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9
119화 태양신의 아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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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오오오오!
숲이 비명 질렀다. 나무들은 의지를 지니고서 살아서 일어났다. 나뭇잎 하나하나가 살의를 품고 가늘게 떨렸다. 뿌리는 흙을 뚫고 솟아올랐고 가지는 길게 늘어나 하늘을 향해 뻗어 나갔다.
무시무시한 화력을 쏟아부었는데도 스왈로우에게 가해진 타격은 극히 미미했다. 나무 몇 그루가 탔을 뿐이었다. 스왈로우는 그 자체만으로 거대한 요새였다. 게이트에서 튀어나온 몬스터답게 현대 병기로는 거의 피해를 줄 수 없었다.
‘어차피 바라지도 않았어.’
공군의 힘을 빌린 폭격은 스왈로우의 시선을 돌리기 위한 것이었다. 다른 곳으로 정신이 분산되는 만큼 황설영이 마음 놓고 능력을 발동할 수 있었다.
지속해서 폭격이 떨어지는 와중에 황설영은 약간 떨어진 곳에 자리 잡았다. 그녀는 두 손을 지면에 가져대 댔다. 눈을 감고 자연을 느끼며 마력을 움직였다. 마력은 의지에 따라 나무의 뿌리에 달라붙었다.
뿌드드득!
나무의 뿌리가 흙무더기와 함께 들어 올려졌다. 나무는 황설영이 내린 명령대로 스왈로우와 거리를 벌렸다. 뿌리가 연체동물의 다리처럼 움직이며 장소를 옮겼다. 적당한 장소에 도달하자 뿌리가 지면으로 파고들며 다시 원래 나무로 돌아갔다.
이런 광경이 황설영을 중심으로 넓은 장소에서 동시에 펼쳐지고 있었다. 나무들이 일어나며 자리를 옮겼다. 나무가 사라진 공백이 거대한 경계선을 그렸다.
오오오오오오!
스왈로우가 무언가 일어나고 있음을 감지했다. 자신에게 힘과 생명력을 불어넣어 주는 숲 외곽의 나무들이 사라진 것이다. 스왈로우는 무차별 폭격을 당하는 와중에도 주모자를 찾기 위해 감각을 넓게 퍼뜨렸다.
찾았다.
스왈로우는 자신의 영역 바깥에서 무언가 수작을 부리는 황설영의 존재를 느꼈다. 대체 무슨 짓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그것이 자신에게 썩 좋은 일은 아니라는 걸 스왈로우는 알 수 있었다.
“녀석이 눈치챘어요. 이제 저희가 움직여야 합니다.”
“물론이지. 레이디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당연히 두 팔 걷고 나서야 하지 않겠는가.”
알렉세이가 무전으로 이제 빠지라고 지시하자 끝없이 쏟아져 내리던 공격이 뚝 끊겼다. 전투기들이 방향을 틀어 자리에서 벗어났고 현찬과 알렉세이가 마음 놓고 싸울 환경을 만들어 주었다. 스왈로우의 시선이 이쪽을 향하는 게 느껴졌다.
“할리우드의 영화에서 볼 법한 징그러운 크리처로군.”
수천, 수만이 넘는 나무줄기들은 갈 곳을 잃은 채 방황하고 있었다. 현찬과 알렉세이가 점점 다가오니 스왈로우는 둘의 존재감을 느끼고 관심을 쏟아부었다. 새로운 먹잇감이 들어오려고 하자 반가워하는 것이었다.
[으엑. 징그러워.]
[이계의 존재들은 참으로 신비롭군. 이런 괴물이 있을 줄이야.]
헤르메스와 아테나 또한 스왈로우가 보여주는 기괴한 모습에 눈살을 찌푸렸다.
현찬과 알렉세이는 멈추지 않고 스왈로우의 영역에 발자국을 찍었다. 그리고 그것이 싸움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다.
쐐애액!
수천 가닥의 나무줄기가 길게 늘어나며 현찬과 알렉세이를 노렸다. 알렉세이가 걱정하지 말라며 현찬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 주었다.
“내가 먼저 앞장서도록 하지.”
