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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무한계약-100화 (100/265)

# 100

100화 중간변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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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석으로 지어진 어두운 홀 내부에서 여러 개의 그림자가 움직였다. 한 줌의 빛조차 들어오지 않아서 주변은 깜깜한 어둠만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 속에서 움직이는 자들은 어둠에 전혀 영향받지 않는 듯 거리낌이 없었다.

“정기적으로 모이던 기간도 아닌데 대체 왜 호출이 온 거야?”

기묘한 침묵을 유지하기 싫었는지 가장 먼저 투덜거린 것은 바로 새하얀 토끼 가면을 쓴 자였다. 목소리가 가늘고 말이 빠른 토끼 가면은 이 지루한 분위기를 어떻게든 밀어내겠다는 듯 말을 쏟아냈다.

“지금 우리 조직의 일이 잘 안 풀리는 건 알아. 그래서 우리가 더 바쁘게 움직이는 중이잖아. 나도 내가 해야 할 일이 있는데 이게 무슨 꼴이냐고. 안 그래도 최근 반야 가면 녀석이랑 통화도 안 되는데.”

“반야 가면이 죽었다.”

“뭐?”

묵묵히 토끼 가면의 이야기를 들어주다가 말을 꺼낸 것은 아프리카 토속 민족이 쓸 법한 황소 가면이었다. 자그마한 체구의 토끼 가면과 확연히 대비되는 우람한 덩치를 가진 그는 자신을 올려다보는 토끼 가면을 향해 뒷말을 이었다.

“한국에서 <난제>를 컨트롤 하려던 반야 가면의 연락이 끊겼다. 거기에 더해서 한국에서 활동하던 철 가면 녀석까지 끊겼지. 살아 있었다면 어떤 방식으로라도 연락했을 녀석들이다. 그러지 않았다는 것은 죽었다는 것에 가깝지.”

“살아 있는 상태에서 생포되었을 가능성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너도 금제에 대해서 알고 있을 텐데. 특히나 우리 사도들이 걸린 금제의 강도는 다른 녀석들과는 비교를 불가하지. 무언가에 대해서 캐내려는 순간 우리는 전부 죽고 만다.”

“…… 제길.”

토끼 가면은 반야 가면과 친하게 지내던 사이였다. 실제로 서로 정체도 알고 지낸 친한 친구이기도 했다. 그런데 반야 가면이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토끼 가면의 기분이 팍 상했다.

언젠가 이런 일이 올 거라고는 예상했다. 하지만 생각하는 것과 막상 닥친 현실의 차이는 매우 컸다.

“킥킥. 그 기분 나쁜 녀석 알아서 죽어줬다니, 오히려 다행인걸?”

“뭐라고?”

토끼 가면의 기분을 못으로 긁은 대상은 피에로 가면이었다. 광대인 그는 가면 생김새답게 익살스럽게 웃으며 의도적으로 큰 리액션을 취했다.

“왜? 평소에 남의 감정이나 만지는 기분 나쁜 녀석이었잖아. 게다가 죽었다는 건 임무에 실패했다는 소리지. 우리들의 주인인 그분께 도움이 되지 못한다면 당연히 죽어야 하는 거 아니야?”

“야. 지금 뭐라고 했어?”

토끼 가면으로부터 바늘로 찌르는 것 같은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귀여운 가면을 쓰고 덩치도 작은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살기가 공기를 타고 넘실거렸다. 그것은 억센 손으로 형상화해 피에로 가면의 목을 틀어쥐는 것 같았다.

하지만 피에로 가면 또한 토끼 가면과 같은 사도였다. 이 정도의 살기, 직접적인 공격을 가하지 않는 이상 그에게는 살기 따위는 산들바람과 같았다. 오히려 피에로 가면은 덤빌 테면 덤벼보라는 듯 도발의 의도로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할 수 있으면 해 보던가.”

“이 자식이.”

둘이 서로 부딪치려는 순간이었다.

“그만.”

공기를 가득 내리누르는 무거운 목소리. 그 주인의 등장에 피에로 가면과 토끼 가면은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멈추고 말았다. 그것은 본능적인 반응이었다. 여기서 움직이는 순간 둘은 정말로 죽을지도 모른다. 그런 두려움이 둘의 몸을 나무뿌리처럼 억세게 휘감았다.

어두운 공간을 가로지르며 나타난 대상은 다른 가면들과 다르게 화려한 장식이 달린 용 가면을 쓴 자였다.

“여기서 싸움은 금지다.”

용 가면.

그분을 따르는 12명의 사도 중에서 가장 강하다고 알려진 실질적인 무력 1위의 사도다.

사도들이 대부분이 서로 대등하다고는 하지만 역시 그들의 사이에서도 힘의 격차는 존재했다. 피에로 가면과 토끼 가면의 경우에는 서로 대등하겠지만 용 가면은 다르다. 그는 모든 사도의 위에 서 있다. 무력적인 측면에서, 상성도 전혀 없고 압도적으로 최강의 자리에 앉았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사도는 용 가면의 말에 거역하지 않는다. 정확히는 거역하지 못한다는 것이 사실이었다.

