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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무한계약-110화 (110/265)

# 110

110화 아마존 숲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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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녀석, 결국 당해버렸구나.”

토끼 가면은 황소 가면의 사망을 알아차렸다. 아니, 그뿐만 아니라 다른 사도들도 전부 눈치챘을 것이다. 현찬과 양 리화가 천흉을 사냥하러 간 것은 지구상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일이었다.

황소 가면은 천흉을 관찰하던 중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가 다른 사도들에게 메시지를 보냈고 그것이 그의 마지막 메시지가 되었다. 그 이후로 그는 자신이 생존했는지에 대해 말해주지도 않았다. 그 결과만 두고 보면 어떻게 되었는지 답은 자명했다.

토끼 가면은 딱히 슬프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황소 가면과 친하게 지내지 않았으니까. 그가 유일하게 친분을 가진 자는 이미 죽어버린 반야 가면 뿐이었다. 그것 외에는 그저 비즈니스 관계일 뿐. 사적인 감정은 들어가지 않았다.

싫어하는 녀석은 있더라도 좋아하는 녀석은 딱히 없다. 사도들의 관계란 딱 그런 것이었다.

그런 그들을 하나로 묶어서 이끄는 그분이 없었다면 그들은 분열했다면 진작에 분열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분열까지 가지는 않았으리라.

‘용 가면.’

사도 중에서도 그 격의 차이를 느끼게 해 줄 정도로 강력한 녀석. 그가 있는 조직이라면 적어도 분열은 하지 않았으리라. 그는 압도적이었으니까. 그의 힘이라면 나머지 11명의 사도를 전부 휘어잡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래 봤자 의미는 없겠지. 이미 사도 중에서 셋이나 죽었으니까.’

토끼 가면은 약간 불안에 빠졌다. 자신들은 절대 패배하지 않을 거라고 믿어왔다. 하지만 그것은 최근 들어 헛된 꿈이었다는 걸 절실히 느꼈다. 세상이 변한 것도 있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단 한 사람 때문이었다.

‘강현찬이라고 했나?’

그가 나타나고 나서 모든 것들이 바뀌었다. 지금까지 모든 일을 순조롭게 진행하던 조직의 진행에도 제동이 걸렸고 세상의 흐름이 크게 뒤바뀌었다. 그분이 계획했던 일들은 대다수가 큰 효과를 보지 못했고 예측은 차질을 빚었다. 모든 게 뒤틀렸다.

‘우린 정말로 실패하는 걸까?’

토끼 가면은 자신이 그런 생각을 떠올렸다는 사실조차 치가 떨리는지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아니, 아직이다. 자신이 속한 조직은 고작 이런 일로 무너지지 않는다. 계획했던 일들이 모두 무산돼도 상관없다. 그것이 실패했을 때를 위한 대비는 충분했으니까.

‘12명의 사도 중에서 이제 막 3명이 당했을 뿐이야. 우리들의 조직은 아직도 건재하며 우리가 가진 힘은 절대로 줄어들지 않았어. 마음먹는다면 나라 하나를 전복시키는 것도 일은 아니지.’

그러지 않는 것은 남들의 시선을 피하려고, 모든 일을 비밀리에 진행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현찬이 이미 자신들의 정체를 알아차려 버렸고 각국 수장들 또한 이쪽의 존재를 눈치챘다.

이렇게 되면 이제 몰래 움직이는 것도 끝이다. 저쪽에서 이쪽의 정체를 눈치챘으니 숨어서 움직이지 않고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솟아오를 때였다. 숨기고 있던 몸을 드러내고 갈던 칼날의 예기를 뽐내면 된다.

‘우리는 지지 않아. 그분은 정말로 세상을 바꾸실 분이니까.’

토끼 가면은 그렇게 스스로 세뇌하듯이 되뇌었다. 애써 자신의 두려움을 지우기라도 하듯이 그는 몇 번이고 이런 태도를 곱씹고 또 곱씹었다. 그렇게 몇 번 생각하니 그래도 나름 마음이 놓이는 기분이었다.

‘쓸데없는 생각은 버리자.’

지금 중요한 것은 지구 반대편에 떨어진 강현찬이 아니었다.

토끼 가면의 눈앞에 화려한 신록들이 펼쳐졌다. 빽빽하게 자란 나무들과 우거진 숲을 보며 토끼 가면은 침을 꿀꺽 삼켰다. 이곳은 지구의 폐라고도 불리는 아마존 숲이었다.

습한 공기와 높은 기온, 거기에 역한 냄새가 코를 찌르니 시각적으로도 뭔가 압도당하고 다른 감각들도 찝찝함을 호소하고 있었다. 하지만 토끼 가면에게 가장 긴장되는 것은 역시나 이 숲에 존재하는 녀석이었다.

‘조용하네.’

