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무한계약-78화 (78/265)

# 78

78화 바다 위의 왕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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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해진의 위력은 대단했다. 요새라는 이름값을 하듯 멀리서 날아오는 공격은 모조리 막아냈으니까. 그래서 해적들이 근접전을 선택했고 이쪽을 향해 돌진해왔다.

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큰 실책이었다. 해적들은 아직 청해진의 진정한 두려움이 무엇인지 몰랐으니까.

조금만 더 생각이 있었다면 그들은 청해진이 그렇게 오랫동안 지속되는 능력이 아니라는 것을 알 것이다. 거기에 조금 더 깊이 생각했다면, 이성적으로 사고했다면 일정 거리를 유지한 채 차륜전으로 시간을 벌었을 것이다.

하지만 해적들은 기본적으로 무식하다. 그리고 최근 일본 해상 자위대와의 싸움에서 얻은 승리로 도취한 자신감도 문제였다. 그들의 콧대는 높아졌고 자존심이 지나치게 강한 나머지 상대방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싸움을 건 것이다.

물론 그들을 탓할 수는 없었다.

병력의 수도, 병력의 질도 해적의 쪽이 더 높았으니까.

하지만 현찬의 존재, 거기에 더해서 장보고가 펼친 <청해진(淸海鎭)>의 능력은 그런 불리한 상황을 모조리 뒤엎을 정도로 사기였던 것이다.

해적들은 그것을 제대로 예측하지 못했고 그들은 무지와 자만심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콰과광!

포탄이 불을 뿜고 허공을 가르며 해적선에 쏜살같이 내리꽂힌다. 그것에 자비는 없었다. 푸른 바다 위에 주황빛 꽃이 활짝 피었다. 그것은 해적들과 해적선을 양분 삼아서 피는 죽음의 꽃이었다.

청해진의 버프로 인해 강해진 공격은 원래라면 제대로 타격 주지 못했을 공격을 더욱 상승시켜서 해적선을 스티로폼처럼 박살을 내버리고 있었다. 싸움이 지속 되면서, 이쪽이 당하기 시작하면서 해적들은 그제야 상황이 심각하게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후, 후퇴하라! 후퇴!”

“도망칠 수 없습니다! 배가 끌려가고 있어요!”

청해진의 일정 거리 내에 접근하자 거센 파도가 해적선들을 청해진으로 끌어들였다. 아무리 영령의 힘으로 강해진 함선이라고 해도 더 강한 영령의 힘으로 일어나는 파도의 흐름은 거스를 수 없는 것이었다.

50여 척에 가까웠던 해적들의 함선은 무려 40척 이상이 대파하여 침몰하고 나머지 10척이 반파됨으로써 그 운명의 끝을 고했다. 살아남은 해적들은 백기를 들며 항복을 외쳤고 제주도 근해에서 벌어진 전투는 그렇게 한국군의 압도적인 승리로 끝났다.

“대단하군. 이게 신급 영령의 계약자가 지닌 힘이라는 건가.”

“원래라면 불리했을 전황을 순식간에 뒤집어 버렸어.”

“현대 해군 함선을 강화하며 펼치는 해상요새라니. 이보다 더 바다 위의 싸움에서 강한 힘을 발휘할 사람이 존재할까?”

해군 장교들은 현찬이 보여준 결과물에 모두 놀라워하면서도 그것이 지닌 전략적인 위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있었다.

대부분 수병과 헌터들은 승리의 기쁨에 도취해 있었고 몇몇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중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들의 분위기를 가차 없이 끊어낸 것은 바로 청해진 전체에 퍼져 나간 현찬의 목소리였다.

“여러분.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끝이 아니라고?”

“아, 맞아!”

승리라는 장막에 눈이 가려진 그들은 그제야 아직 적들이 더 남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들이 생각보다 싸움을 일찍 끝내서 그렇지 지금 부산 쪽 바다에서는 한창 전투가 지속되고 있을 터였다.

