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4
114화 뜻밖의 침공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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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어떻게 넘어온 거지?’
현찬은 검을 겨눈 채 언제라도 악마를 향해 검을 휘두를 준비를 했다. 아직 악마는 여유 부리고 있었다. 아마 상대가 단 둘뿐이고 기본적으로 다른 종족을 깔보는 성격이 한몫하는 것 같았다.
스킬 <헤르메스의 눈>
현찬의 두 눈동자가 금색으로 물들었다. 현찬의 동공이 악마가 튀어나온 붉은 균열을 바라보았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정보들이 균열에서 흘러나와 현찬의 눈앞에 펼쳐졌다. 저곳이 어떤 장소인지, 저 악마의 정체가 무엇인지, 저 세계에는 무엇이 있는지 등등. 다양한 정보들이 펼쳐졌다.
‘하지만 아직 부족해.’
저쪽에서 정확히 어떤 방법으로 차원을 넘어왔는지에 관한 정보는 나오지 않았다. 균열의 틈이 작은 탓에 흘러나오는 정보의 양도 한정됐다. 결국에는 눈앞의 악마를 통해서 알아낼 수밖에 없었다.
“네놈 정체가 대체 뭐냐.”
“음?”
팔짱 끼고 있던 악마는 현찬의 물음에 눈을 빛냈다. 덩치에 비하면 매우 자그마한 악마의 두 눈동자에서 붉은 광채가 폭사했다. 녀석의 입꼬리가 귀 아래까지 쭈욱 찢어지며 기괴한 미소를 그렸다.
“건방지구나. 하지만 대단하기도 해. 고작 인간 따위가 내 앞에서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하게 질문하는 걸 보면 말이야.”
악마는 현찬을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옆에 있는 강윤은 잔뜩 긴장을 한 채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지만, 현찬은 전혀 아무렇지 않아 보였기 때문이었다. 자신을 눈앞에 두고도 이렇게 겁먹지 않은 인간이 얼마나 있던가.
“내 소개를 하지. 나는 겔루키스 제3군단의 천인장, 이장각(二長角)의 부르파스다.”
“…… 다른 세계의 존재가 여기 어떻게 온 거지?”
“크흐흐! 웃기는 인간이구나. 내가 너에게 그런 말을 할 이유가 있는가?”
부르파스는 지금 이 건방진 인간을 당장 죽이지 않는 것만 해도 그가 충분히 자비를 베푸는 거로 생각했다. 지금 당장 현찬과 강윤을 죽이려고 손쓰지 않는 이유는 그저 약간의 유흥일 뿐이었다.
이 흥미로운 인간을 향한 자그마한 호기심이 부르파스가 손쓰는 것을 막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소소한 즐거움이 끝나는 순간 자신의 손으로 살육의 시간이 도래했음을 알리게 되리라.
“거 참, 알려줄 수도 있는 거 아니야? 어차피 너는 우리를 다 죽일 생각이잖아?”
“크흐흐. 왜 그렇게 생각하지? 너희들이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서 살려줄 수도 있는데 말이지.”
“바보가 아닌 이상 목격자를 이대로 내버려 둘 리 없지. 다른 녀석들을 이끌지 않고 혼자서 넘어온 것을 보면 아직 차원을 넘기에는 많은 인원은 불가능하고 한 둘이 전부일 거 아니야? 그렇다고 혼자서 한 세계를 상대로 덤빌 리는 없을 테고 대충 몰래 와서 상황을 파악하는 게 주목적이 아닌가?”
“호오?”
현찬의 추측은 전부 정답이었다. 부르파스는 자신의 동요를 들키지 않으려고 애써 담담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상당히 놀란 상태였다.
‘별거 아닌 인간이라고 생각했는데 대단한 통찰력이로군. 죽이기 참 아까울 정도야.’
부르파스는 분명히 인간을 경멸했다. 어떻게 보면 경멸이라는 감정조차 아까웠다. 가축보다 못한 존재를 보면서 그런 생각은 들지 않았으니까. 그렇기에 별로 큰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지금만큼은 예외였다.
부르파스는 현찬에게 알 수 없는 호기심과 약간의 호감을 느꼈다. 그것이 애완동물을 향한 그것과 비슷하다며 애써 자신을 합리화하며 입을 열었다.
“상당히 머리가 잘 굴러가는 인간이구나. 그래. 네 말이 맞다. 그 사실을 굳이 숨길 필요는 없겠지.”
“그렇다 해도 놀라운걸. 설마 악마의 세계가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는 기술을 가지고 있을 줄이야.”
“기술이라고 해도 뭣도 아니다. 그저 지금까지 우리가 지배했던 다른 세계의 다양한 것들을 하나로 총집합해서 만든 혼돈의 산물이니까. 그마저도 불완전하지. 넘어올 수 있는 것은 수준이 일정 수준 아래여야 하며 심지어 숫자도 많아야 둘이 전부니까.”
