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4
74화 대해적 시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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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찬…….’
새 가면은 멀리서 보이는 거대한 흰색 섬광을 바라보며 가만히 서 있었다.
‘설마 저것마저 막을 줄이야.’
특히나 방금 보았던 그 새하얀 섬광. 엄청나게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피부로 저릿하게 느껴지는 무지막지한 힘에 새 가면은 잊고 지내던 공포라는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현찬은 강해졌다. 지난번에 보았을 때보다 더욱 더.
그리고 앞으로도 더 강해지겠지.
새 가면은 철 가면이 어째서 현찬을 빠르게 제거하려고 했는지 이해가 갔다.
‘아쉽군. 이쪽에서도 나름의 큰 손해를 안고서 벌인 일이 이렇게 막히다니.’
새 가면은 애써 자신의 안타까운 마음을 달래었다. 비록 임무는 실패했을지 라도 그가 바라던 상황은 조금이나마 이루어졌으니까.
아니, 정확히는 ‘그분’이 바라던 상황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것이 예상했던 것보다 매우 낮았지만 없는 것보다 나았다.
‘세상은 더욱 더 혼란으로 치닫게 될 것이다.’
질서와 규칙의 시대는 무너지고 이 세상은 모든 것이 파괴되어 태초의 혼돈부터 다시 시작하게 될 것이다.
시대는, 지금 이 순간을 기점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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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변했다.
그것은 20년 전 벌어졌던 <대통합> 때도 나왔던 말이었지만 변화란 언제나, 항상 생기는 법. 제우스가 한국의 땅에 그 힘의 편린을 드러낸 시점에서 다른 차원과의 통로를 그 강대한 힘으로 붕괴시킨 시점에서 이 세상은 또 다른 변화를 맞이했다.
지금까지 벌어졌던 변화와 다른 점이라고 한다면 그것이 사람들의 인식에 걸리지 않고 마치 처음부터이랬다는 것처럼 진행되고 있다는 거다.
사람들은 볼 수 없는 게 당연했다.
이 세상의 흐름은, 인간의 눈으로는 절대로 담지 못하는 부류의 것이었으니까.
인간의 눈은 이러한 거시적인 세계를 목도하기에는 너무나도 작고 연약했다.
하지만 같은 인간이라고 하더라도, 이런 세상의 변화를 볼 수 있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헤르메스의 계약자인 현찬이였다.
어렴풋이 이렇게 될 거라고 짐작은 했다.
지구는 아직 변하는 중이었다. <대통합>이 변화의 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겠지만 이것은 그저 시작에 불과했다. 과연 그 끝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과정이 매우 앞당겨졌다는 것은 확실했다.
“헤르메스. 이제 세상은 어떻게 될까?”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곧 이어질 변화는 점점 세상에 드러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초래하게 될 결말은 결코, 순탄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이 좋은 길일지라 하더라도 이 세상에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리라.
현찬의 넋두리 같은 물음에 원룸 바닥에 앉아 TV를 시청하고 있던 헤르메스가 고개를 살짝 돌리며 대답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
헤르메스의 말은 사실이었다.
이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세상의 변화를 몰고 올 거라는 걸 알면서도 이번에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이번에 제우스를 부르지 않았다면 대한민국은 물론이거니와 그 이상 가는 국가가 지구상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더 큰 피해를 막기 위해서 이쪽은 최선의 수를 두었다.
오히려 현찬의 덕분에, 세상은 아직도 제구실을 해 나갈 수 있었다.
“어차피 언젠가는 이렇게 될 일이었어. 그것이 조금 더 빨리 앞으로 당겨졌을 뿐이야.”
“그래. 네 말이 맞아. 이런 거로 고민을 해 봤자 아무 의미가 없지.”
현찬이 해야 할 일은 단 하나다.
앞으로 벌어질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서 더욱 강해지는 것.
그것이 미래를 받아들이기 위한 최선이었다.
때마침 TV의 브라운관 너머에서는 어제 있었던 <심연>의 사태에 관해서 집중적으로 보도했다.