“지금 바로 지원을 하러 가야 합니다.”

“강현찬 헌터님의 말이 옳습니다. 지금 바로 가도록 하겠습니다.”

전북함을 지휘하는 함장인 대령이 고개를 끄덕이며 상황을 빠르게 정리했다. 헌터들 몇 명과 함께 항복한 해적들을 포박하여 배 몇 척을 빼서 제주도로 보내고 나머지 병력은 그대로 부산으로 직행하는 것이다.

촤아악!

바다를 가르며 회색빛의 강철함들이 부산을 향해 나아갔다.

&

콰과광!

대마도와 부산의 중간 지점. 그곳의 넓은 해안에서는 아직도 치열한 싸움이 계속 지속하고 있었다. 대포가 뿜어내는 포연과 불꽃. 서로 충돌하며 부딪치는 배들과 사람들의 고함과 비명. 바닷물이 하늘 높이 솟아오르며 비처럼 쏟아져 내리고 짜디짠 소금 냄새와 화약 냄새가 뒤섞여 코를 찔렀다.

<호레이쇼 넬슨>의 계약자인 윌리엄 그랜트는 머리카락에 달라붙은 배의 파편 조각을 치우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가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해적들의 병력이 막강했다.

‘제길!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거늘!’

처음 싸움이 시작하기 전에, 윌리엄 그랜트는 한국 정부에 적당한 배 27척을 준비해달라고 사전에 말을 전했다. 한국 정부는 그것을 들어주었고 윌리엄 그랜트는 그 배들을 이용하여 자신의 능력을 발동시켰다.

<함대 소환>

트라팔가르 해전 때 프랑스-스페인 연합군을 쓰러뜨린 영국 해군의 함대가 일반 함선의 선체를 빌려 현대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중에서 선두에 선 배는 당연히 <호레이쇼 넬슨>이 생전에 타고 있던 HMS빅토리 호였다.

윌리엄 그랜트는 이 싸움에 자신있었다. 그래서 한국 해군에게 자신의 싸움에 끼어들지 말라고 사전에 경고를 내렸다. 싸움에 휘말려서 배가 침몰해도 자신에게는 책임이 없다며 말이다.

당연히 윌리엄이 갑의 입장이다 보니 한국 정부 측에서는 그의 조건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서 일정 거리에서 함대를 배치해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기로 했고 윌리엄은 방해만 하지 않으면 상관없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저들의 도움은 필요 없다.

그런 일이 생기기도 전에 그가 압도적인 승리를 이끌 테니까.

하지만 그런 생각은 몇 시간 후에 뿌리째 뒤바뀌고 말았다.

“제길! 설마 저런 녀석들이 이런 곳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이야기는 못 들었다고!”

[으음. 이건 나도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로군.]

역전의 명장인 넬슨마저도 지금의 상황이 매우 불리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처음 해적선이 모습을 드러냈을 때 그는 자신만만했다.

이쪽의 함선은 총 27척.

해적들의 함선은 총 90여척.

무려 3배가 넘는 전력의 차이였지만 넬슨의 힘은 그런 불리한 상황 정도는 쉽게 뒤집어엎을 수 있었다.

싸움이 시작되었고 초반 양상은 예상했던 대로 흘러갔다. 영국함대는 거침없이 진격해 나가며 해적선들을 무차별로 포격하여 침몰시켰고 저들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저쪽에서 숨겨놓은 병력이 등장하면서 상황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바닷속에서 수면을 뚫고 튀어나온 새로운 함대가 그를 기습한 것이다.

“와하하! 넬슨 제독! 네놈의 목은 오늘 내가 접수하마!”바다에서 막 튀어나온 해적선의 주인은 에솔로 보르치오.

그와 계약은 맺은 영령은 <판 슈트라센>.

