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6
106화 파천마(破天魔)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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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천마 백강오.
그는 흑마충천공을 익힌 무림의 절대자였다.
백강오는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았다. 그는 홀로 일인 전승의 무공을 익혀 강호를 떠돌았다. 그 누구도 그를 함부로 대하지 못했으며 그의 앞길을 막아서는 이들은 모조리 죽거나 반신불수가 되었다. 그는 그야말로 패도를 걷는 인물이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그런 길을 걸어 갈 인물이었다.
그의 세계가 <대통합>이 벌어지지 않았다면 말이다.
갑작스러운 대통합은 무림을 혼란으로 몰고 갔다. 그들은 이계의 존재들과 맞서 싸웠다. 애초에 강호란 그런 곳이었다.
강자지존.
오직 강한 자만이 그 권리를 휘두를 수 있는 약육강식의 세계.
그곳에서 살아가는 자들은 모두 싸울 줄 알았고 게이트를 통해 침공하는 몬스터들과 치열하게 맞서 싸웠다.
그들은 강했고 몬스터들을 무난하게 막아내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그들 세계의 사람들은 서로를 불신하고 자기 집단의 이익만을 지나치게 고수했던 것이다. 강호는 수십 개로 분열되었고 누군가 위험하다고 하더라도 도와주는 의와 협은 사라진지 오래였다.
정파와 사파의 구분에 이어 오대세가와 구파일방이 서로 분열하고 거기서 또 분열을 거듭했다.
그 끝이 파멸이라는 것은 어찌 보면 자명한 일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완전한 <대통합>이 벌어졌을 때 게이트가 아닌 <문>이 생성되었다.
하늘에 생긴 거대한 <문>을 비집고 나온 것은 이계의 존재들. 게이트에서 생성되는 몬스터들 따위가 아닌, 지성과 이성을 갖추고서 본격적으로 전쟁의 준비를 갖춘 자들이었다.
당연하게도 서로 갈라선 무림이 그들을 상대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개개인의 힘은 이쪽이 높았지만 그들은 높은 단결력과 철저한 준비를 통해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뒤늦게 부랴부랴 정사연합이 만들어 졌지만 그때는 이미 병력이 3할조차 남지 않았을 때였다.
마지막 싸움이 벌어졌다. 백강오도 그 싸움에 참전했다.
그는 절대자답게 몰려드는 적들을 미친 듯 휩쓸었다. 그가 손을 한번 휘저을 때마다 무수히 많은 적들이 쓸려나갔다. 하지만 그는 고작 개인이었고 상대는 군대였다. 그것도 매우 훈련이 잘 된 대군이었다.
그렇기에 백강오는 패배했다. 아니, 그의 세계가 패배한 것이다.
백강오는 죽기 직전에 자신의 모든 힘을 폭발시키며 절기를 펼쳤고 그 영향을 받아 광인이 돼버리고 말았다.
놀랍게도 그는 죽지 않았다. 마지막의 마지막에 그는 광인인 상태에서 강렬한 차원의 뒤틀림으로 인해 생성된 게이트에 휘말리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게이트는 차원과 차원의 틈새를 떠돌아 지구에 열리게 된다.
이것이 바로 <난제>중 하나인 천흉의 탄생이었다.
그 누구도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최강의 몬스터는 다른 세계의 최강자 중 하나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천흉, 아니 백강오가 어느 정도의 이성을 되찾으며 자신의 절기 중 하나인 광뢰충천(狂雷衝天)을 펼친 것이다.
콰드득! 콰득!
강렬한 기의 흐름에 백강오가 서 있는 땅이 드르륵 떨려왔다. 그를 중심으로 지면이 부서지고 갈라지며 거대한 돌조각들이 허공에 두둥실 떠올랐다. 그 마저도 그의 기에 휩쓸려 바스슥 거리며 가루가 돼버리고 말았다.
콰지지지직!
검은 번개가 사방으로 내달렸다. 사나운 뇌수의 이빨은 상대가 무엇이든지 간에 가리지 않고 전부 물어뜯었다. 콰광! 주변의 산봉우리가 검은 번개 같은 강기에 휩쓸려 형체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강기는 주변을 미친 듯이 휘저었고 파괴했다.
그리고 그 대상에는 현찬과 양 리화 또한 포함되었다.
‘저건 위험하다!’
현찬은 본능적으로 위기감을 느꼈다. 현찬은 즉시 테레이오스테를 창의 형태에서 방패로 바꾸며 그 위에 아이기스를 본격적으로 <차용>했다. 아이기스의 방패가 더욱 견고해지고 테두리에서 황금빛을 뿜어냈다. 현찬은 두 손으로 그것을 받쳐 정면을 향했다.
양 리화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녀의 몸 주위로 나폴 거리는 분홍색 비단 4줄기가 쭈욱 늘어났다. 촤라락! 비단은 소용돌이처럼 회전하며 나선형 방패가 되었다. 그것이 총 4겹이나 됐다. 거기에 더해서 자신의 마력을 힘껏 불어넣어 방어의 강도를 높였다.
