 몸을 털며 자세를 잡았다.

“생각보다 날쌔네.”

설마 이 신속한 일격을 피할 줄은 몰랐다. 완벽하게 피하지 못했지만, 치명타를 확신했던 현찬으로서는 조금 놀랄 수밖에 없었다. 녀석은 거대한 덩치에 걸맞지 않은 민첩함을 지니고 있었다.

“게다가 신중하기도 하고.”

뿜어내는 살기는 진짜였다. 그러나 <십미천호>는 함부로 움직이지 않았다.

이를 드러내고 현찬을 노려보면서도 섣불리 달려들지 않았다. 그저 조심히 그리고 조용히 현찬을 살필 뿐이었다.

녀석도 느낀 것이다. 지금까지 싸워왔던 그 어떤 적보다도 현찬이 가장 위험하다는 것을.

‘<난제>라 하더라도 여우는 여우라 이건가. 분노한 상황에서도 저런 신중함이라니. 저 가슴팍의 검만 아니었다면 더 날쌔고 교활한 녀석이었겠어.’

그리고 교활한 놈일수록 자신의 힘을 잘 발휘하고 싸우는 방법을 안다. 특히나 꼬리마다 독특한 능력을 지닌 <십미천호>는 본디 가진 힘의 위력보다 능력의 활용이라는 부분에서 매우 까다로운 상대가 되리라.

‘녀석이 이성을 찾기 전에 몰아친다.’

저쪽에서 먼저 다가올 생각이 없다면 이쪽에서 먼저 접근하면 된다. 현찬이 몸을 낮추고 지면을 박찼다. 그 힘이 얼마나 강했는지 현찬이 조금 전까지 서 있던 지면이 무너지며 파편이 뒤로 튀었다.

촤악! 십미천호의 꼬리가 날개처럼 사방으로 퍼졌다. 각 꼬리 끝에서 거대한 마력의 격류가 모이더니 이내 꼬리마다 지닌 특성이 발동했다. 첫 번째 꼬리부터 열 번째 꼬리까지 불과 얼음, 번개, 바람, 흙, 독, 안개, 저주, 방어막, 환상을 선보였다.

십미천호의 모습이 순식간에 3개로 갈라졌다. 거기에 더해서 개체마다 반투명한 방어막이 펼쳐졌다. 주변에 뿌연 안개가 일어나며 시야를 가렸고 땅이 일어나 길을 막았다. 그리고 현찬에게 온갖 공격이 비처럼 쏟아졌다.

현찬의 몸이 엿가락처럼 쭈욱 늘어났다. 가로막는 벽을 높게 뛰어오르며 밟고 그것을 박차며 더욱 빠르게 앞으로 나아갔다. 현찬이 밟고 지나간 토벽이 와르르 무너졌다. 현찬은 쏜살같이 나아가며 안개를 갈랐다.

뜨거운 화염이 지면을 가득 메운 채 파도처럼 밀려왔다. 거대한 얼음 창이 바람을 가르며 날아왔고 꼬리의 끝에서 뿜어져 나온 전류가 레이저처럼 쏘아졌다.

그런 현찬의 앞에 거대한 거울이 나타났다.

<차용>[조마경(照魔鏡)]

요괴의 본모습을 비추는 본질의 거울이자 온갖 술법과 도술을 반사하는 무구였다.

<십미천호>가 날린 모든 공격은 그대로 조마경과 충돌했다. 조마경은 모든 공격을 빨아들이더니 이내 그것을 <십미천호>를 향해 쏘아냈다.

자신의 공격이 설마 되돌아올 줄 몰랐는지 <십미천호>는 화들짝 놀라 높게 점프해 허공을 박찼다. 이름이 괜히 천호(天狐)인 게 아니었다. 녀석은 아주 짧지만, 허공에서 한 번 더 도약했다.

반사해 돌아오는 공격이 꼬리 끝을 스치고 지나갔다. 조금만 늦었어도 크게 당할 뻔했다. 그러나 <십미천호>는 복부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고통에 눈을 부릅뜰 수밖에 없었다. <십미천호>의 거대한 몸이 솟아오른 것보다 더 빠른 속도로 추락했다.

콰아앙!