숲은 조용했다. 이런 밀림이라면 정말로 다양한 동물들이 살아가고 있을 텐데도 이 숲은 마치 모든 생명체라는 것을 거세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고 조용했다.

생명력이 풍부한 숲에서 느낄 수 없는 적막함은 그야말로 부조화의 극치를 이루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토끼 가면은 그 괴물이 이곳에 있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난제가 이곳에 있는 건 확실해. 하지만 정확한 위치가 어디지?’

난제 <스왈로우>

어느 날 갑자기 브라질에 나타나서 주변을 그야말로 쑥대밭으로 만든 장본인이다.

아니, 쑥대밭이라고 하기엔 어폐가 있다. 녀석은 주변을 완전 숲으로 만들어 버렸다. 건물, 아스팔트 도로, 자동차가 있던 도시를 완전히 갈아엎어서 울창한 산림을 이룬 것이다.

그리고 군의 공격을 받고도 아무렇지 않게 유유히 장소를 옮겨 아마존의 한구석을 차지한 놈이기도 했다.

이 녀석도 독특한 난제다.

녀석은 생명체라고 부르기엔 조금 미묘한 녀석이었다.

왜냐하면, 숲 자체가 스왈로우였으니까.

녀석은 하나의 개체이면서도 숲 자체였다.

그렇기에 아무리 사도라고 하더라도 스왈로우를 쉽게 찾을 수 없었다. 대략적인 위치를 알지만 정확하게 녀석이 어디에 있는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녀석의 영토인지도 구분이 전혀 되지 않았다.

죽음의 숲 <스왈로우>

영역 안쪽에 발을 들이미는 순간 사냥감을 채가서 그대로 잡아먹어 버리는 무시무시한 괴물.

녀석의 영토 안쪽에는 식물을 제외한 그 어떤 생명체도 살아갈 수 없다. 아니, 이 식물도 결국에는 스왈로우의 일부일 뿐이다. 사람의 몸에 나는 털과 별다를 바 없었다.

그리고 토끼 가면은 중대한 실수를 저질렀다.

녀석의 모습을 찾는 데 급급하여 자신의 발아래를 제대로 살피지 않은 것이다.

스왈로우는 숲 자체다. 본체는 따로 있지만, 녀석이 지배하는 공간은 그야말로 광활한 것이었다. 그리고 토끼 가면은 그 영토의 일부에 당당하게 서 있고 말았다.

‘뭣?!’

튼튼하고 거대한 넝쿨이 자신의 발목을 휘감는 것을 보았을 때 토끼 가면은 당황했다. 기척을 최대한 죽이고 소리도 내지 않았다. 냄새마저 없앴다. 이 정도 했으니 들키지 않을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스왈로우는 자신의 영역 안에 자그마한 벌레가 들어와도 그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녀석은 애초에 ‘그런’ 괴물이었다.

“젠장!”

토끼 가면의 손이 잔상을 남기며 사라졌다. 날카로운 손날이 넝쿨을 잘라냈다. 하지만 잘린 넝쿨의 너머로 수만 가닥의 넝쿨이 달려들었고 주변의 나무들이 움직이며 하늘을 가득 뒤덮었다. 땅에서는 뿌리가 솟구치고 나뭇잎들이 맹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숲 자체가 의지를 가지고서 잡아먹으려고 했다.

스왈로우는 오랜만에 들어온 먹잇감을 절대로 놓치려고 하지 않았다.

토끼 가면은 이를 악물고 자리를 박찼다.

그는 사도다. 사도 중에서도 가장 빠른 사도였다. 고작 저런 괴물에게 잡히려고 이런 곳에 온 게 아니었다.

무시무시한 속도로 잔상을 남기며 움직이는 토끼 가면을 향해 수천, 수만 가닥의 나무줄기와 뿌리가 달려들었다.

&

황설영은 자신의 휴대폰으로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올라온 기사를 훑어보고 있었다. 인터넷에는 오버랭크 헌터들에 관한 기사들이 줄줄이 올라오고 있었다. 그중에서 역시나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는 것은 현찬이었다.

최근에 천흉 사냥을 성공한 현찬은 당연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최고의 가십거리였다. 한국에서 자국의 헌터인 현찬에 관한 기사를 내는 것은 당연했다. 지금 중국에서도 양 리화에 대한 기사로 떠들썩했다.

[대한민국이 낳은 자랑스러운 헌터 강현찬! 천흉 토벌 성공!]

[강현찬 헌터. 천흉의 사살과 함께 진정한 오버랭크로 승격 성공!]

[함께 토벌한 양 리화와는 무슨 관계? 한‧중의 심상치 않은 기류!]

“…… 하아.”

