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무한계약-80화 (80/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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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화 바다 위의 왕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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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선의 입에서 거대한 불길이 뿜어져 나왔다. 무시무시한 열기가 해수면을 스쳐 지나가며 바닷물이 증발했다. 뜨거운 수증기는 사방으로 퍼져 나가며 뿌연 안개를 이루었고 수증기는 순식간에 <울돌목>의 거친 파도 위를 하얗게 칠했다.

시야가 가려지고 뿌연 수증기 때문에 천지 분간이 힘들었다. 해적들은 서로 복잡하게 뒤얽힌 상황에서 어떻게든 벗어나려고 발버둥 쳤지만 그런 해적들을 향해 다가오는 것은 집중된 화력의 세례였다.

콰과광!

“끄아악!”

“배가 침몰한다! 대피해!”

“배를 버려라!”

안개 속에서 흐릿한 무언가가 스쳐 지나간다 싶더니 해적선 한 대가 순식간에 반파되었다. 선저에 커다란 구멍이 숭숭 뚫리고 그 틈새 속으로 바닷물이 미친 듯이 흘러들어온다. 배가 빠른 속도로 가라앉자 해적들은 모두 바다로 뛰어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리석은 선택이었다.

바다에 뛰어드는 순간 울돌목의 거센 물살은 그대로 해적들을 붙잡고 휘감아 수장시켜버렸다.

해적들이 아무리 헤엄을 잘 친다고 하더라도 배조차 갈아버리는 울돌목의 거센 와류 속에서 맨몸으로 견뎌낼 재간이 없었다.

‘뭐냐! 대체 뭐냔 말이냐!’

에솔로는 눈앞에 까마득한 절벽이 펼쳐지는 착각이 들었다. 광활한 바다를 시원하게 나아가다가 세상의 끝을 마주쳐 그 끝없는 어둠의 근원으로 계속 추락하는 기분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으득!

분노로 깨문 그의 이빨이 깨지고 입가에 피가 흘렀다.

이대로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어떻게든 반격을 가해야만 했다.

“이쪽도 당하고만 있을 수 없다! 전 포문 개방! 전부 쏴라!”

“서, 선장님! 하지만 그렇게 했다가는 아군도 맞고 맙니다!”

에솔로는 허리춤에 찬 검을 뽑아 들어 자신의 말에 토를 단 부하 선원의 목을 쳐냈다. 갑판 위로 목이 구르며 피가 흩뿌려지자 그 광경을 지켜보던 선원들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더 말 하고 싶은 사람 있나?”

“…….”

“없으면 당장 움직여!”

에솔로의 일갈에 그제야 부하들이 헐레벌떡 움직이며 대포를 쏘아댔다. 아군이 맞을까 봐 겁을 내며 가만히 있다가는 거북선의 먹잇감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에솔로이기에 이런 결단을 내린 것이다.

“쏴라! 마구잡이로 쏴!”

총 104개나 되는 포문이 열리며 대포가 불을 뿜었다. 목표인 현찬의 배를 한 척이라도 침몰시키기 위해서.

&

[저들의 발악이 참 가련하기도 하구나.]

바다 위에서 절대적인 권력을 가진 이순신 장군은 그런 에솔로의 판단을 안타깝기라도 하다는 듯 그를 동정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저들을 용서할 생각은 없었다. 무지하다고 해서 그들이 지은 죄는 사라지지 않으니까.

모두가 짙은 해무 때문에 제대로 된 시야를 갖지 못해 허우적거리고 있는 동안에도 이순신 장군의 눈은 지금 펼쳐진 이 전황을 전부 다 꿰뚫어 보고 있었다.

[안위야. 좌현으로 틀어서 정면으로 보이는 해적선에 충파를 가해라.]

[류형. 너는 그 자리에서 멈추거라. 그리고 정확히 셋을 세고서 다시 전속력으로 정면을 향해 달려라.]

[이응표. 너는 우현으로 타를 돌려 좌현의 대포를 모두 쏘거라.]