방송국 헬기가 하늘을 가로지르며 카메라로 <문>이 있던 자리를 촬영하고 있었다. 도시의 외곽, 논도 밭도 없는 맨땅이라 재산피해는 나지 않았지만 그런데도 그곳에 펼쳐진 광경은 전쟁을 방불케 한 엄청난 흔적들이 남아 있었다.
곳곳에 흩뿌려진 괴물들의 갈린 사체와 검은 피, 뒤집히고 박살 난 땅은 싸움의 여파가 얼마나 굉장했는지 단편적이나마 보여주고 있었다.
“지금 이렇게 보니까 진짜 굉장하긴 하다.”
“그러게 말이야. 역시 우리 아빠가 세기는 진짜 세.”
[아버지는 우리 올림포스 신들의 왕이다. 당연히 그만한 힘을 지녔지. 그런데 비록 계약이라고 할지라도 본신의 힘 일부일 뿐인데도 저 정도 위력이라니. 다시 봐도 감탄스럽구나.]
뉴스에서 비춰주는 광경 중에서 가장 진국은 바로 거대한 크레이터였다. 마치 운석이라도 떨어진 것처럼 반경 100m가 넘는 크레이터는 그 주변의 모든 것들을 없애버리고서 오직 자신만 남았다.
제우스의 번개 [아스트라페]를 떨어뜨린 흔적이었다.
일만의 번개를 하나로 꼬아서 뭉치고, 그것을 또 일만을 꼬아서 뭉친 지고의 무기.
거기에 제우스의 강함이 함께 하니 그 위력이 설사 본신의 힘 일부일 뿐이라고 할지라도 땅을 가르고 하늘을 열어버리는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포세이돈과 하데스를 제외하면, 나머지 그리스 신들을 모두 합친 것보다 강하다고 평가받는 제우스.
그 광경을 직접 코앞에서 목도한 현찬은 아직도 그때의 모습을 머릿속으로 떠올리면 자기도 모르게 등골이 오싹하게 소름 돋고는 했다.
한 신화의 주신이 직접 하계에서 힘을 행사했다.
그것이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현찬은 모르지 않았다.
“준비해야겠지.”
“물론이지.”
“그러면 여기에 있지만 말고 나가자.”
바깥에서는 현찬을 애타게 찾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언제나처럼 현찬은 그들의 관심을 무시했다. 인터뷰니 영입 제안이니 그런 것을 받아들인다고 고민하는 것은 아무런 쓸모도 없는 것이었으니까.
그렇게 며칠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세상은 조금씩이지만 빠르게 변화를 거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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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우스가 지상에 강림하고 <심연>과의 통로가 붕괴한 지 어언 1주일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현찬은 그동안 여러 게이트를 돌아다니며 다양한 몬스터들을 사냥하고 게이트를 클리어하며 돈을 벌었다. 그렇게 꾸준히 레벨을 올리고 스텟도 올렸다.
리바운드의 영향이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리바운드에 관한 후유증 대부분은 감은장아기의 힘이 상쇄해준 것이 매우 컸다. 기본적으로 현찬이 떠맡아야 할 막대한 부담을 ‘행운’이라는 요소가 대부분을 부담해준 것이었다.
이런 일이 앞으로도 계속 일어나지는 않겠지만 현찬은 정말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중에서 가장 큰 변화는 드디어 현찬이 좁은 원룸을 벗어나서 이사했다는 것이다.
돈도 충분히 벌었겠다, 식구들도 늘어나는 마당에 언제까지 원룸에서 지낼 수는 없었다.
그렇게 이사를 간 곳은 부촌으로 불리는 동네 중에서 가장 유명한 한남동. 그곳에서 2층짜리 일반 주택으로 이사를 끝마쳤다. 가진 돈이 워낙 많다 보니 이 정도의 집을 한 번에 사들여도 큰 타격이 없었다.
다른 고랭크 헌터들이나 정, 재계 인물들이 많이 거주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기자들이나 혹시나 무언가 얻어 떨어지는 게 있을까 빌붙으려는 사람들은 이 동네에 제대로 발을 붙이지 못한다. 게다가 최근 테러 활동 때문인지 경계도 매우 삼엄해서 귀찮은 일들을 피하고 싶어 하는 헌터들이 매우 선호하는 곳이기도 했다.
