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무한계약-91화 (91/265)

# 91

91화 난제의 활용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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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들이 계획을 수정했어.”

원래 ‘일루베 아르카’의 목적은 곳곳에 강제로 게이트를 열어서 세상에 혼란을 초래, 그리고 곧 이어질 거대한 2차 <대통합>을 최대한 빠르게 앞당기는 것이었다.

하지만 게이트를 이용한 계획이 시간이 흘러도 진척이 없고 특히나 가장 중요했던 <심연>의 <문> 또한 현찬에 의해서 붕괴했기 때문에 그들은 계획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바깥에서 무언가를 끌고 오는 것이 힘들어진다면

내부에서 존재하는 것으로 세상을 혼란스럽게 만들면 된다.

그리고 지구 곳곳에서는 다른 차원의 괴물, 아직 인류의 힘으로는 제대로 상대하기 힘든 존재인 <난제>들이 있었다.

[녀석들은 <난제>를 이용해서 무엇을 하려고 하는 걸까?]

“정확한 방법은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썩 좋은 건 아니겠지.”

‘어스름달’이야 <난제> 중에서도 상성을 크게 타는 녀석이라 어떻게든 상대할 수 있지만 다른 <난제>들은 그것이 먹히지 않는, 괴이할 정도로 강한 놈들이 태반이었다.

특히나 등장과 함께 반경 50km 이내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를 학살한 중국의 <난제>인 천흉(天凶)은 세계적으로 매우 유명한 녀석이었다.

추정 사망자만 300만 명.

추가로 투입한 군대와 헌터들의 희생까지 포함하면 그야말로 천문학적인 피해를 낳은 희대의 괴물.

‘그런 녀석이 움직이게 된다면?’

과연 얼마나 끔찍한 사태가 일어날까.

그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그 누구도 사냥하지 못한 <난제>를 클리어하는 것은 필수였다.

[어떻게 보면 우리의 목적과 딱 맞아 떨어지네. 원래부터 <난제>는 사냥하기로 했었으니까. 그런 녀석들이 날뛰면 우리만 더 피곤해질 거고. 그런데 녀석들이 <난제>를 건드리려고 하는 걸 알았으니 일석이조 아니야?]

“맞아. 확실히 그렇겠지.”

현찬이 그렇게 대답하는 동안에 멀리서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던 황설영이 조심스레 다가왔다. 반야 가면이 혹시나 최면이나 세뇌를 이용해서 무슨 짓을 벌일지도 몰라서 모두를 뒤로 물리게 했지만 반야 가면이 죽었으니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강현찬 헌터님. 괜찮으십니까?”

“저야 멀쩡하죠.”

현찬의 미소에 황설영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피투성이가 되어 바닥에 널브러진 반야 가면의 시체를 내려다보았다. 그녀는 조심히 시체에 다가가 가면을 벗겨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 얼굴 아래에는 뭉개진 피부밖에 없었다.

“이건, 참혹하군요.”

“저들에게 걸린 금제인 듯합니다. 보안을 철저하게 하려고 발동하는 순간 목숨을 끊으며 상대방이 누구인지 못 알아먹게 얼굴도 바꿔버리죠.”

당연하게도 DNA 검사 같은 것도 전혀 먹히지 않는다.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은 사람처럼 어떠한 신체적 특징을 조회해서 찾으려고 해도 아무런 결과가 나오지 않았으니까.

“정보에 대해서 얻은 것이 있으십니까?”

“그래도 몇 가지 건지기는 했죠.”

현찬은 저들의 조직의 이름, 그들이 무엇을 벌이려고 하는지에 관해 간략하게 설명해 주었다. 설명을 지속할수록 황설영의 표정이 나빠지더니 이내 현찬의 말이 끝나는 순간 그녀의 고운 얼굴에는 끝없는 고심이 담겨 있었다.

“심각하군요.”

“그렇죠. 그리고 그만큼 상대방이 만만치 않은 자들이라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아쉽지만, 알게 된 것은 이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벌써 실망하지 않았다.

안 그래도 요즘 모든 것들이 너무 쉬웠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오히려 현찬은 이런 녀석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조금 더 의욕이 불타오르는 기분이었다.

“일단 밤이 깊었군요.”

“그러네요.”

하늘 높이 떠오르던 보름달도 어느덧 서산 너머로 저물고 있었다. 이제 얼마 가지 않아서 여명의 해가 뜨리라. 그것을 생각하니 피곤한 줄 모르고 참 빠르게 달려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밤을 꼬박 센다고 하더라도 이미 인간을 초월한 현찬과 황설영이 피곤할 리 없지만 단 하루 만에 많은 일이 있어서 정신적으로 지친 것은 사실이었다.

