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3
103화 난제 천흉(天凶)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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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난제를 사냥하신다니! 그렇다면 첫 번째 목표는 무엇입니까?”
“지금까지 그 누구도 사냥하는 데 성공하지 못한 난제를 정말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강현찬 헌터님! 대답해주십시오!”
기자들의 질문이 한여름 밤의 폭우처럼 쏟아졌다. 그들의 목소리는 높고 날카로웠다. 두 눈동자는 특종에 목말라 갈망이 고여 있었고 그 시선의 끝은 예리하게 벼려져 현찬에게 쏘아졌다.
[진정하라고 해도 듣지 않겠네.]
[그럴 거다. 인간들의 처지에서 저렇게나 큰 발언을 던졌으니 어찌 저 하이에나 같은 무리가 가만히 있겠느냐.]
헤르메스와 아테나의 말에 현찬은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이런 반응이 나올 거라고 어렴풋이 짐작은 했다. 저들에게 특종이란 삶의 목표이며 스스로의 가치를 높이는 유일한 물건이었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건네주고 참으라고 해도 고양이는 참지 않는다. 저들도 똑같다.
“여러분들은 제가 난제를 잡지 못할 거로 생각하십니까?”
“…….”
기자들은 침묵했다. 자신의 솔직한 심정을 내뱉는다면 현찬에게 밉보일 거라는 두려움에 모두 입을 꾹 다물고 대답을 유보했다. 현찬은 그 모습을 보며 작게 웃었다. 대답하지 않아도 저들의 대답이 들려왔다.
난제를 잡을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면 망설이지 않고 대답을 했겠지.
기자들의 심정도 이해는 간다. 한 개인이, 그것도 최근에 막 주가를 올리는 인물이 갑자기 난제를 잡겠다고 하니 누군들 그 말을 믿을 수 있을까.
“걱정하는 마음은 잘 압니다만, 저는 확신이 있어서 잡을 수 있다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현찬의 시선이 함께 바깥으로 따라 나온 헌터협회 국장인 강기수에게 옮겨졌다. 강기수는 기자들의 시선이 일제히 자신에게 쏠리자 등 뒤로 식은땀이 살짝 흘렀다. 그는 표정과 마음을 다듬고 입을 열었다.
“강현찬 헌터님의 말씀대로입니다. 강현찬 헌터님은 얼마 전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유일한 <난제>인 어스름달의 사냥에 성공했습니다. 현재 어스름달은 존재하지 않으며 그것은 저희 헌터협회에서 보장합니다. 강현찬 헌터님은 난제를 사냥할 수 있습니다.”
진실을 아는 강기수의 바로 등 뒤에 있는 집안에 어스름달이 존재한다는 게 참으로 웃긴 상황이었다. 정기원 실장에게 진실을 들었을 때 얼마나 놀랐는가.
어스름달을 사냥해도 모자랄 판에 심지어 테이밍 했다니. 그리고 어스름달이 지성이 있는 생명체라니. 듣고도 믿지 못했다.
하지만 어렴풋이 이런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상식에 사로잡힌 사람이 아니다. 무슨 일이 벌어지더라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을 항상 했다. 강기수에게 있어서 상식은 20년 전 <대통합>과 함께 사라졌다.
신의 계약자라면 충분히 가능할 수 있는 일이다. 그것도 전투에 특화된 게 아닌 각종 다양한 분야를 관장하는 신의 계약자라면 더더욱 가능하다.
헌터협회 국장 강기수의 확신에 기자들은 재차 경악했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공인인 그가 거짓을 고할 리가 없다. 저 말은 진실이었고 실제로 어스름달은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 기자들의 시선이 다시 현찬에게 옮겨졌다. 그들은 또 다른 대답을 원했다.
현찬은 고개를 저었다.
“저는 이만 여기까지 하죠. 나머지는 다른 분이 이야기해주실 겁니다.”
“자, 잠시만요!”
“강현찬 헌터님!”
현찬을 애타게 부르려던 기자들은 현찬의 자리를 대신해서 선 남자를 보고 입을 다물었다. 새하얀 턱시도 위로도 보이는 터질 듯한 근육과 얼굴에 선한 미소를 짓고 있는 금발의 남자. 기자들의 관심은 순식간에 알렉세이 윌터에게 옮겨졌다.
“자. 코리안 저널리스트들? 나머지 이야기는 저와 하도록 할까요?”