거대한 충격파가 사방으로 퍼지며 뿌연 먼지구름이 퍼졌다. 지면이 쩍쩍 갈라지고 나무들이 옆으로 쓰러졌다. 산 전체가 울렸다. 숲의 동물들이 놀라서 더 먼 곳으로 도망쳤다. 현찬은 녀석의 배에 꽂아 넣은 보검을 뽑으며 뒤로 물러났다. 현찬이 조금 전까지 서 있던 자리를 날카로운 꼬리가 가로질렀다.

“역시 이런 공격으로 쓰러지지는 않는 건가.”

덩치도 크고 과연 <난제>라고 불리는 녀석답다. 제대로 된 타격을 가해도 죽지 않고 오히려 더 흉포하게 변해서 난동을 피웠다. <십미천호>는 싸우는 법을 아는 몬스터였다. 녀석이 경험을 더 쌓는다면 정말로 엄청난 적이 될 가능성이 컸다.

“혹시 말할 줄 알아? 아니면 사람으로 변신할 줄 아나?”

크르르르!

현찬의 넉살스러운 물음에도 십미천호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보통 저 정도 되는 녀석이라면 인간으로 둔갑도 하고 인간 이상의 지성을 지녔을 텐데도 십미천호는 별 반응이 없었다.

[아무래도 네가 생각하는 그런 전개는 벌어지지 않는 것 같은데?]

[말 못 하는 사나운 짐승에게 뭘 바라는 것이냐.]

헤르메스와 아테나가 저렇게 말하니 현찬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아쉽네.’

보통 이야기 흐름을 보면 현찬에게 시종일관 밀리던 <십미천호>가 아름다운 인간으로 둔갑하여 현찬에게 살려달라고 빌며 결국에 그 아래에 들어와서 충실한 부하가 된다. 하지만 그런 편의적인 일이 현실에서는 벌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보니 하나 있기는 했구나.’

현찬은 자신의 몸에 착 달라붙어 갑옷의 역할을 대신 해주는 어스름달에게 잠시 시선을 던졌다가 원래대로 되돌렸다.

‘뭐 됐다. 어차피 부하들이 필요할 정도로 급하지도 않고 거기에 목을 맬 필요도 없으니까.’

그러니 이제 힘 조절을 하지 않고 전력으로 갈 생각이었다.

“마지막으로 묻지. 말할 줄 알아?”

크르르!

“못 해?”

크와아아앙!

“그럼 죽어야지.”

현찬의 모습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십미천호>의 몸이 움찔 떨렸다. 녀석은 눈동자를 굴리며 현찬을 찾았다. 눈으로 찾을 수 없자 10개가 넘는 꼬리를 사방으로 휘두르며 주변에 폭풍을 불러왔다.

그 순간이었다.

서걱!

십미천호의 꼬리 중 하나가 잘려나갔다. 거대한 꼬리가 떨어지며 지면을 울렸다. 피가 뿜어져 나왔고 십미천호가 고통에 찬 고함을 내질렀다. 녀석은 고개를 돌려 현찬의 위치를 찾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 순간 또 다른 꼬리가 잘려나갔다.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고통에 몸부림치는 와중에 현찬은 집요하게 녀석의 꼬리를 노리고 또 노렸다. 십미천호가 가지고 있던 10개의 꼬리는 단 하나만을 남긴 채 전부 잘려나가고 말았다.

하늘에 뜬 헬기는 그 광경을 고스란히 카메라에 담았다.

“아아! 여러분! 보십시오! 대단합니다! 수많은 헌터들이 힘을 합쳐도 해내지 못한 일을 강현찬 헌터는 단 혼자서 해내고 있습니다! 대단합니다! 정말 대단합니다!”

상황을 지켜보던 기자들은 입에 침을 튀겨가며 현찬의 전투를 실시간으로 중계했다. 오버랭크 헌터와 난제의 싸움은 방송을 통해 일본 전역으로 송출되고 있었다. 일본 국민도 현찬을 응원했다.

- 이겨라! 저 여우를 죽여버려!

- 잘한다! 나 이제부터 강현찬 헌터 팬 할래!

- 쓸모없는 일본 헌터보다 한국 헌터 한 명이 더 세다WWWWWWWWWWWWW

시민들은 땀난 주먹을 쥔 채 싸움을 지켜봤다. 현찬이 십미천호의 꼬리를 하나씩 잘라 낼 때마다 월드컵에서 골을 넣은 것처럼 도시 전체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특히나 도쿄 시민들은 더욱 열광했다. 현찬이 아니었다면 십미천호의 목적은 도쿄가 되었을 테니까.

