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8
108화 습격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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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과과광!
손에 쥔 검을 한번 휘두를 때마다 거대한 참격이 뿜어져 나왔다. 그것은 마력도 오러도 강기도 아니었다. 검을 휘두르는 힘이 너무나도 강한 나머지 그 운동에너지가 채 사라지지 않고 공기를 타고 전해져 근처 산들을 강하게 때렸다.
지면이 뒤집히고 겨우 형상을 유지하고 있던 바위산들이 와르르 무너져 내린다. 어떤 것들은 참격을 견디지 못하고 깔끔하게 잘려 비스듬하게 쓰러져 엄청난 굉음과 함께 먼지구름을 일으켰다.
‘이런 미친!’
황소 가면은 속으로 욕설을 내뱉으며 몸을 빠르게 뒤로 뺐다. 하지만 움직임이 가장 빠른 건 그뿐이었고 그의 부하들은 그러지 못했다. 황소 가면의 부하들은 현찬이 휘두르는 검격에 속절없이 쓸려나갔다.
‘어떻게 돼먹은 힘이냐!’
황소 가면도 안다. 저것은 무언가의 기예나 능력이 아니다.
압도적인 힘.
너무나도 강해서, 단지 휘두르는 것 하나만으로 참격이 수십 미터씩 뻗어 나와 모든 것을 집어삼킨다. 휘두르는 것은 일반적인 크기의 검이지만, 실상은 약 30m나 되는 거검을 휘두르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분명히 영령의 힘은 봉인했을 터!’
새 가면이 전해준 수정이 가진 능력은 확실했다. 그것을 실제로 사용해보기 전에 실험도 충분히 했었고 사도들 또한 수정이 지닌 효과를 인정했다. 그것이 발동하는 것까지 제대로 확인했고 실제로 중국의 오버랭크 헌터인 양 리화는 계약의 무효화 효과 탓에 제대로 서 있지도 못했다.
하지만 현찬은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 전보다 더 쌩쌩하게 움직이며 미친 듯이 날뛰었다.
<서초패왕 항우>
그의 힘은 일전에 현찬이 계약했을 때보다 더 강해져 있었다.
아니, 항우의 힘이 강해진 것이 아니다. 현찬이 더 강해졌기에 비로소 항우의 본신의 힘을 끌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지금의 현찬은 영웅급 영령들과 계약을 맺을 경우 그게 누구라도 전성기의 힘 그 이상을 낼 수 있었다.
그 모든 사실을 모르는 황소 가면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믿기지 않는 기적을 보는 기분이리라. 황소 가면이 몸을 뒤로 빼고 그가 지나간 자리마다 지면이 박살 나고 파헤쳐지며 붕괴한다. 현찬의 공격은 매우 집요했다. 그는 절대 황소 가면의 도망을 허락하지 않았다.
으득! 황소 가면은 이를 악물었다. 이미 부하들은 순식간에 다 휩쓸려 나갔다. 애초에 아쉬워하지도 않았다. 그 정도 되는 녀석들이야 얼마든지 대체할 수 있었으니까. 다만 짜증이 나는 것은 자신이 직접 나서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래. 어쩌면 이렇게 내가 직접 나서는 게 잘된 걸지도 모른다.’
강현찬이라는 인간에 관해서 이미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신과 계약을 맺은 것만으로도 예의주시의 대상이지만 현찬은 특히나 그런 취급이 더 심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현찬이 보여주는 능력과 지금까지 이룩한 업적들이 매우 위협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모든 상황에서 최적의 대처를 해왔다. 그것을 가장 크게 느꼈을 때가 바로 수원시에서 벌어졌던 공성전이었다. 맨땅에 높이 수십 미터에 길이가 수 킬로미터에 달하는 성벽을 세웠을 때는 비록 영상으로 봤음에도 믿을 수 없었다.
어디 그뿐인가.
압도적인 무력으로 사도 중 전투력만으로 3위를 차지한 철 가면을 쓰러뜨렸다.
큰 비용을 들여서 겨우 열었던 심연과의 <문>을 그야말로 박살을 냈다.
반야 가면의 세뇌를 이용해 해적들을 움직였는데 압도적인 함대로 해적들을 소탕했다.
폭주시킨 어스름달을 그 어떤 피해도 없이 제거했다.
이것 외에도 현찬이 해낸 일들은 많았다.
그렇기에 현찬은 매우 위험한 인물이었다. 그는 힘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지혜도 있었고 어떤 상황에서라도 최선의 대처를 할 수 있는 독특한 능력도 지니고 있었다.
‘그런 녀석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무언가 또 힘을 숨기고 있다고 해도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 실제로 펼쳐지고 있었다.
황소 가면은 뒤로 물러서는 것을 멈추었다. 그는 지면을 박차고 현찬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는 두 팔 활짝 펼치다가 이내 손으로 현찬의 목을 노리고 휘둘렀다.