“이게 단 하룻밤 사이에 벌어진 일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네요.”

황설영은 자신이 오늘 겪었던 일들이 농담 같지도 않다고 느꼈다. 달이 떠있는 사이에 도깨비들과 이매망량들의 마을인 환몽촌에 오고 그곳의 세력다툼을 종식했으며 심지어 대한민국에서 견줄 몬스터가 없다는 <난제>인 ‘어스름달’마저 쓰러뜨리고 펫으로 삼았다.

이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말한다고 한들 과연 믿어줄까?

아마 대부분 사람은 허무맹랑한 소리 하지 말라고 주의줄 것이다.

그녀를 신뢰하는 정기원 실장도 분명히 완벽하게 믿지 않을 정도리라.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황설영은 역시나 현찬이 정말로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 눈으로 직접 보고도 믿기지 않는 광경을, 그는 지금까지 대체 몇 번이나 만들어냈단 말인가. 그녀 또한 다른 헌터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사는 A+랭크 헌터이지만, 현찬과는 도저히 비교할 수 없었다.

둘은 사태를 빠르게 정리했다. 환몽촌으로 돌아가 촌장인 경루의 감사를 받고 다른 도깨비들의 환대를 받았다.

“은인이시여.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나 저희 도움이 필요하시다면 언제든지 말씀만 해 주십시오. 저희 환몽촌은 은인을 위해서 싸울 것을 다짐하겠습니다.”

마지막에 떠나기 전에 촌장인 경루가 남긴 말이었다.

그리고 환몽촌에서 지내는 모든 이매망량들의 뜻이기도 했다.

이렇게 현찬에게는 매우 든든한 아군이 새롭게 생겼다.

마치 한여름 밤의 꿈처럼, 오색찬란한 마을을 떠나며 황설영은 가마 바깥으로 휙휙 지나가는 풍경을 눈에 담았다. 올 때는 너무나도 당황스럽다 보니 제대로 감상하지 못했지만 축지를 이용해서 움직이는 가마 바깥의 풍경은 매우 신기로운 것이었다.

“그보다 강현찬 헌터님.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네. 뭐죠?”

“그, 금발 머리 소녀 있지 않습니까. 그녀는 대체 누구입니까?”

황설영은 에크티를 처음 보았기에 현찬에게 물었다. 같은 여자인 황설영이 보더라도 질투가 나올 정도로 너무나도 아름다운 소녀의 모습에 황설영은 묻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던 것이었다.

게다가 여자 대 여자로서의 궁금한 것도 있지만, 에크티가 보여주었던 무위, 그녀가 사용하던 황금빛 단검과 그녀 존재 자체가 풍기는 이질적인 기운이 황설영의 호기심을 더욱 유발했다.

현찬은 그런 황설영을 보며 잠시 뜸 들이다가 딱 한 마디만 했다.

“유능한 가정부죠.”

“가정부요?”

그렇게 되물은 황설영의 머릿속으로는 자연스럽게 집주인인 현찬과 메이드 복을 입고서 집안일을 하는 에크티의 모습이 떠올랐다. 청소하는 에크티의 가녀린 몸 뒤를 현찬의 듬직한 팔뚝이 가볍게 그녀를 껴안으며…….

퍼엉!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황설영의 얼굴이 잘 익은 홍시처럼 붉게 달아올랐다. 그녀와 계약을 맺은 영령인 <두두리>는 그런 황설영의 모습을 보며 한참 멀었구나 하고 혀를 찼고 현찬은 그저 웃기만 할 뿐이었다.

&

<난제>의 처리는 비밀리로 진행되었다. 정확히는 비밀로 할 생각이 없었지만 알리려고 해도 아는 사람들이 매우 적었다는 것이 옳은 말일 것이다.

황설영에 의해서 소식을 전해 받은 것은 일단 정기원 실장과 김은혁 헌터 둘 뿐이었다. 현찬이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을 두 사람조차 현찬이 <난제>인 어스름달을 쓰러뜨리고서 펫으로 삼았다는 말을 듣고는 처음에 믿지 못했다.

결국에 황설영의 설득으로 그것이 정말로 사실이라는 걸 깨닫는 데 얼마 걸리지 않았다.

“이거 참 놀랍군.

정기원 실장은 닦아낸 안경을 다시 착용하며 그렇게 말했다. 미세하게 떨리는 손끝이 지금 그의 속마음을 대변해주고 있었다.

어지간한 일로는 놀란다는 감정조차 느끼지 않은 그가, 겉으로 감정의 편린이 드러날 정도로 동요하고 있었다.

