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2
72화 천신 제우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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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찬의 몸에서 뿜어지는 신력이 뒤섞인 막대한 마력은 지구라는 세상에 처음으로 발을 들이민 <심연>의 존재들에게 있어서 그 무엇보다도 달콤하게 느껴지는 유혹이었다. 꿀의 달콤한 향기에 벌이 이끌리듯 도시 곳곳으로 퍼져 나가던 괴물들은 전부 다 약속이라도 한 듯 현찬을 향해 달려들었다.
의도치 않게 현찬은 모든 몬스터들을 모으게 되었고 현찬의 주위로 모여 있는 헌터들은 그야말로 죽기 살기로 밀려오는 괴물들과 싸우는 수밖에 없었다.
사방으로 퍼져 나가던 괴물들이 한 장소로 몰려드니 넓게 포위망을 치며 촉수 괴물들과 싸우던 헌터들은 그제야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그들은 이미 상황을 들었기 때문에 몬스터들이 어디로 향하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모두 놈들이 한눈 팔렸을 때 최대한 수를 줄여!”
“강현찬 헌터를 지원한다!”
“한 마리라도 더 죽여라!”
이지가 없는 괴물들이 등을 돌리니 헌터들은 지금 열심히 버티고 있을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최대한 촉수 괴물들을 죽이며 수를 줄여주었다. 하지만 줄어드는 것 이상으로 <심연>에서 튀어나온 괴물들은 많았다.
특히나 현찬을 지키기 위해 나선 헌터들은 그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이런 젠장! 정말 끝도 없이 몰려드는구나!”
“말할 시간에 한 마리라도 더 죽여!”
“그러고 있어!”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하는 현찬의 주위에 방어진을 구성한 헌터들은 밀려드는 무지막지한 몬스터들의 파도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한 마리를 베면 그 사체를 밟고서 두 마리의 촉수 괴물이 나타난다.
두 마리를 베면 더 많은 사체를 밟고서 네 마리 이상의 괴물이 들이닥친다.
눈으로 보이는 장소만 해도 전부 다 검은 괴물들로 뒤덮여 있을 정도로 녀석들의 수는 많았다. 평범한 헌터들이었다면 그야말로 앗 하는 순간에 저 몬스터들에 짓밟혀 끔찍한 최후를 맞이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쪽은 어딜 가서도 꿀릴 게 없는 고 랭크 헌터들이었다.
그들에게는 힘이 있었고 실력이 있었으며 경험이 있었다.
숨막힐 것만 같은 몬스터의 군세라고 하더라도 내로라하는 헌터들이 한곳에 똘똘 뭉쳐서 이루어내는 방어는 그렇게 쉽게 뚫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성스러운 보호막!”
오를레앙의 성녀 <잔 다르크>의 계약자 서다은이 스킬을 발동하자 눈부신 황금빛이 지면으로부터 솟아오르며 거대한 장벽을 이루었다. 그녀의 지원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신의 축복. 신성한 은총. 광휘의 가호. 정화의 빛. 지엄한 여명. 홀리 인챈트.”
미친 듯이 쏟아져 내리는 온갖 버프 스킬들의 향연!
서다은이 모든 마력을 쏟아부어 이 자리에 모인 헌터 모두에게 광역으로 버프들을 걸어주자 안 그래도 강한 헌터들이 그야말로 미쳐 날뛰었다.
<삼손>의 계약자인 최강윤과 <혜정>의 계약자인 강덕수는 둘이서 주먹으로 촉수 괴물들을 찢어 죽였고 <곽재우>의 계약자인 김승태는 분신을 계속 만들어내며 주변의 몬스터들을 시원하게 쓸어버리고 있었다.
쿠오오오오!
“제길! 큰 놈이다!”
이쪽을 향해 몰려드는 대다수의 몬스터들이 촉수 괴물이었지만 중간중간에 보면 거대한 촉수가 달린 갑각류 괴물들도 보이고는 했다. 덩치가 거의 10m를 넘어가는 놈들이 움직일 때마다 지면이 작게 진동했다.
콰직! 거대한 녀석들은 자신 발아래의 다른 몬스터들을 신경 쓰지 않고 무참히 짓밟았다. 워낙 덩치가 큰 놈들이라서 걷고 있을 뿐인데도 주변에 피해를 주었다. 그야말로 전쟁터에서 탱크를 방불케 하는 압도적인 덩치와 맷집에 용기백배로 싸우던 헌터들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막아!”
“무슨 수로?!”
헌터들이 망설이는 순간 허공에 거대한 실선이 그어졌다. 어두운 밤하늘을 가르고 날아가는 은빛의 섬광은 그대로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 거대한 몬스터를 정수리부터 꿰뚫었다. 그 직수 녀석의 몸이 그대로 비스듬하게 잘리며 지면으로 쓰러졌다.
“쯧. 이런 녀석 하나 막지 못해서야.”
검을 쥔 최덕현이 혀를 차며 전선에 나섰다. 그런 그의 뒤로 화랑 클랜에서도 집단 전투에서 가장 최고로 친다는 술랑 부대가 전선에 나서며 몬스터들을 학살하다시피 쓸어버리는 중이었다.
