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9
89화 난제의 활용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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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찬은 자신의 앞에 바짝 조아린 어스름달을 보며 당황스러운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그것은 언제나 냉정함을 유지하던 황설영 또한 마찬가지였다.
어지간한 일에도 놀랄 일이 없는 두 사람이 놀랄 정도로 지금 상황은 너무나도 어처구니없던 것이다.
[살려 주세요.]
엉성하게 빚어 올린 검은 진흙 인형처럼 생긴 어스름달은 재차 그런 말을 내뱉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녀석의 몸통은 계속 꿈틀거리며 인간으로서의 세세한 형상을 갖춰가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엉성했던 모습은 점점 세밀하게 사람의 형태로 변해갔다.
하지만 현찬은 그런 모습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보다 녀석이 자신의 앞에 바짝 조아린 것이 그러했다. 거기에 더해서 말까지 했다.
“설영씨. 이거 현실이죠?”
“저도 꿈이라고 믿고 싶을 정도네요.”
<난제>인 그슨대 ‘어스름달’
대한민국에 강림한 최강의 공포이자, 전 세계에서도 몇 없다는 1등급을 초월한 최강의 몬스터. 존재 자체만으로도 주변 일대에 거대한 영향을 주는 이 괴물이 지금 이 자리에서 목숨을 구걸하고 있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모든 헌터가 어처구니가 없어서 망연한 표정을 지을 것이다. 왜냐하면, 현찬도 그랬으니까.
[허. 세상이 이건 또 뭐람?]
[믿기지 않는군.]
헤르메스와 아테나 또한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는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는 눈치였다. 세상에 두려운 게 하나도 없을 것 같은 괴물이 그렇게 온갖 공격을 다 받아내고도 죽지 않은 괴물이 보여주는 광경은 그만큼 상상을 초월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어스름달의 모습이 점차 변해가며 완전한 사람의 모습으로 변했다.
육체가 너무나도 많이 손실되어서 그런지 크기는 매우 작았다. 나이를 많이 쳐줘도 초등학교 고학년 수준일까. 어떻게 보면 어린아이의 모습을 한 것부터 의도한 것일 수도 있었다.
어스름달이 고개를 들었다.
아직 젖살이 빠지지 않은 동글동글한 귀염성 넘치는 얼굴에 눈동자는 강렬한 빛을 머금으며 빛났다. 머리카락은 단발에 가까워서 남자인지 여자인지 성별이 구분되지 않았다.
“움직이지 마.”
현찬이 뜨겁게 타오르는 테레이오스테를 어스름달을 향해 겨누자 녀석은 몸을 움찔 떨더니 현찬의 말대로 가만히 있었다.
‘말을 알아듣네.’
조금 전에 사람의 말을 꺼낸 시점에서 대충 예상은 했다.
어스름달은 지성과 이성이 존재하는 몬스터라는 것을.
그렇다면 오히려 대하기 편해진다.
“내가 왜 널 살려줘야 하지?”
“저, 저를 살려주시면 쓸모 많을 겁니다!”
완전히 인간의 형상을 취해서 그런지 조금씩 웅얼거리듯 울리던 목소리 또한 뚜렷하게 들려왔다. 목소리 또한 외양에 걸맞게 매우 어리고 가늘었다. 변성기가 오지 않은 목소리 또한 남자 같기도 했고 여자 같기도 했다.
“그 말을 어떻게 믿지?”
현찬의 질문에 녀석은 고민하더니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확실히 믿지 않으시겠죠. 하지만 정말입니다. 저, 저는 그저 죽고 싶지 않았을 뿐이에요.”
“죽고 싶지 않았다?”
“저희 세상이 멸망하고 어디론가 휘말려 나타난 세상이라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게다가 처음에 저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어요. 먼저 공격한 것도 그쪽이었고 그저 죽고 싶지 않아서 도망쳤을 뿐이니까요.”
어스름달은 황급히 추가로 설명을 더 이었다.
자신은 애초에 먼저 공격을 가한 적이 없다. 갑자기 도시 한 가운데에 나타나기는 했지만 무언가 공격을 할 의도는 없었다는 것이다. 먼저 공격을 가한 것도 근처를 지나가던 헌터들이었으며 자신은 그저 살려고 반격을 가했다는 것이다.
“게, 게다가 조금 전에 난리를 친 저의 행동도 본의는 아니었습니다. 원래 저는 몰래 숨어서 그저 조용히 지내려고 했었는데 자고 있던 저에게 누군가가 강하게 명령을 내린 겁니다. 그 의지에 영향을 받아서 폭주했던 거고요.”
그리고 폭주를 계속하다가 현찬에게 아주 흠씬 두들겨 맞고서야 겨우 정신을 차렸다는 것이다.
