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2
122화 나쁜 놈들 정리하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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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의 본거지를 알아냈지만, 현찬과 알렉세이는 서두르지 않았다. 그 사실을 일단 최대한 숨기기로 했다. 괜히 어딘가에 이야기했다가 놈들이 심어놓은 스파이들에게 들켜 기껏 알아낸 정보가 무용지물이 될 수 있었다.
“어차피 놈들의 본거지는 쉽게 들어갈 수 없어요. 지구에 없으니까요.”
“지구에 없다? 그렇다는 건 다른 공간에 있다는 소리로군?”
“예.”
현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놈들은 커다란 게이트 하나를 거점으로 삼고 있어요.”
토끼 가면을 통해 얻은 정보는 이러했다.
놈들이 머무는 거점은 몬스터들이 튀어나오는 게이트다. 그것도 나름 대형 게이트로서 크기도 크지만, 상당히 강력한 몬스터들이 거주하는 곳이다. 놈들은 몬스터들을 제거하고 게이트의 핵을 유지한 채 그곳에 똬리를 틀었다.
“일반적인 게이트라면 보통 누군가에게 들키기라도 했을 텐데?”
“그냥 게이트가 아닙니다. 더블 게이트죠.”
더블 게이트.
게이트 내부에 있는 또 다른 게이트를 말한다.
게이트라고 모두 지구와 바로 연결되는 건 아니었다. 어떤 게이트는 게이트 내부에서 발생하기도 한다. 그런 경우 두 종류의 몬스터가 섞여서 서로 싸워서 한쪽이 자멸하고는 한다. 그러나 몬스터들이 게이트의 핵을 파괴하지는 않으니 자연스레 게이트는 유지되는 것이었다.
“과연, 그거라면 다른 사람들의 눈을 피할 수 있었겠어.”
게이트 내부의 게이트라면 그 입구 부분만 어떻게든 가리면 들킬 일이 거의 없다. 그렇다고 1차 게이트의 핵이 파괴되면 그들로서도 문제가 있으니 아마 남들 몰래 게이트를 클리어하는 사람들을 제거해왔을 것이다.
“일단 잠자코 있어야 한다는 건가?”
“네. 지금 바로 공격하는 것은 하수나 할 짓이죠.”
“…… 무슨 계획이라도 세운 것 같군?”
현찬은 대답하지 않고 그저 웃을 뿐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알렉세이는 현찬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허무맹랑한 계획에 저런 자신감을 보일 사람은 아니니 꽤 그럴싸한 방법이겠지. 그 짧은 시간에 앞으로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생각해냈다는 게 놀랍군.’
저것은 헤르메스의 계약자로서의 힘이 아닌 현찬 본인이 지닌 재능일 확률이 높았다.
“굳이 알렉세이 씨와 설영 씨에게 숨길 생각은 없어요.”
아무렴, 앞으로 함께 싸워나갈 동료들에게까지 숨길 정도로 중요한 정보는 아니다. 무엇보다 이 계획은 알렉세이가 알아둬야만 하는 것이었다. 누가 뭐래도 일단 세상의 흐름을 끌고 가는 자는 알렉세이였으니까.
“제 계획은 이겁니다.”
현찬이 설명하자 알렉세이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그러더니 이내 입가에 호선을 그리며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정말 재미있어서 견딜 수가 없다는 반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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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제 <스왈로우>와 <울트락투스>의 토벌이 성공하자 전 세계 사람들은 모두 희망을 품었다. 인류의 영웅들이 눈에 보이는 성과를 계속 내놓으니 불안에 빠진 시민들은 환호했고 그들을 찬양했다.
이대로 가면 다른 <난제>들의 토벌도 일사천리로 이루어질 것이다.
안 그래도 최근에 대대적인 범죄자들의 소탕 덕분에 치안도 좋아지고 있었고 각성자들이 계속 늘어나는 추세였다. 미래를 향한 대비는 빠르지는 않지만, 차근차근 나아가고 있었다.
다만, 그런 상황에서도 웃지 못하는 나라가 있었다.
바로 일본이었다.
“허. 그렇게 큰소리치더니 인제야 도와달라고요?”
원래라면 한국에 돌아온 현찬은 바로 다음 난제인 <대붕응자조>를 사냥하려고 했다. 그러나 한국 정부의 부탁으로 인해 현찬은 그것을 뒤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그 이유를 전해 들은 현찬은 허,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는 현찬 전담이 되어 이야기를 나누는 정기원 실장은 그 감정을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무래도 그쪽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모양입니다. 자신만만하게 큰소리치며 난제의 토벌에 나섰는데 시원하게 박살 났으니 어떻게 보면 당연한 반응이겠죠.”