그 직후 번개의 형상을 띈 검은 강기가 그들을 휩쓸었다.
콰아아아앙!
광뢰충천의 공격은 매우 광범위했다. 목표를 확실하게 노리고서 집중적인 타격을 가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목표와 함께 주변 일대를 모조리 소멸하는 공격이었다.
지면이 모조리 붕괴하고 바스러졌으며 주변 일대를 가득 메운 높다란 절벽과 바위산들이 전부 갈려나갔다. 콰과광! 검은 강기가 지면을 헤집을 때마다 거대한 먼지구름이 치솟아 올랐고 바위는 자갈이 되었으며 자갈은 모래가 되었다.
촤자작! 광뢰충천의 날카로운 어금니 앞에서 양 리화의 방어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채 몇 초를 견디지 못하고 그녀가 펼친 4개의 방패가 모조리 찢겨나갔다. 검은 강기는 그대로 여세를 몰아 아이기스를 강타했다.
“크윽!”
현찬은 방패를 타고 전해지는 강렬한 충격에 뒤로 살짝 밀려났다. 두 다리에 힘을 주고서 몸을 더욱 숙이고 밀려나는 신체를 지탱했다. 양 리화 또한 현찬의 곁에 서서 방패를 지탱해 주었다.
꽝! 꽝! 꽈과광!
검은 강기는 계속해서 아이기스를 때렸다. 그것은 끝나지 않는 폭풍 같았다. 미친 듯이 몰아치는 태풍의 아래에서 현찬은 돛단배를 이끌고 바다에 나선 한 명의 어부였다. 조금이라도 삐끗하는 순간 끝이다. 현찬은 그런 필사적인 생각으로 공격을 견뎌냈다.
콰직!
아이기스의 귀퉁이 부분이 손가락 마디만큼 뜯겨 나갔다. 별로 큰 손상은 아니었지만 현찬이 지금 신이 만들어준 무기를 이용해 펼친 방어임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엄청난 위력이 아닐 수 없었다.
현찬이 마력을 더욱 일으켜 아이기스의 위에 덧씌웠다. 아이기스의 방패 위로 푸르른 빛이 더욱 청명하게 빛나며 검은 강기를 있는 힘껏 밀어냈다. 콰드득! 강현과 양 리화가 밟고 있는 지면이 크게 패였다. 둘의 몸이 점점 뒤로 밀려난 탓이었다. 하지만 굳건한 신의 방패는 절대로 뚫리지 않았다.
끝없이 몰아치던 광뢰충천이 점차 약해졌다. 공격이 끝난 것이다. 현찬은 볼을 타고 흐르는 땀을 닦으며 방패 너머로 시선을 던졌다.
[참혹하네.]
[무시무시한 위력이로군.]
눈앞에 보이는 풍경은 그야말로 폐허였다. 주변의 모든 것들이 초토화된 상황. 융단폭격으로 만들어낸 모습보다 더 처참한 광경이 사방에 펼쳐져 있었다. 현찬의 뒤로만 지면이 멀쩡했지 그것을 제외하면 백강오의 반경 1km이내에 있는 모든 것들이 가루가 되어 부서졌다.
하늘에 닿을 듯 굽이치던 산맥은 온데간데없이 남은 것은 거대한 공터뿐이었다.
“정말…… 대단한…… 위력이에요.”
양 리화의 목소리는 두려움에 살짝 떨리고 있었다. 천하에 두려울 것이 없는 오버랭크 헌터조차도 이 상황에 인간 본연의 공포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만약에 현찬이 없었으면 어떻게 되었을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대단하기는 하죠.”
현찬이 가지고 있는 것은 무려 신급 무기다. 그것을 이용해서 만들어낸 방패에 흠집을 새기고 일부를 부수기까지 했다. 몬스터가 아닌 인간이 이런 일을 일으킬 정도라면 정신이 멀쩡한 백강오의 강함은 어느 정도인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만약에 현찬이 쥐고 있던 무기가 헤파이스토스가 만들어준 무기가 아닌 어지간한 무기였다면 아이기스는 조금 전의 공격으로 산산조각이 났을 거고 현찬과 양 리화는 이 세계의 사람이 아니게 되었을 것이다.
현찬은 여전히 흥미가 가득한 시선을 백강오에게 던졌다. 녀석은 큰 공격을 가한 탓인지 몸에 힘이 빠져 있었고 조금 전까지 보였던 미친듯한 투기도 상당히 가라앉은 상태였다.
크으으으!
주화입마 상태에서 오의를 펼친 여파일까 백강오는 몸을 웅크린 채 미친 듯이 머리를 쥐어 싸매고 있었다. 심지어 손에서 절대 놓지 않았던 검마저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다. 이빨이 다 나가서 검으로서의 역할조차 제대로 해낼지 모르는 무기는 그가 얼마나 험난하게 살아왔는지를 단편적으로 보여줬다.