특히나 태양옥에 적중당한 것이 너무나도 컸다.
육신을 거의 다 잃고 나서 아주 소량만 남았을 때 이성이 겨우 돌아왔고 이대로 죽을 수 없다는 생각에 냅다 현찬에게 살려달라고 빈 것이다.
“살려주시면 뭐든지 하겠습니다.”
“뭐든지 한다?”
“네. 위대하신 분이시여. 당신의 충실한 종이 되라면 될게요!”
그 절박한 태도는 도저히 꾸몄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진실했다. 현찬은 대답 대신에 고개를 들어 헤르메스를 바라보았다. 헤르메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전부 진실이라는 것이었다.
헤르메스의 앞에서 거짓과 교만은 먹히지 않는다. 그것이 동등한 신적인 존재가 아닌 이상.
어스름달이 아무리 <난제>에 들어가는 강력한 괴물이라 할지라도 신인 헤르메스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즉, 어스름달이 하는 말은 전부 진실이었다는 소리.
“그렇다 하더라도 네가 사람들을 죽였다는 사실을 변하지 않아.”
“그, 그건…….”
어스름달의 입장에서는 억울할 만한 말이었다. 먼저 공격을 당한 것은 자신이고 사람들을 죽인 것은 정당방위로 가한 반격의 결과였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생명이 죽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그건…….”
입술을 열었다 닫으며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어스름달이 내뱉은 말은 현찬의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은 것이었다.
“그건 과거의 제가 저지른 잘못이에요!”
“뭐?”
[어?]
[응?]
[뭐라?]
가만히 있던 비형랑 조차도 어스름달의 말에 어벙한 표정이 되었다. 어스름달은 이미 내뱉은 말, 주워 담을 수 없으니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눈을 질끈 감으며 외쳤다.
“과거의 저와 지금의 저는 달라요! 그, 그때는 제가 좀 정신도 없고 적응도 안 돼서 좀 많이 날카로웠던 것은 사실이에요. 하지만 지금은 달라요. 저, 저는 진심으로 위대하신 분의 종으로 살 생각이 있습니다!”
그 말도 안 되는 궤변을 한껏 토해낸 어스름달은 고개를 들어 현찬을 올려다보았다. 흑요석 같은 검은 눈동자가 물기를 머금으며 밤하늘의 별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혹시나 현찬이 자기를 죽이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녀석의 몸이 절로 떨리고 있었다.
흐음. 현찬은 자신의 턱을 손으로 쓰다듬으면서 속으로 많은 고민을 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난제> 어스름달은 현찬의 손아래에 죽음을 맞이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계획은 근간부터 뒤틀리고 말았다.
녀석이 인간의 말을 할 줄 알고 이성적인 사고가 가능하며 심지어 다양한 모습으로 변신까지 가능하다. 거기서부터 모든 것이 이상하게 틀어지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마냥 나쁘냐고 묻는다면 현찬은 당연히 고개를 저을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대박이다!’
오히려 땡잡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원래 죽여야 할 녀석을 죽여도 현찬에게 돌아오는 것이라고는 이미 충분히 많은 돈 그리고 새로운 명예일 뿐이었다. 특히나 오버랭크 헌터가 되기 위한 조건을 만족시키는 그런 수준뿐.
하지만 <난제>를 죽이지 않고 길들인다면?
기본적으로 죽였을 때 얻는 이득 중에서 녀석의 마석의 돈은 얻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현찬에게 전혀 아쉬울 것이 없었다. 마음만 먹는다면 돈은 언제나 얼마든지 벌 수 있는 것이 지금 현찬이 선 자리였다.
문제조차 되지 않는 돈을 뒤로하면 추가적인 이득이 너무나도 많다.
일단 기본적으로 어스름달을 죽이기보다는 펫으로 삼아 그것을 다룸으로써 더욱더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명성을 얻을 수 있다.
특히나 지금은 약해졌지만 제대로 길들여서 키운다면 어스름달은 현찬의 훌륭한 사냥개가 되어 적들의 목을 물어뜯을 것이다.
언제 어디서 무슨 상황이 터질 줄 모르는 현찬의 처지에서 자신의 충직한 개, 그것도 어지간한 자들은 명함조차 내밀지 못할 정도로 강력한 녀석이 들어온다면 쌍수를 들고서 환영해줄 만한 일이었다.
‘헤르메스. 가능해?’
[영령과도 계약을 주선하는데 설마 저런 녀석이라고 못 하겠어?]
[뭣?! 너희들 설마……?!]
아테나는 눈을 부릅뜨며 현찬과 헤르메스를 번갈아 보았다. 정작 둘은 이미 서로를 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주고받을 뿐이었다. 지혜로운 아테나는 현찬이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차리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어휴. 예로부터 저런 괴물들은 영웅의 퇴치 대상이었을 터인데. 대체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와버린 건지.]
