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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무한계약-107화 (107/265)

# 107

107화 습격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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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난…… 거예요?”

“응. 끝났어.”

뒤에서 조심스레 물어오는 양 리화의 질문에 현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싸움은 끝났다. 중국을 공포로 몰고 간 난제 천흉은 이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것을 증명하는 것이 바로 현찬의 오른손에 쥐어진 자그마한 마석이었다.

작다고 마냥 쓸모없는 것은 아니었다. 어지간한 마석보다 크기는 작지만 내포한 에너지는 다른 것과 비할 바가 아니었다. 백강오가 펼쳤던 무한하다 싶을 정도의 검은 강기의 근원이 이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이 마석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의 밀도는 너무나도 거대했다.

현찬이 그것을 만지고 있을 때 현찬의 몸을 휘감고 있던 어스름달이 반응했다.

“응?”

“주인님. 그거 저 주시면 안 돼요?”

어스름달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 목소리에는 참을 수 없는 흥분과 기대감이 가득 차 있었다. 아마 녀석은 지금 현찬이 손에 쥐고 있는 마석을 탐하는 것이리라. 대충 어떤 상황인지 이해는 갔다.

이것을 먹으면 어스름달은 더욱 강해질 것이다. 본인도 그것을 알기 때문에 먹기를 바랐다. 현찬은 아주 짧은 시간이지만 곰곰이 생각해 본 뒤에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유야 간단했다. 어스름달이 더 강해 진다면 현찬에게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 못 줄 이유야 없지.”

“아싸!”

현찬이 마석을 가까이 가져오자 현찬의 옷 틈새에서 어스름달의 신체 일부가 쭈욱 늘어나 마석을 낚아채더니 이내 그것을 삼켜버렸다. 고밀도의 마석은 순식간에 어스름달의 체내에서 녹아내리고 분해되어 흡수됐다.

어스름달은 전성기에 비하면 확실히 약해진 상태였다. 약해졌다고 해도 정확히는 덩치가 작아지고 힘의 총량이 줄어들었을 뿐이다. 어스름달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어둠을 다루는 능력이나 물리 공격을 면역에 가깝게 막아내는 특징은 고스란히 지니고 있었다.

이번에 마석을 섭취함으로써 어스름달은 더욱더 강해졌다. 그 힘의 총량은 당연히 늘어났고 지닌 능력의 깊이와 성취 또한 더욱 증가했다.

현찬이 그것을 느꼈을 정도이니 어스름달 당사자는 더 확실하게 와 닿았을 것이다.

“감사해요, 주인님!”

어스름달은 몸을 꿈틀거리며 지금 취할 수 있는 최고의 찬사를 현찬에게 보냈다. 현찬은 그런 어스름달에게 알겠다며 웃어 보이고는 천흉, 아니 백강오가 떨어뜨린 검을 손에 쥐었다.

생긴 것은 별로 특별할 것이 없는 검이었다. 길지도 짧지도 않았고 화려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렇기에 가장 검에 가까운 형태를 띠고 있었다. 그것을 쥐는 순간 손에 착 감기는 걸 느끼며 현찬은 속으로 생각했다. 좋은 검이라는 것을.

‘그보다 악귀들의 세상이라는 건가.’

붉은 피부와 머리에 자라난 뿔.

자세한 상황은 모르지만, 이야기를 들어보면 아무래도 백강오의 무림 세계를 멸망시킨 녀석들은 그 악마라는 자들이 분명했다.

세계는 넓고 차원들은 다양하다. 사자머리를 한 수인도 있는 마당에 머리에 뿔 달린 악마라고 없다고 할 수 없었다. 오히려 그런 녀석들이 있다는 것을 알아서 다행이라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이 자의 세계를 멸망시킨 걸 보면 아무래도 꽤 전쟁을 바라는 종족인 것 같고.’

현찬의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그들은 어떻게 보면 악(惡)에 속한 종족들이다. 그들이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싸우고 파괴하고 지배하는 것뿐이다. 그들은 절대로 평화를 바라지 않을 것이다. 만약에 지구와 연결이 된다면 서로 필사적으로 싸우겠지.

‘준비해야 해.’

정보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그래야만 더욱 확실하게 대비할 테니까.

현찬은 검을 챙기고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중국 정부에 천흉의 토벌은 무사히 끝났다고 전한 후에 멀리 떨어져 있는 기지로 돌아가 합류를 할 생각이었다.

갑작스러운 불청객들의 등장만 아니었다면.

양 리화는 자신의 검을 뽑아 들었다. 그녀의 분홍 비단은 이미 갈가리 찢겨나가서 더는 사용할 수 없었지만, 검 한 자루만으로도 그녀는 충분히 강했다. 그녀의 시선의 끝, 싸움의 여파에서 한참 멀리 떨어진 곳에 한 무리의 집단이 바위산 봉우리 꼭대기에 서 있었다.