쭈욱 올라오는 기사 중 몇 가지 눈에 띄는 기사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일부러 조회 수를 늘리기 위해 자극적인 제목으로 어그로를 끄는 기사다. 황설영도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은근히 신경이 쓰이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

기사의 사진에는 현찬이 지친 양 리화의 손을 잡아끄는 모습이 실려 있었다.

지금까지 현찬을 자주 봐온 황설영은 안다. 현찬에게는 아무런 흑심이 없다는 것을. 그는 그저 자신의 동료, 혹은 친구가 힘들어 보여서 자연스럽게 도움 주는 것이었다.

그것에 선의는 있을지언정 연정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면 황설영은 왜 걱정을 하고 있는가?

그것은 현찬이 아닌, 현찬의 손을 잡은 양 리화 때문이었다.

‘아무리 봐도 내 눈은 속일 수 없어. 이건 분명히 감정이 있다는 거야.’

그녀도 양 리화에 대한 이야기는 주워들은 것이 있다. 남들과 대면하는 것이 어색하여 거의 혼자서만 지내는 중국의 오버랭크 헌터는 어떤 의미로는 개성이 있어서 유명했으니까.

그 특유의 소심한 성격과 조심스러운 태도 때문에 인기가 많기도 했다.

그런 그녀가, 타인의 손을 잡는다? 그것도 남자의 손을?

부끄러워서 남과 대화도 잘 못 하는 여자가 남자의 손을 잡으면 결과는 딱 하나가 아닌가.

바로 그 사람을 좋아한다는 것.

당연히 황설영은 속으로 끓는 마음을 식히려고 애쓸 수밖에 없었다.

‘너무 예뻐.’

양 리화는 같은 여자가 보아도 너무나도 예뻤다. 신묘한 분위기가 흐르는 외모도 그렇고 입고 있는 옷은 분명히 현대에 어울리지 않는 치렁치렁한 선녀의 옷과 같았다.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그녀를 더욱 빛나게 만들었다.

과연 자신도 저런 옷을 입으면 예쁘게 보일까? 황설영은 고개를 저었다.

무뚝뚝하고 어딘가 딱딱한 성격의 그녀는 언제나 몸에 딱 맞는 양복을 입었다. 치마는 그녀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런 것은 딱히 상관없었다. 무슨 옷을 입더라도 이것이 자신을 가장 잘 나타내는 옷이라고 황설영은 언제나 그렇게 생각했다.

약간의 아쉬움도 없다고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황설영을 안타깝게 만드는 것은 스스로 느끼는 나약함이었다.

‘나도, 강현찬 헌터님과 함께 싸우고 싶다.’

이번에 천흉의 토벌에서 그녀는 현찬을 따라가지 못했다. 천흉은 너무나도 위험한 난제였다. 중국에서도 강하다고 하는 S랭크 헌터들조차 참여하지 못했으니까. 그녀도 그 사실을 안다.

그것을 알기 때문에 오히려 열망이 더욱 강해졌다.

자신이 조금 더 강했다면 현찬이 어디를 가더라도 그의 곁에 설 수 있었을 테니까.

“아니, 괜찮다.”

황설영은 그런 자신을 안타까워하는 두두리에게 괜찮다고 말했다. 지난번 어스름달 사건 이후로 황설영은 두두리와의 교감이 더욱 깊어졌다. 그 덕분인지 그녀 또한 지난번보다 더욱 강해져서 이제 S랭크 헌터를 목전에 두고 있었다.

그래도 부족하다.

그의 곁에 서기 위해서라면 더욱 강해져야만 했다.

그 순간이었다.

휴대폰에 펼쳐진 인터넷의 창이 내려가고 전화번호가 뜬 것은.

“어, 엇?!”

그 이름이 현찬인 것을 알아차리자 황설영은 혹여나 전화가 끊어질까 봐 황급히 받았다.

“네, 네헤! 강현찬 헌터님!”

너무 긴박하게 받다 보니 목소리에 삑사리가 났지만, 황설영은 그것을 인지하지 못했다. 그 광경을 본 두두리는 아직 한참 멀었다며 고개를 저었다.

“아. 설영 씨. 오랜만이네요. 제가 한 번 정도는 찾아갔어야 했는데 말이죠.”

“네, 네에? 아뇨. 그렇지 않습니다. 별로 아쉽다거나 그러지 않았어요.”

현찬이 정기원 실장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때 황설영은 다른 일 때문에 잠시 자리를 비웠었다. 아마 그때 만나지 못한 것을 두고 하는 말이리라.

현찬이 자신을 신경 써줬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황설영은 우울했던 기분이 다 날아가 버렸다.

“그, 그보다 어쩐 일로 전화를 하신 건지?”

“아. 그게 황설영 씨에게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서요.”

“네? 부탁이라뇨?”

현찬 정도나 되는 사람이 자신에게 무슨 부탁이 있는지 모르겠다.

“저랑 같이 브라질 가실래요?”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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