후퇴하다가 기습하는 동작은 매우 매끄러웠고 갑작스러웠다. 아무리 날고 긴다는 헌터라 하더라도 이런 공격에는 당황할 법도 했지만, 현찬은 침착했다.
항우에게 이 정도의 기습은 너무나도 우스운 일이었다.
촤악! 황소 가면의 날카로운 손이 현찬의 몸을 갈랐다. 갈기갈기 찢겨나간 현찬의 모습은 허공에 아지랑이처럼 흩어졌다. 잔상이다. 황소 가면이 몸을 틀며 두 팔을 좌우로 교차해 방어 자세를 취했다. 그곳에 현찬의 발길질이 적중했다.
꽈앙! 황소 가면의 몸통이 대포알처럼 뒤로 튕겨 나갔다. 물수제비처럼 바닥을 몇 번이나 튕기고 뒹굴더니 황소 가면은 자세를 잡고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의 두 팔에는 짙고 푸른 멍이 들어 있었다.
‘엄청난 힘이다.’
황소 가면은 사도 중에서 가장 몸이 튼튼했다. 그의 피부, 근육, 뼈 할 것 없이 생명체의 한계를 벗어난 강도를 자랑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무기가 필요 없었고 방어구도 필요 없었다.
그의 몸 자체가 흉기였고, 그의 몸 자체가 하나의 무기이자 방어구였으니까. 하지만 그 생각은 지금 깨지고 말았다. 용 가면을 제외하면 자신에게 상처를 줄 사람은 미국의 오버랭크 헌터인 알렉세이 윌터 뿐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큰 착각이었다.
두 팔이 저렸다. 탱크가 쏘아내는 철갑탄도 튕겨내는 몸은 현찬의 공격을 견디지 못했다. 후욱. 숨을 몰아쉬자 그의 팔에 있던 멍들이 빠른 속도로 사라졌다.
황소 가면의 특징은 단순히 몸이 튼튼한 것에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다른 사도들보다 월등한 재생력을 지니고 있었다. 어지간한 상처를 입더라도 순식간에 아물었다. 신체 일부가 잘려나가도 시간을 들인다면 재생이 가능했다.
금속보다 단단한 몸과 몬스터를 방불케 하는 뛰어난 재생력은 그를 사도 중 2위로 만들어 주기에는 충분했다.
“튼튼하네?”
그러나 현찬은 별로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이렇게 쉽게 쓰러지지 않은 황소 가면에게 약간의 반가움마저 느낄 정도였다.
‘그래. 이렇게 끝나면 재미가 없지. 그쪽에서 최선을 다해 기습했으면 무언가 더 보여야 하지 않겠어?’
황소 가면은 속으로 현찬을 욕했다. 그 말은 입 밖으로 나오는 일은 없었다. 그보다 먼저 지척까지 접근한 현찬이 주먹을 내질렀기 때문이다. 황소 가면도 주먹을 내질렀다. 꽈앙! 두 주먹이 서로 충돌했다. 주먹끼리 부딪쳤다고는 믿을 수 없는 소리가 났다.
콰당탕! 황소 가면의 몸이 또다시 뒤로 튕겨 나갔다. 수십 미터를 뻗어져 나간 몸통은 절벽에 처박혔다. 황소 가면의 오른팔의 근육이 터지고 피부가 찢어졌다. 그의 오른팔은 순식간에 피투성이가 되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빠른 속도로 복구되었다.
그가 절벽에 박힌 몸을 빼내려고 했다. 하지만 현찬의 공격이 먼저였다. 현찬은 한 줄기 빛처럼 뻗어지며 그 속도를 살려 황소 가면의 배에 재차 주먹을 박아 넣었다. 무기? 그런 건 필요 없었다. 녀석은 맨주먹으로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었다.
콰아아앙!
땅이 크게 흔들렸다. 황소 가면을 중심으로 거미줄 같은 금이 넓은 절벽을 타고 내달렸다. 거대한 절벽이 천둥소리를 내며 무너져 내렸다. 현찬은 즉시 황소 가면의 멱살을 붙잡고 절벽에서 뽑아내 바닥에 매쳤다.
콰앙! 지면에 거대한 크레이터가 생겼다. 황소 가면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는 강하다. 몸이 튼튼하고 재생력이 강하며 심지어 근력도 인간의 그것을 아득히 초월했다. 그런 그의 손에 잡히기만 한다면 현대의 병기조차 종이처럼 구길 수 있었다.
하지만 현찬에게 잡히고 두들겨 맞고 팽개쳐 지면서 황소 가면은 아득해지는 정신을 겨우 붙잡는 것이 전부였다. 현찬의 공격은 너무나도 강했다. 현찬의 주먹은 황소 가면의 강건한 육체를 파고들어 내부를 진탕 시키고 단단한 정신에 금을 가게 했다.