당연히 방송은 일본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나오고 있었다.

- 와, 이젠 그냥 혼자서 떡이 되도록 두들기네.

- 너무 압도적으로 이기고 있으니 위기감조차 느껴지지 않을 정도네요.

- 국뽕 하지 않으려고 해도 할 수밖에 없게 만드네.-

- 주모! 여기 국뽕 한 사발 더!

나름대로 인지도 있는 헌터들도 현찬이 싸우는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화면 속에서 현찬은 십미천호의 마지막 하나 남은 꼬리를 장작처럼 반으로 쪼개버렸다. 녀석이 비명을 질렀고 그 틈에 현찬이 십미천호의 등을 타고 내달렸다.

“대단해. 저렇게나 뛰어난 균형감각이라니.”

“움직임에 군더더기가 없어. 게다가 몬스터의 움직임을 읽고서 거기에 맞춰 발걸음을 내딛다니. 너는 저런 거 할 수 있어?”

“미쳤어? 저런 건 고도의 훈련을 받아도 불가능해. 오버랭크 헌터니까 가능한 거지.”

고랭크 헌터들은 현찬의 움직임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현찬이 보여주는 모습은 일반인이 보기에 그냥 몬스터와 싸우는 거겠지만 조금 더 몬스터와 싸우는데 전문 지식이 있는 그들의 눈에는 다르게 비쳤다.

저렇게 미친 듯이 몸을 비틀며 날뛰는 <십미천호>의 등 뒤를 아무런 흔들림 없이 달리는 것만 해도 이미 어지간한 헌터들은 할 수 없는 짓이었다.

아니, 이제 십미천호라고 부를 수 없게 되었다. 녀석이 자랑하고 있던 10개의 꼬리는 전부 다 잘려나갔으니까. 단 하나의 꼬리도 없는 녀석은 너무나도 초라하게 보였다.

“이쯤 되면 <난제>라는 녀석이 불쌍해질 정도로군.”

“옆 나라를 공포로 몰고 간 몬스터가 단 한 명에게 이렇게 당하다니.”

그리고 그 광경을 보는 것은 각 국가에 퍼진 사도들도 마찬가지였다.

“강현찬. 이야기는 들었지만 정말로 강해. 도저히 정면대결로 싸워서 이길 수 없겠어.”

“저런 미친놈이 우리들 정체에 관해서 알고 우리 조직을 적대한다고? 저걸 어떻게 막아?”

“용 가면이 아닌 이상 우리들은 도저히 막을 수 없는 재앙 같은 놈일세.”

마법을 이용해 원거리에서도 짧은 시간 통화할 수 있는 그들은 현찬의 싸움을 높게 평가했다. 용 가면만이 오직 조용히 가만히 그 광경을 지켜볼 뿐이었다. 아니, 용 가면에 이어 새 가면 또한 가만히 현찬이 싸우는 모습을 보고만 있었다.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른 사도들은 몰랐다. 얼굴이 가면으로 가려져 있어서 표정조차 읽을 수 없었다. 그들은 서로를 무슨 무슨 가면이라고만 알지 그들의 진짜 정체는 전부 몰랐다.

한마디씩 내뱉은 사도들은 혹여나 용 가면이나 새 가면이 입을 열지 않을까 신경을 곤두세웠지만 둘 다 말하는 일은 없었다.

싸움은 순식간에 끝났다.

<십미천호>가 마지막으로 현찬을 향해 날카로운 이빨을 들이밀었다. 덩치가 워낙 크다 보니 녀석의 이빨만 해도 사람의 상반신 크기와 비슷했다. 거기에 찔리면 말 그대로 몸이 찢겨나가다 못해 박살 날 것이다.

그러나 <십미천호>는 현찬의 몸을 물지 못했다. 녀석의 거대한 몸은 이미 보이지 않는 반투명한 줄에 꽁꽁 묶여서 자리에 고정됐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강태공은 훌륭한 낚시꾼이었지.”

<십미천호>의 몸을 묶은 것은 바로 낚싯줄이었다. 십미천호는 끙끙대며 몸을 움직이려 했지만, 낚싯줄은 오히려 녀석의 몸을 더 강하게 옥죄였다. 그리고 그것은 십미천호를 더 강하게 구속했다.

“잘 가라.”

현찬의 검이 <십미천호>의 목을 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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