희망봉을 찾기 위해 끝없이 바다를 배회하며 악마와 계약을 맺었다고 알려진 전설 속의 선장이다. 이렇게 말해도 그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

그가 잘 알려진 다른 이름은 바로 데비 존스(Davy Jones).

방황하는 네덜란드인(Flying Dutchman) 호의 선장이 바로 그였다.

핵 잠수함처럼 바다 안쪽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무시무시한 배! 그리고 그것을 이끄는 선장은 서유럽과 북유럽 바다를 공포에 떨게 했던 것이 바로 그였다. 그런 그가 지금 먼 유럽의 바다가 아닌 동북아의 바다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심지어 등장한 것은 그 혼자만이 아니었다.

역사상에서 가장 큰 금액을 약탈했다는 진정한 해적왕 <새뮤얼 벨라미>

캘리코 잭으로 유명하며 메리 리드, 앤 보니라는 여 해적 둘을 데리고 다니던 <존 래컴>

해군 장교 출신의 프랑스 해적 <잔 플루어리>

일본의 후쿠오카 섬 근처에서 활동한 <구키 요시타카>

모두가 역사 속에 그 족적을 남겼던 위대한 해적과 계약을 맺은 적들이 자신의 함선을 이끌고 직접 싸움에 참여한 것이다.

“제길!”

윌리엄 그랜트는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추가로 들이닥친 해적들이 그를 포위하여 공격을 가해도 그는 겁먹지 않고 용감하게 배들을 움직이며 반격을 가했다. 과연 그 넬슨 제독이라는 이름값을 증명하듯 그는 이러한 불리한 상황에서 1시간 이상이나 싸움을 지속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 끝이었다.

그가 지닌 배가 반 이상이 침몰하고 남은 배들의 상태도 정상적인 것이 없었다.

치열한 싸움의 흔적 때문인지 윌리엄 그랜트의 몸 곳곳에서 자상이 생겨 있었고 그가 입고 있는 제복은 곳곳이 찢어져 상처투성이었다.

뒤에서 지켜보던 한국군이 나서려고 했지만, 그들은 다른 해적선들과 서로 충돌해서 이쪽을 쉽게 구하러 오지 못했다. 특히나 <판 슈트라센>이 불러낸 바다 괴물 크라켄이 그 기다란 다리를 뻗어 해군 함정들을 막아내고 있었다. 해적들의 목적이 넬슨 제독이다 보니 해군들을 그저 저지하는 데에만 주목하고 있어서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해군들 입장에서는 답답할 지경이었다.

“요호호! 넬슨의 계약자라고 해도 별거 없구만!”

에솔로 보르치오의 비웃음에 윌리엄이 발끈했다.

“비겁한 놈들! 다수가 기습한 주제에 뻔뻔하구나!”

“싸움이 비겁함이고 뭐고 가 어디 있겠냐! 어떻게 이겨도 오직 이기는 게 장땡이지!”

그리고 그것이 바로 해적들의 방식이었다.

[비겁한 해적 놈들!]

[헹! 비웃을 테면 계속 비웃어 봐라! 어차피 그 누구도 패배자의 말에 귀 기울여주지 않으니까!]

분통을 터뜨리는 넬슨 제독을 향해 날아오는 것은 해적들의 비열한 웃음뿐이었다.

에솔로가 손을 흔들며 명령을 내리자 윌리엄의 함대를 포위한 해적선들이 모두 대포를 겨누며 발포 준비를 끝냈다.

“바다 위에 열심히 싸웠으니 바다에서 죽어도 원망하지 말라고!”

윌리엄 그랜트는 자신의 안일함에 고개를 푹 숙였다.

‘여기까지가 끝인가.’

그가 조금만 더 조심했더라면, 조금만 더 경계하고 의심했더라면 이런 최악의 상황까지 처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은 되돌릴 수 없었고 그의 운명은 이미 정해진 듯싶었다.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올 거라는 막연한 상상은 한 적이 있었지만, 그것이 막상 닥치자 조금 억울한 마음도 없지 않아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이상 추하게 발악할 수도 없는 노릇.