이순신 장군은 장수들에게 명령을 내렸고 장수들은 안개 속에서 보이지 않음에도 그의 말을 그대로 충실히 이행했다. 그러자 놀랍게도 무차별로 난사를 가하는 공격이 거북선들을 모조리 피해 가는 것이었다.

안개 속을 가로지르는 포탄은 그대로 같은 해적선들을 뭉개고 으깨며 터뜨려버렸다.

이순신 장군은 그러는 와중에도 계속 전황을 살피며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리며 배들을 전부 안전하게 지켜냈다.

그의 눈은 지금 이 안개 속에 펼쳐진 상황만 보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지금 앞으로 일어날 승리를 보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이쪽에 피해가 없는지, 어떻게 해야 적들을 효과적으로 쓰러뜨릴 수 있는지.

그 모든 것들을 하나로 종합하여 승리라는 지름길을 향해 나아간다.

그것이 바로 이순신 장군이 가지고 있는 최고의 능력.

해전에 관해서라면 그는 상대가 신이 아닌 이상 절대적인 승리를 쟁취할 수 있는 것이다.

[전군. 진격하라.]

한창 포격을 퍼붓던 에솔로는 주변이 조용해지자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이내 자신이 포위당했음을 깨달았다.

16척의 거북선이 모두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뿌연 안개 때문에 경계가 흐릿하여 그것이 실제인지 허상인지 헷갈리지만, 저것이 가짜가 아닌 진짜라는 것은 안다.

열여섯 방향으로 갈라진 거북선의 최종 목표는 당연히 에솔로가 타고 있는 플라잉 더치맨호! 이쪽을 향해 점차 가까워지는 거북선의 머리 위에는 붉은 갑옷을 입고 있는 현찬이 있었다. 이미 승리를 확신한 현찬의 태도에 절체절명의 순간임에도 에솔로는 분노를 터뜨렸다.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말도 안 된다고! 이 정도나 되는 영령이 세상에 존재할 리가 없어!”

“미안하지만.”

현찬이 에솔로의 말을 끊었다.

“그런 게 실제로 존재하더라고.”

그렇게 말하는 현찬의 표정은 정말 에솔로 따위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것이 그의 자존심을 건드렸고 에솔로의 분노를 머리 꼭대기까지 차올라 폭발하게 했다.

“네놈만 없었으면……!”

에솔로가 검을 뽑아 들고서 현찬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의 플라잉 더치맨호와 현찬의 거북선의 거리는 불과 10m 남짓. S랭크 헌터에 근접한 힘을 지닌 에솔로 보르치오에게 이 정도 거리는 뛰어넘는 것은 줄넘기하기보다 더 쉬웠다.

“죽어라!”

에솔로가 현찬을 향해 검을 휘둘렀고.

촤악!

그의 몸을 쌍룡검이 교차로 가르고 지나갔다.

“……!”

눈을 부릅뜬 에솔로 보르치오는 입을 벌려 무언가 말하려고 했지만, 그의 입 밖으로 나오는 것은 자신의 목소리가 아닌 붉은 핏덩어리였다. 허공에 도약한 상태에서 힘을 잃은 에솔로의 몸이 힘없이 울돌목의 소용돌이 바다 아래로 떨어졌다.

그가 죽음으로서 그가 지니고 있던 배의 운명도 정해졌다. 그리고 그 위에 타고 있는 해적들의 운명도.

“아악!”

“살려줘!”

배를 불러낸 주인이 사라지자 배에 타고 있던 해적들은 모두 소용돌이에 빨려 들어가 사라지고 말았다. 현찬은 그 광경을 내려다보다가 이내 검을 칼집에 넣은 후 마력을 일으켰다. 공기를 타고 동심원을 그리며 퍼져 나간 마력은 그대로 안개를 제거했다.

싸움은 끝났다.

&

“미쳤어. 이건 정말로 미쳤어.”

눈을 혼란하게 만드는 뿌연 해무가 걷히고 드러난 광경을 본 최준일 대령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전투는 끝났다.