그곳에서 지인들을 초대해 집들이하고, 여러모로 축하받으면서 현찬은 새롭게 머물게 될 주택에 그렇게 차차 적응해 나갔다. 특히나 헤르메스는 집이 넓어서 좋아했고 에크티도 넓은 부엌을 보며 표정의 변화가 없었지만, 어딘가 만족스러운 기색을 내비쳤었다.
그러는 소소한 변화를 포함하여 대한민국은, 아니 세상은 크게 흔들렸다.
<심연> 사태는 해외에서도 대서특필할 정도로 유명했으니까.
수원시 사태는 이번에 벌어진 <심연> 사태에 비하면 오히려 어른과 아이의 차이라고 할 정도로 <심연>이 세상에 안겨준 충격은 대단했다.
이미 각 나라에서는 해당 영상을 입수하여 뉴스에서 시끄럽게 보도하고 있었고 대부분 나라의 시선이 한국으로 몰려들었다. 한국도 이번에 일어난 사건의 뒤처리를 위해 미친 듯이 동분서주하며 여러 가지 일들을 처리했다.
특히나 마지막 떨어진 새하얀 섬광.
그것을 일으킨 것이 현찬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각 나라의, 그것도 강대국들은 어떻게든 현찬에 관한 정보를 얻으려고 애를 썼다. 그리고 세계 곳곳에 암약하는 데스페라도나 람브로눅스들 또한 현찬에 대한 경계심을 매우 올렸다.
현찬이 부리나케 이사한 것도 이러한 사람들의 시선이 몰렸기 때문이었다.
현찬은 그야말로 뜨거운 감자였고 모든 사람이 한국과 현찬을 주시했다.
그리고 그것은 세상과 동떨어진 존재라고 평가받는 ‘오버랭크’ 헌터들도 마찬가지였다.
<심연> 사태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번 일이 비범하다는 것은 대부분 사람이 알고 있는 일. 그리고 그것을 막은 현찬의 경우에는 더더욱 마찬가지.
세상의 판도가 빠르게 변해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역시나 실질적으로 보이는 변화는 바로 새롭게 생성되는 게이트의 수가 급격하게 늘어났다는 점이다.
20년이라는 짧은 헌터들의 역사에 큰 획을 그을 정도로 위급했던 순간은 세상에 변화를 몰고 왔고 원래부터 질서와 법으로 토대를 유지하던 국가를 매우 크게 흔들었다.
게이트의 숫자는 헌터들이 클리어하는 것 이상으로 늘어났으며 그것이 점차 오래되면서 현실과 충돌해 게이트 사태를 일으키기까지 했다.
그것은 비단 한국의 일만이 아니었다. 주변 국가인 중국과 일본도 그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야말로 동남아 부근은 마치 무언가가 지나치게 가속이라도 된 것처럼 게이트가 우후죽순으로 열렸다.
의도치 않은 게이트가 열리고 곳곳에서 사고가 터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몰랐다.
그렇게 동북아 부근은 점차 혼란의 도가니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특히나 가장 큰 문제라고 한다면, 게이트로 인해 헌터들과 군인, 경찰들이 바빠지면서 발생한 안보의 틈새였다.
한국, 중국, 일본은 세계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치안이 좋고 게이트를 잘 막아내는 나라들이다. 그런 나라에 범죄자가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다른 국가보다는 확실히 적었고 그들이 마구잡이로 설치는 일들은 없었다.
그래. 결국, 그것은 과거의 일일 뿐이었다.
게이트가 하루가 멀다 하고 생성되고 간혹 몬스터들이 바깥으로 튀어나와 민간인들에게 피해를 주는 일들이 벌어지면 당연히 범죄자들을 일부 담당하던 국가 기관은 몬스터들을 막는 곳으로 움직인다.
자신들의 감시망이 느슨해지는 걸 모를 리가 없는 각종 범죄자, 헌터 킬러, 불법 헌터들은 물 만난 물고기처럼 날뛰기 시작했다.
