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3
123화 십미천호(十尾天狐) (1)
_
일본 후쿠시마현 남쪽에 자리 잡은 다이샤쿠 산(帝釈山). 그곳에 새하얀 털을 지닌 거대한 여우가 산을 오르고 있었다.
<난제>인 <십미천호>는 앞을 가로막는 것은 거침없이 치워 버렸고 산과 절벽이 있어도 옆으로 돌아가는 일 없이 오직 앞으로 나아갔다. 군대의 강력한 화력은 <십미천호>의 분노를 부채질하는 연료가 되었고, 일본의 헌터들은 십미천호에게 달려들 엄두도 못 냈다.
S랭크 헌터도 싸우다 죽은 녀석이다. S랭크보다 실력이 떨어지는 그들은 달려드는 순간 싸움다운 싸움조차 하지 못하고 죽고 말 것이다. 그들은 그저 십미천호가 부디 이쪽에 관심 두지 않길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십미천호는 거침없이 진격했다. 높은 산 정도야 몸집이 큰 십미천호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한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몇 미터씩 나아갔고 거친 바위와 빽빽한 나무는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못했다.
투타타타타타!
그런 십미천호의 주위로 헬기들이 날아다니며 녀석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촬영했다. 십미천호는 헬기를 무시했다. 자신을 직접 건드리지 않는 이상 놈은 반응하지 않았다. 방송국의 헬기 조종사들도 그걸 알기 때문에 십미천호의 주위를 돌고 있었다.
물론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서 거리는 상당히 벌린 상태였다. 그들은 자살 지망생이 아니었다. 무슨 일이 발생하면 바로 도망갈 안전거리는 당연히 유지해야 했다. 어차피 멀리 있어도 카메라의 성능이 워낙 좋다 보니 십미천호의 모습이 가까이서 보는 것처럼 선명하게 보였다.
“여러분 보이십니까! 십미천호가 계속 움직이고 있습니다! 헌터들도, 군대도 그들을 막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쩌면 좋습니까. 이대로라면 놈은 도쿄까지 가게 됩니다. 일본은 이렇게 끝나는 걸까요?”
일본 방송을 틀면 모든 채널이 실시간으로 십미천호에 관해서 다루고 있었다. 잠자는 여우의 심기를 건드리고 말았으니 당연히 일본 정부는 똥줄이 타고 있었다. 언제나 정부 눈치를 살살 보던 언론도 이번만큼은 그들을 확실하게 물어뜯었다.
“하카세 교수님. 이번 사태에 대해서 어떻게 보십니까?”
“에. 아무래도 이번 정부는 시민들의 분노를 피해가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모두에게 <난제>를 토벌할 수 있다고 당당하게 선포했는데 결과를 보십시오. 무엇보다 이웃 나라인 한국의 오버랭크 헌터가 직접 도와준다고 했는데도 그 도움을 걷어찼습니다. 자기들의 힘으로 충분하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죠.”
“네. 실패했습니다. 그것도 아주 처참하게 실패했습니다. 지금까지 조용히 지내던 <난제>는 그야말로 미쳐 날뛰면서 도쿄로 남하하고 있죠. 앞을 가로막는 것은 전부 부수면서 오고 있습니다. 싸움에 참여했던 헌터들 중에서도 생존자는 오직 한 명입니다. 그마저도 지금 혼수상태에 빠져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죠.”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됐다고 생각하십니까?”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근거 없는 모든 행동의 대가를 치렀다고 봐야겠죠. 솔직히 문제점은 많습니다. <난제>에 관한 정보도 부족했고 녀석을 쓰러뜨리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헌터가 필요했는지도 제대로 파악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적당히, 이 정도면 되겠지라는 안일한 생각만 가지고 할 수 있다고 판단한 거예요. 실패해도 녀석이 가만히 있을 거로 생각한 겁니다.”
“십미천호는 정말 도쿄로 올까요?”
“정부는 십미천호가 중간에 지쳐서 멈출 거라고 말하고 있지만, 지금의 진격 속도와 실시간으로 중개되는 모습을 보면 전혀 그러지 않을 겁니다.”
TV에 나온 교수는 자신의 손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닦으며 한숨을 토해냈다.
“솔직히 저희에게도 잘못은 있습니다. 지금까지 이런 정부를 믿고 따라온 것이 문제죠. 분명히 잘못됐음에도 그것에 불만을 느끼지 않고 가만히 있던 대가를 치르는 겁니다. 조금 더 나섰어야 했습니다. 눈치를 보지 않고 소신대로 발언하고 그들을 규탄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와서 이러는 것도 늦었죠.”
“십미천호를 막을 방법이 없을까요?”
