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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무한계약-109화 (109/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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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화 습격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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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현찬은 실컷 움직인 몸을 풀었다. 항우는 다음에도 기회가 된다면 다시 불러주기 바란다며 호탕하게 웃으며 떠나갔다.

“괜찮으세요?”

양 리화는 힘이 원래대로 돌아오자마자 황급히 현찬 곁으로 다가왔다. 자기도 모르게 이런 물음을 던졌지만, 그것이 정말로 의미 없는 질문이었음을 바로 깨달았다. 그녀는 현찬이 사도라는 존재를 일방적으로 두들겨 팬 것을 두 눈으로 보지 않았던가.

황소 가면은 매우 처참했다. 얼굴에 쓰고 있는 가면만 멀쩡했지 몸 상태는 넝마나 다름없었다. 강건한 육체는 성한 곳 없었고 강철 같은 정신은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특히 너무나도 압도적인 패배에 황소 가면의 멘탈은 그야말로 결딴난 상황이었다.

“저야 멀쩡하죠. 얘가 멀쩡하지 않을 뿐. 그보다 양 리화 씨는 괜찮으세요?”

“네, 네?”

“영령과의 계약이 한번 크게 흐트러지셨잖아요. 저는 헤르메스의 특성이 특성이다 보니까 별 문제 없이 멀쩡하지만 양 리화씨는 지금도 안색이 좀 나빠 보여서요.”

“괜찮…… 아요. 걱정해줘서 고마워요.”

양 리화는 현찬에게 걱정하지 말라며 배시시 웃었다. 약간의 충격과 피로함은 있었지만, 그녀 말대로 큰 문제는 없었다. 영령 간 계약이 사라진 것도 일시적이었고 처음 겪는 일이라 당황했을 뿐이다.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이제 이 녀석을 처리하죠.”

현찬은 너덜너덜해진 황소 가면의 멱살을 흔들었다. 이미 반쯤 정신을 놓은 황소 가면은 저항 의지조차 상실한 채 현찬의 손길에 힘없이 흐느적거렸다. 첫 등장과 함께 무게 잡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어떻게 하실 생각인가요?”

“어떻게 하시길 바라는데요?”

질문에 오히려 질문이 돌아오자 양 리화는 살짝 당황했다. 하지만 순박한 성미의 그녀는 시선을 살짝 위로 올리며 고민을 했다. 자신은 어떻게 하길 바라는가?

솔직히 말하자면 잘 모르겠다.

황소 가면이 이쪽에 공격을 가한 건 맞지만 직접 싸워서 승리한 것은 현찬이었고 놈들에 관해서도 잘 아는 것도 현찬이였다.

그들을 생포하고 무언가 정보를 얻어내는 것을 아주 잘 아는 사람도 현찬이었던 것이다.

“일단 정보를 얻어야 할 것 같아요. 정부에 넘기는 건…… 조금 그럴까요?”

“그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겠죠. 하지만 이 사도들에게는 특별한 금제가 걸려있어요. 현재로서는 그 어떠한 수단을 이용해도 제대로 해제할 수 없는 악독한 저주 같은 거죠.”

“…… 정부에 맡기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거네요.”

양 리화는 눈치가 빨랐다. 황소 가면에게 걸려있는 금제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히 보통은 아닐 것이다. 특히나 황소 가면처럼 특별한 자리에 올라와 있는 자라면 조직의 비밀을 지키려 더한 금제가 걸려있으리라.

정부에 소속된 유능한 요원들과 헌터들은 많다. 특히나 중국은 헌터 강대국이고 막대한 인구에 걸맞은 엄청난 인재 풀을 지녔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 황소 가면에게 가해진 금제를 풀어낼 사람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알렉세이 윌터와는 이야기를 끝냈지만 양 리화는 아직 모르는 것이 많았다. 현찬은 그 점을 인지하고 양 리화가 모르는 것들을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그녀는 현찬의 말에 눈을 빛내며 경청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이계의 존재가 건 금제라면 저희로서는 딱히 방도가 없을지도 몰라요.”

“그렇죠.”

“현찬 씨는 무슨 방도가 있으신가요?”

양 리화는 기대감 가득 담긴 시선으로 물었다. 하지만 그녀의 기대와는 반대로 현찬은 고개 저었다.

“애석하지만 저에게도 딱히 방법은 없어요. 이 금제는 워낙 악독한 것이기도 하지만 시전자가 정말로 대단한 녀석이라 지식 없는 제가 풀 수 있는 것이 아니거든요.”