그것은 최근에 활동을 벌이다가 호되게 당해서 몸을 사리던 데스페라도도 람브로눅스도 마찬가지였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조직이 이런 천금 같은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다. 특히나 넓은 영토를 가지고 있는 중국 쪽에서는 온갖 테러 활동이 자행되기 시작했다.
인구가 많다 보니 사망자도 많았고 그에 따른 과격한 싸움의 여파도 컸다.
일본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고 특히나 변화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한국은 더 심했다.
그나마 뛰어난 헌터들이 많았던 한국은 이런 상황에 대해서 나름 잘 대처해 나가며 피해를 최소한으로 만들었다. 이는 최근 한국에서만 연달아 큰 사건들이 터졌기에 그에 따른 대비를 확실하게 했기 때문이다.
반면 지금까지 오랜 평화에 찌들어버린 일본은 꽤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몇몇 대도시에서 나타난 몬스터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고 몬스터들과 싸우던 헌터들의 피해도 무시할 수 없었다.
신문과 잡지, 뉴스에서도 이런 일들을 다루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이것이 세상의 종말이라고 떠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얼마 전 시위하다가 테러에 휘말려 죽을 뻔했음에도 이들은 정신을 못 차렸는지 지금 벌어지고 있는 게이트들은 신께서 내리는 벌이라며 시끄럽게 떠들어 댔다.
“이런 곳에 이사와도 저런 인간들의 모습을 안 볼 수는 없는 거구나.”
현찬은 이런 동네에서까지 와서 민폐를 끼치는 사람들을 보며 혀를 찼다. 워낙 숫자가 많다 보니까 저런 사람들을 동네 바깥으로 몰아내는 것도 일이었다. 덩치가 큰 경비원들이 힘으로 사람들을 밀어내고 광신도들은 어떻게든 피켓을 들고 들어오려고 애쓴다.
그 시끄럽고 난잡스러운 광경을 2층의 거대한 창문을 통해 지켜보던 헤르메스는 손에 쥔 팝콘을 입안에 털어 넣었다.
“역시 인간은 재미있어.”
“어 그래.”
최근 만화와 애니메이션에 빠진 헤르메스는 점점 더 신의로서 위엄을 눈 씻고도 찾아보기 힘들게 변했다. 당연하게도 그런 동생의 모습을 보며 아테나는 하루에도 몇 번인지 모를 한숨을 내쉬는 것은 이제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일상이었다.
현찬도 창밖에서 펼쳐지는 거센 시위를 보았다.
‘이제 일주일이 지났을 뿐인데도 이 정도라니.’
현찬도 이 일에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었기 때문에 여러 가지로 살폈었다.
한, 중, 일 세 나라가 모두 갑자기 늘어난 게이트 사태에 대해서 골머리를 앓고 있었고 그 후폭풍에 시달리는 중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악질적이라고 할 수 있는 자들이 있었다.
국가를 가리지 않고서 한, 중, 일 모든 국가에 골고루 피해를 주는 녀석들.
바로 <해적>이었다.
바다에서 지나다니는 배들을 약탈하거나 혹은 육지에 내려서 해안가 근처에 있는 도시에 쳐들어오는 녀석들을 일컫는 말이었다.
이 해적도 어떻게 보면 데스페라도 조직원이라고 볼 수 있었다. 다만 그 크기와 세력이 워낙 큰 나머지 데스페라도에서 떨어져 나와 자신들만의 집단을 이루었다.
역사 속에서 <해적>에 관련된 자들은 많았다. 그들 대부분이 영령이 되었으니 그 숫자들은 절대 적지 않았다. 특히나 해적과 관련된 영령들, 그것도 한배의 선장이었던 자들은 영령으로서의 능력으로 몰고 다니던 배를 <차용>할 수 있었다.
그런 놈들이 최근 혼란에 빠진 동남아로 몰려와 기존에 대마도를 차지하여 세력을 이루고 있는 놈들과 합류했다.
가까운 한국과 일본은 특히나 신경을 곤두세우며 녀석들의 행보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