[현찬아. 위험해.]
헤르메스는 아이기스를 해체하며 백강오를 향해 다가가는 현찬에게 경고를 날렸다.
“괜찮아.”
현찬은 그런 헤르메스에게 걱정 말라며 웃어보였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그는 알 수 있었다. 지금 저 상태의 백강오는 그 누구에게도 피해를 끼치지 못할 거라고. 융단폭격마저 막아내는 강렬한 호신강기는 이미 사라져 있었고 모든 생명체를 향한 끝없는 광기와 증오도 없어졌다.
“끄아아아아아!! 허억! 허억!”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발광하던 백강오는 바닥에 머리를 거칠게 박았다. 쿵! 돌가루가 날리며 그의 이마를 타고 피가 흘러내렸다. 강렬한 고통에 정신이 들었는지 백강오는 더 이상 발광하지 않았다.
아니, 발광할 힘조차 없다고 하는 것이 옳았다. 주화입마 상태에서 자신이 가진 모든 힘을 소진한 공격은 그에게 엄청난 탈력감을 선사해주었다.
“정신이 들어요?”
“허억! 허억! 당신은……?”
백강오는 현찬을 알아보았다. 광기에 휩쓸린 그를 조금이나마 이성을 차리게 해준 것이 바로 현찬이었으니까. 싸우면서 현찬의 기억은 어렴풋이 있었다.
‘심각하네.’
현찬은 가까이서 백강오의 상태를 보며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백강오의 몸 상태는 처절했다. 온몸의 피부에 검은 핏줄이 돋아 있었다. 얼굴만 멀쩡하지 몸 상태는 그야말로 만신창이였다. 지금도 살아 있는 것이 용했다.
회광반조였다. 지금 백강오는 정신을 차렸지만, 그것은 오래 가지 못할 이성이었다. 그의 모든 것이 끝에 도달하는 순간 그는 이제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두 팔을 벌려 자기 죽음을 반기지 못하는 것이 그의 한이라면 한일 것이다.
“일어날 수 있겠어요?”
현찬의 물음에 백강오는 바닥에 쓰러진 채로 고개를 저었다. 현찬은 어쩔 수 없지 하며 그의 몸을 일으켰다. 간단한 마법을 사용해 지면의 흙을 세워 등받이로 만들고 거기에 백강오를 기대게 하여 앉혔다.
“고맙소…….”
끊어질 듯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한 것은 백강오였다. 현찬은 묵묵히 그가 다음 말을 하기를 기다렸다.
“지금의 나는 주화입마의 끝에 겨우 이성이 돌아온 상태. 하지만 이게 끝이오. 내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 느껴지니 말이오.”
현찬도 동감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현찬이 이러한 상태의 백강오를 살릴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를 살리려면 최소한 아폴론의 아들이자 의술의 신인 <아스클레피오스>의 힘을 빌려야만 했다. 하지만 신급 영령을 함부로 불렀다가는 순리에 영향을 줄 수 있었다.
애초에 초면인 백강오를 살리기 위해서 순리를 거스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본인도 자신의 죽음을 딱히 싫어하지 않은 듯싶은 것도 컸다.
“끝없는 수라의 길에서 나를 멈춰준 것은 바로 그대겠지. 고맙소. 이런 피에 미친 악귀가 된 나를 멈춰줘서.”
“딱히 좋은 의도로 한 것은 아닙니다.”
현찬의 대답에 백강오는 씁쓸하게 웃었다.
“그래. 그렇겠지. 그래도 그대가 나를 도운 것은 틀리지 않았소.”
백강오의 눈동자가 점점 흐릿하게 변했다. 백강오도 인지했다. 죽음이 점차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고향 땅에서 죽지 못한 것이 천추의 한이로다. 하지만 이미 멸망해버린 고향을 바라는 것 또한 부질없는 짓이겠지.”
백강오는 힘겹게 고개를 돌려 현찬을 바라보았다. 그의 흐릿한 눈동자는 필사적으로 현찬의 얼굴을 잡기 위해 노력했다. 현찬은 그와 눈을 마주쳤다.
“그대의 세계는, 부디…… 서로 갈라서는 일이 없도록 하시오. 그리고…… 악귀들을 조심하시오. 머리에 뿔이 달린…… 붉은 악귀들을.”
그는 현찬에게 자신이 해줄 수 있는 조언을 필사적으로 끄집어냈다. 현찬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을 알아보았는지 백강오는 만족했다는 미소를 지었다. 바스슥! 그의 발끝부터 몸이 모래처럼 흩어져가기 시작했다. 그것은 점차 범위를 넓혀가 그의 머리로 향했다.
“아아. 썩 나쁘지 않은 삶이었다.”
백강오는 그렇게 말하며 완전히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그 가루는 바람을 타고서 하늘 높은 곳으로 올라가 뿔뿔이 흩어졌다. 그가 사라진 자리에는 날이 나가버린 검과 자그마한 마석 하나가 전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