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무한계약-111화 (111/265)

# 111

111화 아마존 숲 (2)

_

“브, 브라질로 간다니 그게 무슨 이야기신지?”

황설영의 목소리가 기대감에 떨렸다. 현찬이 갑자기 전화해서 해외로 떠나자고 하니 그것이 상상력을 증폭시켰다. 안 그래도 조금 전까지 현찬을 생각하던 그녀는 이런 갑작스러운 상황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옆에서 두두리가 계속 그녀를 향해 뭐라고 말했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녀는 지금 현찬이 한 말만 계속 머릿속에서 재생하고 있었다.

브라질? 그곳에 왜 가는 건가? 혹시 휴식 차원에서 같이 여행가자는 소리인가?

황설영의 머릿속에서 그런 생각들이 거품처럼 일어나고 터졌다.

“아무래도 조만간 브라질로 갈 일이 생길 거 같거든요. 황설영 씨도 아시죠? 그곳에 있는 <난제>를.”

“…….”

현찬의 말에 황설영의 머리가 다시 차갑게 식었다. 이성이 돌아오자 그녀가 조금 전까지 얼마나 터무니없는 망상에 빠졌는지 깨달았다. 그녀는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히며 들뜬 감정을 다스렸다.

“네. 저도 알고 있습니다.”

<난제>에 관한 것들은 기본적인 지식이다. 일반인들도 대부분이 아는 것들이라 헌터들은 기본적으로 당연히 알 수밖에 없었다.

브라질에도 난제가 하나 있다. 죽음의 숲 <스왈로우>가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강현찬 헌터님. 제가 가서 도움 줄 수 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황설영은 자신의 실력에 관해서 잘 안다. 그녀는 지금 S랭크를 눈앞에 둘 정도로 강해진 상태다. 어지간한 몬스터들 정도는 혼자서도 사냥이 가능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난제>는 아니었다.

그녀가 싸움에 끼어들었다가는 오히려 현찬의 발목을 붙잡을 수도 있었다. 황설영은 그런 결말을 맞이하는 것은 죽는 것보다 더 싫었다.

적어도 현찬에게 피해 주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여전히 긍정적이었다.

“에이. 황설영 씨가 왜 도움이 안 돼요? 저는 설영 씨야말로 가장 잘 맞는다고 생각하고 있는 걸요.”

“네? 하, 하지만 저는 난제를 사냥할 만큼 강하지 않습니다.”

현찬이 자신을 높게 평가해주는 것은 고맙지만 그녀는 객관적으로 봐도 자신이 난제의 사냥에 도움이 될 거로 생각하지 않았다.

“강하고 아니고는 중요하지 않아요. 몬스터를 사냥하는데 강하다는 것은 물론 필요하겠지만 꼭 그것만 있는 건 아니니까요.”

현찬의 말은 첫눈이 사뿐히 내려앉는 것처럼 황설영의 가슴 속으로 조심히 스며들었다.

황설영은 눈을 감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현찬이 자신의 도움을 원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는 것은 그는 그녀가 보지 못한 그녀의 가능성을 발견한 것일 수도 있었다. 그게 아니라 하더라도 자신의 도움을 바라는 사람의 부탁을 계속 거절하는 것도 마냥 도리는 아니었다.

‘믿자.’

황설영은 현찬을 믿기로 했다.

현찬이 지금까지 보여준 모습이 그녀에게 크나큰 신뢰를 주었다.

그는 언제나 남들이 하지 못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해내고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일을 이룩해냈다. 그런 현찬이기에 무슨 말을 하더라도 전부 신빙성이 있었다.

“설영 씨. 저랑 같이 가 주실래요?”

“네. 알겠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하도록 하죠.”

“와. 정말요? 고마워요.”

황설영의 승낙에 현찬은 기뻐했다. 현찬이 좋아하니 황설영 또한 입가에 미미한 미소가 맴돌았다.

“자세한 상황은 만나서 이야기할까요?”

“네. 그러죠.”

황설영은 순간 자신이 치마를 입고 갈까 고민했다.

&

“여기에요.”

예전에 현찬과 처음으로 함께 갔던 카페에 도착하자 자리 잡은 현찬이 손을 흔들어 보였다. 황설영은 잠시 카페의 벽 한편에 걸린 거울로 자신의 모습을 빠르게 점검하고는 현찬의 맞은편에 앉았다.

“먼저 온 김에 미리 커피는 주문했어요. 설영 씨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맞죠?”

“그걸 기억하셨습니까?”