“어떻게 할 거예요?”

“일단은 시간이 필요해.”

김은혁의 말에 정기원은 그렇게 대답했다.

그의 말대로 시간이 필요했다. 어스름달이 완전히는 아니지만 사라졌다는 것을 다른 헌터협회 지부의 사람들에게도 알려야 했고 어스름달 때문에 추진하지 못한 다양한 계획들을 여러모로 검토해야 했다.

“어차피 시간이 흐르면 자연히 사람들은 알게 돼 있어.”

<난제>라는 것은 해외에서도 관심을 가질 정도로 무시무시한 괴물이다. 그렇기에 녀석들의 동향에 대해서 파악하는 것은 매우 중요했다. 아마 얼마 가지 않아서 어스름달이 사라졌다는 사실이 알려질 것이다.

“그전까지 일단 최대한 상황을 정리해서 깔끔하게 공표해야 해.”

“어스름달은 어떻게 말할 생각인데요?”

“죽었다고 해야지.”

현찬이 어스름달을 테이밍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현찬을 경외 시 하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그런 어스름달을 향한 두려움을 품고 현찬을 멀리할 인간들도 생기게 된다. 그것을 트집 잡고서 현찬의 명예에 흠집을 내려는 인물들도 존재하겠지.

“게다가 강현찬 헌터님 본인도 그렇게 어스름달의 생포를 알리고 싶지 않으시는 눈치고.”

현찬도 자신이 어스름달을 생포함으로써 생기는 귀찮은 일들이 어떤 것들이 있을지 대충은 짐작했다. 아마 정치인들은 현찬을 어떻게든 포섭하려 들 거고 과학자들은 어스름달을 실험하려 들 것이다.

해외에서도 현찬에게 관심을 두고 귀찮게 할 확률이 아주 높았다.

“어찌 됐든 한동안 또 바빠질 거야.”

정기원의 경고 서린 말에 황설영은 안색이 창백해졌다.

<난제>가 사라졌으니 그 뒤처리가 남아있는데 문제는 아직 해적들을 소탕하던 일들의 사후처리조차 제대로 끝나지 않은 상태라는 것이다.

어디 그것뿐인가? 현찬이 <심연>의 문을 닫고서 아스트라페를 꽂아버린 그 여파조차 아직 제대로 뒤처리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다. 당연히 정부와 협회는 발에 땀이 나도록 뛰어다니고 있었고 그 대상에 황설영도 예외는 아니었다.

황설영의 머릿속으로 스쳐 지나가는 온갖 야근들의 행진에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몸이 바르르 떨렸다. 강렬한 몬스터와 며칠 밤낮으로 싸워도 이렇게까지 두렵지 않았는데 야근은 정말로 싫었다.

차라리 몸을 움직이는 게 낫지!

황설영이 도움을 요청하는 표정으로 김은혁을 바라보았다.

“뭣?!”

하지만 김은혁은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그는 상황이 딱 봐도 이상하게 흘러가는 것을 직감하자마자 바로 도망친 것이다!

그것도 엄청난 술법으로 사라져서 순간 그가 사라진 것조차 잡아내지 못했다.

“실장님.”

황설영이 애원 어린 눈망울로 바라보자 정기원은 고개를 저었다.

“나도 바쁘다.”

황설영은 시무룩해져서는 고개를 푹 숙였다.

&

협회 쪽이 한창 뒤처리로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동안에 현찬은 자신의 집에서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새롭게 얻은 애완동물(?)인 어스름달의 기본적인 교육을 하고 있었다.

딱히 크게 지적할 건 없었다. 어스름달 녀석이 폭주만 하지 않으면 나름의 이성이라는 게 있었으니까.

그냥 명령 잘 따르고 괜히 까불지 말라는 식의 이야기를 해 줬음에도 어스름달은 알아서 고개를 끄덕이며 알아듣는 눈치였다.

대충 교육이 끝나고 현찬은 휴식을 취하기 위해서 침대에 몸을 뉘었다.

‘피곤하네.’

갑자기 졸음이 밀려왔다. 열린 방문을 슬쩍 바라보았다. 헤르메스와 에크티, 아테나와 어스름달은 지금 거실에서 TV를 시청 중이었다.

‘뭐, 별일 없겠지.’

현찬은 그렇게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현찬이 눈을 감음과 동시에 거실과 침실을 연결해 주는 열려있던 문이 스스로 조용히 닫혔다.

현찬의 숨소리가 고르게 변하며 꿈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리고.

“여긴 어디야?”

현찬은 낯선 장소에서 한 여성과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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