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9
99화 승자의 선물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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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한 세계의 영웅 엘카르.
현찬이 상대해야 하는 사도라는 작자들 배후에는 그가 있었다.
청동 신장에게 그가 어디로 떠났는지 물어보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석연찮은 것이었다.
“그 이후로 녀석이 어디로 갔는지는 나도 모른다. 내가 그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고는 매우 무뚝뚝하고 차가운 성격이며 영웅투쟁에서 우승했다는 사실뿐이지.”
“그거면 충분합니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현찬은 황금상을 올려다보며 로브로 가려진 녀석의 얼굴을 노려보았다.
‘아무래도, 우리는 서로 부딪칠 수밖에 없겠지.’
그리고 그 싸움의 승자가 누구인지는 머지않아 밝혀질 것이다.
그때를 위해서라도 현찬은 더욱 강해져야만 했다.
‘나는 지금도 레벨을 더 올려서 강해질 수 있어. 거기에 더해서 준신급 영령들과 계약을 맺으면서 기본적인 스텟이 증가할 수 있지. 기회가 된다면 더 나은 장비들로 무장하는 것도 방법이야.’
현찬은 더 강해질 기회가 얼마든지 있다. 그 미래의 가능성을 생각하면 현찬은 전혀 자신이 엘카르에게 꿀리지 않는다고 믿었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그 혼자만이 아닌 다른 모든 영령이 도움 주기 때문이다.
그렇다 해도 마냥 녀석을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엘카르 또한 혼자서 싸우는 것이 아닌, 자신의 세력을 일구고서 부하들을 이끌기 때문이었다.
하나하나의 실력이 어지간한 헌터들은 명함도 내밀지 못할 정도로 강한 사도들도 그렇거니와 사실상 데스페라도나 람브로눅스 녀석들도 엘카르의 조직인 <일루베 아르카>의 수족이나 다름없었다.
“구경은 다 했나? 이제 슬슬 움직여야 할 시간이다.”
“아, 네.”
“가기 전에 좋은 걸 보여주지.”
청동 신장은 거대한 홀의 빈 곳에 서더니 이내 6개의 손으로 손뼉을 짝! 하고 쳤다. 그러자 주변의 홀이 순간 잘게 진동하더니 이내 사방에서 황금빛 입자가 자그마한 폭풍처럼 몰아치기 시작했다.
솨라라락!
황금빛 가루는 순식간에 빈 곳으로 빨려 들어가듯 모이더니 이내 서로 뭉치고 차곡차곡 쌓이면서 어느덧 높이 100m에 달하는 거대한 황금상으로 변했다.
“오.”
[멋진데?]
황금상은 바로 현찬의 모습을 본뜬 것이었다. 테레이오스테를 쥐고서 멋들어진 포즈를 잡은 현찬의 황금상은 그 자체만으로도 매우 찬란하게 빛나며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마음만 같아서는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고 기념을 남기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게 큰 아쉬움이었다.
“우승자의 전당에 이름을 올린 걸 축하한다. 강현찬. 이제 너의 업적을 기리는 일도 끝났으니 마지막으로 선물을 주고 끝내도록 하지. 따라와라.”
청동 신장이 허공에 손가락을 몇 번 흔들자 거대한 황금홀 중심에서 기다란 원기둥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쭉 늘어나더니 이내 홀의 수백 미터에 달하는 천장의 끝까지 닿았다. 자세히 보니 원기둥이 아닌, 원형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계단이었다.
청동신장이 자연스럽게 계단을 오르자 현찬도 그의 뒤를 따라 계단을 올랐다. 화려한 황금색의 멋들어진 디자인의 난간을 손으로 쓸면서 계단의 끝에 도달하자 그곳에는 또 새로운 장소가 펼쳐져 있었다.
그곳은 우주와 똑같이 생겼다.
건물의 내부가 분명함에도 주변에는 광활한 우주와 온갖 별빛, 은하수가 수놓아져 있었다. 눈부신 아름다움에 신인 헤르메스조차도 나지막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현찬은 두말할 필요가 없었다.
“어때. 아름답지 않나? 이곳은 역대 영웅투쟁의 우승자만이 올 수 있는 장소지. 이 기억을 영원히 간직해도 좋다.”
“여기 보이는 우주는 실제 우리가 살아가는 우주를 그대로 가져다 놓은 건가요?”