“저, 저게 바로 화랑 클랜.”
“S랭크 헌터라는 직책은 역시 보통이 아니었어.”
나름 B에서 B+랭크에 안착한 그들일지라도 최덕현이 방금 보여주었던 무위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아득한 경지의 그것이었다. 몇 명이 달려들어도 쓰러뜨리지 못할 녀석을 단칼에 제거하다니. 헌터들의 몸이 바르르 떨렸다.
5대 클랜의 클랜장이자 영웅급 영령 <김유신>의 계약자 타이틀을 가질만한 자격은 차고도 넘쳤다.
“쯧. 내가 어쩌다 이렇게 나서게 됐는지.”
최덕현은 툴툴거리면서도 검을 휘두르며 몬스터들을 제거했다. 특히나 대군 전투에 특화된 최덕현은 <지휘> 계통 스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와 함께 싸우는 헌터들의 신체 능력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것은 <강감찬>의 계약자인 이한율과 <곽재우>의 계약자인 김승태 또한 마찬가지.
전쟁에서 지휘자 역할을 맡았던 영령들의 스킬이 서로 중첩되며 발동하자 괴물들에게 쉽게 쓸려나갈 것만 같았던 헌터들은 자신들의 한계를 넘어선 힘으로 아득바득 버티고 있었다.
콰과과광!
“제길! 끝이 없잖아!”
“조금만 더 버텨!”
하지만 그런데도 몬스터들은 끝이 없었다. 아무리 순식간에 많은 녀석을 처치했다고 하더라도 <문>을 통해 쏟아져 나오는 녀석들의 숫자가 훨씬 더 많았다. 무엇보다 지금 점점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저 초거대 괴수가 언제 이쪽을 향해 들이닥칠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헌터들은 점점 불안감에 떨 수밖에 없었다.
‘정말 끝도 없이 몰려드는군.’
최덕현은 눈을 가늘게 뜨며 현찬을 곁눈질로 바라보았다. 현찬은 지금 눈을 감고서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는데 그의 주위로 너무나도 밀도가 높아서 눈으로도 볼 수 있을 정도로 마력이 농밀하게 넘실거리고 있었다.
‘신의 계약자. 여기서 뭘 어떻게 할 거냐?’
최덕현은 은근한 기대감을 품었다. 저 정도의 마력이다. 랭크가 낮은 헌터는 주변에 다가가는 것만으로도 마력의 힘에 눌려 바닥을 벌레처럼 기어 다닐 정도. 심지어 지금도 계속 증가하고 있었다.
이 정도의 마력으로 마법사 클래스가 공격 스킬 하나만 발동시킨다면 어지간한 도시 하나는 날려버릴 위력이 나올 것이다. 그것을 현찬이 어떻게 사용하는지가 이 자리에 모여 있는 헌터들의 공통 관심사였다.
‘보여 봐라. 너의 힘을.’
최덕현은 검을 휘둘러 거대한 갑각괴물을 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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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메스. 아직이야?’
현찬은 점차 자신의 마력이 바닥나는 것을 느꼈다. 그의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히기 시작했고 반듯하고 꼿꼿하게 서 있는 몸이 균형을 잃고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직이야. 부족해. 이걸로는 아빠를 부를 수 없어.]
헤르메스도 지금 이 상황이 달갑지 않은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그 혼자의 힘이라면 올림포스의 12주신 중에서 어지간한 신들은 다 부를 수 있다.
아테나가 곁에서 도움을 준다면 그들의 삼촌인 명왕 하데스와 해신 포세이돈까지는 부를 수 있었다.
하지만 제우스는 급이 달랐다.
모든 올림포스의 신 중에서도 가장 정점에 오른 하늘을 주관하는 신.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최고로 쳐주는 신 중의 신인 그를 부르기에는 헤르메스와 아테나의 힘으로는 아직 역부족이었다.
한 명만 더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현찬이 지금 계약을 맺은 신은 헤르메스와 아테나 둘뿐. 미리 계약을 맺어놓을 걸 하는 후회는 의미가 없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어떻게든 힘을 쥐어짜야만 했다.
콰과과과!
수문을 열어 범람하는 댐처럼 현찬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마력은 거대한 격류로 변해 계약을 위한 힘을 보태주었다. 하지만 끝이 없을 것 같던 마력도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으며 현찬은 자신의 머리가 어질한 것을 느꼈다.
마력이 적을 때, 헤르메스와의 계약 초창기 때 느끼던 마력 부족 현상이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시야가 검게 변하며 기절할 것 같았지만 현찬은 이를 악물고 버텼다.
해야 한다.
해야만 했다.
여기서 실패하면, 모든 것이 끝이다.
‘반드시 성공해야 해……!’
현찬의 몸이 비틀거리며 한쪽으로 치우치려고 할 때.
누군가가 현찬을 곁에서 받쳐주었다.
‘누구……?’