윌리엄이 눈을 감고서 담담하게 죽음을 받아들이려는 순간.

콰과광!

어디선가 날아온 포격으로 영국함대를 포위한 해적선들의 포위망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뭐야?! 무슨 일이지?”

“적입니다! 선장! 새로운 적이 나타났습니다!”

“적이라고?! 일본 녀석들은 아닐 테고. 중국 녀석들이냐?”

“아닙니다! 저 녀석들, 제주도에 머물고 있다는 한국 녀석들입니다!”

“뭐라고?!”

에솔로는 눈을 찌푸렸다.

제주도로 보낸 해적들이 지금 이곳에 모인 수에 비하면 확실히 적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어지간한 나라의 해군 병력과 싸워도 충분히 쓰러뜨릴 수 있는 위력을 지녔다.

그런데 보냈던 놈들은 다 어디로 사라지고 오히려 방어하던 적들이 이쪽으로 쳐들어온단 말인가?

에솔로가 그런 의문을 품는 동안 넬슨 제독은 하늘이 내려준 포위망의 빈틈을 놓치지 않았다.

[지금이다! 저쪽으로 나가!]

“나도 알고 있다고!”

윌리엄은 필사적으로 포위망을 비집고서 겨우 해적들의 틈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선장님! 넬슨 제독의 함대가 도망칩니다! 지금 잡아야 하지 않습니까?”

“걱정하지 마라. 어차피 녀석은 멀리까지 가지 못해. 어디를 가도 결국 우리 손바닥 안이니 지금 바로 열 내서 쫓을 필요가 없다.”

“하지만 녀석이 반격하면 어쩌죠?”

“야 이 멍청한 놈아! 지금 당할 대로 당해서 저렇게 걸레짝이 된 녀석이 무슨 반격이야!”

오히려 지금 에솔로가 신경 써야 하는 것은 새롭게 출현한 녀석들이었다. 대체 무슨 조화를 부려서 제주도를 향한 해적들을 모조리 쓰러뜨렸는지 모르겠지만 그는 쉽게 당해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조금 전에 날린 기습의 위력이 보통 녀석들보다 강했어. 분명히 저쪽에도 범상치 않은 영령의 계약자가 있다는 소리겠지.’

에솔로가 날카로운 시선으로 3함대를 바라보는 동안 윌리엄 그랜트는 남은 배들을 이끌고서 새롭게 합류한 병력이 있는 곳으로 도망쳤다. 선두에선 현찬이 맞이해주자 윌리엄은 수치스러운지 입술을 깨물었다.

“구, 구해줘서 고맙다.”

“피해는 어떻죠?”

“작다고 할 수 없다. 내가 지닌 함선의 약 절반이 날아갔고 남은 함선도 제힘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해. 일단 한번 후퇴를 해서 재정비를 한 후에 다시 제대로 싸워야 한다.”

윌리엄이 자신의 의견을 꺼냈지만, 현찬은 오히려 고개를 저었다.

“아뇨. 놈들은 오늘 이 자리에서 끝장을 냅니다.”

“지금 내 말 듣지 못했나? 녀석들은 강해. 아무리 내가 기습을 당했다고 하더라도 제대로 싸워서 이긴다고 확정할 수 없을 정도다. 그런데 제대로 된 함선을 다루는 영령도 없으면서 놈들과 싸우겠다고?”

윌리엄의 표정이 찌푸려졌지만, 현찬은 평온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 보자. 27척의 배 중에서 총 11척이 침몰. 남은 배가 딱 16척이네요?”

물론 남은 배조차도 거의 다 망가져서는 전투함으로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바다 위에는 멀쩡하게 떠 있는 배는 총 16척이었다.

“12척이어도 충분한데 이 정도면 완전 널널하죠.”

“뭐?”