‘언제나 퇴치만 하면 너무 재미없잖아?’
무엇보다 더 확실하게 이용해 먹을 방법이 있는데 그것을 마다하는 것은 현찬의 처지에서는 정말로 바보 같은 짓이었다.
이용해 먹을 것은 최대한 이용해 먹는다.
그것이 설사 몬스터라고 할지라도 현찬의 생각에 변함은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헤르메스 또한 마찬가지.
헤르메스와 충분한 상의가 끝난 현찬은 아직도 자신을 조마조마하게 올려다보는 어스름달을 향해 씨익 웃어 보였다.
그 선해 보이는 미소가 어스름달은 어째서인지 본능적으로 두려움이 일어 자기도 모르게 몸을 한차례 바르르 떨었다.
“만약에 살려준다면, 잘 할 수 있지?”
뭘 잘 할 수 있냐고 묻지는 않았다. 그저, 잘 할 수 있냐고 물었을 뿐.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어스름달은 잘 모른다. 하지만 이것이 자신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에 목이 떨어져라,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단 말이지?”
현찬은 불길에 싸인 테레이오스테를 거두고 대신 허공에서 양피지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 그건 뭔가요?”
“뭐긴 뭐겠어?”
현찬은 양피지와 함께 펜을 어스름달에게 건네주었다. 어스름달은 일단 주는 것이기에 얌전히 받아 그것을 빤히 바라보았다.
“계약서지.”
이렇게 현찬의 집에 집주인과 두 신, 가정부에 이어서 애완동물이 추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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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읍! 읍!”
반야 가면은 싸움이 길어지자 자신의 몸에 가해지는 주술의 힘이 약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가 발버둥을 치자 몸을 구속하는 속박의 주술이 약해졌고 점차 마력을 운용할 수 있게 되었다.
아직도 불로 지진 상처가 쓰라리고 고통스러웠지만, 이 정도는 충분히 버틸 만했다.
‘지금이다!’
마력이 일정 수준 운용이 가능하게 되었을 때 녀석은 구속을 완전히 벗어던졌다. 다만 아직 앞이 보이지 않았고 말도 할 수 없었지만, 코와 귀는 활짝 열린 상태.
‘어엇?!’
주변에서 대기하던 도깨비들이 당황하며 반야 가면을 제압하려고 달려들었지만 이렇게 보여도 사도들 중에서 일좌(一座)를 차지하는 반야 가면답게 도깨비들 정도는 핸디캡을 달고도 가볍게 쓰러뜨려 버렸다.
‘마음 같아서는 이런 빌어먹을 놈들도 죽이고 싶지만 그럴 시간이 없다.’
도깨비를 죽이며 화풀이를 하고 싶었지만,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이성적으로 행동해야 했다. 빨리 여기서 도망치지 않으면 그보다 훨씬 더 끔찍한 녀석이 곧 들이닥칠 테니까.
“어딜 가려고?”
“……!”
바로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반야 가면은 흠칫 떨며 손을 휘둘렀다. 반야 가면의 손의 궤적을 따라서 무시무시한 바람이 칼날처럼 몰아치며 숲 일대를 휩쓸었다. 거대한 나무와 바위가 궤적을 따라 날카롭게 잘려나가며 와르르 무너진다.
하지만.
‘감각이 없어!’
반야 가면의 손에 누군가 찢겨나가서 걸리는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 순간 반야 가면의 머리를 찌를 듯 스쳐 지나가는 강렬한 신호. 그것은 지금 목숨의 위협에 처했다는 직감이 보내주는 경종이었다. 반야 가면은 생각할 틈도 없이 바로 몸을 옆으로 날렸지만.
‘커억!’
반야 가면의 복부를 재차 쑤시는 강렬한 통증에 그는 입을 벌리고서 소리 없는 비명을 토해낼 수밖에 없었다.
강렬한 고통과 뜨거운 열기가 주변에 휘몰아치자 반야 가면의 시야를 가리던 주술이 그 반동으로 풀렸고 반야 가면은 그제야 시야가 확 트이며 눈으로 주변 사물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보았다.
쓰러진 반야 가면을 발로 밟고서 검을 겨눈 채 내려다보고 있는 현찬의 모습을.
거대한 보름달을 등에 진 채, 얼굴에 음영이 졌고 두 눈에서는 시퍼런 도깨비불을 뿜어내고 있는 현찬의 모습은.
그가 그토록 믿고 따르며 두려워하던 ‘그분’과 맞먹는, 혹은 그 이상 가는 무언가가 있었다.
“우리 할 일이 좀 많이 남았지?”
‘으아아!’
반야 가면은 소리 없는 아우성을 내지를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