좋게 타이르는 그의 목소리는 박력이 있었다. 열망에 찬 기자들의 목소리가 창처럼 날카로웠다면 알렉세이의 목소리는 그 모든 창날을 부러뜨리는 단단하고 거대한 바위였다. 아무리 창을 내질러도, 거대한 바위는 압도적인 질량으로 전부 짓눌러 버린다.
기자들은 알 수 없는 기세에 밀려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알렉세이는 그들의 협력이 마음에 들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알렉세이는 고개를 살짝 돌려 현찬에게만 보이게 윙크를 했다. 현찬은 그런 알렉세이에게 고맙다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자. 그러면 우리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하러 가볼까?”
[얼마든지.]
[그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계약자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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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크게도 벌여줬군.”
패드를 통해서 현찬의 인터뷰를 보던 황소 가면은 속으로 실소를 터뜨렸다. 어두운 공간 내부에서 그의 목소리가 채 퍼지지 못하고 어둠에 빨려 들어갔다. 그가 보고 있는 영상 속에서 현찬은 난제를 잡겠다고 포부 있게 말하는 중이었다.
‘우리가 난제를 노리는 걸 알고서 저렇게 당당하게 말하는 건가?’
황소 가면은 현찬을 의심했다. 아니, 정확히는 현찬에게 사로잡힌 사도들을 의심했다. 녀석들은 죽었지만 죽기 직전에 현찬에게 무슨 말을 했을지 모른다. 충성심은 대단하지만, 인간은 죽음을 앞두고 그 진정한 본심을 드러낼 수 있었으니까.
혹여나 자신들의 계획 일부가 현찬에게 탄로 났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다. 황소 가면은 속으로 고민했다.
‘여러모로 귀찮게 되었어.’
현찬 혼자서 한 말이라도 영향이 큰데 거기에 더해서 알렉세이 윌터까지 나서며 현찬을 두둔해주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그들에게 모였고 그리고 그 너머의 <난제>에게까지 미쳤다.
난제를 담고 있는 나라들은 신경을 곤두세우고 난제를 살폈다. 그것은 난제를 이용해서 일을 꾸미려는 일루베 아르카에게 곤란한 상황이었다.
그들은 평소에 남들이 신경 쓰지 않는 난제를 이용하려 들었다. 문제는 갑자기 사람들의 시선이 다시 난제로 모여서 그들이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물론 평소보다 더 조심스럽게 움직이면 된다. 하지만 애초 계획보다 일이 더 늦어지는 것은 피할 수 없다.
황소 가면은 오른손을 활짝 펼쳤다. 그곳에서 검은 무언가가 꿈틀거리더니 자그마한 제비의 형상을 취했다.
“황소 가면이다. 다들 지금 어떤 상황인지 확인은 다 했을 거라고 안다. 녀석들이 이제 본격적으로 움직인다. 우리도 더 사력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될 거다. 어느 쪽 난제로 먼저 갈지는 잘 모르겠지만 각자 최대한 경계할 수 있도록.”
그의 말이 끝나자 검은 제비는 하늘로 솟구치더니 이내 9개로 갈라져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그 속도가 매우 빠르면서도 은밀해서 그 누구도 쉽게 알아내지 못하는 그들만의 연락수단이었다.
“자. 그러면 슬슬 준비하러 가볼까.”
황소 가면은 어둠 속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가 빛의 장막을 거두고서 밖으로 나왔을 때 그의 눈 앞에 펼쳐진 것은 깎아지는 절벽과 그것을 휘감는 아름다운 구름의 무리였다.
중국의 하남성에 있는 5대 산 중 하나인 숭산(嵩山).
중국에서 역대 최고의 피해를 낳은 <난제>인 천흉이 있는 장소였다.
‘그보다 정말로 대단하군.’
황소 가면은 보이지 않지만 멀리서부터 느껴지는 천흉의 기세를 느꼈다. 함부로 다가갈 수 없었다. 다가가는 순간 녀석이 움직일 거다. 지금 이 자리야말로 천흉이 딱 반응하지 않는 최소한의 거리였다.
‘저것이 과연 <난제>라는 건가?’
아니. 저건 그냥 난제가 아니다. 지구에 존재하는 여러 난제 중, 단일 개체로서는 당연히 으뜸이다. 하나이되 군집이거나 혹은 완전 하나의 집단으로 이룩된 <난제>와는 다른 길로서의 최강의 난제.
‘천흉이라는 이름이 과연 허명은 아니야. 녀석의 존재 자체가 내뿜는 강렬한 부정의 기운은 여기까지 떨어져 있어도 피부를 오싹하게 만드는군.’