“오버랭크 헌터가 나서면 됩니다. S랭크 헌터와 차원이 다른 강함을 지닌 그들이라면 신들과 계약을 맺은 영웅들이라면 충분히 가능하겠죠.”
“그렇다면 오버랭크 헌터들의 지원을 바라면 되지 않을까요?”
하카세 교수는 고개를 저었다.
“현재 중국의 오버랭크 헌터는 천흉과의 싸움으로 휴식을 취하고 있고 미국과 유럽의 오버랭크 헌터들은 거리가 멀어서 지금 출발해도 십미천호가 도쿄에 도달하기 전에 도착하지 못합니다.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것은 가장 가까운 한국의 오버랭크 헌터인데, 문제는 그의 도움을 정부에서 거절했다는 거죠.”
“지금이라도 당장 부탁을 하면 안 될까요?”
“해야죠. 바보가 아니라면 그렇게 해야 합니다. 하지만 오버랭크 헌터의 심기를 건드렸는데 대체 누가 도우러 오겠습니까? 솔직히 어지간한 성인군자가 아닌 이상 핑계를 대면서 빠질 수도 있습니다.”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힘들다.
일본은 끝났다.
교수는 그렇게 말했다.
일본의 2ch에서도 그런 교수의 말에 동감하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몇몇 우익이 정부가 그럴 리 없다고, 일본 자위대가 다 쓰러뜨릴 거라고 어그로를 끌었지만, 그 주장은 전혀 설득력이 없었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의 욕을 얻어먹기만 했다.
시민들의 분노는 무능한 정부를 향했다.
- 지금까지 그렇게 한국이랑 중국 욕하고 무시하더니 이게 무슨 꼴이냐.
- 그쪽은 자기들 난제 다 처리했는데 우리만 망함wwwwwww
- 이 기회에 이놈들 전부 다 갈아엎어야 한다.
- 기회는 무슨, 다 끝나게 생겼는데. 도쿄에 사는 사람들은 살고 싶으면 모두 도망쳐.
- 난 삿포로라 살았다wwwwwwww
- 나 키타카타 사는데, 옆에 반다이 산 날아갔어.
모두가 대부분 그렇게 절망하고 있었다.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십미천호를 막을 수 없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 순간 기적이 일어났다.
“여러분! 보십시오!”
한 기자의 외침에 카메라가 멀리서부터 다가오는 한 헬기를 잡았다. 흰색의 바탕 위에 붉거나 푸른 무늬가 그려진 방송국 헬기와는 확연히 다른 묵빛의 군용 헬기였다. 단 한 대의 헬기는 높은 고도를 유지하며 십미천호에게 접근하고 있었다.
딱히 특별할 것 없는 헬기였지만 사람들의 관심은 모두 거기에 집중되었다.
헬기가 아닌, 그 헬기 안에 탄 사람에게.
헬기의 문이 열리며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헬기의 모터 바람에 머리카락이 휘날렸고 그의 얼굴이 화면에 선명하게 잡혔다.
“그! 그가 왔습니다!”
당연히 채팅창은 난리가 났다.
- 뭐야뭐야! 누군데! 누가 온 건데!
- 히익! 진짜다! 진짜로 왔어!
- 정말이야? 정말로 왔다고?
- 이제 살았다wwwwwwwwwwww
실시간으로 상황을 지켜보던 기자는 자신의 흥분을 주체하지 못했다. 그는 침을 튀겨가며 소리를 질렀다.
“대한민국의 오버랭크 헌터 강현찬이 왔습니다! 여러분 보십시오! 저 당당한 자태를! 그가 저희를 구하러 왔습니다!”
현찬을 태운 헬기는 십미천호의 머리 위까지 도달했다. 고도만 수백 미터는 돼 보이는 데도 현찬은 전혀 두려움 없이 헬기 밖으로 몸을 빼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십미천호도 무언가를 느꼈는지 걸음을 멈추며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 왔다! 왔다! 왔어!
- 그런데 혼자서 온 거야? 다른 사람들 없이?
- 그게 가능 한가? 아무리 오버랭크라고 하지만 혼자라고!
- 멍청이들아. 오버랭크 헌터가 괜히 오버랭크인줄 알아? 당연히 강하니까 혼자 온 거 아니야! 다른 사람이 있으면 오히려 방해라고!
실시간으로 상황을 지켜보던 교수도 아연해서는 멍하니 화면 속 현찬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교, 교수님. 강현찬 헌터가 정말로 왔습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아무래도…….”
교수는 흘러내린 안경을 고쳐 썼다.
“정말로 기적이 일어났나 봅니다.”
&
“가까이서 보니까 더 크네.”
