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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무한계약-97화 (97/265)

# 97

97화 승자의 선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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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갈루카 베더귄트는 현찬의 바뀐 기세에 자기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별 볼 일 없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보아도 힘은 느껴지지 않았고 강인한 전사들에게 반응하는 자신의 야성은 죽은 듯이 잠잠했다.

베더귄트는 이 영웅투쟁이 무언가 착오가 있었다고 생각했다. 그러지 않고서야 이 인간이 고작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 인간이 자신보다 먼저 시련을 통과했을 리 없으니까. 먼저라도 상관없었다. 하지만 더욱 어처구니가 없는 건 현찬이 모든 영웅 사이에서 시련을 1등으로 통과했다는 점.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싸움을 걸었다.

녀석의 진면목을 확인하려고.

만약에 현찬이 실제로 강하다면 그는 그대로 강자와의 싸움으로서 자신의 실력을 갈고닦으며 정진할 수 있다.

만약에 현찬이 약하다면 무언가 속임수를 이용해 영웅투쟁을 엉망으로 만든 사기꾼을 벌줄 수 있으니 좋다고 여겼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따 보니 현찬은 그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존재였다.

‘대단하군!’

베더귄트는 온몸의 갈색 털이 곤두서는 것을 느끼며 입을 쩍 벌렸다. 그의 입 밖으로는 소리가 나오지 않았지만 기쁨의 함성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이 기도와 투기는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의 세계에서 그 어떠한 훌륭한 전사도 이만한 투기를 내뿜지 못했다. 이와 비슷한 수준은 베더귄트와 계약맺은 과거의 영웅 혹은 그 이상의 존재만이 보여줄 수 있는 것이었으니까.

‘이만한 힘을 숨기고 있었단 말인가!’

전력을 다하지 않으면 진다. 지금까지 수많은 전장을 누비며 그곳에서 승리를 쟁취한 베더귄트이기에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조금 전 그가 무시했던 인간은 없다. 그의 앞에 있는 것은 온몸을 전율케 하는 전사만 있을 뿐.

“간다.”

“와라!”

베더귄트는 호기롭게 외치며 양 허리춤에 찬 무기를 꺼내 들었다. 손잡이만 1m는 되어 보이는 거대하고 위협적인 모양이었다. 그것은 낫 세 개를 한데 모아든 것처럼 끝이 세 갈래로 갈라진 세발괭이를 보는 것 같았다.

베더귄트는 자신을 향해 쏜살같이 달려드는 현찬을 향해 애병을 휘둘렀다. 촤악! 베더귄트가 한번 손을 휘젓자 허공에 세 줄기의 상처가 생겼다. 그것은 허공을 가르고 지면을 가르며 3개의 참격이 되어 현찬을 덮쳤다.

참격이 지면을 가르고 지나갔을 때 현찬의 모습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베더귄트는 눈동자를 굴렸다. 현찬의 모습을 찾기 위해 그의 기감이 주변 공간을 장악했다. 기척이 느껴졌다. 무언가 매우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눈보다는 스스로 감을 믿었다. 베더귄트의 양손이 순식간에 잔상을 그리며 수십 개로 늘어났다. 그리고 그 잔상의 3배나 되는 참격이 공간 전체를 빼곡하게 채웠다. 송사리마저 잡아내는 촘촘한 참격의 그물이 지면에 내려앉았다.

촤자자자작!

베더귄트 주변의 모든 대지가 완전히 갈렸다. 하지만 베더귄트는 눈을 부릅뜰 수밖에 없었다. 어느덧 그의 바로 지척, 자세를 잡고서 무기를 휘둘렀던 베더귄트의 바로 코앞에 현찬이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베더귄트의 손이 움직이는 순간 그보다 더 빠르게 현찬의 주먹이 베더귄트의 턱을 올려 쳤다. 꽝! 주먹과 턱이 부딪쳤을 뿐인데 공기가 한차례 떨렸다. 베더귄트는 아득해지는 정신줄을 붙잡으며 두 팔을 휘둘렀다. 좌우로 총 6갈래 발톱이 현찬의 몸을 노렸다.

퍼억!

하지만 발톱이 스쳐 지나간 것은 현찬의 잔상이었다. 어느덧 현찬은 베더귄트의 어깨를 딛고서 머리 위에 올라타 있었다. 베더귄트가 현찬을 올려다보는 순간 그대로 주먹이 그의 얼굴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현찬의 주먹에 담긴 막대한 힘이 그대로 베더귄트의 머리 위로 떨어지기 직전 낫의 손잡이를 내밀어 주먹을 막아냈다. 쿠웅! 묵직한 충격에 팔이 떨렸다. 그는 발목까지 지면에 파묻혔다. 베더귄트는 경악했다. 강하다는 것은 알았지만 설마 이렇게 강할 줄 몰랐다. 그리고 분노했다. 이렇게 허무하게 당하지 않겠다는 듯이 입을 벌리며 포효를 내질렀다.

