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1
101화 중간변화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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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찾아왔다. 문을 열고 반겨주자 정장을 빼입은 정부의 관계자들과 협회의 높은 사람들은 얼굴에 미소짓고 있었다. 혹시나 현찬이 자신들의 방문을 천대하지 않을까 전전긍긍한 참이었다.
“누추하지만 들어오세요.”
“누추하다뇨. 저희도 이런 집에서 살지는 못합니다. 허허허.”
“염치불구하고 실례하겠습니다.”
사람들의 숫자는 대략 10여 명. 그마저도 간추리고 간추린 진실을 알아야 할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현찬의 집 바깥에서는 그들의 경호원들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다. 혹시 모를 테러리스트의 습격을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현찬의 집 주변을 가득 메운 경호원들을 보며 지나가던 사람들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본다. 그 광경에 현찬은 오히려 쓴웃음을 지었다. 정부의 인사들이 두려워하는 것도 이해한다. 갑자기 벌어진 사태에 아직 그들도 적응이 되지 않았을 테니까.
그 불안한 심리는 고스란히 바깥으로 도출되었다. 자신을 지키기 위한 인원을 늘리는 것으로 마음의 안도를 찾는 것이리라. 그렇기에 현찬의 집에 찾아오는 데에도 많은 경호원을 대동한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알까.
자신들이 있는 현찬의 집이야말로 가장 안전한 장소라는 것을.
누가 오더라도 이미 오버랭크 헌터라는 이름을 달기 직전인 현찬을 위협할 수 없을 것이다.
“시장하실 텐데 다과라도 드시죠.”
현찬이 가볍게 손짓하자 부엌에서 대기하던 에크티가 접시 위에 과일과 디저트를 담아서 가져왔다. 정부의 고위 관계자들은 에크티의 아름다운 용모를 보며 눈을 크게 떴다. 하지만 대놓고 그녀가 누구인지는 묻지 않았다.
현찬도 내심 이제 에크티를 바깥으로 데리고 다닐 생각이어서 앞으로는 이렇게 사람들에게 조금씩 보여줄 생각이었다.
헤르메스는 영체화해 아테나와 함께 현찬의 좌우에 자리 잡았다.
현찬이 테이블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앉자 나머지 사람들도 주변에 우르르 몰려 앉았다.
“자. 이제 이야기를 시작해 보죠. 꽤 궁금한 것이 많으신 것 같던데요.”
“강현찬 헌터님은 별로 이 상황이 놀랍지 않으신가 보군요.”
현찬은 질문을 던진 남성에게 시선을 주었다. 누구인지 이름은 모른다. 하지만 TV에서 몇 번 나온 얼굴이었다. 아마 정치인이라고 사료되었다. 헌터협회 국장, 국방부 장관, 국회의원 등등. 참 높은 사람들만 모여 있다.
“저도 놀라기는 했죠. 하지만 그저 빠르게 평정심을 되찾았을 뿐이라서요.”
“그렇다면 강현찬 헌터님은 이번 사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제게 무슨 생각을 원하시나요?”
이번에 말을 꺼낸 것은 대한민국 헌터협회 국장인 강기수였다. 그는 노련하지 않지만 우직한 사람이었다. 돌려 말하는 것을 바라지 않았고 직설적인 대답을 원했다. 그가 꺼낸 말이 올곧게 뻗어져 나왔고 현찬은 미소로 답해주었다.
“지금 세계에 혼란이 벌어졌습니다. 비록 물리적인 피해가 생기지 않았지만, 시민들의 불안은 나날이 급증하고 있죠.”
“네. 알고 있습니다.”
“세상은 변합니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변하겠죠. 저희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세상은 넓었고 이제 저희는 그것을 마주하게 됐습니다. 미지를 향한 두려움이 사람들을 두려움에 빠지게 하고 있죠. 강현찬 헌터님은 이에 대해 대비할 방법을 알고 계십니까?”
“제게 너무 과분한 대답을 원하시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헤르메스 님과 계약을 맺었으니 혹시 무언가 알고 계시거나, 생각하시는 게 있지 않을까 하고 여쭤봤습니다. 혹시나 불편하셨다면 사과드립니다.”
강기수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현찬은 괜찮다며 손을 저었다. 이런 일 하나하나 가지고 마음 상할 이유가 없었다. 이런 사소한 일로 화내기엔 현찬이 지금까지 겪어 온 일들이 너무나도 거대했다.
“고개를 드세요. 딱히 불쾌하거나 하지 않았으니까요. 그보다 헤르메스라고 하더라도 이런 것에 관해서 완전히 아는 것은 아니에요. 왜냐하면, 이번에 벌어지는 일들은 지구 바깥의 일이니까요.”
“지구 바깥의 일이란 말인가.”
“신들의 힘은 대단하죠. 하지만 하계에서는 그 힘을 십분 활용할 수 없습니다. 그나마 제가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헤르메스가 사용할 수 있는 힘의 한계치는 늘어나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알 수 있는 것에 정도라는 게 있거든요.”