온몸을 헐렁하고 짙은 색상의 로브로 가리고서 얼굴에 기기묘묘한 가면을 쓴 자들. 그들의 중심에서는 다른 녀석들보다 덩치가 1.5배는 커 보이며 양 머리의 뿔이 하늘 높게 치솟아 오른 황소 가면이 있었다.

“저자들은…….”

“난제가 있는 곳에 없다 싶어서 어디 있나 했더니 저기 있었네요.”

비밀조직 <일루베 아르카>의 조직원들과 그들을 이끄는 사도. 놈들의 출현에 현찬은 목을 좌우로 꺾으며 몸을 풀었다.

[이런 식으로 우리를 노리려고 하다니, 의외로 영악한걸?]

[흠. 그 싸움을 보고 꽁지가 빠지게 도망갈 거라고 예상했거늘 참으로 멍청하구나.]

놈들의 생각은 뻔히 읽혔다. <난제> 천흉은 강하다. 어스름달과는 확연히 다를 정도로 강하다. 심지어 세뇌에 특화된 반야 가면마저 죽었으니 함부로 천흉에게 접근하지 못했을 것이다.

놈들이 바라는 건 그저 천흉과 현찬이 싸워서 둘 중 하나가 죽더라도 나머지 한쪽도 큰 피해를 보았을 테니 어부지리를 취하려는 속셈이리라.

지금은 현찬과 양 리화가 이겼으니 놈들은 싸움에 지친 둘을 노리고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들의 의도는 얼추 들어맞았다. 파천마 백강오와의 싸움으로 현찬과 양 리화는 상당히 지친 상태였다. 특히나 양 리화는 자신의 주특기인 비단마저 사라진 상태였다.

놈들에게 있어서 먹잇감을 노리기에는 가장 최적의 상태이리라.

그렇다 하더라도 이쪽은 오버랭크 헌터다. 아무리 힘이 빠지고 약해졌다고 하더라도 S랭크 헌터도 가볍게 쓰러뜨릴 수 있는 절대강자가 바로 현찬과 양 리화였다. 그런데 신중하고 교활한 저 악당들이 둘을 우습게 보고서 바로 모습을 드러냈다.

‘보아하니 뭔가 또 꿍꿍이가 있는 것 같은데.’

그 해답은 오래 지나지 않아서 밝혀졌다. 아주 멀리 서 있던 황소 가면이 손에서 무언가를 꺼내더니 이쪽을 향해 집어 던진 것이다. 딱히 무언가를 맞추겠다는 의도는 없었지만, 경계는 해야 했다.

현찬과 양 리화는 방어태세를 취했다. 날아온 것은 검붉은 빛이 소용돌이치고 있는 수정이었다. 그것은 현찬과 양 리화의 근처로 떨어지더니 이내 파삭! 소리를 내며 산산조각이 났다.

[무언가 온다!]

헤르메스의 경고와 동시에 수정의 속에 담겨 있던 거무튀튀한 기운이 동심원을 그리며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그것은 거대한 공터를 빠르게 가로질러 현찬과 양 리화의 몸을 훑고 지나갔다.

“뭐지?”

현찬은 아이기스를 <차용>해서 검은 기운을 막아내려고 했지만, 그것은 마치 바람이라도 되는 양 아이기스를 가볍게 타고 흘러 넘어와 현찬의 몸을 스쳐 지나갔다. 현찬이 어리둥절한 순간이었다.

허공에 떠 있던 헤르메스와 아테나의 모습이 점차 흐릿하게 변하더니 이내 사라졌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대체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곁에 선 양 리화 또한 몸을 한 차례 덜컥! 떨더니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괜찮으세요?”

“아으……계, 계약이…….”

양 리화는 떨리는 목소리로 그런 말을 내뱉었다. 현찬의 표정도 덩달아 굳어졌다.

놈들이 대체 어떻게 한 것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단 하나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지금 영령과의 계약이 아주 일시적이지만 무효화 되었다는 것이다.

‘저런 걸 숨겨놓고 있었다는 거네.’

영령과의 계약을 무효화하다니. 그것이 영구적일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한다고 하더라도 일시적인 것에 지나지 않겠지. 하지만 그 일시적인 순간만큼은 오버랭크 헌터조차 힘이 크게 떨어진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놈들은 약해진 그 틈을 노리려는 것이다.

멀리서부터 황소 가면과 그 부하들이 이쪽을 향해 빠르게 다가왔다. 여기서 도망을 친다고 해도 이미 힘이 쭉 빠진 양 리화를 데리고 더 멀리 도망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지. 싸우는 수밖에.’

현찬이 앞으로 나서자 양 리화는 고개를 필사적으로 저으며 현찬의 바짓가랑이를 잡았다.

“도망…… 가세요. 저는…… 괜찮으니까.”