무엇보다 틈이 없었다. 어떻게든 최대한 덜 아프게 맞는 것이 황소 가면이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이었다.
현찬은 그런 황소 가면을 보며 눈을 빛냈다. 녀석은 어지간한 공격에도 쓰러지지 않고 버텼다. 아니, 버티더라도 가까스로 버티는 것에 가까웠다. 현찬에게 반격하지 못하는 게 그러한 이유였다.
“어디 얼마나 버티는지 볼까?”
현찬의 섬뜩한 말은 황소 가면의 온몸에 소름이 오소소 돋게 했다. 현찬은 지치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열정을 불태우며 황소 가면을 몰아붙이려고 했다. 황소 가면은 자신의 혀를 깨물어 하얗게 점멸하는 정신을 강제로 일깨웠다.
“건방진……!”
황소 가면이 그렇게 고함을 내지르는 순간 현찬의 발이 그의 왼쪽 어깨를 내리찍었다. 으득! 뼈가 부러지며 황소 가면이 지면 깊숙하게 처박혔다. 얼굴은 때리지 않았다. 자칫 잘못 했다가 가면이 부서지면 금제가 발동할지도 몰랐으니까.
현찬은 철저하게 몸만 때렸다. 황소 가면도 현찬의 의도를 알기 때문에 분노를 터뜨렸다. 콰앙! 지면에 처박힌 황소 가면이 바위를 부수며 뛰쳐 나왔다. 그는 그대로 현찬을 향해 몸을 던져 돌진했다. 착용하고 있는 가면에 걸맞은 저돌적인 행동이었다.
턱!
하지만 황소 가면은 현찬을 밀어내지 못했다. 그가 아무리 악을 쓰고 힘을 줘도 현찬의 몸은 단 한치도 뒤로 밀려나지 않았다.
[우습구나.]
항우는 그런 황소 가면을 조소했다. 100마리가 넘는 엘리트 오크의 공격마저 막아내는 그의 힘을 고작 개인이 이기겠다고 발버둥치는 꼴이 얼마나 우스운가. 어떻게 보면 연민마저 들 정도였다.
현찬이 두 팔을 든 채로 깍지를 끼고 황소 가면의 등을 내리찍었다. 그의 몸이 지면에 재차 처박혔다. 꽈아앙! 지면이 움푹 파였다. 마치 운석이라도 충돌한 것처럼 충격파가 퍼져나갔고 먼지구름이 뿌옇게 일어나 주변 일대를 뒤집어 삼켰다. 그마저도 재차 이어진 충격파에 찢겨져 나갔다.
“대단해…….”
싸움의 여파 바깥, 먼 곳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양 리화는 자그마한 입술을 벌리며 감탄했다. 현찬이 강하다고는 알았지만 설마 영령의 힘을 일순간 잃었음에도 저 정도 무위를 펼칠 줄 몰랐다.
‘말도…… 안 된다!’
황소 가면은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하지만 그의 육체는 그의 의지를 배신했다. 아무리 튼튼한 그의 육체라 하더라도 현찬에게 당한 공격을 절대 무시하지 못했다. 그의 몸이 비틀거리며 재차 바닥에 미끄러지듯 쓰러졌다.
‘이 내가…… 이렇게 허무하게 패배한다고?’
아무리 그가 못 싸워도 최소한 동등한 싸움이어야 했다. 상대방은 계약을 맺은 신의 힘을 다루지 못한 채 그저 자신이 스스로 터득한 힘만을 가지고 기본적인 권능만을 가지고서 싸워야 했으니까.
그런데 이 꼴은 대체 뭐란 말인가. 미친 듯이 두들겨 맞고 미천하게 바닥을 기기만 하고 있다. 저항다운 저항은 한 번도 하지 못했다. 그것이 황소 가면을 더욱 절망에 빠뜨렸다.
그는 현찬을 우습게 여기지 않았다. 오히려 현찬을 아주 경계했고 위험하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부족했단 말인가? 너무나 부조리했다.
어두운 지면의 속에 파묻힌 황소 가면의 눈에 빛이 들어왔다. 목에 가해지는 강렬한 힘이 느껴졌다. 그의 몸을 누군가 강제로 끄집어냈던 것이다. 누구인지는 보지 않더라도 알 수 있었다. 강현찬, 그가 그를 땅속에 처박은 장본인이 다시 그를 지면 위로 꺼내고 있었다.
[아. 다시 원래대로 되돌아 왔다.]
타이밍 맞춰서 헤르메스와 아테나 또한 돌아왔다. 일시적으로 계약을 무효화하는 수정의 효과가 다 한 것이었다.
현찬은 제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황소 가면을 보며 씨익 웃었다.
“안 그래도 찾던 와중이었는데 이렇게 알아서 찾아와 줘서 고맙다.”
이제 정보를 뽑아낼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