애초에 이 금제는 다른 세계 기술이다. 지구와 궤를 달리하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리 마법에 관한 지식이 많은 헤르메스라고 하더라도 난생처음 보는 것을 알아낼 수 있지는 않았다.

그것이 지구에 속한 것이라면 권능으로 알 수 있었겠지만 이계의 것은 권능의 영향 바깥이라는 이유가 컸다.

이계와 통로가 연결되어 그쪽과 왕래가 가능하면 권능을 발휘할 수 있겠지만 아직 지구는 대통합이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은 닫힌 세계였다. 지금으로서는 딱히 방도가 없다는 소리였다.

“물론 완전히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죠.”

“다른 방안이 있으신 건가요?”

“뭐, 방법이라고 해도 그렇게 신사적인 건 아니라서요.”

그리고 반야 가면에게 했던 것처럼 썩 보기 좋은 풍경은 아닐 것이다.

현찬의 왼쪽 눈에 황금 안대가 씌워졌다.

&

현찬은 싸늘한 시체가 돼 버린 황소 가면을 내려다보았다. 금제의 발동은 황소 가면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번에는 반야 가면 때와는 다른 방식으로 건드려 보아서 조금 더 오래 버텼지만 그런데도 금제는 여지없이 발동했다.

하지만 얻은 건 있었다. 오히려 반야 가면에게 얻었던 것들보다 더 값진 정보를 획득했다.

‘나머지 사도들의 존재와 놈들이 사용하는 주요 거점 몇 곳을 얻은 것은 매우 크다.’

그들이 스스로 사도라고 지칭하는 것에서 예상했듯 가면 쓴 사도들은 총 12명이나 존재했다. 물론 그중에서 벌써 3명이 죽은 상태라 이제 남은 수는 9명이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우습게 볼 상대는 아니다.

각자 자신만의 분야에 특출한 녀석들이 무려 9명이다. 게다가 황소 가면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용 가면 사내는 그야말로 범접 불가능한 강함이 느껴졌다. 사도 중에서 가장 강한 타이틀을 가진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그 순수한 실력만큼은 거의 오버랭크 헌터에 준한다고 볼 수 있었다.

옆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양 리화도 역시나 일루베 아르카라는 조직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직시했는지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저희가 이 싸움에서 이길 수 있을까요?”

그녀의 목소리에는 일말의 불안감이 담겨 있었다. 신과 계약을 맺고 오버랭크 헌터가 된 그녀 또한 세계의 진실을 마주한 자 중 하나이다. 소심한 성격의 그녀에게 이러한 진실은 그녀의 마음을 강하게 짓누르는 짐이나 다름없었다.

나중에 이어질 다른 세계와의 싸움도 싸움이지만, 아직도 세상에는 문제점이 많았다. 영령과 계약을 맺고 범죄자가 된 사람이나 괴물들과 계약을 맺어 괴물이 돼 버린 자들. 멸망해버린 세계에서 도망쳐 자기 세계의 부활을 꿈꾸는 이계의 첨병까지.

문득 그런 의문이 들었다.

과연 가능할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는 쉽게 당하지 않을 거니까요. 모두가 하나로 뭉친다면 최소한 무의미하게 패배하지는 않을 거예요.”

그렇게까지 해도 진다면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아직 모든 일이 확정된 것은 아니었다. 미래는 모를 일이니까 벌써 불안에 떨 필요는 없었다.

현찬의 위로에 양 리화는 마음이 차분해졌는지 조금 안도감 어린 미소를 지었다. 현찬이 그 모습을 보며 웃자 그녀는 얼굴을 붉혔다. 그 광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던 구천현녀는 어딘가 매우 감격스러운지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세상에, 그렇게 말 안 하던 아이가 저렇게나 스스로 노력하려는 모습을 보이다니! 정말 감동적이구나!]

그야말로 성장한 딸을 보는 것 같은 어머니의 태도에 아테나는 어색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도 은근히 현찬에게 제법이라는 시선을 던졌다. 그리스 시대에 저런 남자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크르릉! 감히 내 현찬에게 꼬리를 치려고 하다니!]

[…… 어휴.]

물론 이 모자란 동생을 두고서 그런 생각을 품기에는 아직은 너무 이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약자는 너의 것이 아닌 그 본인의 것이다. 철 좀 들어라!]

헤르메스를 향한 아테나의 잔소리가 망치처럼 떨어져 내릴 무렵 멀리서부터 헬기 모터 돌아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현찬과 양 리화의 시선이 소리의 근원지로 향했다. 그곳에서부터 다수의 헬기가 이쪽을 향해 접근하고 있었다.