그리고 이런 녀석이 날뛴다면 어떻게 될지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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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찬이 <난제>의 사냥을 공표하고 세계 곳곳에서 현찬을 향한 러브콜이 빗발쳤다. 모두가 영토에 하나씩의 <난제>를 담고 있는 나라들이었다. 특히나 가장 격렬하게 러브콜을 보내는 나라는 중국이었다.
헌터들이 가장 많으며 그 수준도 떨어지지 않는 중국은 당연히 강대국이었다. 미국을 뛰어넘은 중국은 당연히 최강의 국가였고 어지간한 게이트가 나타나도 그것을 순식간에 제압할 전력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중국조차 단 하나 포기한 게 바로 천흉이었다.
등장과 동시에 주변 일대를 모조리 죽음으로 몰고 간 최악의 <난제>
수백만이 넘는 사상자를 낸 끝에 중국 정부가 녀석을 숭산으로 밀어 넣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였다. 녀석을 죽이지 못했고 정부는 그저 천흉을 외진 숲에 밀어 넣었다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불안감은 있었다. 언제 녀석이 다시 활동하여 예전의 학살을 자행할지 몰랐으니까.
중국 정부에 있어서 천흉은 반드시 제거하고 싶은 충치였다. 그런데 여기서 아픈 곳을 시원하게 긁어준다고 나서는 이가 나타났다. 심지어 입만 산 게 아니라 실력도 있다.
당연히 중국은 눈이 돌아가서 현찬에게 부디 자신들의 나라로 와달라고 부탁을 했다. 단순히 말로 그치지 않았다. 현찬이 마음에 들도록 온갖 선물 공세를 가했고 특히나 한국에 특혜를 베풀어주겠다는 말까지 나왔다.
반면에 일본은 한국에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자신들의 <난제>인 십미천호는 얌전히 있고 굳이 녀석을 건드릴 필요가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우익세력이 주권을 잡은 일본의 처지에서 한국인인 현찬에게 무언가를 부탁하는 건 너무나도 쪽팔린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가까운 양국의 반응이 극과 극이다 보니 현찬이 중국의 난제를 잡으러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애초에 현찬 또한 천흉을 먼저 제거할 생각이 가득했다.
이유는 함께 싸워줄 동료가 중국에 있었기 때문이다.
“어서 오십시오. 강현찬 헌터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현찬이 나타나자 중국의 각종 인사들이 현찬을 반겨주었다. 그 성대한 환영에 오히려 현찬이 부담스러울 정도. 하지만 현찬은 이내 사람들의 틈새에서 확연히 눈에 띄는 낯익은 얼굴을 보며 표정을 폈다.
“아. 양 리화씨.”
“……!”
양 리화는 혼자 있는데도 눈에 확 띄었다. 군계일학이라는 말이 괜한 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미모도 미모였지만 신과 계약을 맺으면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특유의 기세는 그녀가 마치 다른 세계의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매우 불편했는지 얼어붙은 것처럼 가만히 있다가 현찬이 이름을 부르자 마치 강아지처럼 현찬의 곁으로 붙었다. 그 속도가 워낙 빨라서 주변에서 지켜보던 다른 사람들이 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반응하지 못했을 정도.
“오랜만이네요. 만나서 반가워요.”
“네…….”
양 리화는 이런 말을 하는 것도 부끄러운지 수줍게 얼굴을 붉히며 대꾸했다. 그 광경을 본 헤르메스가 이마에 핏대를 세우고서 뭐라고 하려고 했지만 구천현녀와 아테나가 헤르메스를 빠르게 제압해버렸다.
[오랜만이에요. 그때 보았을 때보다 더 강해졌군요?]
‘네, 뭐. 그렇게 됐네요.’
[당신의 도움이 있다면 확실히 그 괴물을 잡을 수 있겠죠. 기대할게요.]
구천현녀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말했고 현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강현찬 헌터님. 헌터님이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숙소를 잡아 놓았습니다. 가시겠습니까?”
“아뇨.”
자신에게 동의를 구하려는 사람에게 현찬은 고개를 저었다. 현찬의 입에서 유창한 중국어가 흘러나왔다.
“휴식은 천흉을 잡고 나서 취해도 늦지 않습니다. 그러니 지금 바로 출발하죠.”
“네? 어, 어디를요?”
“어디긴 어디겠어요.”
당연히 천흉이 있는 장소지.
현찬의 포부 있는 말에 주변에서 이야기를 들은 모든 사람이 벙한 표정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