“그냥 그때 갔던 일이 문득 떠올라서요.”

황설영은 현찬의 모습을 세세히 살폈다. 현찬의 복장은 평범했다. 살짝 찢어진 청바지에 흰색 후드티. 머리에는 모자도 쓰고 있었다. 아무래도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해서 눈에 띄지 않는 복장을 선택한 것 같았다.

그런 황설영의 시선을 느꼈는지 현찬이 씁쓸하게 웃었다.

“요즘 사람들의 시선이 너무 많아져서요. 예전에도 심하다고는 생각하고 있는데 최근 들어서 더욱 극성이다 보니까 몰래 움직일 수밖에 없었네요.”

“그 기분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헌터는 어떻게 보면 영웅이다. 사람들의 목숨을 위협하는 몬스터들을 사냥하니까. 특히나 랭크가 높은 헌터들은 인지도도 높고 당연히 연예인 이상 가는 인기를 보유하게 된다. 황설영도 그랬었다.

“저도 모델이나 CF 제안이 꽤 많이 왔었습니다.”

“그래요? 하지만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제가 어울리지 않아서 전부 거절했습니다.”

황설영은 딱히 돈이나 명예에 구애받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돈은 협회와 계약을 맺어서 나오는 금액으로도 충분했고 부족하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누군가 자신을 알아봐 주었으면 하는 과시욕도 없었다.

현찬은 황설영이라면 그럴 것 같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설영 씨라면 그런 쪽에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이기는 하죠.”

움찔!

평소의 황설영이라면 그 말을 그냥 가볍게 넘겼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대사가 현찬에게서 나왔다는 것에 그녀는 조금 동요했다.

“제, 제가 그렇게 보입니까?”

“네? 그렇죠. 뭐.”

황설영은 머릿속으로 복잡한 생각을 굴렸다. 이런 말을 하는 저의는 무엇일까? 내가 여자답지 않다는 뜻인가? 너무 딱딱하게 군건가? 여성으로서의 매력이 없어서 그런가?

평소라면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 말이다. 문제는 양 리화와 함께 있는 사진을 보고 나서 감정이 복잡해진 탓에 지금 황설영은 제대로 된 사고가 안 된다는 것이었다.

옆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두두리는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고 자신이 나서서 무언가를 해 주기에는 두두리도 딱히 아는 것이 없었다. 괜히 나서서 망치기 싫었기에 두두리는 가만히 있었다.

“가, 강현찬 헌터님은 제가 어떻게 보입니까?”

“음. 글쎄요. 굳이 말하자면 세속적인 것에 욕심이 없이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철벽같이 지키는 사람? 저는 설영 씨의 그런 모습이 되게 멋있다고 생각해요.”

“저, 정말입니까?”

황설영은 막 우울했다가도 현찬의 칭찬에 순식간에 기분이 들떴다. 그야말로 롤러코스터를 방불케 하는 감정의 기복이었다. 빠져도 푹 빠졌구나. 두두리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저도 사실 부탁이 엄청나게 많이 들어오거든요. 우리 제품 CF를 찍어 달라, 어디 홍보 좀 해 달라, 부디 식사를 한 끼라도 같이 해 달라. 유명해진 건 좋은데 이런 건 되게 귀찮더라고요. 모르는 사람들이 제 번호는 또 어떻게 알고 매일 전화를 하는지, 원.”

특히나 한국 최초의 오버랭크 헌터인 현찬이 가진 가치는 그야말로 대단한 것이었다. 현찬이 CF를 하나라도 찍는다면 그 제품은 대박 날 게 틀림없었으니 기업들은 눈에 불 켜고 현찬을 만나려고 하는 중이었다.

어디 기업뿐인가.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특히나 정치인들, 정부의 고위 인사들은 어떻게든 현찬과 연을 만들기 위해서 계속 현찬에게 연락을 시도했다.

현찬과 얼굴이라도 터놓거나 혹시 사이라도 좋아진다면 그런 친분 자체가 그들에게 하나의 권위가 되기 때문이었다.

인터넷에서 누군가 올린 글에서 현찬과 한 끼 식사를 같이하는 것은 금전적으로 무려 5천만 원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할 정도로 현찬은 인기인이었다.

“그래도 그런 쪽으로는 제가 전혀 관심이 없어서요.”

돈이 궁한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남들이 알아주길 원하는 인기를 바라는 것도 아니다. 현찬은 이미 그 둘이 차고 넘칠 정도로 많았다. 현찬의 목적은 오직 하나. 세계에서 모든 사람이 우러러보는 헌터가 되는 것이었다.