“그렇다. 비록 이 장소가 진짜 우주는 아니지만, 이 광경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모습은 진짜 우주에서 벌어지는 것들이지.”
“그렇군요.”
현찬은 우주의 풍경을 감상하다가 이내 아주 자그마한 무언가를 발견했다.
“저건, 지구잖아?”
“음? 눈썰미가 좋군. 그래. 저곳에 네가 온 행성인 지구지.”
지구의 크기는 너무나도 작아서 현찬의 안력으로도 겨우 보일 정도였다. 게다가 지구뿐만이 아니라 지구와 점차 가까워지고 있는 다른 차원들의 모습도 보였다. 개 중에는 거리가 상당히 떨어진 심연의 행성도 있었다.
“앞으로 네 앞에는 많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지금 네가 겪고 있는 것은 이 세계의 극히 일부분밖에 되지 않으니까 말이야. 그것을 위해서라도, 더욱 자신을 갈고닦아 정진하기를 바라며 너에게 마지막 선물을 주마.”
“마지막 선물이라는 건 대체 뭐죠?”
“가능성.”
청동 신장은 우주의 중심에 우뚝 서더니 여섯 개의 팔을 쫙 펼쳤다. 그의 몸으로부터 신묘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며 현찬과 함께 이 주변의 공간을 가득 채웠다. 과연 세계가 만든 영웅의 전당의 관리자답게 그 힘의 밀도나 양은 가히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우주를 가득 채운 별빛이 더욱 찬란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주변의 풍경이 현찬을 중심으로 빠르게 회전했다. 그 아름답고도 장엄한 풍경에 현찬은 가만히 선 채 눈에 모든 사물을 담았다.
별빛이 점차 강하게 빛나더니 이내 거대한 광휘를 폭사했다. 빨강, 주황, 초록, 파랑, 하양 등의 다양한 빛들은 순식간에 현찬의 몸을 부드럽게 휘감으며 일부는 현찬의 몸 안으로 스며들고 일부는 현찬의 주변을 맴돌았다.
“이는 역대 우승자들에게 주어지는 가능성. 그대가 성장할 수 있는 한계를 넓혀주고 그대의 미래를 더욱 밝게 비춰주는 가능성이다. 그러니 우승자여, 인간이여, 그대여. 앞으로 어떤 고난이 있더라도 포기하지 말 거라. 우주의 힘을 이어받은 그대는, 불굴의 의지를 지닌 한 절대로 스러지지 않을 터이니.”
현찬은 아직도 연하게 빛나는 자신의 몸을 보았다. 달라진 건 빛이 나는 것뿐만이 아니었다. 현찬의 몸 안쪽에서는 지금까지 몇 번 느껴보았던 흘러넘칠 정도로 강렬한 힘이 맴돌고 있었다.
너무나도 강렬한 힘에 현찬의 능력들도 대폭 강화되었다.
[우주의 힘을 받아들였습니다. 힘의 성장 한계치가 사라집니다.]
[레벨의 한계치가 사라집니다. 100레벨 이후에도 성장이 가능합니다.]
[모든 특성과 스텟이 상승합니다.]
[불굴의 정신을 가지는 한 당신은 절대 운명에 패배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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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메스의 눈>을 통해 펼쳐지는 수많은 정보창의 향연.
이 자리에서 현찬은 또다시 한 단계 성장했다.
“이제 모든 일이 끝났다. 떠나거라. 그대의 앞길에 축복이 있기를 바라지.”
“감사했습니다.”
청동 신장은 현찬의 인사에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충분한 대답을 해주었다.
이제 그는 영웅의 전당이 다시 닫히고 얼마나 걸릴지 모르는 긴 잠에 빠질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다른 영웅들이 모이는 순간 다시 그는 깨어나서 영웅들에게 앞길을 제시해 줄 것이다.
‘부디 후회할 선택은 하지 않기를 바라지. 강현찬.’
그런 청동 신장에게 있어서도 현찬이라는 인물은 매우 흥미로운 존재였다. 그렇기에 현찬에게 관리자의 권한을 이용해 소소한 선물을 더 주었다. 이제 잠이 드는 그는 앞으로 현찬이 이룩해 나갈 이야기를 보지 못한다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그래도 썩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현찬의 모습이 영웅의 전당에서 사라지고, 청동 신장 또한 조용히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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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찬이 영웅의 전당에 머무는 동안, 지구는 한차례 큰 소란이 벌어졌다.
