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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무한계약-104화 (104/265)

# 104

104화 난제 천흉(天凶)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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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유. 멋진 광경인데?]

숭산의 풍경을 본 헤르메스가 휘파람을 불었다. 하늘을 찌를 듯이 높게 선 바위산의 머리를 순백의 구름이 휘감고 있었다. 도도하게 물결치는 푸른 산맥은 거대한 용이 꿈틀거리는 것 같았다. 깎아지는 기암괴석은 수천 년의 세월을 머금었다.

괜히 중국의 5대 산 중에서 중악인 게 아니었다.

[음. 확실히 멋지구나.]

헤르메스의 경박한 태도에 평소라면 뭐라고 한마디 던질 아테나도 고개를 끄덕이며 풍경을 눈에 담았다. 현찬 또한 헬기 아래로 보이는 멋진 풍경에 눈을 떼지 못했다. 그렇게 헬기는 산맥의 틈새를 비행하다가 이내 군인들이 상주하는 간이 기지의 헬기장에 착지했다.

“여기서 내리는 건가요?”

“예. 다만 천흉이 있는 장소와는 상당히 멀리 떨어진 곳입니다. 이 이상 들어가면 녀석이 반응하기 때문에 지금 이 장소가 헬기로 접근할 수 있는 최대한의 거리입니다. 여기서 멈추는 것을 이해해주시길 바랍니다.”

기지에서는 군인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신기한 점은 온갖 기갑, 병기가 마치 국경선을 정해놓은 것처럼 길게 일렬로 도열해 있다는 점이었다. 대체 왜 이러는지 이야기를 들어보니 천흉은 특히나 기척이 큰 것에 과하게 반응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일단 사람 개인이 움직이면서 다가가면 반경 1km 안까지 가더라도 반응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자동차 한 대, 헬기 한 대라도 운용했다가는 10km가 떨어져도 녀석이 반응합니다.”

실제로 한 번 그 거리를 제대로 조절하지 못하고 헬기 한 대가 범위 안에 들어가자 녀석이 움직였다고 한다. 나머지 병력은 그 소식을 접하자마자 꽁지 빠지게 도망쳤지만 한번 움직인 천흉은 주변 일대를 마구잡이로 파괴했으며 도망치던 군인들을 도살했다.

“기지를 이곳에 설치한 것도 그 때문입니다. 딱 이 범위 바깥에서 저희는 천흉의 동태를 감시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혹여라도 녀석이 갑자기 활동을 시작하면 국가의 입장에서는 천재지변이 일어난 것과 같으니까요.”

일렬로 저렇게 정렬하여 한쪽을 향해 포를 겨누는 것도 이러한 이유였다.

이곳은 일종의 마지노선이었다.

“최근에 무슨 움직임이 있었나요?”

“음. 최근에 아주 약간의 이상한 점이 잡히기는 했습니다.”

정확히 제우스가 강림하여 <심연>의 문을 향해 <아스트라페>를 꽂았을 때의 일이었다.

“다만 그 움직임이 워낙 미약하고 그 이후로는 잠잠해져서 지금은 그대로 지켜보고 있기는 한데 아무래도 영 불안한 건 어쩔 수 없죠. 학자들은 녀석이 당장이라도 움직여도 이상하지 않을 상태라고 봅니다.”

“음. 그렇다면 여기서부터는 직접 걸어서 움직여야 한다는 거네요.”

“말하자면 그렇습니다.”

천흉과 거리는 약 10km 이상. 현찬이나 양 리화 정도나 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솔직히 멀다고 할 수도 없는 거리였다. 마음만 먹는다면 하늘을 날아서 움직이는 둘에게 이런 높은 산조차도 일반인의 뒷산 언덕만도 못했다.

작전은 간단했다.

일단 움직이는 것은 현찬과 양 리화 둘 뿐이다. 둘을 제외하고서 다른 헌터들은 같이 가면 방해만 되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S랭크 헌터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의외로 중국의 S랭크 헌터들은 순순히 자신들도 이 싸움에 참여할 수 없다는 걸 인정했다.

그들도 알고 있는 것이었다.

과거에 이름을 날리던 S랭크 헌터들도 천흉에게 맥없이 죽어 나갔던 사실을. 아무리 그들이 날고 긴다고 하더라도 <난제>를 상대로는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한다는 것을. 그들은 뼈저리게 깨닫고 있었다.

[자존심 강하기로는 최고라고 친다는 중국의 헌터들이 이런 반응을 보일 정도라니.]

[과연, 그 천흉이라는 녀석의 소문은 허명이 아니었다는 거겠지. 저렇게 마음 깊은 곳까지 두려움이 자리 잡을 정도라면 더더욱.]

이번에 나서는 건 오직 현찬과 양 리화 단둘 뿐.