현찬은 넬슨 제독조차 상대하기 힘들어하는 해적들을 상대로 16 대 120에 가까운 싸움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 것이다. 해적선들은 대부분 다 침몰했고 남은 해적선은 배라고 부를 수 없을 정도로 처절하게 부서진 3척의 배가 전부였다.

반면에 이쪽의 피해는 단 하나도 없었다.

전투에 참여하지 못한 3함대는 당연히 아무렇지 않았으며 전선에 직접 나선 거북선이 입은 피해는 충파를 시전하면서 생긴 아주 약간의 흠집이 전부였다.

이렇게 압도적인 승리를 보면서 그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의 벅차오름을 느꼈다.

해군의 함장으로서 어찌 모르겠는가.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최고의 업적을 이룩하신 그들의 우상을 어찌 몰라보겠는가.

이 광경을 모두 지켜본 해군 장병과 간부들도 전부 알 수 있었다.

지금 누가 나서서 그들을 지켜주었는지.

500년 전 임진왜란에서 조국을 지켜냈던 그가 다시금 현세에 나타나 그들의 땅과 바다를 지켜준 것이다.

자연히 그들의 코끝이 시큰해졌다.

“전 장병과 간부들 총원에 알린다!”

눈시울이 뜨겁게 달아오른 함장의 목소리가 배 바깥으로 확성기를 타고서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제독님을 향하여, 경례!”

“필승!”

갑판으로 나온 군인들 모두가 현찬을 향해 거수경례를 했다.

수백 명이 동시에 절도 있게 행동하는 모습은 혼자 보기 아까운 풍경이었다. 아니, 애초에 혼자서 보는 풍경은 아니었다.

‘어떠신가요?’

[아아. 그래. 이걸로 충분하다.]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쳤던 그에게 있어서 자신의 조국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의 감사 인사보다 더 최고의 선물은 없었다.

[고맙구나. 계약자여. 육체조차 사라져 한 줌의 먼지로 사라져버린 이 나에게 다시 조국의 땅과 바다를 지킬 기회를 주어서.]

‘저야말로 함께 해서 영광이었습니다.’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을 기대하마.]

‘예. 그때는 조금 더 차분한 상황에서 뵙죠.’

[그래. 그러자꾸나.]

이순신 장군은 그 말을 남기고 다시 원래 있던 세계로 떠났다.

붉은 갑옷이 사라지고 쌍룡검은 다시 하나로 합쳐져 원래의 형태로 돌아왔다. 거북선들의 형상이 무너져 내리며 원래 배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현찬은 언제 전투가 일어났냐고 묻는 것처럼 잔잔한 해수면을 바라보았다. 하늘에 떠오른 햇빛이 바다의 파도에 무참히 튕겨 나가는 게 마치 은박지를 잔뜩 구겨놓은 것 같았다.

“돌아가자. 헤르메스.”

[그래.]

&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강현찬 헌터님은 저희의 은인입니다.”

3함대 사령관 한성일 소장의 감사에 현찬은 손사래를 쳤다.

“아닙니다. 그저 저희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걸요.”

“그만한 힘을 지니셨음에도 매우 겸손하시군요. 오늘 전투를 치르시느라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저희 상승 3함대는 이 은혜를 잊지 않을 것입니다.”

소장이 떠나가고 슬슬 해산하는 분위기가 되었다. 현찬은 헬기에 탑승하려고 하는 순간 무언가를 발견하고는 자리에 멈춰 섰다. 같이 탑승하려던 황설영이 왜 그러냐는 시선을 던졌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잠시만 기다려 주실래요? 조금 확인할 게 있어서.”

그 말을 남기고서 현찬이 향한 곳은 생활관으로 떠나려고 하는 해군 수병들이 모인 곳이었다.

“어, 엇?! 강현찬 헌터다!”

“피, 필승!”

병사들이 현찬을 향해 경례를 올리자 현찬은 그런 거 안 해도 괜찮다며 손을 저으며 한 사람에게 다가갔다. 머리에 작대기 하나가 그어진 이병. 이제 막 전입을 받고서 자대에 배치를 받은 젊은 청년이 현찬의 목표였다.