그렇게 말하는 그의 근육은 평소보다 더 부풀어 있었다. 그야말로 터질 것 같은 근육에 현찬마저 움찔할 정도였다. 알렉세이는 몸을 낮추었다. 두 손으로 땅을 짚으며 단거리 달리기 출발 자세를 취했다.
창끝처럼 날카로운 나무줄기가 다가왔을 때 알렉세이가 움직였다.
투콰앙!
그의 몸이 흐릿해지는가 싶더니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그 직후 알렉세이가 서 있던 지면이 폭탄을 맞은 것처럼 터져나가며 흙먼지를 뿌렸다.
거대한 충격이 그 뒤를 따랐다. 알렉세이가 지나가면서 만든 강렬한 소닉붐의 충격파가 수천 가닥의 나무줄기를 모두 찢어발겼다. 고열의 폭발에도 견뎌낸 나뭇가지는 알렉세이의 마력이 담긴 움직임 앞에서 이쑤시개에 지나지 않았다.
알렉세이는 그야말로 대포였다. 앞으로 달려가며 눈앞에 있는 것이 그 무엇이든지 몸으로 들이받고 그것을 산산조각냈다. 거대한 나무의 기둥도 수천 가닥의 줄기도 질기고 튼튼한 뿌리도 알렉세이를 붙잡지 못했다.
그는 뭐든지 부순다. 압도적인 힘으로 가로막는 것은 전부 박살 냈다.
오버랭크 헌터인 그에게는 그만한 힘이 있었다.
“우리도 질 수만은 없지.”
현찬은 테레이오스테를 꺼내 쥐었다. 헤파이스토스가 만들어 준 이 신급 무구에 마력을 불어넣자 검신이 잘게 진동했다. 테레이오스테에 내장한 2번째 스킬을 발동시켰다.
<불카누스(Vulcanus)>
화르륵! 테레이오스테의 검은 검신에 뜨거운 불길이 맴돌았다. 검에 실린 주홍빛 불길이 이글거리며 자신의 먹잇감을 탐하려 혓바닥을 날름댔다. 현찬은 땅에서 솟아오른 뿌리를 뒤로 백 텀블링으로 피하며 검을 휘둘렀다.
화르륵!
검의 궤적에 따라 불길이 일어나며 뿌리를 태워버렸다. 현찬은 바닥에 착지함과 동시에 정면으로 내달렸다. 신체 능력이 불카누스의 마력으로 강화됐고 현찬은 한 줄기의 화염이 되어 숲을 누볐다.
검이 한번 휘둘러 질 때마다 불길이 일어나 나무를 태웠다. 숲으로 이루어진 스왈로우를 상대로 헤파이스토스의 힘이 담긴 무기는 뛰어난 상성을 발휘했다.
신의 불길은 너무나도 강했다. 그것은 나무줄기의 끝에 닿기만 해도 엄청난 속도로 줄기를 타고 올라가 나무를 뿌리째 불태워 버렸다.
크오오오오오!!
스왈로우가 비명을 질렀다. 자신의 숲이 이렇게나 크게 손상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예전에 50여 명 정도의 헌터들이 숲에 들어왔을 때도 이 정도로 다치지 않았다. 오히려 스왈로우는 그들이 자는 틈을 타서 쥐도 새도 모르게 잡아먹었다.
하지만 지금 싸우는 둘은 달랐다.
강하다.
강해도 너무 강했다.
알렉세이는 엄청난 강도의 육체로 모든 것을 파괴했다. 단순히 정면을 향해 달릴 뿐인데도 스왈로우의 공격은 녀석을 멈추지 못했다. 붙잡으려고 줄기를 뻗으면 근처에 가기만 해도 줄기가 찢겨 나갔다.
현찬은 반대로 스왈로우가 가장 싫어하는 불을 사용했다. 그냥 불도 아니다. 악한 것을 태우며 가장 격이 높다고 알려진 신의 불을 사용했다. 일반 불에 저항력을 지닌 스왈로우조차 신의 불에는 방도가 없었다.
거기에 더해서 지금 숲 주변으로 무언가 일을 벌이는 황설영의 존재 또한 스왈로우의 신경을 계속 건드렸다. 하지만 그녀는 아직 직접 스왈로우에게 피해 주지 않았다.