고개를 돌리자 시야의 끝에서부터 곱게 땋은 검은 흑단 같은 머리카락이 현찬의 눈동자를 희롱했다. 고개를 더욱 들자 그곳에는 현찬을 향해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는 <감은장아기>가 현찬을 부축해주고 있었다.
대체 어떻게, 라고 물어보려는 순간 감은장아기는 그 자리에서 조용히 사라졌다.
그 대신 현찬의 눈앞에 정보창이 주르륵 나타났다.
[운명의 여신, 감은장아기의 축복이 발동했습니다.]
[모든 행운이 급격하게 상승합니다.]
[모든 스텟이 일시적으로 상승합니다.]
[모든 마력이 회복됩니다.]
꺼져가던 불길이 다시 타올랐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쓰러질 것 같았던 현찬의 몸에 그야말로 폭발적인 힘이 넘쳐흘렀다. 마력의 격류는 해일로 변했고 그것은 거대한 의지를 품고서 드높은 천계의 정상을 향해 나아갔다.
[됐어!]
기쁨이 가득 담긴 헤르메스의 외침과 함께.
번쩍!
현찬을 중심으로 거대하고 강렬한 빛이 터져 나왔다.
“우왁?!”
“가, 갑자기 뭐야?!”
현찬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빛. 거기서 그치지 않고 헌터들조차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거대한 바람이 뿜어져 나왔다. 헌터들은 갑작스럽게 일어난 이 기현상에 당황했고 그것은 <심연>의 몬스터들도 마찬가지였다.
키이이이익!
현찬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에 미친 듯이 몰려들던 몬스터의 대군은 자리에 얼어붙은 채 기괴한 비명을 내질렀다. 그야말로 바퀴벌레 떼 같은 촉수괴물 뿐만이 아니라 거대한 갑각 괴물이나 거대한 벌레 괴물도 마찬가지였다.
쿠르릉!
별빛이 가득했던 밤하늘은 어느덧 먹구름으로 뒤덮여 있었다. 하늘이 배탈이라도 났는지 기성을 토해냈고 구름의 틈새에서 전하의 충돌이 일어나 거대한 섬광이 번쩍였다.
[설마 인간이 나를 부를 줄이야.]
근엄한 목소리로 현찬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 제우스는 신화에서 묘사하던 모습과 매우 흡사했다. 그야말로 보기 좋은 근육이 자리 잡은 커다란 덩치. 사자의 갈기처럼 강렬하게 휘날리는 황금빛 턱수염과 머리카락. 근엄한 얼굴에 서린 형언할 수 없는 절대적 자신감.
[이 세계의 순리에 어긋나지 않았더라도 나를 부른 영향은 남겠지.]
제우스는 쯧 하고 혀를 찼다.
한 신화의 주신이 하계에 그 힘을 드러내고 말았다. 이것이 얼마나 이 세상의 기묘한 흐름을 가속하게 될지 모르는 것이 아닐 터.
하지만 <심연>의 게이트를 막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오직 제우스 정도 되는 신만이 세계와 세계를 이어주는 <문>을 강제로 부술 수 있었으니까.
제우스가 그 사실을 모르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안타까운 한편 자신이 나서서 잘 됐다는 생각을 품었다.
[그리고 내 귀여운 딸이랑 아들이 이렇게 도움을 요청하는데 거절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비록 이것이 의도치 않게 하게 된 일이라 할지라도 기왕 하게 된다면.
[진심을 다해야 하지 않겠는가.]
현찬의 몸을 빌린 제우스가 그대로 땅을 박차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시야가 높아지며 아주 먼 풍경까지 보였는데 주위는 밤이라고 어두운 것을 고려해도 <심연>의 괴물들로 바글대서 마치 어둠이 살아서 움직이는 것 같았다. 그런 그들의 끝에서는 길이 하나하나가 1km에 근접한 거대한 촉수 수십 가닥이 하늘을 향해 꿈틀거리고 있었다.
[일단 이 귀찮은 벌레들부터 정리해야겠구나.]
바글거리는 <심연>의 몬스터들은 미관상 썩 보기 좋은 녀석들이 아니었다.
제우스가 가볍게 손을 휘젓자 먹구름이 더욱 짙어지더니 이내 주변으로 광풍이 몰아쳤다. 그것은 하나의 와류로 변하여 거대한 소용돌이가 되었다. 그야말로 초 고층빌딩 하나를 그대로 가져온 것 같은 거대한 소용돌이!
그것은 제우스의 손짓에 따라 수십 갈래로 갈라지더니 이내 지상에 있는 모든 촉수 괴물들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덩치가 크고 작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괴물들은 모두가 공평하게 용오름 안쪽으로 빨려 들어가 거친 바람에 갈려 나갔다.
제우스가 일으킨 폭풍은 헌터들에게는 어떠한 영향도 주지 않은 채 몬스터들만 전부 죽이고 있었다.
“미친…….”
누군가 자기도 모르게 그런 말을 중얼거렸다.
그들이 미친 듯 싸워도 숫자를 제대로 줄이지 못했던 괴물들의 군세를
현찬은 단 혼자서, 5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모조리 정리한 것이다.