헤르메스가 본신의 힘을 사용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헤르메스가 아무리 지구의 신이라고 하지만 정보의 교류나 경계를 넘는 것에 특화한 신. 다른 세계의 정보를 마음만 먹는다면 얼마든지 들여다보고, 취할 수 있다.
그러지 못하는 것은 순전히 계약자인 현찬의 힘이 아직 모자라기 때문이다. 이미 오버랭크에 근접한 현찬이 부족할 정도. 현찬은 아직 더 강해져야 할 이유가 차고 넘쳤다.
“그렇다면 딱히 방도가 없다는 겁니까?”
“없기는 왜 없겠어요. 그 방도를 찾기 위해 저를 찾아오신 거 아니었나요?”
때마침 에크티가 쟁반을 가져와 음료를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현찬은 음료를 한잔 마시고 그것을 테이블 위에 탁! 소리 나게 놓았다.
“자. 그러니 이제 본격적으로 방안을 찾아보죠.”
현찬의 당당한 태도에 손님들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대단하군.’
강기수는 현찬의 태도를 보며 눈을 빛냈다. 현찬은 두려움이 없었다. 그는 높은 직급의 사람들과 마주함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 올곧음은 강기수가 가장 바라던 것이었다. 그렇기에 현찬이라는 사람에게 호감이 갔다.
‘보통 어지간한 헌터라 하더라도 이 정도 되는 사람들의 앞에 선다면 긴장하기 마련이거늘, 전혀 긴장하지 않고 건방을 떨지도 않는다. 역시 차기 오버랭크 헌터라 이건가. 신의 계약자라는 이름은 허명이 아니었군.’
상대가 쭉정이가 아니라면 이쪽이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이었다. 아무렴. 대한민국에 단 하나밖에 없는 오버랭크 헌터다. 자격조차 없는 인간에게 그런 자리가 생기면 오히려 이쪽이 불편할 따름이다.
“방안이라고 하더라도 딱히 특별한 것은 없겠죠. 앞으로 며칠 후면 이제 세계 곳곳에서 여러 게이트들이 모습을 드러낼 것입니다. 그것을 대비하는 것이 일단 우선 과제라고 할 수 있겠죠.”
“그것이 가능할까요?”
“가능합니다. 이번 사태 이후로 세계 곳곳에 각성자들이 늘어나는 추세니까요.”
걱정 어린 정치인의 질문에 강기수가 대신 대답을 해 주었다. 이미 정보를 접한 몇몇도 고개를 끄덕이며 그 말에 수긍했다. 분위기는 평화로웠고 대화는 매끄럽게 진행되었다.
“헌터들을 향한 복지를 늘려야 합니다. 각성자들이 자신의 힘을 놔두고 무엇도 하지 않는다는 건 국가적으로 큰 손실이니까요.”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그렇다면 각성하지 못한 일반인들은 오히려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지 않겠습니까?”
“아뇨. 오히려 환영할 겁니다. 지금 일반 시민들은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각성자가 늘어나고, 헌터가 늘어난다면 오히려 그들은 안도하게 되겠죠. 지금 시국이 딱 그러합니다.”
“게다가 각성자들의 재능도 만만치 않다고 하더군요. 여기서 제대로 붙잡지 않는다면 다른 나라로 떠날지도 모릅니다.”
“이번 일은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세계적으로 발생하는 일이죠. 모두 하나로 뭉쳐야 합니다. 좁은 우물 안에서 서로 투덕거리는 것만큼 멍청한 짓도 없으니까요.”
대화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현찬은 그들이 혹시 모를만한 정보들을 제공해 주었다. 앞으로 벌어질 대통합이 일어난다면 다른 세계의 존재들과 대면해야 한다. 그것이 우호적일지 적대적일지는 모른다. 하지만 마냥 낙관적으로 생각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싸움을 준비해야 한다. 평화를 지키자는 목소리도 있었다. 하지만 그 평화는 결국에는 싸움의 승리로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세계가 하나로 뭉치려고 하는 것이었다.
평소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오버랭크 헌터들이 본격적으로 활동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였다.
“그리고 저희가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해야 할 일? 강현찬 헌터님. 그게 무엇인지 알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세계는 혼란스럽죠.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저희는 지금 이 혼란을 잠재울 필요가 있습니다.”
세상을 부정으로 뒤덮는 것들은 많았다.
각성자가 되었지만, 범죄자의 길을 걸어가는 람브로눅스와 데스페라도.
지구에서 다른 세계의 부흥을 꿈꾸는 일루베 아르카.
게이트에서 튀어나와 바깥에 자리를 잡은 몬스터들.
“특히나 일루베 아르카라는 조직이 가장 위험합니다.”
“들었습니다. 최근에 있었던 불미스러웠던 일들이 다 녀석들에 의해서 발생했다고 하죠.”
“알고 계신다면 이야기가 빨라서 좋죠. 녀석들의 목적은 세계 곳곳에 있는 <난제>를 이용하여 더욱 혼란으로 몰고 가는 것.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향후 다가올 대통합을 더 빠르게 앞당기는 것입니다.”
