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5
75화 대해적 시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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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들은 예로부터 바다의 강도라고 불렸고 인류 역사상 오랫동안 큰 피해를 주었다.
그들은 고대 바이킹 시절부터 현대의 소말리아 해적까지 은근히 역사가 길다.
비록 17세기에서 가장 정점을 찍었다고 알려진 해적들조차도 국가의 병력과 비교하면 모자랐지만 그러한 해적들이 현대에 넘어와서 한꺼번에 다 모인다면?
그리스, 로마, 이집트, 북유럽, 중국, 일본, 미국의 온갖 해적 영령들이 시대를 뛰어넘어서 21세기의 현대에 강림하게 된다면?
그들이 서로 반목하며 싸우지 않고 하나로 뭉치게 된다면?
그 결과가 바로 지금 날뛰고 있는 황금시대의 해적(Golden Age of Piracy)이다.
조직이 하나라고 하더라도 놈들은 지구 곳곳에 자리 잡고서 자신들만의 아지트를 만들어 두었다.
동북아시아의 대마도와 오키나와.
아프리카대륙 동쪽의 소말리아.
북유럽의 파스타 섬.
유럽의 난파선 만.
그 외에도 호주, 인도네시아, 남미 등 곳곳에 커다란 거점을 두고서 꾸준히 활동하고 있었다.
평소에 별로 큰 실적을 올리지 못했다가 이번 게이트 사태로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는 이들이 바로 대마도 전역에 거점을 두고 활동하는 해적들이었다.
그들은 평소에는 쥐죽은 듯이 조용히 지내면서 자그마한 선박을 털어먹는 일들을 해왔다.
이유는 간단했다.
자신들이 활동하고 있는 배경인 한국, 중국, 일본은 전부 다 바다를 끼고 있는 나라였기 때문에 해군력이 매우 강했다.
당장에 한국만 해도 이지스함과 구축함, 호위함이 기본적으로 몇 척은 있으며 거기에 더해서 연안에서 움직이는 PKM(참수리), PKG(왕 참수리)의 존재는 아무리 <영령>의 힘을 <차용>해서 얻은 선박을 모는 해적들이라고 할지라도 정면으로 싸우기 껄끄러웠다.
한국만 그런 게 아니다. 일본의 해군도 만만치 않으며 항공모함이 있는 중국은 그야말로 차원이 다른 군사력을 지니고 있었다.
물론 그 정도 되는 병력을 운용하면 다른 나라의 시선이 곱지 않기 때문에 과하게 손쓰지는 않겠지만 해적들의 처지에서는 뽑히지 않은 칼처럼 느껴졌기에 몸을 사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 끝이다.
일주일 전부터 각 나라의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가면서 그들에게 먹구름 사이로 빛이 내리는 것처럼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지금까지 당하기만 했던 서러움을 갚아줄 기회다.”
“이것은 하늘이 내려준 기회다.”
“다른 곳에서 우리를 지원해준다고 한다.”
그들이 이렇게 용기내서 움직이는 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다른 바다에서 활동하는 해적들이 이쪽으로 지원 오기 때문이다.
특히나 유럽에서 활동하던 해적들의 상당수가 지금 이 대마도 섬으로 몰려오고 있었다.
그들에게도 동북아의 3대 강국이 크게 빈틈을 드러낸 이 타이밍은 놓칠 수 없는 보물 상자였다.
이때가 아니면 언제 약탈을 일삼겠는가!
카리브해 출신의 해적들이 지원을 온다는 소식은 당연히 대마도에서 활동하는 해적들에게 큰 희망을 주었다.
그리고 반대로 동해, 황해, 동중국해와 맞닿은 나라들의 입장에서는 안 그래도 처리하기 곤란한 게이트에 더해 귀찮은 문제점이 더 굴러들어온 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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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응. 귀찮게 됐군.”
정기원은 최근 들려오는 소식에 눈살을 찌푸리며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최근에 대마도에서 활동하는 해적들의 움직임이 매우 거칠 게 없어서 진해, 마산, 부산 등에 적게나마 피해를 주고 있다는 이야기가 계속 귀를 울리고 있었다.
서울 지부에 속한 그에게 본격적인 피해는 없겠지만 부산지부 협회에서 각 지부에 계속 지원을 요청해왔고 결국에는 총 회의를 거쳐서 그 결과가 나온 것이 바로 조금 전이였다.
“무슨 일이십니까?”
옆에서 정기원의 업무를 보좌하며 도와주던 황설영이 되묻자 그는 평소에 사용하지 않는 안경을 고쳐 쓰며 넋두리를 읊조리듯 지금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 관해 간략하게 설명해 주었다.
“최근 해적들의 활동이 매우 활발해졌다는 건 알고 있나?”
“예. 그렇습니다. 일주일 전에 벌어졌던 사건 때문에 그렇다고 하셨죠.”
