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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무한계약-112화 (112/265)

# 112

112화 뜻밖의 침공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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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찬은 브라질로 떠나기 전 한국에 머무는 동안 자신의 지인들과 한 번씩 만났다. 일단 가장 먼저 가족을 찾아갔다. 부모님은 요즘 왜 이렇게 얼굴 보기 힘드냐며 현찬을 반겨주었다. 말썽꾸러기 여동생도 겉으로는 툴툴 대면서도 기쁜 감정을 채 숨기지 못했다.

그런 가족들의 환대를 받으며 현찬은 어딘가 뿌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렇게 함께 식사하며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었다.

가족들도 최근 현찬이 너무 명성이 높아져서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의 접근이 늘었다고 푸념했다. 자식 덕은 잘 봤는데 그것이 의도치 않은 귀찮음을 불러왔다고 한다.

당연하게도 현찬에게 접근이 안 되니 가족에게 무언가 수작을 부리려는 것이었다. 물론 가족들도 이런 부분에서는 단호했기 때문에 그들의 제안을 모두 거절했다. 돈이야 현찬이 매달 부족하지 않게 주는데 뭐가 아쉬워서 가족을 팔겠는가.

혹시나 협박을 당하지 않았나 걱정했지만, 그것은 기우였다. 현찬의 가족에게 접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현찬과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가족을 잘못 건드려서 대한민국의 오버랭크 헌터의 분노를 산다면?

그때는 그야말로 끝장이다.

물론 그런 걸 신경 쓰지 않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특히나 현찬의 돈을 노리는 범죄 조직이라면 더더욱. 물론 그것도 큰 걱정은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현찬의 가족이 지내는 동네는 치안이 매우 좋았다. 부자들과 정치인들이 사는 장소라 그런지 헌터 일을 하지 못 하는 각성자들이 경호원으로 다녔기에 범죄가 일어나지 않았다. 혹여 일어난다 하더라도 빠르게 수습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현찬의 가족은 협회의 보호 아래에 있다. 협회에서 현찬의 가족을 경호하는 인력을 따로 배치해 그들을 지켜주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그렇기에 현찬은 마음을 놓고 오랜만에 가족과 즐겁게 지낼 수 있었다.

“나 이만 간다.”

“오빠. 가는 거야?”

“응. 지금은 좀 시간이 났지만 얼마 안 가면 또 엄청나게 바빠질 거라서.”

투덜대던 여동생은 현찬이 떠나려고 하는 걸 제일 아쉬워했다. 원래 가족이란 게 그랬다. 있을 때는 당연하게 받아들이지만 없으면 매우 허전하다. 현찬은 게다가 여동생과의 사이도 좋았다. 서로 심하게 싸우지도 않고 성격도 잘 맞았다.

현찬은 그런 여동생을 보며 피식 웃더니 부모님 몰래 봉투 하나를 손에 쥐여 주었다.

“나중에 옷이라도 사 입어. 엄마 아빠 몰래 주는 거니까 걸리지는 말고.”

“오올. 역시 대한민국 최고의 헌터는 통이 크셔?”

“이게 또 까분다. 아무튼, 난 이만 간다. 만날 사람들이 꽤 많아서.”

“응. 다음에도 시간 나면 자주 찾아와. 용돈은 땡큐.”

“그래 알았다.”

집을 나선 현찬은 시간을 확인했다. 약속 시각까지는 아직 꽤 남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딱히 중간에 들릴 곳이 없어서 현찬은 탈라리아를 신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에게는 자동차가 필요 없었다.

기본적인 인식 저해가 걸린 현찬은 하늘을 날아도 들키지 않았다. 하늘 높이 솟아오른 고층빌딩의 틈새를 빠르게 비행한 현찬은 바닥에 착지했다. 약속한 장소였고 정했던 시각보다 30분은 더 빨랐다.

사람들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한적한 카페였다. 오래된 원목으로 만들어진 내부 인테리어는 고풍스러움을 뿜어내고 있었다. 문을 열고 안에 들어가자 원래 만나기로 했던 사람이 먼저 와 있었다.

“다은아, 오랜만이야.”

현찬이 그녀를 먼저 알아보고 인사 건네자 스마트폰을 보던 서다은도 고개를 들며 현찬의 얼굴을 잔잔히 바라보았다. 그녀의 입술 사이로 아, 하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현찬은 자연스럽게 그녀의 맞은편에 앉았다.

“이렇게 만나는 게 얼마 만이지?”

“글쎄요. 정확히 얼마나 됐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다만 예전에 밥 한 끼 사준다고 했는데 아직도 안 사준 건 기억나는걸요.”

“윽. 그건 너무 바빠서. 미안해. 나중에 꼭 사줄게.”

“뭐, 그래도 이렇게 만나자고 했으니 약속을 잊은 건 넘어가 줄게요.”