그것은 갑자기 거대 게이트가 나타났다거나 다른 차원과의 <문>이 생성됐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그 어떠한 인명피해도 없이 매우 평화로운 현실이 그대로 유지된 것과 별다를 바 없었다.
지구 전체의 사람들에게 나타난 정보창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세계 통합 중간과정이 달성되었습니다.]
[차원 ‘지구’에 새로운 가능성이 개방됩니다.]
[향후 벌어질 대통합에 대비하십시오.]
당연히 사람들은 난리가 났다.
이미 대통합이 벌어졌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을 기점으로 중간과정이 달성됐다고 한다. 심지어 향후 새로운 대통합이 벌어진다고 했으니 당연히 안일하게 지금 세상에 적응하던 기득권 세력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뉴스에서는 연일 이번 일에 대해서 떠들었으며 사람들은 대체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지게 되었는지 온갖 억측이 난무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하게도 세상은 혼란에 빠져들었다.
이미 끝났다고 생각한 변혁이, 머지않은 미래에 반드시 일어난다고 못 박아버렸으니 현재까지도 몬스터에 관한 두려움을 품은 자들은 더욱 미칠 노릇이었다.
하지만 세상을 이루는 법과 규율은 무너지지 않았다.
혼란을 틈타 자신의 욕망을 마음껏 휘두르는 사람이 있다면 이 혼란을 바로잡고 앞으로 있을 일을 대비하기 위해 각종 방안을 모색하는 사람들도 있기 마련이었다.
특히나 게이트 사태를 잘 막아내는 선진국들의 대처가 그러했다.
향후 대처를 확실하게 하려고 각 나라의 국가들은 하나로 뭉쳐 앞으로 어떻게 움직이고 무슨 대책을 세워야 하는지 머리를 맞대고 의견을 나누었다.
새로운 대통합이 발생하면 새로운 세계와 연결이 되고 세계는 혼란에 빠진다.
그것을 확실하게 방지하기 위해서는 지구의 모든 국가가 하나로 뭉쳐야 했다. 그리고 헌터들의 숫자를 더욱 늘려야 한다. 그래야만 무슨 상황이 벌어지더라도 인력적인 측면에서 대비가 가능했으니까.
불행인지 다행인지 세상의 변화는 알림창이 나타나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세계 곳곳에서 각성자들이 대량으로 속출하기 시작한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게 뛰어난 잠재력을 지닌 것은 아니었지만 개중에서도 군계일학은 있었다. 헌터들의 인원이 너무 적어서 게이트를 제때 클리어하지 못하는 국가들의 입장에서는 가뭄의 단비와 같았다.
덕분에 각국의 헌터 아카데미는 그 크기를 더욱 불리게 되었고 수많은 각성자들을 교육해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훌륭한 인재들로 키워나가기 시작했다.
그 덕분인지 헌터들은 이제 저랭크라고 하더라도 나름 대접받게 되었다. 아무리 F랭크 헌터라고 하더라도 평범한 인간보다는 강했다. 그리고 미래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랐기 때문에 이런 소소한 전력조차 함부로 대하기 아쉬운 시대가 되었다.
평소에 이미지가 좋게 박히지 않은 그들이 이렇게 갑자기 이미지가 급상승 한 이유는 한 남자의 도움이 컸다.
알렉세이 윌터.
미국의 오버랭크 헌터인 그가 직접 움직여서 사람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는 F랭크 헌터라고 하더라도 함부로 무시하거나 그러지 않았다. F랭크 헌터들도 훗날 벌어질 대통합을 위해 싸우는 동지라고 말하며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는데 크게 한몫했다.
특히나 평소에 잘 움직이지 않던 다른 오버랭크 헌터들도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중국의 양 리화는 평소에 소심한 성격 때문에 대중에 나타나지 않았는데 이번 사태가 벌어지고 나서부터 본격적으로 대중들의 앞에서 활동을 시작했고 안드레이 다니엘 또한 더 성실하게 움직이며 게이트를 클리어하고 나섰다.
바야흐로, 세상은 재차 대변혁의 시대를 맞이했다.
그런 복잡한 시대의 시발점인 현찬은 자신의 집에서 어스름달을 교육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