“지금 사태가 심각하다. 서로 싸워서 분란을 일으키는 것은 내가 용납하지 않겠다. 모두 약속의 장소로 모이도록.”

“쳇. 모처럼 아쉽게 됐군.”

“누가 할 소리를.”

피에로 가면과 황소 가면, 토끼 가면은 용 가면의 뒤를 따라 접선 장소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12개의 자리가 놓여 있었고 지금 막 도착한 4명을 제외하고 나머지 자리는 대부분 차 있었다.

유일하게 빈 2개의 자리는 철 가면과 반야 가면의 자리였다.

‘새 가면 녀석도 왔군.’

대부분의 사도도 알고 있다. 사도 중에서 실질적인 무력이 가장 강한 것이 용 가면이라면, 그분에게 가장 큰 총애를 받고 가장 그분과 가까운 것이 새 가면이라는 것을.

용 가면은 딱히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하지만 다른 사도들은 내심 새 가면에 대한 불만이 적지 않았다.

“전부 모인 것 같으니 이야기를 진행하도록 하지. 최근에 우리 사도 중에서 둘이나 목숨을 잃었다.”

“철 가면과 반야 가면 말이지?”

자리에 앉아있던 여우 가면이 물었다. 용 가면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자세한 건 모르지만 해골 가면의 이야기를 빌리자면 둘은 싸움에서 패배하여 죽은 것 같다고 한다.”

“으음. 그거참 이상하네. 오버랭크 헌터라면 우리가 일단 알아서 피해 다니고 각국의 S랭크 헌터들도 어지간하면 충돌을 일으키지 않기 위해서 동향을 주시하고 있을 텐데. 대체 누구와 싸우다가 죽은 거야?”

베네치아 가면은 이해가 안 간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었다. 이곳에 모인 사도들은 능력이 각기 다양하지만, 기본적인 전투능력은 어지간한 헌터의 앞에서도 꿀리지 않는다는 공통점을 지녔다. 설사 상대가 S랭크 헌터라 할지라도 싸우면 이기지는 못해도 제 한 몸 간수하며 빠져나올 실력은 된다는 소리였다.

최면과 세뇌에 특화된 반야 가면은 그렇다 치더라도 사도 중에서 무력 3위로 꼽히는 철 가면마저 패배했다는 이야기는 조금 예상 밖이었다.

“강현찬이라는 헌터에 관해서 들어봤나?”

용 가면이 조심스레 꺼낸 이름에 대부분의 사도는 침음성을 냈다. 그들도 현찬이 어떤 인물인지 안다. 사도들도 세계정세를 모르는 바보들이 아니었다.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헤르메스의 계약자는 당연히 그들에게도 요주의 인물이었다.

“둘은 전부 그에게 당했다.”

“신급 영령의 계약자라. 그것도 올림포스의 12주신 중 하나인 헤르메스의 계약자라면 필시 오버랭크에 근접했겠지.”

“그것뿐만이 아니야. 헤르메스는 주관하는 분야가 많아. 정확히 어떤 능력을 지녔는지는 모르겠지만 대충 보여주는 능력만 봐도 다른 영령들의 힘을 따라 하는 것이 있어. 어떤 상황에서라도 상성 타지 않고 정리할 수 있다는 소리야.”

“어떤 의미로는 다른 신의 계약자들보다 더 껄끄럽다는 거네.”

토끼 가면은 새 가면을 바라보았다.

“새 가면. 너도 뭔가 말을 해 봐. 한국에서 활동하는 너라면 그 현찬이라는 녀석과 나름대로 마찰이 있었을 거 아니야. 아니면 철 가면과 반야 가면이 당하는 동안 너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걸까?”

토끼 가면의 뼈가 담긴 말에 좌중이 침묵에 휩싸였다. 하지만 누구도 토끼 가면을 제지하거나 하지 않았다. 다들 내심 토끼 가면과 같은 생각을 품고 있었다. 모두가 함께 따르는 그분의 총애를 얻는 새 가면은 사도 중에서도 이질적인 존재였다. 게다가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감정을 절대 드러내지 않는 녀석이기도 하니 수상함은 배가 되었다.

“아니면, 설마 내통이라도 하고 있던 것 아니야?”

토끼 가면의 말에 묵묵히 있던 새 가면이 고개를 돌려 토끼 가면과 눈을 마주쳤다. 서로 가면을 쓰고 있어서 직접 눈이 마주치지 않았지만 토끼 가면은 그렇게 느꼈다. 역병 의사 가면이라고도 불리는 새하얀 가면의 검은 눈구멍 틈새로 빨려드는 기분이었다.

새 가면은 대답하는 대신 그들이 원형으로 둘러앉은 탁자 위에 무언가를 올렸다.

그것은 검붉은 색이 속에서 요동치는 것 같은 수정구였다. 데구루루 굴러간 수정구는 용 가면의 앞에 멈추었다. 용가면은 그것을 손에 쥐고서 가볍게 훑어보더니 새 가면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이게 뭐지?”