서다은은 장난스럽게 윙크하며 혀를 내밀었다. 남들 앞에서는 항상 차갑고 무뚝뚝한 그녀였지만 현찬의 앞에서는 그러지 않았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헤르메스가 눈을 부라렸다. 그의 고운 이마에 주름이 잡히고 눈썹이 하늘 높은줄 모르고 치솟았다. 물론 직후 헤르메스는 아테나에게 제압당했다.

[이거 놔! 저게 자꾸 우리 현찬이에게 꼬리치잖아!]

[계약자의 사생활에 일일이 참견하지 마라! 네가 애냐!]

[애라도 좋아!]

[가만히 안 있을래?!]

두 신의 투덕거림을 애써 무시하며 현찬은 안부 인사를 건넸다.

“요즘은 잘 지내? 이야기 들었어. 벌써 A랭크 됐다면서?”

서다은은 어쩌면 당연하게도 A랭크 헌터가 되었다. 그녀에게는 그만한 자격과 재능이 있었다. 충분히 이해할 만한 결과였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지금도 자신의 커리어를 쌓으면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려는 중이었다. 아마 조만간 A+랭크가 되지 않을까 하는 게 현찬의 예측이었다.

“잘 아시네요.”

“듣는 귀는 언제나 열려있으니까.”

헤르메스의 권능을 더욱 잘 다루게 되면서 어지간한 정보들은 현찬의 귀로 자연스럽게 흘러들어온다.

직접 그 사람을 만나지 않더라도 나름대로 인지도 있고 유명한 사람이라면 기본적인 정보가 자동으로 머릿속에 저장된다.

“역시 영웅급 영령의 계약자는 다르구나. 빠르게 성장하고 있어.”

“오빠가 그런 이야기를 하면 안 어울리는 거 알아요?”

신급 영령의 계악자이자 지금까지 모든 헌터들의 성장 기록을 갈아치운 게 바로 현찬이다. 아무리 현찬이 남을 칭찬해준다고 하더라도 본인이 만든 전설이 어엿하게 존재하는 한 입에 발린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역대 최단기간으로 오버랭크를 달성한 오빠를 생각하면 저는 아직 제 실력이 눈에 차지도 않아요.”

“그런 거 치고는 별로 조급한 느낌은 없는걸.”

“괜히 분수에 맞지 않게 빨리 달리려고 하면 넘어지니까요. 그렇다고 천천히 달릴 생각도 없지만요.”

“좋은 마음가짐이야. 언제나 자신에게 어울리는 적정선을 찾는 건 매우 중요하거든.”

“제가 보기엔 오빠에겐 적정선이라는 게 없어 보이거든요?”

“그런가?”

현찬은 멋쩍게 웃었다. 지금까지 현찬이 보인 행보를 생각하면 모든 헌터들의 질시를 받아도 이상할 게 없었다. 현찬도 그 점을 인지했다. 그렇기에 이렇게 웃음으로 넘길 수밖에 없었다.

서다은은 장난스럽게 눈을 흘기더니 가볍게 풋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의자의 등받이에 몸을 실으며 고개를 뒤로 쭉 뻗었다.

“아아. 그래도 오랜만의 휴식이라 그런지 편하네요.”

“요즘 통 못 쉬었니?”

“최근이 가장 바빴어요.”

그럴 법했다.

영웅투쟁이 끝나고 지구 전체에 계시가 내려진 이후로 세상은 급박하게 변했다. 서로 경계 긋던 나라들은 하나로 뭉치며 거대한 집단으로 탈바꿈하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헌터들은 더 적극적으로 게이트 토벌에 나섰으며 범죄자 소탕에 열을 올렸다.

서다은이 여러 일에 휘말리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그녀의 힘과 능력은 특히나 전투에 있어서 헌터들에게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힐과 버프도 그렇지만 그녀가 지닌 전투능력도 만만치 않았다.

오를레앙의 성녀 <잔 다르크>.

그녀의 진가는 남을 돕는 데서 나타나지 않는다. 자신의 힘으로 두 다리로 전장에 우뚝 서서 직접 싸움을 지휘하고 참여해야 드러난다.

그런 <잔 다르크>와 동조율이 높은 서다은이기에 후방에서 가만히 있지 않았다. 실력을 쌓기 위해서라도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됐다. 그녀도 싸움에 직접 참여했다. 창을 들고 갑옷을 입었다. 직접 몬스터들에 달려들었다.

그 덕에 빠른 속도로 성장할 수 있었다.

물론 그렇게 달리다 보니 요즘에는 통 쉬지 못해서 잔뜩 피로가 쌓인 상태였다.

이런 꿀 같은 휴식은 당연히 반가운 일이다.

“그래. 이럴 때라도 푹 쉬어둬.”

“저는 오빠가 더 걱정인데요. 오빠는 요즘 안 바빠요?”

“나야 바쁘긴 바쁘지. 물론 지금은 좀 여유가 생겨서 쉬고 있지만, 조만간 다시 바빠질 예정이야.”