이미 그것에 발 하나 정도는 걸친 상태였지만 아직 부족하다. 언젠가 다른 세계와 연결이 된다면 목표는 더욱 커지게 되리라.

“오히려 이런 부분에서는 제가 황설영 씨와 마음이 참 잘 맞는다는 느낌이네요.”

“네, 네! 그렇죠. 네. 확실히, 그렇죠.”

현찬의 칭찬 세례에 황설영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마음이 맞는다니! 일심동체 부부를 생각하게 만드는 단어이지 않은가. 황설영의 얼굴이 잘 익은 홍시처럼 새빨갛게 물들었다.

그 순간 진동벨이 울렸다.

“커, 커피는 제가 가지고 오겠습니다.”

황설영은 자신의 얼굴을 현찬에게 들키고 싶지 않아서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카운터로 향했다.

커피를 받아온 황설영은 나름대로 진정되었는지 평소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일단 브라질에 관한 이야기를 진행해 볼까요?”

“네. 부디.”

황설영은 눈을 내리깔며 그렇게 대답했다.

이 이상 개인사를 주제로 대화를 나누었다간 격해지는 감정을 억누를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차라리 진지하고 비즈니스적인 대화를 나누는 것이 훨씬 더 속이 편하리라.

“일단 저는 이번 <스왈로우>의 토벌에서 황설영 씨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불렀어요.”

“제가 뭘 할 수 있다는 겁니까?”

“많은 걸 하실 수 있겠죠.”

가령, 이라고 말을 하며 현찬이 손가락으로 황설영의 곁에 떠다니는 두두리를 가리켰다.

“설영 씨와 계약을 맺은 두두리, 그녀의 힘을 말이죠.”

“보, 보이십니까?!”

현찬이 보여준 행동에 황설영은 물론이거니와 두두리 또한 놀랐다. 물론 계속 보이던 것은 아니었다. 현찬도 오늘 처음 두두리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저렇게 생겼구나.’

두두리는 도깨비이자 일종의 신격화된 정령에 가까운 존재였다. 그래서 어딘가 독특하게 생겼을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오히려 그것과는 정반대였다.

그녀는 신라 시대의 평범한 아낙네처럼 생겼다.

평범하다는 것은 그저 입고 있는 의복이나 복장이 그러하다는 것이 외모는 확실히 미인이라고 할만했다. 괜히 비형랑과 무언가 썸이 있는 게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두두리가 반 영체화가 될 정도로 황설영 또한 성장했다는 것이다.

이 정도라면 황설영도 거의 S랭크 헌터의 수준에 도달했을 테고 향후 있을 <스왈로우>와의 싸움에서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설영 씨도 상당히 많이 성장하셨네요.”

“네. 감사합니다.”

황설영도 노력했다. 현찬을 보며 저 사람처럼 강해지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나태해지지 않았다. 다른 고랭크 헌터들처럼 현재의 위치에 안주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노력했고 강해졌다. 그의 등 뒤를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서 보기 위해서.

그것을 인정받으니 가슴 속에 뭉쳐있는 실타래가 풀리는 기분이었다.

“아시나요? 이번 싸움에서 두두리의 능력은 상당히 중요합니다.”

현찬은 자신이 생각한 것들을 황설영에게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그 이야기를 경청한 황설영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말대로라면 확실히 가능성은 있지만, 그래도…… 그것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그녀는 머리가 복잡해졌다. 현찬의 계획대로라면 존재 자체가 숲으로 이루어진 <스왈로우>를 성공적으로 토벌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깔리는 전제가 있었다.

“그런 괴물의 숲 중심에 들어가서 공격을 오랜 시간 동안 견딜 인물이 있습니까?”

“제가 있잖아요.”

“한 명으로는 부족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계획을 진행하는 것은 전혀 좋은 발상이 아니라고 대답해주고 싶습니다만.”

“누가 저 혼자 한다고 했나요?”

현찬은 혼자서 그런 괴물을 상대할 생각이 없었다. 애초에 현찬이 싸워야 하는 대상은 <스왈로우>뿐만이 아니다. 또 그곳 어딘가에서 숨어 있다가 기회를 보고 있는 <일루베 아르카> 녀석들 또한 염두에 두어야 했다.

“저를 도와줄 사람이 한 명 있어요.”

그리고 그 도우미 또한 현찬과 함께 싸우기를 고대하며 미국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