중국 정부 측에서 싸움이 끝난 것을 확인하고 둘을 직접 데리러 온 것이다. 현찬은 양 리화에게 손을 내밀었다.

“갈까요? 움직이기 불편하니 제 손 잡으세요.”

“…… 네.”

양 리화는 수줍게 웃으며 현찬의 손을 잡았다.

구천현녀는 어딘가 뿌듯한 미소를 지으며 그 광경을 보았고 헤르메스는 더욱 발광했다.

&

현찬이 난제를 쓰러뜨리자 세계는 재차 크게 뒤집혔다. 그 누구도 잡지 못할 거로 생각했던 난제를 무려 둘이나 사냥했다. 처음에 현찬이 난제를 사냥한다고 했을 때 콧방귀를 뀌며 말도 안 된다고 비웃던 사람들도 마음을 고쳐먹을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혹시나, 정말로.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일대를 두려움으로 몰고 가는 난제를 모조리 뿌리 뽑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그것을 증명하듯이 세계 강대국의 움직임 또한 주시할 만했다. 각국 수장들은 계속 만나면서 세계를 하나로 통합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그리고 그들이 가장 먼저 본격적으로 실시한 행동은 바로 온갖 범죄자들을 때려잡는 것이었다.

이런 움직임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세계적인 범죄 집단들이었다.

마피아, 야쿠자, 카르텔 등등. 온갖 악독한 짓을 저지르는 자들은 몸을 잔뜩 웅크린 채 숨을 죽였고 데스페라도와 람브로눅스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지금까지 따로 놀던 나라들이 하나로 뭉치며 연합을 이루며 자신들을 공격하니 당연히 그럴 수밖에.

람브로눅스와 데스페라도의 거점들이 순식간에 박살 났고 잔당들은 제대로 힘도 쓰지 못하고서 뿔뿔이 흩어지거나 숨어지내기 급급했다.

이런 새롭게 생성된 세계정부의 행동에 사람들은 당연히 환호했다.

그런 움직임의 틈새에서도 현찬은 독보적인 관심을 받았다. 무려 난제를 둘이나 사냥했으니 그럴 법도 했다.

“그런데 일본이 거절하고 있다고요?”

“그렇습니다.”

정기원 실장이 전해준 말에 현찬은 조금 당혹감을 품었다. 한국의 어스름달을 처리하고 중국의 천흉마저 제거했다. 이제 이 동북아에 남은 것은 대붕응자조와 십미천호 뿐이었다. 그중에서 가장 가까운 것이 일본의 십미천호였고 현찬은 기꺼이 녀석을 사냥하고자 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에서 강력하게 들고 나섰다.

현찬의 도움은 필요 없다고 말이다.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네요.”

일본은 현재 극우주의자가 정권을 잡은 상태. 안 그래도 최근에 한국에 오버랭크 헌터가 나타나서 상대적으로 국가의 위신이 떨어지는 상황인데 여기에 더해 현찬에게 십미천호의 사냥을 부탁하기엔 그들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것이다.

“어리석은 자들이죠. 자기들의 힘으로 잡을 수 있다고 여기니까요.”

난제가 괜히 난제가 아니다. 십미천호가 여타 난제에 비하면 나름 얌전하고 피해를 많이 만든 것은 아니지만 녀석이 난제라고 불리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반드시 존재했다.

그런 녀석을 오버랭크 헌터의 도움도 없이 자기들의 힘만으로 잡겠다고 하니 난제의 강함에 관해 잘 아는 사람들은 헛웃음만 나올 뿐이었다.

“그쪽이 뭐 그렇게 생각한다면 제가 딱히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죠.”

현찬은 시원하게 사실을 받아들였다.

그러지 않더라도 최근 알렉세이에게서 개인적인 부탁을 받은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다른 곳에 가실 겁니까?”

“네. 이번에도 협업이 준비되어 있거든요. 그리고 이번에는 다른 사람들도 몇 명 더 데리고 가고 싶네요.”

“원하신다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그보다 이번엔 무엇을 잡으러 가십니까? 대붕응자조 입니까?”

“아니요.”

현찬은 정기원 실장의 방의 한쪽 벽에 걸려있는 세계지도를 보았다. 그중에서 남아메리카의 브라질로 시선을 집중했다.

“브라질로 갑니다.”

브라질의 아마존 숲.

그곳에는 난제 중 하나인 <스왈로우>가 숲 일대를 차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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