“<난제>사냥 때문이죠?”

“뭐, 그렇지.”

현찬은 벌써 2마리의 <난제>를 사냥했다. 그중 하나는 현찬의 충실한 펫이 되었다. 하지만 세상에는 아직도 여러 <난제>가 남아있었다. 지구 곳곳에 나타나는 게이트의 숫자에 비하면 난제는 몇 마리 없었지만, 위험성은 그 이상이다.

“벌써 2마리나 사냥하셨잖아요. 그러면 좀 길게 쉬어도 되는 거 아니에요?”

서다은은 현찬이 너무 과로하는 게 아닐까 걱정했다. 난제 하나만 제거해도 대단한 일인데 현찬은 무려 2마리나 잡았다. 지금까지 그 누구도 이룩해내지 못한 위업이었다.

여기서 쉰다고 해서 손가락질하는 사람은 없다.

다은의 물음에 현찬은 고개를 저었다.

“힘들면 쉬겠지만 아직은 아니야. 나는 아주 쌩쌩하거든.”

이것은 입에 발린 소리가 아니라 진심이었다. 천흉과 싸움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도 않았지만, 현찬은 여전히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었다. 게다가 이것 말고도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될 이유가 있었다.

“하루라도 빠르게 모든 <난제>를 제거해야만 세상이 더 안전해져.”

“오빠가 아니라도 다른 오버랭크 헌터들이 있어요.”

“거기에 내가 낀다면 더 일 처리가 빨라지겠지. 걱정해주는 건 고마워. 하지만 나는 정말로 괜찮아.”

현찬의 진심이 느껴져서일까 다은은 그 이상 뭐라고 말하지 못했다.

“힘들면 말해요. 제가 버프 걸어줄게요.”

다만 볼멘소리로 이런 말을 내뱉었다. 그런 그녀의 태도가 귀여운지 현찬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알았다. 알았어. 나중에 지치면 너한테 찾아갈게.”

“그 말 정말이죠? 약속했어요? 무르기 없기에요? 저 다 기억할 거예요.”

“응. 그래.”

둘은 그렇게 수 초간 말이 없었다.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클래식 음악만이 공간을 유영했다. 잠시 창문 바깥에서 흘러나오는 햇빛을 보던 서다은이 조심스럽게 분홍빛 입술을 열었다.

“오빠. 할 말이 있어요. 중요한 거예요.”

[고백이냐! 고백이야?!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지 절대로 못…….]

[조용히 좀 해라! 가만히 있어!]

[으아아! 이거 놔! 이 근육녀야!]

[뭐가 어쩌고 어째?!]

현찬은 속으로 쓴웃음을 지으면서도 아테나와 계약을 맺은 걸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없었다면 헤르메스의 폭주를 막을 영령은 존재하지 않았을 테니까. 어떻게 보면 참 신의 한 수였다.

“그래. 그게 뭔데?”

“최근 쟌의 반응이 이상해요.”

쟌은 서다은이 자신의 영령을 부를 때 애칭이었다.

“이상하다고? 뭐가?”

“지난번 <대통합>을 경고한 날 이후로 어딘가 불안해하고 있어요. 거대한 악이 밀려오는 느낌이 든다면서 제게 경고하고 있어요. 아직은 괜찮은데 시간이 흐를수록 조금씩 커지는 게 느껴져요.”

“그래?”

“네. 오빠라면 혹시 뭔가 알 것 같아서요. 그래도 신의 계약자잖아요.”

“흠. 거대한 악이라.”

신의 축복을 받은 <잔 다르크>가 그런 말을 한다는 것부터 어딘가 심상치 않았다. 대체 무엇이 그녀를 불안하게 만드는 걸까? 현찬은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 머릿속에서 다양한 정보들이 부딪치고 흩어졌다.

‘설마?’

현찬의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한 가지 키워드.

얼마 전 천흉을 사냥하고 그가 죽기 직전에 남겼던 유언 일부가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악마?”

붉은 피부에 머리에 난 뿔. 온갖 세계를 정복하며 파괴하는 끔찍한 마의 하수인들. 파천마 백강오의 세계를 멸망시킨 이세계의 존재들.

현찬의 대답에 다은의 몸이 크게 움찔거렸다. 정확히는 다은과 연결이 된 잔 다르크가 크게 반응을 한 것이다. 현찬이 정곡을 제대로 찔렀다.

현찬이 잠시 눈을 감았다가 뜨며 <헤르메스의 눈>을 발동했다. 마력을 주입하고 세계의 정보에 깊숙하게 파고들었다. 머리가 지끈하고 아파 왔지만, 그것을 무시하며 원하는 답을 찾기 위해 정보를 주시했다.

‘과연, 그런 거였나.’

놈들은 아무래도 <대통합>을 통해서 지구를 노리는 것 같았다.

전쟁은 피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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