괜찮기는 뭐가 괜찮다는 걸까. 이미 힘이 빠졌고 거기에 더해서 구천현녀와의 계약이 일시적으로 무효화 된 충격에 제대로 서 있지 못하는 그녀가 할 말은 아니었다. 현찬은 부드럽게 그녀의 손을 쥐며 자신의 바지에서 떼어냈다.

“괜찮아요.”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현찬은 양 리화처럼 크게 타격 입지 않았다.

어쩌면 현찬이 계약을 맺은 헤르메스가 계약을 주관하는 신이기에 타격이 더 적은 것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뿐만은 아니었다.

“이런 상태에서도 저런 녀석들은 충분히 이길 수 있으니까요.”

현찬은 질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것은 자신감이자 확신이었다.

감이 머릿속에서 계속 말하고 있었다. 위험하지 않다고. 싸워도 이길 수 있다고. 현찬은 자신의 감을 맹신하지는 않아도 나름 믿는 주의였다. 무엇보다 이성적이고 객관적으로 상황을 파악해도 크게 무리는 없을 것 같았다.

왜냐하면, 그는 다중 계약을 맺을 수 있는 헌터이기 때문이다.

‘호오? 도망가지 않았다고?’

황소 가면은 현찬이 오히려 싸울 생각으로 앞으로 나서는 것을 보며 가면 속에서 눈을 빛냈다.

‘그 용기는 가상하다만 과연 그것은 오만이 아닌지?’

현찬의 태도는 마음에 들었다. 약해졌다고 등을 보이고 도망치면 이쪽이 오히려 실망했을 것이다. 아무렴. 자신과 대등하지는 않다고 하더라도 비슷한 수준의 사도를 무려 둘이나 해치웠다.

그런 강자가 추한 꼴을 보이면 오히려 이쪽의 기분이 더 상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정정당당한 대결이 아니지. 싸움은 냉정한 법이고 승리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해야 하는 법.’

그래도 약간의 아쉬움은 있었다. 서로 만전의 상태에서 전력을 다해 싸워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황소 가면은 이성적이지만 그래도 강함이라는 것에 집착하는 케이스였다. 강자와의 싸움을 즐기고 그것을 통해 배울 걸 배워 더욱 정진하는 남자였다.

하지만 그런 욕망도 이 자리에서만큼은 접어야 했다.

그분을 따르기로 한 시점에서 그의 욕망보다는 대의가 우선이었다. 충분히 그 점을 인지하고 있어서 황소 가면은 내색하지 않고 현찬을 죽일 각오를 끝냈다.

“많이들 몰려왔네.”

현찬은 높낮이가 없는 음색으로 황소 가면에게 전했다. 현찬의 태도나 표정, 말투에서는 이 위급한 상황에 대한 당혹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만용인가, 오만인가. 아니면 멍청해서 아무것도 모르는가. 황소 가면은 현찬의 속내를 짐작하지 못했다. 지금 상황에서 딱 봐도 불리한데 저런 태도라는 것 자체가 현찬이 범상치 않은 인물임을 증명했다.

이쪽의 숫자는 약 50여 명. 단 2명을 쓰러뜨리기엔 조금 과한 수였지만 상대가 오버랭크 헌터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황소 가면이 오른손을 들며 주먹을 꽉 쥐었다. 공격하라는 수신호였다.

부하들은 지체 없이 황소 가면의 명에 따라 현찬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들은 약하다. 하지만 거리가 멀어서 계약을 무효화 하는 수정에 영향을 받지 않았기에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는 상태였다. 심지어 상대방은 영령과의 계약마저 무산된 상황이 아닌가?

하지만 그 생각은 틀렸다.

‘탈라리아도, 페타소스도, 카두케오스도 불러낼 수는 없네.’

헤르메스에게서 직접 <차용>할 수 있는 능력이 봉인됐다. 어디 <차용>뿐인가. <빙의>와 <소환>도 안 된다. 하지만 헤르메스를 통해서 스스로 얻게 된 능력들은 자체적으로 활용할 수 있었다.

대표적으로 2가지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헤르메스의 눈>과 <계약>이었다.

그리고 <계약>을 발동하면 새로운 영령과 계약을 맺는 것도 가능했다.

이렇게 말이다.

콰아아아앙!!

거대한 충격과 함께 먼지구름이 치솟아 올랐다. 그 충격의 여파에 휩쓸린 일루베 아르카의 조직원 몇 명이 차에 치인 것처럼 멀리 튕겨 나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놈들은 일어나지 못했다.

‘이, 이게 무슨?’

황소 가면은 순간 당황했다. 방금 직전에 현찬이 보여준 힘은 도저히 약해진 모습으로 보이지 않았다.

“나를 쓰러뜨리려고 많은 걸 준비하려는 건 알겠는데.”

뿌연 먼지구름의 틈새에서 현찬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그런데 할 거면 이보다 훨씬 더 많은 준비를 했어야지.”

<계약>

<서초패왕 항우>

중국 최강의 무장이 이 자리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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