“그래.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해안가 쪽, 특히나 전남 지부와 제주도, 경남 지부가 비상이 걸렸어. 평소라면 잠잠했을 녀석들이 아주 극성을 부린다더군. 문제는 못 보던 녀석들까지 섞여 있다는 거야.”
특히나 유럽 부근에서 수배받는 블랙 헌터들 몇몇이 최근 벌어지고 있는 해적들의 움직임에 더러 섞여 있다는 목격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실제로 증거로 찍힌 사진 몇 장을 보면 흐릿하게나마 보이는 녀석 중에서 정체가 확인된 놈들이 있었다.
“그건…… 확실히 심각하군요.”
특히나 유럽에서 활동하던 해적들은 그 영령이 가진 힘도 만만치 않은 것이기 때문에 황설영이라고 하더라도 무시할 수 없는 존재였다. 그들이 강한 이유는 특히나 바다에서 싸울 때 그 힘을 제대로 활용한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헌터들은 바다에서 제대로 된 전투를 펼칠 수 없다. 배에 타고 있다고 하더라도 너울로 인해 흔들리는 배로 인해 싸울 때마다 균형이 계속 흔들리고 뒤집히며 혹여나 바다에 빠지기라도 한다면 큰일 나기 때문이다.
반면에 해적들은 바다 위에서 육지보다 더욱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자신이 가진 힘의 2배 이상을 끌어낸다. 이러한 것이 해적을 영령으로 삼은 자들의 특징이다. 당연히 협회로서는 상대하기 껄끄럽다.
“그래. 그런데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는 거야.”
정기원 실장은 그 뒤에 있을 문제점을 한탄하듯 꺼냈다.
“당연히 이는 국제적인 위험이라고 볼 수 있으니 원거리 화상통화를 이용해 회의를 거쳤지. 그래서 대부분이 지금 날뛰는 해적을 제압해야 한다는 데에 찬성을 표했다.”
공군을 이용한다면 편하겠지만 지금 공군을 함부로 이끌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것은 바로 <난제> 중 하나가 동북아 부근의 섬에서 활동하기 때문이었다.
<난제> 대붕응자조(大鵬鷹子鳥).
두 날개를 활짝 펼치면 무려 날개 끝에서 끝까지만 500m에 달하는 거대한 새.
단 한 마리뿐이지만 1등급 몬스터조차 잡아먹을 정도로 강력하기에 <난제>에 당당히 자리를 올린 녀석이었다.
원래라면 가만히 있었을 녀석이 <심연> 사태 이후로 갑자기 미친 듯이 날뛰기 시작한 게 문제가 되었다. 기본적으로 배를 건드리지는 않지만, 자신의 기감 범위 내에서 돌아다니는 비행기를 마구잡이로 격추하는 위험한 놈이다.
문제는 지금 해적들이 활동하는 범위가 바로 이 대붕응자조의 구역 안쪽이라는 소리다.
대한민국 남해를 포함하여 동중국해에서 전투기나 폭격기를 제대로 운용이 불가능했다. 그나마 헬기라면 고도를 낮춰서 이동시키면 괜찮겠지만 그것만으로는 역부족이다.
결국, 해양 병력으로 승부를 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대한민국에는 해전에 특화된 영령과 계약을 맺은 헌터가 아직 없었다.
그나마 전투 경험이 풍부한 장군 계열의 영령과 계약을 맺은 헌터 몇 명이 나름대로 바다에서도 싸울 수 있었지만, 바다에 나서 바다에서 먹고 사는 해적들을 수도 거의 10배가 넘는 녀석들을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럴 상황에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결국 다른 나라에 유명한 헌터의 파병을 요청하는 것이다.
정기원 실장의 방구석에 있는 의자에 앉아 휴대폰 게임을 하고 있던 김은혁이 고개를 번쩍 들며 입을 열었다.
“보아하니 부르는 녀석이 썩 좋지 않은 녀석인가 보죠?”
“…… 자네는 왜 내 방에서 이렇게 죽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대답을 해주자면 맞다네. 혹시 윌리엄 그랜트를 아는가?”
정기원 실장의 질문에 김은혁의 콧잔등이 살짝 찌푸려졌다.
“<호레이쇼 넬슨>의 계약자…….”
“잘 알고 있군. 그래. 우리가 급하게 파병을 신청한 자가 바로 그라네.”
“아…… 이거 좀 문제 있는데?”
김은혁의 말에 윌리엄 그랜트가 누구인지 모르는 황설영만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둘의 대화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었다.
“그가 대체 누구이기에 그렇습니까?”
천하에 친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고 알려질 정도로 넉살이 좋은 김은혁이 살짝 꺼릴 정도의 인물이라면 그 성격이 보통이 아닐 것이다.
황설영의 질문에 김은혁은 생각하기도 싫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대답해 주었다.
“<호레이쇼 넬슨>이 누구인지는 알지?”
“알고 있습니다.”