딱이라니? 윌리엄은 그게 대체 무슨 소리냐고 묻고 싶었다.

어디서 나오는 자신감인지 모르겠지만 상대는 절대로 쉽게 판단할 수 없는 악독한 해적 연합이다. 아무리 신급 영령의 계약자라고 하더라도, 바다의 신과 계약을 맺지 않는 이상 이 필드는 저들의 것이라는 소리.

하지만 윌리엄 그랜트는 아무런 반박을 꺼내지 못했다.

그의 솔직한 심정이 말로 튀어나오기 전에 현찬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알 수 없는 기운이 그의 입을 꼭 다물게 했기 때문이다.

쏴아아아아!

갑자기 잔잔하던 바다가 점차 거칠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것의 흐름은 거대한 무언가를 만들더니 해적선들과 해군들의 사이를 떨어뜨려 놓았다.

“함장님. 지금 바로 부산 작전사 함대에 배를 무르라고 하세요.”

“알겠습니다. 헌터님.”

무전을 통해 상황을 알리자 부산의 함대들이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해적들도 무언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는 것을 직감했는지 하나로 뭉치며 이쪽을 향해 언제라도 달려들 준비를 끝마치고 있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바다는 점점 더 거세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마치 거센 풍랑이라도 몰아치듯 태풍이 다가오는 것처럼 파도의 흐름이 강해진다. 하지만 놀랍게도 하늘은 매우 맑았고 구름 한 점 없이 광활했다.

“대체 무슨 조화를 부린 거지?”

“상대가 먼저 수작을 부리기 전에 이쪽에서 먼저 친다!”

추가로 합류하여 총 100여 척이 넘는 해적선들이 이쪽을 향해 다가왔다. 이쪽보다 배 이상이나 되는 함선이 다가오는 모습은 바다에서 해일이 밀려오는 자연재해를 형상화한 것 같았다. 당연히 함선에 탑승한 해군들은 겁을 집어먹었다.

하지만 그들의 공포는 오래가지 않았다. 현찬의 주변에서 흐르는 기운이 넓게 퍼져 나가자 갑자기 마음속에서 엄청난 용기가 샘솟았기 때문이다.

쏴아아아!

바다의 요동이 더욱 거세졌고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 해적선들이 파도에 부딪히며 점차 크게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현찬의 뒤로 나열한 함선들은 마치 잔잔한 호수 위에 떠 있는 나뭇잎처럼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갑니다.”

현찬은 윌리엄이 가져온 16척의 함선에서 가장 상태가 양호한 빅토리호 위로 뛰어내렸다. 그리고 바로 배의 갑판에 손을 가져다 대자 현찬의 마력이 배를 휘감더니 이내 목조 전열함을 커다란 판옥선으로 바꾸었다.

그것은 한 척으로 끝나지 않았다.

나머지 15척의 배도 뒤이어서 연달아 판옥선의 모습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나, 이거 본 적 있어.”

“나도.”

그 광경을 바라본 헌터들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 채 3함대 앞에 나열한 13척의 판옥선에 시선이 고정되었다.

모든 준비 과정이 끝나자 현찬은 뒤를 돌아보며 자신을 믿고 따라와 준 헌터들과 수병들을 향해 모두가 들릴만한 큰 목소리로 이 자리에서 선포했다.

“여러분.”

그런 그의 등 뒤로는 장보고가 아닌 새로운 영령이 현찬을 지키듯이 검을 들고서 위풍당당하게 서 있었다. 붉은 조선 수군의 갑옷을 입고서 두 손에는 화려한 무늬의 검을 들고 있는 사내. 그가 누구인지 몰라보는 이는 이 자리에 절대 없을 것이다.

“우리는 오늘, 명량해전을 재현합니다.”

<충무공(忠武公) 이순신(李舜臣)>

모든 해군의 우상이자 무패 신화의 주인이 조선의 바다를 지키기 위해 그 검을 다시 뽑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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