크허엉!

꾸드득! 사자의 포효가 터지며 베더귄트의 몸이 1.5배 정도 부풀어 올랐다. 목에 나 있는 갈기가 더욱 길어지며 바람에 휘날리는 억새풀처럼 흔들거렸다.

베더귄트는 전력을 내기로 했다. 여기까지 한 이상 그는 절대로 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모든 힘을 다해서 현찬을 향해 공격을 퍼부을 생각이었다.

베더귄트의 움직임이 확 달라졌다. 덩치는 1.5배로 늘었지만, 속도는 그보다 더 많이 증가했다. 그의 몸이 잔상을 남겼다. 거대한 사자 인간은 공기를 폭발시키며 그 추진력 삼아 현찬을 향해 무기를 휘둘렀다.

칼날의 폭풍이 몰아쳤다. 베더귄트의 손이 한번 휘둘러질 때마다 반월 모양 참격이 빙글빙글 회전하며 공간에 머물렀다. 그것이 두 번, 세 번, 열 번, 백 번을 넘어서자 참격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소용돌이가 만들어졌다.

“이런 미친!”

“전부 휘말리게 할 생각인가?”

지면이 갈려 나가고 주변에서 구경하던 영웅들이 더욱 몸을 뒤로 물려 거리를 벌렸다. 그러는 동안에도 베더귄트의 움직임은 더욱 거세졌다. 그의 몸이 흐릿하게 보일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며 계속 폭풍을 키워나갔다.

폭풍의 크기가 점점 커지더니 이내 직경 20m 정도의 용오름이 생성되었다. 닿는 것은 무엇이든지 간에 믹서기처럼 갈아버리는 베더귄트의 공격에 그보다 약한 영웅들은 식은땀을 흘리며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았다.

현찬은 그 광경을 보며 두 손으로 검을 쥐고 폭풍을 향해 정면으로 달려들었다. 몸을 최대한 낮추고 검을 곤두세우며 그대로 총알처럼 내달렸다. 푸른 마력이 몸을 휘감으며 현찬의 질주에 등을 밀어주었다.

콰앙!

현찬과 칼날 폭풍이 충돌하는 순간 베더귄트가 만들어낸 폭풍이 좌우로 흩어졌다. 수만 개의 참격으로 이루어진 폭풍은 종이처럼 찢기며 허공에 녹아들었다. 베더귄트는 입에서 피를 토했다. 어느덧 그의 복부에는 검 한 자루가 박혀 있었다.

“으워어어어!!”

베더귄트는 상처를 입었음에도 행동불능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은 그의 흉포한 야성을 더욱 부채질했다. 베더귄트의 눈에서 강렬한 붉은 안광이 터졌다. 그는 복부의 상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현찬을 향해 무기를 휘둘렀다.

현찬은 검을 뽑으며 뒤로 물러났다. 그런 현찬을 향해 베더귄트가 따라붙었다. 현찬의 지척까지 접근하는 순간 베더귄트의 몸이 여러 개로 분열했다. 아니, 정확히는 너무나도 빨리 움직여서 잔상 때문에 분열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저 분신 하나하나가 베더귄트의 힘을 지녔다.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일격에 현찬은 검을 고쳐 쥐고서 자세를 잡고 그대로 휘둘렀다. 그 일련의 동작은 단 0.1초도 되지 않는 순간에 이루어졌다.

휘두른 건 한 번이었지만, 뻗어져 나가는 검의 궤적은 수백 개였다. 검이 그리는 화려한 그림이 베더귄트의 모든 분신을 조각 조각냈다. 촤앗! 진짜 베더귄트도 이 공격을 제대로 막아내지 못했는지 몸에 피가 튀었다.

“이노옴!”

하지만 싸움의 흥분에 몸이 잠식당한 그는 어지간한 고통 따위는 느끼지도 못하는 양 현찬을 향해 다가오는 속도를 전혀 줄이지 않았다. 베더귄트가 멀리서 손을 휘둘렀다. 그의 무기가 허공을 쏜살같이 가르며 빛살처럼 현찬을 향해 날아왔다.

현찬의 검이 무기를 막는 순간 베더귄트가 현찬의 품에 파고들며 그대로 오른손을 내질렀다. 손가락 끝의 날카로운 손톱이 살기를 품어 번뜩였다. 현찬은 몸을 옆으로 회전했다. 베더귄트의 손이 허공을 쥐었고 현찬은 어느덧 그의 옆구리 사이로 몸을 빼면서 베더귄트의 발목 부분을 검으로 베었다.

촤악!

“크윽!”

왼쪽 발목의 힘줄이 끊어지자 베더귄트는 움직임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 순간 뒤통수에 강렬한 충격이 가해졌다. 그의 몸이 앞으로 고꾸라졌고 베더귄트는 황급히 손을 뻗어 바닥을 짚어내며 머리가 바닥에 처박히는 불상사를 막았다.