호레이쇼 넬슨.
흔히 사람들이 넬슨 제독이라고 부르는 그자는 영국 역사에 있어서 최고의 해군 제독이라고 평가받는 인물이다.
특히나 그를 유명하게 만든 전투가 바로 트라팔가르 해전(Battle of Trafalgar)이었는데 여기서 나폴레옹의 군세를 박살 내고서 장렬하게 전사를 한 넬슨 제독은 영국인들에게 있어서 구국의 영웅이자 최고의 제독이라 평가받는다.
그런 인물과 계약을 맺은 자가 바로 윌리엄 그랜트.
“녀석은 지독한 인종차별주의자야. 원래부터 싹수가 노란 놈이었는데 하필이면 계약맺은 영령이 자기 나라에서도 거의 톱으로 쳐준다는 해상제독이니 당연히 콧대가 올라가겠지.”
당연하게도 윌리엄 그랜트는 많은 사고를 치고 다녔으며 그의 모국인 영국에서 어떻게든 그의 잘못을 덮고 오냐오냐해주느라 녀석의 성격은 더더욱 삐뚤어졌다.
원래부터 <호레이쇼 넬슨>의 성격도 매우 공격적이고 인간적으로도 문제가 많았다. 특히나 이상한 여성 편력을 지니고 있던 그였기에 계약자인 윌리엄 그랜트 또한 여자와 관련되면 사족을 못 쓰는 이이기도 했다.
그런 인물이 이쪽으로 지원차 파병 온다고 하는데 반길 이가 얼마나 있겠는가. 도와주러 오는 것은 고맙다만 부디 와서 사고치지 않고 얌전히 할 일만 해줬으면 하는 것이 이쪽의 솔직한 바람이다.
“아마 설영이 너랑은 성격이 엄청 안 맞아서 어지간하면 마주치지 않는 걸 추천한다. 그 인간 콧대가 너무 높아서 진짜 내 영령도 툭 하면 그놈의 면상에 주먹 날리라고 보채는 걸 나도 겨우 참거든.”
“만나보신 적이 있었습니까?”
“그럼 내가 생판 모를 남에게 이런 평가내릴 줄 알았어? 그때 생각하면 정말 짜증이 다 난다니까.”
“둘 다 잡담은 거기까지. 어찌 됐든 간에 우리를 도와주러 온다고 해준 사람이다. 이쪽에서도 나름의 예의는 지켜야 하는 법. 혹시 모를 불상사를 대비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교육 확실히 하도록.”
“네.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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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쳇. 대체 왜 저 빌어먹을 노란 원숭이들을 도우러 내가 직접 가야하는지 모르겠네.”
자신의 개인 비행기에 몸을 실은 윌리엄 그랜트는 몇 시간이나 지루한 비행 때문인지 벌써 기분이 저조한 상태였다. 특히나 미개하기 짝이 없는 동양인들을 만나러 가서 그쪽을 도와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나도 싫었다.
“조국의 명령만 아니었어도 그냥 때려치웠을 텐데.”
비행기에 준비된 시원한 샴페인을 마시며 그는 비행기의 동그란 창 바깥을 바라보았다.
[너무 그렇게 불만을 품지 마라, 계약자. 어차피 가 봤자 별볼일 없는 녀석들 몇 처리해주는 쉬운 일이다.]
“나도 알아.”
그의 성격이 아무리 개차반이라고 할지라도 조국을 향한 충성심은 진짜였다. <호레이쇼 넬슨>과의 동조율이 높은 그였기 때문에 여성 편력과 성격이 이상한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꽤 밉보일 만한 것이었지만 영국 정부가 그를 높게 쳐주면서 계속 붙잡고 있는 것은 그의 애국심 때문이었다.
죽음을 각오하고서 프랑스, 스페인 연합 함대를 향해 뛰어들었던 그의 용기와 충성심은 당연히 역사에 고스란히 남아 있을 정도로 유명한 것이었으니까.
[오히려 돌아왔을 때 스스로 노고를 치하하는 의미에서 마시는 술과 여자를 안아주는 것이야말로 더욱 각별한 법.]
“흐음. 그것도 맞는 말이야. 게다가 한국이라는 나라에는 예쁜 여자들이 많다고 하는데, 거기 여자를 만나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어.”
윌리엄 그랜트는 그런 낙관적인 생각을 품으면서 비행기의 푹신한 좌석에 몸을 실었다. 비행기가 이륙하면서 벌어지는 커다란 기체의 진동에도 불구하고 최고급 좌석은 그의 몸에 잔 떨림을 전해주지 않고 포근하게 감싸주었다.
최대한 빨리 가서 빨리 끝내야겠다.
마음속으로 그런 생각을 품은 윌리엄의 개인 비행기는 빠른 속도로 영국의 상공을 가로지르며 하늘을 날아올랐다.
그가 앞으로 무슨 꼴을 겪게 될지도 모른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