“예전 전성기의 저와 크기가 비슷한 거 같아요.”
현찬의 혼잣말에 어스름달이 받아주었다. 가까이서 본 십미천호는 화면에서 잡힌 모습보다 더 거대해 보였다. 아니, 실제로 더 덩치가 커졌다. 원래 체고가 10m는 됐던 녀석이 지금은 거의 15m에 달했다.
[그 짧은 시간 안에 저렇게 크기가 커졌다고?]
[으음. 아무래도 진화한 것 같구나.]
몬스터들도 생명체다. 그것도 이계의 생명체. 놈들도 다른 생명체들처럼 무언가를 먹기도 하고 때로는 진화하기도 한다. 이미 상식을 벗어난 놈들도 가득한 덕분에 짧은 시간에 진화를 이루었다고 해서 이상할 건 없었다.
“생물학적으로 말이 안 되지만, 뭐…… 이제 와서 상식을 들먹이기엔 좀 늦은 감이 없지 않아 있지.”
아마 덩치가 커진 만큼 놈은 더 강해졌을 것이다. 지금까지 쉬지 않고 많은 것을 때려 부수며 움직이느라 에너지도 많이 소모했을 텐데 전혀 지친 기색이 보이지 않는 것도 그러했다. 현찬은 <헤르메스의 눈>을 발동시켰다.
“과연. 지금까지 사냥했던 <난제>들과 비교하면 차원이 다른 마석을 가지고 있구나.”
현찬의 눈앞의 정보창이 <십미천호>가 강한 이유를 알려주었다. 녀석의 몸속에 있는 마석은 지금까지 보았던 그 어떤 몬스터의 마석보다 더 농도가 높고 크기가 컸다. 다른 <난제>와 비교가 되지 않을 수준이었다.
<십미천호>가 실시간으로 강해지는 것도 그 마석의 영향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제대로 된 힘을 선보인 적이 없는 녀석이 본격적으로 힘을 사용하자 거기에 호응하여 마석이 에너지를 뿜어냈고 육체가 거기에 걸맞게 진화한 것이다.
“시간 끌면 위험하겠어.”
<십미천호>는 힘을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더욱 강해지는 놈이었다. 약했을 때 싸웠다면 쉽게 이겼겠지만, 지금은 그 수준을 넘어섰다. 심지어 싸우면서 계속 강해질 것이다. 강해지는 데에 한계가 존재하겠지만, 싸우는 처지에서는 끔찍한 일이었다.
“그러니 빠르게 승부를 본다.”
현찬은 그렇게 말하며 헬기에서 뛰어내렸다. 두 다리가 밝게 빛나더니 이내 날개가 달린 신발로 바뀌었다. 현찬은 하늘을 날지 않았다. 오히려 탈라리아를 신고 허공을 박찼다. <십미천호>를 향해 떨어져 내리던 현찬의 몸이 가속도가 붙어 더욱 빨라졌다.
수백 미터가 넘는 거리는 순식간에 좁혀졌다. 현찬은 테레이오스테를 뽑아 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마력을 운용하여 스킬을 발동했다.
<계약>
테레이오스테가 형상을 바꾸며 장검으로 바뀌었다. 현찬의 복장이 중국의 도복처럼 변하며 바람에 펄럭였다.
‘여우를 잡는데 이만한 사람이 없지.’
신화나 설화 속에서 여우 요괴 중에서 가장 끔찍했던 녀석은 일본의 3대 악귀 중 하나인 <백면금모구미호(白面金毛九尾狐)>다.
무려 4200년 전부터 존재했던 이 녀석은 수많은 악행을 저지른 끝에 에도시대의 나스노(那須野) 평원에서 최후를 맞이하고 만다.
그런 끔직한 전설을 지닌 최강의 요호가 단 한 번 쪽도 쓰지 못하고 쫓겨난 적이 있었다. 바로 중국의 주나라 때다.
은나라 주왕의 황후 달기로서 나라를 멸망으로 떨어뜨린 요호, 백면금모구미호는 주나라 무왕의 측근참모에게 호되게 당해 악행의 대가를 치르고 만다.
둔갑한 본모습은 조마경(照魔鏡)에 고스란히 드러났고, 그가 뽑아서 던진 보검을 피하려고 몸을 셋으로 나누어 황급히 도망치고 말았다.
그 주나라 무왕의 측근참모가 바로 제나라 초대 군주인 강여상(姜呂尙).
흔히 사람들이 부르기를
<시조(始祖) 강태공(姜太公)>
백면금모구미를 혈혈단신으로 쫓아낸 당대 최고의 제상이자 도술가이자.
여우 요괴를 상대로 최강의 상성을 자랑하는 영웅급 영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