스왈로우는 선택했다.
일단 자신의 영역에 들어와서 난동을 피우는 이 둘을 가장 먼저 제거해야 했다.
남은 것은 그 뒤에 처리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그 선택이 의지가 되어 숲을 움직였다. 쿠구구구! 지면이 크게 진동하더니 지형이 바뀌기 시작했다. 나무들이 뒤틀리며 이상하게 움직였고 지면이 퍼즐 블록처럼 들쑥날쑥했다.
질주를 멈출 줄 모르던 알렉세이도 멈춰서 자리를 지키며 사태의 흐름을 주시했고 현찬 또한 탈라리아를 신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숲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나무들이 모습을 감추더니 이내 지면에서 흙을 뚫고 거대한 버섯들이 불쑥 솟아올랐다. 버섯은 거대했다. 높이만 3m에 달하는 버섯은 꾸물꾸물 움직이더니 사방으로 포자를 흩뿌렸다. 현찬은 뒤로 크게 날아오르며 포자를 피해냈다.
[현찬아! 맹독이야!]
‘알고 있어.’
현찬은 알렉세이에게도 경고를 날리려고 했지만, 그는 포자의 독 따위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주먹과 발차기를 내지르고 있었다. 그가 주먹을 한번 내지를 때마다 파앙! 공기가 터져나가며 일직선으로 지면에 상처를 남겼다. 나무와 버섯들이 쓸려나가는 것은 당연했다.
[저쪽은 딱히 신경 쓰지 않아도 되겠구나.]
알렉세이의 신체는 너무나도 강하다 보니 이런 독에도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았다. 현찬은 불카누스의 화염으로 다가오는 포자들을 모조리 태워버렸다. 부피가 크다 보니 한번 붙은 불을 사방으로 퍼져나가며 화염의 장막을 만들어냈다.
뜨거운 화염이 불꽃을 휘날리며 몰아쳤다. 그런 화염을 뚫고서 두꺼운 나무줄기들이 현찬을 노렸다.
‘진화한다!’
조금 전까지 불길을 견디지 못하던 나무줄기가 지금은 점차 견뎌내기 시작했다. 물론 지금도 오래 버티지 못하고 타버려서 재가 됐지만, 녀석이 점차 상황에 적응한다는 건 확실해 보였다.
현찬은 <헤르메스의 눈>을 발동시켰다.
그리고 확인해 본 결과 싸움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이쪽이 점차 불리하게 흘러간다는 것이었다.
‘음?’
그 순간 현찬의 시선 끝에서 무언가 잡혔다. 수많은 정보의 흐름 속에서 무언가 이질적인 것이 잡힌 것이다. 현찬은 즉시 그곳을 향해 날아갔다. 거대한 나무의 뿌리 틈새에 사람 한 명이 묶여 있었다.
“사도?”
나무와 몸의 절반이 동화한 녀석은 얼굴에 토끼 모양 가면을 쓰고 있었다. 현찬은 녀석이 사도임을 확신했다. 그러지 않고서야 이런 장소에서 가면 쓴 사람이 있을 리가 없었다. 확인해 보니 정신을 잃었을 뿐 아직 죽지 않았다.
‘대체 녀석이 왜 여기에 붙잡혀 있는 거지? 스왈로우를 상대로 무언가를 해보려고 했다가 오히려 역공당한 건가? 사도 정도나 되는 녀석들이 이렇게 당하다니 뭔가 이상한데?’
하지만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길게 고민할 수 없었다. 현찬은 일단 검을 휘둘러 토끼 가면과 동화한 나무를 잘라냈다. 자세히 보니 몸 상태가 매우 심각했다. 현찬은 빠르게 움직이며 토끼 가면을 스왈로우의 영역 바깥에 놔두었다.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지만 일단 바로 정신을 차릴 것 같지는 않아. 확인하는 것은 스왈로우를 잡고 해도 늦지 않을 터.’
현찬은 하늘 높이 날아올라 넓은 숲을 한눈에 담았다. 바깥 숲들이 차근차근 움직이며 스왈로우의 영역에서 벗어나 거리를 두고 있었다. 황설영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 자신의 마력을 계속 주입하고 있었다.