현찬의 말에 사람들이 침음성을 내뱉었다. 차후 대통합이 언제 벌어질지 모르지만, 지금부터 부지런히 준비한다고 하더라도 완벽한 방비가 된다고 장담할 수 없었다. 그런데 거기에 더해서 대통합을 앞당기는 녀석들까지 있으니 골치가 아파 왔다.
“하지만 바꿔 말한다면 저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녀석들의 계획을 무산시킬 수도 있다는 소리죠.”
“그렇다는 건…….”
“네.”
현찬이 씨익 웃었다.
“여러분들은 각자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해주세요. 저는 <난제>를 사냥합니다.”
“아, 아무리 그렇다 해도 <난제>는 오버랭크 헌터도 쉽게 상대할 수 없는 것입니다. 강현찬 헌터님이 약하다는 말은 아닙니다. 실제로 ‘어스름달’을 쓰러뜨리기도 하셨으니까요. 하지만 그렇다 해도 <난제>는 별개입니다. 그런데도 가능하다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네. 가능합니다.”
현찬의 대답에는 한 치의 망설임이 없었다. 현찬은 불안에 빠진 사람들에게 희망이라는 동아줄을 던져주었다. 이것을 잡아서 당기면 살 수 있을 거라는 말과 함께.
세계는 빛을 필요로 했고 빛에는 앞장서는 사람이 필요로 했다.
현찬은 기꺼이 그 길을 걷기로 다짐했다.
“무엇보다 <난제>를 오버랭크 헌터 혼자서 상대한다면 그렇겠죠.”
오버랭크 헌터가 아무리 강하다고 하더라도 <난제>도 만만치 않은 상대다. 특히나 나타나기만 하면 해당 국가를 그야말로 비상사태로 몰아가는 녀석들이 수두룩한데 아무리 개인의 힘이 초인적이라고 하더라도 그에 대항하는 것은 너무나도 위험한 짓이었다.
하지만.
“오버랭크 헌터들이 힘을 합쳐서 난제를 쓰러뜨린다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죠.”
헌터들은 애초에 혼자서 싸우지 않는다. 그들은 파티를 맺는다. 동료들을 만든다. 그리고 서로의 포지션을 정해서 몬스터와 싸운다. 그것이 모두가 아는 정석이었다.
하지만 그 정석을 깨부수는 존재가 오버랭크 헌터다. 그들은 혼자서 어지간한 몬스터들을 사냥할 수 있었다. 그들은 언제나 압도적인 개인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이 서로 함께 싸운다는 생각은 모두가 하지 못했다.
숫자가 적은 것도 있지만, 워낙 개성이 넘치는 자들이다 보니까 서로 뭉칠 거라는 생각이 도저히 들지 않았다. 하지만 현찬은 당연하게도 그 부분을 지적한 것이다.
“다른 오버랭크 헌터들이 함께 할 거로 생각하십니까?”
“세계가 망할지도 모르는 판국에 과연 자기 잇속만 챙길까요?”
“사람의 일은 모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하도록 만들 뿐이죠.”
현찬의 말은 지나치게 이상론이었다. 현실에서 벌어지는 경우의 수는 많다. 그것을 고려하면 무산될 확률이 너무 높았다. 그러나 현찬은 너무나도 당연하게 말했다. 왜냐하면, 그의 눈은 다른 가능성을 보고 있었으니까.
<헤르메스의 눈>
현찬은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본다.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것을 안다. 그것을 남들에게 알려줄 생각은 없다. 알아주길 바라지도 않는다. 어차피 언젠가는 사람들이 알게 될 것이니까.
“그리고, 마냥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걸 증명할 기회가 왔네요.”
“그게 무슨 소리죠?”
“새로운 손님이에요. 반갑게 맞이해 주죠.”
“그게 대체…….”
무슨 소리야, 라고 말을 하기도 전이였다. 딩동. 현찬의 집 초인종이 울렸다.
대체 누구? 사람들의 시선이 현관문으로 향했다. 바깥에서 경비들이 진 치고 있어서 현찬의 집에 다가올 수 있는 사람들은 없었다. 그것이 가능하다면 아마 S랭크 헌터 정도는 돼야 할 테니까.
에크티가 부드러운 발걸음으로 다가가 문을 연다. 문이 열림과 동시에 빛이 쏟아져 내리고 그것을 등에 업은 거대한 덩치의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헙!”
“마, 맙소사.”
그 남자를 알아본 손님들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그들의 눈이 부릅떠졌다. 벌어진 입은 다물어질 줄 몰랐다. 현찬만이 오직 평온한 표정으로 새로 온 손님을 맞이해 주었다.
“먼 길 오시느라 수고가 많으셨어요. 미국의 영웅(hero).”
알렉세이 윌터.
미국의 오버랭크 헌터이자 <글루스카베>의 계약자인 그가 현찬의 집에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