“직접 차원을 넘지 않고 중간단계인 게이트로 넘어온 것도 그런 이유인가?”
“그래. 차원과 차원의 벽은 두껍다. 시간이 지나면 점점 얇아지며 서로가 이어지는 <문>이 생기겠지만 아직은 아니지. 아무리 대단한 기술력이라 하더라도 차원의 벽을 뚫는 것은 불가능하거든.”
그렇기에 악마들은 꼼수를 부렸다.
“아주 작은 틈을 뚫는 건 가능하다. 그것도 차원과 차원의 사이에 있는 벽이 아닌 가장 가까운 차원의 게이트 벽을 말이지.”
게이트는 결국 차원과 차원의 틈새에 존재하는 것이다. 즉, 악마들은 게이트를 일종의 징검다리로 이용해 뚫고 들어온 것이다. 물론 그것마저도 완전하지는 않기 때문에 넘어갈 수 있는 수도 한정되어 있고 강한 존재는 쉽게 넘어갈 수 없었다.
부르파스야말로 이 벽을 넘을 수 있는 악마 중에서 가장 강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현찬은 그런 정보들을 모조리 긁어모았다.
“너는 스스로 이장각이라고 밝혔는데 그건 대체 뭐지?”
“우리들의 강함의 척도다.”
부르파스는 그것이 자랑이라도 되는 양 자부심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등 뒤에 자리 잡은 악마의 날개 또한 감정에 호응하여 활짝 펼쳐졌다.
“보통 악마는 일단각(一短角)이 대부분이지. 하지만 그보다 더 강해지면 뿔의 길이가 길어지고 그보다 더 강해지면 뿔의 숫자가 더 늘어난다. 일단각에서 일장각으로 그리고 일장각에서 이단각으로. 나는 그것마저 뛰어넘어 이장각이 된 군단의 천인장이지.”
그렇게 말하면서 그는 날카로운 손톱이 자란 손가락으로 자신의 이마 중앙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아주 자그마한 뿔이 하나 솟아나려고 하고 있었다.
“이제 곧 삼각을 바라보고 있지만 말이야.”
“그렇다면 너보다 뿔이 더 많은 존재도 있겠군?”
“그렇다. 나보다 강한 존재들은 상당히 많지. 특히나 사각 그리고 그보다 훨씬 강한 왕의 자격을 지닌 오각왕(五角王)들은 그야말로 최강의 존재들이다. 내가 속한 겔루키스 또한 오각왕이 이끄는 군단이지.”
“다른 오각왕도 있나?”
“오각왕은 총 5명이다. 우리는 그들을 펜타이블(penta evil)이라고 부르지.”
심마왕(深魔王) 겔루키스.
염옥마왕(炎獄魔王) 파르고잔.
멸세마왕(滅世魔王) 그라두크.
굉천마왕(轟天魔王) 세아리스.
추혼마왕(追魂魔王) 옥사비누스.
이 다섯 명의 오각왕은 각자의 영토를 가진 채 서로 대립하며 다른 차원 정복에 열을 올리는 중이었다.
부르파스는 그중에서 심마왕 겔루키스의 군단에 소속해 있다고 한다.
“어, 어?”
그리고 이 상황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던 강윤은 자기도 모르게 의아한 소리를 냈다.
강윤은 지금 눈 앞에 펼쳐진 모습을 이해할 수 없었다. 머리를 아무리 팽팽 돌려보아도 상황 자체가 이해되지 않았다.
‘아니 대체 왜 저 악마는 설명 모드로 들어간 건데?’
부르파스가 처음에 등장했을 때는 주변의 모든 것을 닥치는 대로 죽이려는 포악한 살기가 감돌았다. 지금까지 다양한 전투를 치러온 강윤이기에 알 수 있었다. 녀석은 자신들을 죽일 거라는 것을.
하지만 이게 웬걸?
현찬이 부르파스에게 말을 거는 순간부터 상황이 기묘하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현찬의 질문에 부르파스가 정말로 단순무식하게 정보를 줄줄이 읊는 것이다. 조금 전까지 죽일 듯이 노려보던 녀석이 주저리주저리 떠드는 모습은 괴리감이 심해도 너무 심했다.
“형. 이건 대체…….”
“쉿.”
강윤이 말 걸려는 순간 현찬은 고개를 돌려 손가락으로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강윤도 이제 알았지만 부르파스에게 들키지 않게 뒤로 살짝 뺀 현찬의 왼손에는 카두케오스 지팡이가 쥐어져 있었다.
현찬은 다시 부르파스에게 시선을 되돌리며 질문을 이었다.
“너희 군단의 목적은 뭐지?”
“싸움, 전쟁, 지배. 그것이 우리들의 삶의 목표이다.”
“지금까지 그렇게 다양한 세계를 정복해 왔나 보군.”