‘조금만 더 하면 된다!’
그동안 시간을 더 끌어야 했다. 현찬은 수직으로 떨어져 내리며 숲의 중심으로 내려왔다. 그와 동시에 주변에 거대한 화염의 폭풍을 몰고 왔다. 스왈로우의 관심이 다시 현찬에게 집중되었다.
강해진 나무줄기들은 화염에 쉽게 타지 않았다. 몇 개의 공격이 현찬의 사각지대를 파고들어 현찬에게 적중했다. 몸에 충격이 왔지만 어스름달이 그것을 전부 다 흡수했기 때문에 현찬에게 가해지는 피해는 없었다.
“주인님은 누구도 못 건드린다구요!”
“그래, 고맙다.”
스왈로우의 공격은 더욱 거세게 변했다. 놈은 대지를 움직여 현찬의 화염을 집어삼키려 했다. 그것으로 화염을 다 삼키지는 못했지만, 그 빈틈을 노려 강화한 나무뿌리와 줄기로 현찬의 목숨을 줄기차게 노렸다.
주변의 모든 것이 스왈로우의 공격으로 뒤덮인 상황에서 현찬이 바깥의 상황을 살필 방법은 헤르메스의 도움밖에 없었다.
‘헤르메스! 아직 멀었어?’
그의 계산대로라면 이제 곧 황설영이 스왈로우가 지배하는 숲을 고립시킬 것이다. 현찬은 바로 그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봐 현찬! 아직 멀었나!”
멀리서 폭발음이 다가오는가 싶더니 솟아오른 지층의 벽을 부수며 알렉세이가 나타났다. 그도 나름 험난한 싸움을 계속했는지 겉에 입은 방어구는 헤져 있었으며 왁스로 깔끔하게 넘긴 머리카락은 산발이었다.
“다친 데는 없어요?”
“아직은.”
알렉세이의 몸 위로는 푸르스름한 이끼가 가득 뒤덮고 있었다. 그는 투덜거리면서 손으로 이끼들을 털어냈다. 생명체에 달라붙어 피부에 기생하며 양분을 빨아들이는 식인 이끼는 알렉세이에게 있어서 몸 위에 쌓인 눈 수준밖에 되지 않았다.
“이제 별별 공격을 다 하는군요.”
“단지 숲이 움직인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그런 안일한 생각은 버려야겠어.”
“그래도 뭐 이제는 괜찮습니다.”
현찬은 고개를 들어 하늘에 뜬 헤르메스를 보았다.
“시간이 다 됐거든요.”
황설영이 숲을 떼어내는 작업을 끝냈다는 신호였다.
[현찬아 지금이야!]
“알고 있어.”
현찬은 자신의 마력을 운용하며 계약 스킬을 발동시켰다.
“알렉세이 씨. 이번에 제가 부르는 녀석은 좀 위험하니까 영역 바깥으로 나가셔야 할 거예요. 근처에 일루베 아르카의 사도 한 놈이 있으니까 녀석이 혹시나 도망치지 못하게 감시를 부탁할게요.”
“혼자서 괜찮겠나?”
“괜찮다니요.”
계약을 받아들인 영령이 현찬에게 힘을 빌려주었다. 현찬의 주위로 뜨거운 열기가 점차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그것은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 나무줄기와 뿌리를 모조리 잿더미로 만들었다.
“혼자서 충분합니다.”
순리를 거스르지 않는 선에서 부를 수 있는 영령은 준신급이 한계였다. 그래서 현찬은 준신급에 준하는 영령과 계약을 맺어 이 자리에 불러냈다.
그는 태양신의 아들이자 전장에서 누구보다 용맹했던 전사였다.
마하바라타의 영웅 <아르주나>의 이복형이자 최대 라이벌인 그는 신들에게도 각인될 정도로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마지막에 온갖 저주를 받아 영웅에게 패배했지만 그렇게 해야만 겨우 이길 정도로 강한 남자였다.
태양신 수리야의 아들 <카르나>
그에게 있어서 <스왈로우>의 숲은 장작더미에 지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