하지만 꼭 둘이라고 할 수만은 없었다. 지금 이 자리에 포진해 있는 기계화 부대가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서 후방지원을 해줄 것이다. 그리고 싸움이 시작되기 전에 사전에 협의했던 대로 고공에서 폭격기가 천흉에 머무는 장소에 폭격을 가할 예정이었다.

“융단폭격을 가하는 순간 싸움이 시작될 겁니다.”

애초에 폭격으로 잡을 수 있으면 이런 번거로운 짓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난제>란 녀석들은 각성자가 아닌 이상 현대병기로는 상대할 수 없는 괴물이었다.

다만 그래도 피해가 완전히 0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아주 사소한 피해를 주는 것이라도 좋았다. 이쪽의 승률을 높일 수만 있다면 그런 무의미해 보이는 짓이라도 해야만 했다.

작전을 확인한 현찬은 양 리화와 함께 움직였다. 둘은 빠른 움직임으로 산봉우리를 가볍게 뛰어넘으며 빠른 속도로 천흉이 있는 장소로 움직였다. 멀리서 보았을 때 아름다웠던 풍경들이 산봉우리 몇 개를 넘자 확 바뀌었다.

“이건…….”

[심하네.]

[격렬했던 싸움의 흔적이구나.]

주변 풍경 일대가 날아가 있었다. 무너진 바위산과 불에 타서 재만 남은 초목이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 그러한 풍경이 현찬의 눈앞으로 넓게 펼쳐져 있었다. 중국이 천흉을 숭산으로 밀어 넣기 위해서 모든 화력을 쏟아부었다고 하던 말이 거짓이 아니었다.

이 정도면 정말로 지도를 새로 그려야 할 정도였다.

[현대 병기의 위력은 과연 대단한 것이구나.]

전쟁의 여신 아테나는 이런 참담한 풍경을 보며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이런 파괴를 만들어내는 21세기 무기를 높게 평가했다. 그녀가 살던 시대에서 이런 광경은 오직 신들만이 만들 수 있는 것이었다.

위대한 마녀나 마법사조차도 범접할 수 없는 위력을, 지금은 인간들이 과학이라는 이기로서 이룩한 것이다. 당연히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누나. 문제는 무기의 위력이 어떠냐가 아니야.]

[알고 있다. 더 큰 문제라면, 이런 공격을 맞고도 멀쩡하게 살아있는 그 천흉이라는 녀석이겠지.]

기본적으로 게이트를 넘어서 온 몬스터들은 현대 병기에 잘 죽지 않는다. 나약한 몬스터라면 나름 강력한 화력으로도 잡겠지만 그러지 않은 녀석들은 정말 물리법칙을 초월하기라도 한 듯이 미사일이나 폭탄을 맞아도 별 타격이 없다.

물론 타격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그렇기에 여전히 군대는 존속해 있으며 무기는 계속해서 찍어내고 있다. 강력한 몬스터라고 해도 정말 미친 화력을 계속 쏟아부으면 못 잡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럴 돈을 대신해서 강력한 헌터 1명을 고용해 사냥하는 게 더 효율적일 뿐이다.

“이 정도의 공격이라면 녀석도 나름 피해 봤을 것 같은데……. 이 정도의 기세라면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네.”

멀리서부터 느껴지는 절망적인 살기는 현찬의 그런 생각을 쏙 들어가게 했다. 옆에서 조용히 따라오던 양 리화도 잔뜩 긴장했는지 현찬의 곁에 찰싹 달라붙었다. 천흉과의 거리는 5km 이상 떨어져 있었다. 현찬과 양 리화는 여기서 멈췄다.

고개를 들고 하늘을 올려다보자 V자 형태로 매끈하게 빠진 스텔스 폭격기가 아주 작게 보였다. 그것이 총 3대가 지나가고 있었다. 폭격기가 가까이 다가가자 천흉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가 더욱 강해졌다.

[말도 안 되는 투기로군. 그야말로 싸움을 위해서 태어난 존재 같지 않은가.]

가만히 있던 구천현녀도 느껴지는 살기에 혀를 내둘렀다. 이렇게나 거리가 떨어져 있음에도 피부를 저릿하게 만드는 투기와 살기라니. 가까이 다가갔을 때는 얼마나 심할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진짜 어스름달 이상이네.”

“주인님. 저 불렀어요?”

“……!”

그 순간 현찬의 옷 틈새에 모습을 감추고 있던 어스름달이 물었다. 그 말에 양 리화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깜짝 놀랐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반응이었다. 현찬은 그녀의 반응에 작게 웃었다.

“기척을 감추는 마법도 사용하고 있거든요.”