현찬은 귀찮다는 듯이 머리를 긁적였다.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건 어떻게 보면 당연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국에 있는 <난제>인 <십미천호>를 사냥하겠다며 호언장담하던 일본이 그야말로 박살 나버린 것이다.
일본의 혼슈 최북단의 아오모리현(青森県)에 가만히 있던 <십미천호>는 그 사건을 기점으로 남쪽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정기원 실장은 가지고 있던 타블렛을 현찬에게 건네주었다. <십미천호>의 동영상이었다.
10개의 꼬리를 지닌 거대한 여우가 눈앞에 보이는 것을 닥치는 대로 파괴하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영상은 아주 멀리 떨어진 장소에서 헬기로 촬영한 것인데도 카메라가 심하게 흔들렸다.
“굉장히 강하네요.”
새하얀 털과 10개의 꼬리를 지닌 여우. 체고만 10m에 달하는 <십미천호>는 꼬리마다 독특한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꼬리가 휘둘러지면 불, 얼음, 번개, 독 안개가 퍼져나가며 주변 일대를 휩쓸었다.
<십미천호>가 입을 열더니 입에서 새하얀 마력을 레이저처럼 쏘았다. 그것은 주변의 산맥을 쓰윽 훑고 지나갔고, 약간의 시간 차를 두고서 뜨거운 불기둥이 장벽처럼 촤라락 솟아올랐다.
“이거 참. 천흉과 견주어도 밀리지 않을 녀석인데.”
현찬의 눈은 <십미천호>의 목 아래 가슴팍의 하얀 털에 꽂혔다. 그곳에는 날카로운 카타나(刀) 한 자루가 깊게 박혀있었다. 피가 흘러나오며 <십미천호>의 새하얀 털이 일부분 붉게 물들어 있었다.
[대단하네. 꼬리마다 특성이 있어. 심지어 위력도 세고.]
[특히나 상처 입은 짐승은 더욱 흉포해지는 법이지. 원래부터 강한 녀석이 미쳐 날뛰니 그야말로 재앙이 따로 없구나.]
영상은 <십미천호>가 산 하나를 날리면서 끝났다. 괜히 골치가 아파져서 현찬은 머리를 거칠게 긁었다.
“대체 어쩌다가 상황이 이 지경까지 된 거죠?”
영상만으로는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 정기원은 자신이 보고받은 사실들을 현찬에게 전부 설명해주었다.
일본은 <십미천호>를 확실하게 처리할 자신을 품고서 자국의 고랭크 헌터들을 불러 모았다. 그들은 <십미천호>가 잠든 틈을 타서 기습을 날렸고 <십미천호>에게 제대로 된 타격을 가했다. 그것은 미리 짜둔 계획대로 흘러갔다. 상처 입은 <십미천호>가 날뛰었고 일본 헌터들은 미리 정했던 대로 역할을 분담하여 움직였다.
문제가 있다면 아마 그들이 <십미천호>에 관한 정보가 부족했기 때문이리라.
<십미천호>는 처음 등장하고서 자신의 진정한 힘을 선보이지 않았다. 그것을 알지 못했던 일본의 헌터들은 <십미천호>의 꼬리가 가진 각 특성에 의해서 마땅한 대처도 하지 못한 채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았다.
“사전에 정보도 없이 무작정 달려들었다가 당했다는 말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확실히 처음 본 능력을 갑자기 사용한다면 당황할 만도 하겠죠. 그렇다 쳐도 대처가 너무 안일했어요.”
일본이 저지른 가장 큰 실수는 바로 <십미천호>를 사냥하는데 인원을 조금 투입했다는 점이다.
S랭크 헌터 3명과 A~A+랭크 헌터가 총 30명. 이 정도 숫자만 해도 어지간한 몬스터는 순식간에 죽일 수 있지만 난제에게는 이 정도도 부족하다.
[오버랭크 헌터 둘이서 난제를 잡았다고 해서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여긴 건가? 난제를 우습게 본 건지, 오버랭크 헌터를 우습게 본 건지 모르겠네.]
[어쩌면 둘 다일 수도 있지. 이길 수 있다는 안일함이 오히려 화를 키웠구나.]
두 신의 말을 뒤로하며 현찬은 고민했다. 일본 정부에서 너무 당당하게 현찬의 도움이 필요 없다고 해서 무언가 숨겨놓은 한 수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게 없었을 줄이야.
“지금도 <십미천호>는 계속 남하하고 있다고 합니다.”
“목적지가 어디죠?”
“도쿄입니다. 녀석은 도쿄를 향해서 일직선으로 쭉 나아가고 있습니다. 앞을 가로막는 것은 전부 치워버리면서요.”