“무, 무슨 일이십니까?”

너무나 황망해서 말을 더듬는 이병을 향해 현찬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지금 현찬의 시선은 그 이병의 머리 위쪽 허공을, 정확히는 이병을 지키듯이 서 있는 <영령>을 보고 있었으니까.

듬직하고 시원시원한 이목구비를 가진 소년 모습의 영령이었다. 가진 힘이 대단한 것이 딱 봐도 최소한 영웅급 영령이 틀림없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외형적 특징이 양쪽 겨드랑이 사이에 나와 있는 새하얀 날개였다.

<아기장수 우투리>

현찬의 예상이 맞다면 저 영령은 분명히 우투리가 맞았다.

‘헤르메스. 이게 어떻게 된 걸까?’

[글쎄 나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서 뭐라고 딱히 말을 할 수가 없네.]

하지만 대충 어떻게 됐는지 예상이 가는 게 있었다. 아마 저 이등병이 우투리의 마음에 들었으리라. 하지만 각성자가 아닌 일반 사람은 영령과 계약을 맺을 수가 없었다. 그들은 마력을 다루지 못했고 그럴 능력도 안 됐으니까.

[우리가 도와줄까?]

‘가능해?’

[예전이라면 모를까 지금은 충분하지.]

그렇다면 현찬이 거절할 이유도 없었다. 그 또한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났음에도 계약을 맺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우투리를 도와주고 싶었으니까.

헤르메스가 우투리에게 접근하자 우투리가 경계심을 보였다. 그런 우투리에게 헤르메스는 괜찮다며 헤칠 의사가 없음을 비쳐 보였다.

[도와줄게.]

그 말에 진심을 느꼈는지 우투리는 가만히 있었고 헤르메스는 그런 우투리에게 이등병 청년과의 연결을 이어주기 위해 자신의 권능을 발동시켰다. 계약을 활성화하며 우투리와 이등병 청년 사이를 연결해주는 일종의 끈을 만들어 둘을 엮어준다.

“저기.”

“네, 넵!”

“이름이 뭐예요?”

“자, 장일수라고 합니다!”

“긴장하지 말고 편하게 있어요. 그리고 음. 뭐 갑자기 이런 말을 하면 이해가 안 갈 수도 있는데 조만간 좀 신기한 일이 벌어질 거예요.”

“예? 신기한 일이라니 그건 대체.”

“뭐, 금방 알게 될 거예요. 나중에 가까운 휴가 나가면 반드시 각성자 검사를 꼭 받으세요. 그때는 오히려 저에게 고마워할걸요?”

아마 그는 영웅급 영령의 계약자로서 바로 군대를 나와서 헌터가 될 수 있으리라.

아직도 무슨 상황인지 이해를 하지 못한 장일수 이병은 그저 멍하니 서 있기만 했고 현찬은 그런 장일수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 주었다.

‘끝났어?’

[어. 이제 막 서로 연결해서 아직 동조율도 뭣도 없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깨닫게 될 거야. 그보다 마력의 소모가 장난 아닌데. 현찬이 너는 괜찮아?]

‘나는 멀쩡해.’

일반인을 각성자로 만든다는 매우 충격적인 일을 벌였음에도 둘의 대화는 오늘 저녁은 뭘 먹을까? 정도로 태평했다. 만약에 이 진실을 누군가가 목격했다면 어이가 없어서 뒷덜미를 잡고 쓰러질지도 몰랐다.

물론 억지로 계약을 맺게 하는 것이 아닌 영령이 바라야만 가능한 계약이지만 그래도 이것은 놀라운 결과물이었다.

다시 헬기에 탑승하려는 현찬은 순간 고개를 돌려 먼 곳을 바라보았다.

“이거, 손님이 자꾸 찾아오는데?”

[그러게 말이야.]

멀리서 이쪽을 향해 빠르게 다가오는 기척에 현찬은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 기척이 지닌 힘.

신급 영령의 계약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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