“아주 순간이지만 영령의 힘을 무력화시키는 무기.”

“뭐?”

새 가면의 말에 사도들이 웅성거렸다.

“그런 게 가능하다고?”

“대체 어디서 이런 걸 가져온 거지?”

사도들의 질문에도 새 가면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을 향해 공격적인 태도를 보였던 토끼 가면을 향해 물을 뿐이었다.

“이걸 가져오느라 시간이 걸렸을 뿐이다. 충분하나?”

“……그래.”

토끼 가면도 더는 새 가면을 밀어붙이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만약에 새 가면이 말한 저 수정이 진짜로 영령의 힘을 무력화시키는 것이라면 그것이 지닌 가치는 정말로 대단한 것이었다.

아마 저것은 진짜일 것이다. 새 가면이 뻔히 들통 날 거짓말을 할 인간이 아니었으니까.

“그래. 이거라면, 눈엣가시들을 제거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겠어. 혹시 더 있나?”

“아니. 만드는데 상당한 자원과 시간이 든다. 그것도 겨우 만든 거야. 대량 생산이 불가능하니 중요한 순간에만 써야 한다.”

“그래도 이 정도면 충분해.”

용 가면이 아래에서 눈을 빛냈다.

“그래. 충분하고말고.”

&

“주인님. 그런데 제 이름은 계속 어스름달로 하는 건가요?”

에크티에게 기본적인 교육을 받던 어스름달이 현찬에게 물었다. 지금 녀석은 완전히 인간의 모습으로 탈바꿈한 뒤라서 완전히 어린 소녀, 혹은 소년의 형상을 취하는 중이었다. 그 시선을 받으며 현찬은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왜. 그 이름이 싫어?”

“당연하죠. 저에게는 원래 이름이 있다고요. 아무리 그래도 타인이 멋대로 정한 이름으로 불린다는 건 썩 좋은 기분이 아니에요.”

“그러면 네 원래 이름이 뭔데?”

“네. ■■■에요.”

“못 알아먹겠는데.”

어스름달이 하는 말은 인간의 성대로는 낼 수 없는 구조의 말이었다. 말을 해 주고 귀로 들어도 그것을 제대로 따라 말할 수도 없거니와 어떤 이름인지 발음조차 힘들었다. 현찬의 말에 어스름달이 시무룩해져서는 고개를 푹 숙였다.

“그냥 이름 새로 짓자.”

“그러면 주인님이 지어주세요!”

“어스름달이 원래 이름이었으니까 줄여서 어달 어때?”

“…….”

현찬의 끔찍한 네이밍 센스에 어스름달의 표정이 순식간에 썩어들어갔다.

“저거 표정 봐라. 한 대 치겠네.”

“아, 아뇨, 아뇨! 전혀요! 그냥, 이름 짓는 센스가 좀. 어, 음. 많이, 독창적이시네요.”

“푸하하하하!”

어스름달의 필사적인 변명에 거실에서 치킨을 먹으며 TV를 보던 헤르메스가 웃음을 터뜨렸다. 현찬이 뚱한 표정으로 헤르메스를 흘겨보았다.

“웃지 마.”

“크흐흑! 아니, 그래도 웃기잖아! 독창적이라니! 쟤 은근히 똑똑한걸?”

“그래. 나 네이밍 센스 구리다. 됐냐?”

현찬이 투덜거리자 어스름달은 오히려 자신이 죄인이라도 된 양 고개를 푹 숙였다. 현찬은 여기서 자신이 말해 뭘 하겠냐며 고개를 저었다.

“현찬 님. 열 식히시라고 냉수 떠왔습니다.”

“아 고마워. 에크티.”

[으음. 계약자여. 내 소환은 언제쯤 되는 것이냐. 나도 빨리 저 치킨이라는 것을 먹고 싶구나.]

“너도 좀 참아.”

“아 참. 현찬아. 그보다 이제 슬슬 움직여야 하는 거 아니야?”

“아. 그거?”

헤르메스가 하고자 하는 말을 눈치챈 현찬은 씨익 웃었다.

“그건 걱정하지 마. 안 그래도 저쪽에서 알아서 올 거니까.”

세상이 변하고, 현찬 또한 오버랭크 헌터로서 움직여야 했다.

그것은 진실을 아는 자로서의 일종의 의무였다. 대부분의 사람도 차기 오버랭크 헌터인 현찬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할 정도였다.

현찬도 안 그래도 슬슬 움직여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슬슬 이라고 해도 영웅투쟁을 끝나고 돌아온 지 이제 2일밖에 지나지 않았다. 그동안 현찬도 자기 나름대로 얻은 정보들을 정리하는 데 시간을 투자했다.

그런데 그것도 이제 끝이다.

그리고 타이밍에 맞춰서 현찬의 집 초인종이 울렸다.

협회 혹은 크게 보면 정부에서 손님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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