아오모리에서 도쿄까지라면 거의 혼슈 끝에서 끝이다. 현찬은 영상에서 본 <십미천호>의 가슴 깊이 박힌 카타나가 떠올랐다.
“<십미천호>와 싸워서 살아남은 헌터가 있나요?”
“예. 일본의 S랭크 헌터인 미야모토 무사시입니다.”
“무사시? 계약을 맺은 영령이 누구죠?”
“그것도 <미야모토 무사시>입니다. 자신과 계약을 맺은 영령을 너무 존경해서 그 가명을 쓰고 있다고 하더군요.”
<미야모토 무사시>
두 자루의 검을 사용하는 이천일류(二天一流)의 시조이자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검호다.
확실히 그 정도의 영령과 계약을 맺었다면 그 헌터도 S랭크 정도는 충분히 달 만했다.
“그 무사시라는 녀석은 어디에 있죠?”
“그, 그게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흠.”
현찬은 피처럼 붉게 물든 <십미천호>의 두 눈동자가 떠올랐다.
“대충 견적이 나오네요.”
“네?”
“그 무사시라는 녀석, 지금 도쿄에 있을 겁니다. 살아있지만 분명히 상처도 클 테고 그 정도의 헌터를 살리기 위해서라면 일본에서도 가장 좋은 시설과 훌륭한 힐러들이 있는 곳에서 치료하겠죠.”
그리고 그 장소가 바로 도쿄다.
“문제는 <십미천호>의 가슴에 박힌 저 카타나 저게 그 무사시라는 인간의 거라는 거죠. 녀석은 지금 분노한 상태고 자신의 원수를 잡아서 죽이기 위해 쫓아가는 겁니다.”
“하, 하지만 저 위치에서 도쿄까지 대체 어떻게 알고 가는 거죠?”
“그거야 저도 모르죠. 저렇게 다양한 능력을 지닌 난제라면 자신의 몸에 칼을 박아 넣은 원수의 위치 정도야 실시간으로 파악하는 능력 정도는 지니고 있지 않을까요.”
아무렴. 하나 같이 다 괴물밖에 없는 <난제>인데 거기서 그런 능력이 있다고 해서 딱히 이상할 건 없었다.
<십미천호>가 가는 길에 있는 도시의 시민들은 빠르게 대피했고 도쿄도 비상이 걸렸다. 하지만 다른 도시는 피난을 하면서도 도쿄의 움직임은 미적지근하다고 정기원 실장이 설명 해 주었다.
“아마 <십미천호>가 오는 도중에 힘이 다 빠질 거로 생각해서 그러는 것 같습니다.”
“안일한 판단 때문에 그렇게 됐으면서 또 그런 생각을 품는 건가요.”
일본 당국은 ‘설마 도쿄까지 오겠어?’라는 안일한 생각을 품은 것 같지만 현찬이 보기엔 3일 내로 <십미천호>는 도쿄에 당도할 것이다.
녀석이 도쿄에 도착하는 순간, 도쿄는 그 날로 사라진다.
현찬이 보기에 온갖 공격을 펑펑 날리는 <십미천호>는 전혀 지쳐 보이지 않았다. 그 끝이 없어 보이는 힘은 누군가 강제로 녀석을 쓰러뜨리지 않는 이상 멈추지 않을 것이다.
“솔직히 그쪽이 너무 괘씸해서 마음 같아서는 망하라고 내버려 두고 싶네요.”
하지만 일본의 선량한 시민들마저 무시할 수 없었다.
그들은 지금도 언제 <십미천호>가 들이닥칠지 몰라서 불안에 떨고 있으리라.
그들에게는 죄가 없었다.
“도와주겠다고 전해주세요. 아니, 그럴 필요 없이 최대한 빠르게 출발해야겠네요. 정기원 실장님이라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네. 그쪽 정부에 최대한 많이 뜯어내겠습니다.”
“하하! 제가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이네요.”
이쪽의 호의를 거부하고 자기들 독단으로 이런 결말을 초래했으니 아마 일본 정부는 속이 엄청나게 탈 것이다. 한국 정부에서 그것을 빌미로 요구를 한다면 일본으로서는 눈물을 머금고 들어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옛날부터 일본 여행은 한 번쯤은 가보고 싶었어.’
[그쪽은 쓸데없는 신들이 너무 많았는데 어디 어떤 나라인지 확인 좀 해 볼까. 게다가 은근히 먹거리가 많은 곳이라면서?]
[그, 그러고 보니 나는 언제 <소환>할 것이냐!]
현찬은 <대붕응자조>보다 먼저 <십미천호>를 사냥하기로 했다.
어차피 과정만 달라질 뿐 모든 <난제>를 사냥한다는 결과는 변하지 않을 테니까.
“자. 그러면 가자. 나쁜 놈들 정리하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