다행이다. 그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순간 재차 뒤통수에 강렬한 통증에 가해졌다. 거기에 더해서 등 전체에 충격이 내달렸고 그의 몸을 지탱하는 두 팔에도 공격이 가해졌다. 결국, 베더귄트는 바닥에 머리를 처박을 수밖에 없었다.

베더귄트의 몸을 그대로 사뿐히 지르밟은 현찬은 녀석의 목에 테레이오스테를 겨누었다. 신이 만든 검의 살벌한 예기가 베더귄트의 등골을 써늘하게 만들었다.

베더귄트의 야성이 사라지고 이성이 되돌아왔다.

그의 무기는 이미 튕겨 나가 바닥에 처박혔고 몸은 상처투성이가 되었다.

현찬이 여기서 손을 조금만 움직이면 그대로 목이 달아나는 상황.

“이제 충분한가?”

“졌다.”

베더귄트는 자신의 패배를 인정했다. 그 어떠한 반박조차 할 수 없는 깔끔한 패배였다. 그는 전력을 다했고 그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싸웠던 그 누구에게보다도 최선을 다해 전투에 임했다.

하지만 그는 결국에 현찬에게 패배했다. 힘, 스피드, 기술 전부 현찬을 이기지 못했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패배에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순순히 자신의 패배를 받아들이는 베더귄트의 모습에 현찬은 피식 웃으며 그의 등에서 내려왔다. 현찬은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다른 세계의 영웅들을 훑어보았다. 성별도 나이도 종족도 모두 제각각인 존재들은 현찬을 경악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틈새에서 놀라움과는 다른 감정이 스멀스멀 일어나고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호승심이었다. 저들도 결국에는 많고 다양한 전장을 넘어온 자들이다. 개중에는 싸움을 즐기는 자들도 존재하기 마련이다.

베더귄트처럼 호전적이고 육체적인 전투를 숭상하는 몇몇 녀석들은 지금 당장이라도 이 달아오른 몸을 꺼뜨리고 싶다는 듯 안달이 난 것 같았다.

‘역효과인가.’

현찬은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한번 실력을 보여주면 나머지 녀석들이 알아서 얌전해질 거로 생각했다. 매우 호전적인 녀석의 성미를 건드릴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정확히는, 녀석들이 벌써 싸우고 싶어서 현찬에게 열망 어린 시선을 보낼 줄 몰랐다는 것에 가까웠다.

물론 겁에 질린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리처드 님. 조금 더 제게 힘을 빌려주시겠어요?’

[계약자가 원한다면 얼마든지.]

그에게는 사자심왕의 가호가 함께 한다.

검을 쥐고 있는 순간만큼, 현찬은 상대가 신정도 되는 자가 아니라면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으음. 그래도 더 싸우기 귀찮은데.’

현찬이 그런 생각을 품은 순간 허공에서 갑자기 문이 생겨났다. 푸른 하늘에 열린 검은 이질적인 문은 그대로 하나의 그림자를 토해냈다. 현찬을 향해 싸움 걸던 몇몇 영웅들은 그림자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에 움직이는 것을 멈추었다.

“다들 혈기왕성해서 보기는 좋구나.”

모습을 드러낸 것은 피부가 매끄러운 청동으로 이루어진 거상이었다. 높이는 5m에 팔은 6개. 얼굴은 매우 험악했고 부리부리한 눈매는 보기만 해도 오금이 절로 저렸다. 거대한 신장은 영웅들을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시련은 끝났다. 너희들은 모두 너희들이 왔던 세계로 돌아가게 될 거다.”

애초에 영웅투쟁이라는 것도 <대통합>이 벌어지기 전의 중간 점검과 비슷했다. 말 그대로 본격적으로 무언가를 하려는 자리가 아니었다는 소리다. 이런 자리에서 서로 힘을 겨루는 것은 애초의 목적에 어긋났기 때문에 관리자가 직접 나섰다.

“그래도 싸우고 싶은 녀석들이 있다면.”

청동 신장의 몸에서 거대한 살기가 폭사 됐다.

“내가 직접 상대해주도록 하지.”

영웅들은 입을 쏙 다물었다. 그 얌전한 행동에 청동 신장은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영웅들은 느꼈다. 이곳의 관리자인 저 청동 신장에게 덤비는 순간, 채 몇 초도 버티지 못하고 고깃덩어리가 된다는 것을. 저자는 이곳의 관리자이자 책임자였고 이 자리에서만큼은 다른 세계의 신들에 버금가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알아들었다고 생각을 했으니 전부 떠나라.”

단, 하고 청동 신장이 여섯 개의 손 중 하나로 현찬을 가리켰다.

“너는 잠시 남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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