“그렇다. 그리고 이번에는 지구라는 행성을 노리고 있지. 거주 인원은 많으면서도 물이 가득하며 심지어 약하기까지 하다. 침략하기에는 가장 최적의 행성이라고 할 수 있지. 우리 군단의 목표가 되었으니 이 행성도 이제 끝이다. 나는 과연 이곳이 어떤 곳인지 살피러 왔을 초병일 뿐. 물론 우리 겔루키스 군단이 가장 먼저 눈독 들였으니…….”
부르파스는 말을 하다가 말고 입을 꾹 다물었다.
그는 그제야 미묘하게 흘러가는 상황을 눈치챘다.
‘뭐지?’
갑자기 왜 목격자를 두고서 신나서 온갖 정보를 다 떠들어 댄 건가. 부르파스는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그는 몸 안에 맴도는 마기를 운용하여 은연중에 자신의 머리를 장악하고 있던 세뇌를 찢어발겼다.
머리가 맑아지고 이성이 돌아오자 그제야 어떻게 된 일인지 이해했다. 부르파스는 주먹을 꽉 쥐었다. 악문 그의 이빨이 맞물리며 까득 소리를 냈다. 그의 붉은 눈동자가 살기를 가득 품은 채 현찬을 노려보았다.
“이 빌어먹을 인간이…… 무슨 짓을 한 거냐.”
“이런. 눈치채버렸네. 하지만 뭐 됐어. 정보는 이미 다 얻은 것 같으니까.”
“이 자식이!”
부르파스가 고함을 내지르자 그 자체만으로도 피부가 울렸다. 마기가 포함된 포효는 무력감과 공포가 증가해 싸울 의지를 하락시키는 힘이 있었다. 그러나 그 파동에 고스란히 노출됐음에도 현찬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죽여 버리겠다!”
원래부터 죽여야 했는데 들켜서는 안 될 정보까지 가졌으니 반드시 제거해야만 했다. 자신에게 은근하게 최면을 걸어 정보를 토해내게 한 현찬이 괘씸해서라도 곱게 죽일 생각은 없었다.
사지를 찢고 최대한 고통을 주며 죽일 것이다.
부르파스가 그렇게 생각하며 달려드는 순간.
“위험해요!”
옆에 있던 강윤이 현찬보다 먼저 반응했다. 강윤은 현찬과 부르파스의 사이에 끼어들며 부르파스가 내지르는 주먹을 팔을 올려 방어했다. 쿠웅! 거대한 진동이 울리며 강윤의 몸이 뒤로 살짝 밀려났다.
“인간 따위가 내 공격을 막아?”
부르파스는 나름 힘이 들어간 자신의 일격을 자신보다 덩치가 한참 작은 인간이 막았다는 점에서 상당히 자존심이 상했다. 그것이 그의 타오르는 분노에 더욱 부채질을 가했다. 가슴 속에서 끓어오르는 감정을 연료 삼아 부르파스가 이를 드러냈다.
“적당히 하려고 했는데 생각이 바뀌었다.”
그의 몸을 타고 검은 마력이 피부 바깥으로 연기처럼 새어 나왔다. 그것이 부르파스의 몸을 휘감더니 이내 거대한 갑옷의 형상으로 바뀌었다. 3m에 가까운 거구는 순식간에 검은 갑옷의 기사로 바뀌었다.
“전력을 다해서 네놈들을 쓰러뜨려 주마.”
“누구 맘대로?”
강윤 또한 지지 않고 <삼손>의 힘을 최대한 끌어 올렸다.
조금 전 한 번 부딪치면서 깨달았다. 상대방은 확실히 강하다. 저 악마라는 녀석은 외모와 흉악한 생김새에 버금가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과 비교하면 그렇게 큰 차이는 나지 않았다.
순수한 힘뿐만이 아니라 기교로 승부를 건다면 이쪽에도 승리의 가능성은 있었다.
강윤이 바로 뛰어들 준비를 하던 그 순간이었다.
“그만.”
“혀, 형?”
현찬이 강윤을 말리고 나섰다.
“강윤아. 저 녀석은 나에게 맡겨라. 안 그래도 확인할 게 있거든.”
“하, 하지만…….”
“네가 싸워서 녀석에게 진다고 생각하지 않아. 하지만 그렇다고 몸 성히 이길 수 있는 것도 아니지. 너도 그 점은 알고 있잖아? 괜히 이런 곳에서 다칠 필요는 없어.”
“…… 알았어요. 그러면 형에게 양보할게요.”
강윤이 어쩔 수 없이 고개를 푹 숙이며 말하자 현찬은 씨익 웃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부르파스의 머리에 힘줄이 돋아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 건방진 놈들이 내가 가만히 있었더니 나를 능멸하려고 들어?! 절대로 곱게 죽이지 않겠다! 네놈의 사지를 직접 내가 씹어 먹어주마!”
부르파스가 두 팔을 넓게 벌리며 현찬을 쥐어 짜낼 기세로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