어스름달 정도 되는 존재라면 S랭크 헌터들도 눈치를 챌 것이다. 그렇기에 현찬은 어스름달을 자신의 몸 전체에 얇게 퍼지도록 해서 일종의 슈트역할을 하게 만들었고 거기에 더해 여러 마법을 걸어서 남들이 쉽게 눈치채지 못하게 만들었다.

오버랭크 헌터인 양 리화조차 눈치채지 못한 걸 보니 성공적이었다.

“…… 만져 봐도 돼요?”

“네.”

싸움의 시작 전에 긴장을 풀어줄 수 있다면 얼마든지. 현찬의 허락이 떨어지자 양 리화는 조심스레 손을 뻗어 현찬의 옷 틈새로 나와있는 어스름달의 검은 몸체를 만졌다. 그것은 매우 부드럽고 말랑하며 따뜻했다. 그 감촉이 좋았는지 양 리화는 손가락을 계속 움직였다.

“아으으. 주인님. 이상해요.”

“좀만 참아.”

어스름달의 칭얼거림에 현찬이 잘 다독였다. 그렇기 얼마나 만졌을까, 멀리서부터 굉음이 들려왔다.

“시작했군.”

[그러게 말이야.]

쿠구구구구궁!

멀리서부터 뿜어지는 거대한 섬광과 천지를 찢어버릴 굉음은 수 킬로미터 바깥에 떨어진 현찬과 양 리화에게도 충분히 들려왔다. 소리가 들려오고 몇 초 지나지 않아서 거대한 충격파가 둘을 휩쓸었다. 물론 둘은 자리에 멀쩡하게 서서 그것을 견뎌냈다.

바닥에 널브러진 돌조각들과 나무 파편들이 충격파에 휩쓸려 날아갔고 뿌연 먼지가 사방으로 퍼지며 충격파에 찢겨나갔다. 멀리서부터 느껴지는 무시무시한 폭격에 현찬은 자기도 모르게 간담이 서늘해졌다.

못해도 천흉을 중심으로 반경 1km는 말 그대로 초열 지옥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녀석의 화를 아주 완벽히 돋운 모양인데?”

크아아아아아!

폭발의 굉음 사이에서 들려오는 무언가의 비명. 아니, 비명이 아닌 분노에 찬 함성이었다. 그 소리를 타고 전해지는 광기는 감히 형언할 수 없는 어둠을 담고 있었다. 저런 소리를 내는 걸 보니 아무래도 이성적인 녀석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치직!

[아아. 여기는 기지 쪽입니다. 강현찬 헌터님, 양 리화 헌터님. 들리십니까?]

“네. 여기는 강현찬입니다. 잘 들립니다.”

[칙! 치직! 네. 다행이군요. 지금 막 폭격이 끝났습니다. 천흉이 이쪽으로 움직이는 게 포착되었습니다. 녀석이 빠른 속도로 두 분을 향해 다가가는 중입니다.]

“확실히 그러네요.”

멀리서부터 빠르게 다가오는 기척을 느끼며 현찬도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녀석의 힘을 빼도록 하겠습니다. 무운을 빕니다.]

무전이 끝남과 동시에 허공을 가르며 미사일들이 날아와 폐허가 된 능선 너머로 사라졌다. 그리고 뒤이어 폭발음이 울려 퍼졌다. 주홍빛 불길이 멀리서 봐도 확실히 보일 정도로 크게 일어났다.

기갑화 부대의 일점 포격이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녀석의 움직임을 늦추고 아주 약간의 힘만 빼는 것에 그칠 것이다. 메인은 바로 현찬과 양 리화의 싸움이었으니까.

“왔다.”

현찬의 말이 끝나자마자 현찬과 양 리화의 앞을 가로막던 반쯤 무너진 바위산의 겉을 타고 검은 섬광 같은 것이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약간의 시간 차를 두고서 거대한 바위산이 마치 깍두기처럼 썰리며 터져나갔다.

그 파편의 틈새를 비집고 한 존재가 뛰쳐 나와 현찬과 양 리화의 앞에 섰다.

크아아아아아!!

“…… 이건 좀 예상 밖인데.”

현찬은 천흉을 직접 두 눈으로 본 것이 이번이 처음이었다. 자료사진에도 없던 녀석이라 정확히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어지간히 거대하고 폭력적인 녀석이라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전혀 아니었다.

현찬이 보고 있는 천흉은, 눈에 핏발이 섰으며 온몸이 흙투성이라고 해도 분명히 인간의 모습이었다. 다 헤진 무복과 날이 무뎌진 장검, 그리고 산발이 된 머리카락. 현대에서 볼 수 없었던 다른 풍의 모습.

“다른 세계의 괴물이, 다른 세계의 인간이었을 줄이야.”

천흉의 붉게 물든 눈동자가 현찬과 양 리화를 담았다.

광기에 물든 녀석의 두 눈동자에는 살기밖에 담겨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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